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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시의 오염대항 방침이 한 단계 진전할 것으로 보인다. 7 1일 토요일부터 2001 1월 이전 운행을 시작한 디젤차량은 주간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파리 시내를 주행할 수 없게 된다. 파리 시는 이미 1년 전, 1997 1 1일 이전에 등록된 개인 및 영업용 디젤과 가솔린 차량 운행을 금지시키고, 2년 전에는 2001 101일 이전에 등록된 버스, 수송차량 및 대형 화물트럭의 운행을 금지시킨 바 있다. 파리시의 반 오염 계획은 대기의 질 향상을 위해 파리 시내를 저탄소배출 구역 혹은 차량 제한 운행 구역(zone de circulation restreinte)”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프랑스의 대기오염 문제는 오늘날 주요 공공보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16 6월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해 대기 오염으로 인한 프랑스 내 조기 사망자 수는 4 8천명으로 전체 사망률의 9%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2001년 이전에 등록된 개인 디젤 차량과 2002년 이전에 등록된 영업용 차량의 주행의 금지에 이어, « 2006 10월 이전에 등록된 대형 화물트럭과 관광버스 및 노선버스 » 역시 주행이 전면 금지된다고 파리시는 공식성명을 통해 밝혔다. 해당 차량의 수는 2014 11월 파리시에서 주도한 조사를 통해 산정되었으며, 그 이전까지는 어떤 관련 조사도 공공기관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오염 차량의 범주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느 히달고 파리 시장이 2020년까지 모든 디젤 차량 및 오염 가솔린 차량을 « 뿌리뽑겠다 »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와는 별도로, 지난 1 16일부터 파리 시내의 모든 차량이 공기품질증(pastille Crit’Air) 의무화가 시행되고 있다. 해당 라벨은 차량의 종류과 연식에 따라 6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공식 사이트 (certificat-air.gouv.fr)에서 평균 4.18 유로에 구매할 수 있다. 해당 라벨을 통해 주행 제한 구역에 접근 가능한지를 구분할 수 있으며, 친환경 차량의 경우 주차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7 1일부터 라벨이 없는 차량의 소유주 혹은 2001년 이전 등록된 차량을 주행한 소유주는68유로의 벌금을 물게 된다. 현장에서 즉시 벌금을 물 경우, 45유로로 삭감될 수 있으며, 반대로 체납할 경우 180유로까지 증액된다.

또한 파리시는 파리 거주자들 중 연식이 오래된 오염차량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400유로까지 재정지원을 해준다. 지원은 공공교통카드인 나비고를 충전하는데 일부 지원을 해주거나, 공공 자전거 대여서비스인 벨리브 1년 이용권을 제공하거나 자전거 구입 비용을 환급해주는 등의 형식이 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공공자동차 대여 서비스인 오토리브 정기이용에 50% 할인혜택을 제공받을 예정이다.

이렇듯 파리시는 « 저탄소 배출 구역 », « 주행 제한 구역 »으로 지정된 첫번째 도시로서 대기질 완화 정책에 박차를 기하고 있으며, 파리 이외의 8개 지역에서 같은 정책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유럽 내에서의 최초의 시도는 아니다. 이미 230개의 유럽의 도시권에 이러한 제한 구역이 갖추어져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이미 20년 전부터 주행 규제를 시행 중이다.

                                                                                                <파리지성 / 김수빈 foxy2520@naver.com>

 
                                     '살아온 생의 절반을 한글학교와 함께'

지난 6 14() 16시 파리한글학교의 종업식이 있었다. 이번 종업식은 예년과는 달랐던 것이, 지난 10년 동안 파리한글학교 교장을 맡아 헌신,봉사한 함미연 교장의 퇴임식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파리를 방문한 주철기 재외동포 재단 이사장이 이날 파리한글학교를 방문하여 축사를 하며 함미연 전 교장의 노고를 치하했다. 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릴때 와서 자라나고 있는 재외동포 자녀의 한글교육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아이들의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한글학교의 역할은 크다고 할수 있다. 함미연 전 교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1989년에 학부모로 한글학교를 찾아왔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29년동안 학부모로, 학부모회 회장으로, 그리고 학교장으로 한글학교와 같이 살았다’’고 했다. 살아온 생의 절반을 파리한글학교와 함께 한 함미연 전 교장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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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임사 중인 함미연 파리한글학교 전 교장


10년동안 파리한글학교 교장 직에 계시다가 얼마 전 퇴임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교장직을 맡았던 지난 10년 동안 참 열심히 신나서 뛰어다녔다고 생각해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듯한 요즘,  새로운 파리한글학교로 거듭날 수 있는 기대감으로  저의 퇴임 소감을 밝힙니다.


파리에 오시게 된 계기는요 ?

-대학에서 불문학과 교육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한불 협정으로 모교인 이화여대에 언어청각센터가 설립되었는데, 언어 사용에 문제가 있는 농아, 자폐아, 학습 지진아들을 위해 언어 교정 지도를 하는 곳입니다. 이에 필요한 전문가 양성 교육프로그램에 프랑스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에 오게 되었고 리옹에서 교육학 및 언어 치료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예전부터 교육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

-아버지께서 평생 교직에 계시다가 정년 퇴임하셔서 항상 학교와 연결된 분위기 속에서 자랐어요.  « 함 선생님 »이라고, 아버지께서 제자들로부터 들으시던  호칭인데 제가 듣게 되니 제게 물려주신 소명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도 언어청각센터에서 교사로 일했어요.


파리한글학교와는 오랜 인연이라 들었습니다.

-1989년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파리한글학교에 보내게 되었어요. 프랑스에서 살지만, 한국어 교육은 당연히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성당에서 운영하는 파리한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보내게 되면서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 등하굣길을 함께 했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첫째 아이를 시작으로 세 아이 모두 파리한글학교에 보내며,  그 사이 여러차례 학부모회장을 하고 학교 교장 맡아지내며 온 시간이 29년 되었습니다.


학부모 회장의 역할 또한 클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학부모 회장을 맡게된 때가 파리한글학교 역사상 중요한 일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 한글학교 건립 기금 마련 재불 작가 전시회 » 위한 그림을 모우는 과정에서 학부모회 임원들이 연루되어 한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직후여서 학부모회 이미지를 재 구성해야 했던 시기였어요. 또한 성당에서 한글학교를 설립하여 신부님들께서 1년씩 돌아가며 학교장을 맡아 운영을 하셨는데, 파리한글학교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조금씩 어려움이 생겼던 걸로 기억해요. 결국 프랑스 한인 교민사회의 각계각층의 인사가 모여 사립재단을 설립하며, 1994년에 김용진 선생님이 초대 교장으로 선임되셨죠. 저는 그보다 조금 전부터인 92-93학년도부터 96-97학년도까지 학부모 회장을 맡으며, 파리한글학교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학부모 대표로 학교 변화에 맞는 학부모회를 이끌려고 노력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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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설날 행사에서


새삼스럽지만요,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인지요 ?

-교장은 학교의 대표자이며 책임자이고 운영자입니다. 한글학교는 해외의 교민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문화를 가르치고자  교민사회에서  만들어진 비영리 민간 교육단체입니다.  전문교육기관이 아닌 봉사의식이 기본으로 뭉쳐서 세워진 만큼서로의 신뢰와 양보, 격려가 꼭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교장은 이런 여건 속에서도 최선의 교육이 이뤄지도록 교사양성에 힘써야 하고 학부모님들의 기대에도 부합할 수 있도록 항상 귀를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살펴야합니다. 대외적으로는 학교의 대표자로서 관계 기관 이나 외부 단체와의 교류 및 창구역할을 맡고 있으며  대외 행사를 관리합니다.


선생님이 교장으로 부임하신 2007년과 10년이 지난 지금의 파리한글학교는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 10년 전에는 IMF등의 여파로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었었고 교실 환경도 매우 열악해서 학교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그동안 교육과정을 단계별 학년별로 정리하였고 초등부 맞춤형 교재도 갖게 되었으며 프랑스 학제와 같이 유치부 3학년, 초등부 5학년, 중등부 4학년, 어학당 3학년 등으로 학년별로 체계화 된 수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학생 규모도 250여명에 총 20개 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재외동포 자녀들의 한글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이 보시는 재외동포 자녀들의 한글교육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언어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 무기입니다. 해외에서 살아도 다문화를 이해하면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되지요. 세계가 점점 한 무대의  활동 공간이 되고 있는데 재외 동포로서 어디에 있든 한국인의  뿌리를 잘 내리도록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에 열의를 보여 주셔야 합니다.

집에서 부모가 한글교육을 따로 시킬 수도 있고, 이곳의 한불 가정과 한인가정의 자녀의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 한글 공부를 시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좋겠지만 한글 학교를 보내는 것이 더 좋은 이유가 있다면요...

-한글을 익히고 난 후에도 지속적인 어휘 공부와 표현 그리고 쓰기공부가 단계별로 발전해가면서, 학습시켜야 하는데 집에서 지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교육과정이 연계되고 이에 따라 연구된 맞춤 교재로 학습을 하기에 집에서 하는 것보다는 탄력이 생기며, 무엇보다도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성장해가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훨씬 더 되고 다양한 교육소재를 접할 수 있어 교육 효과가 배가 됩니다. 한국 정부 교육기관과 재외 동포재단에서 지원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도 있구요.


재외동포자녀들을 위한 한글 교육을 위해 있는 한글학교지만 학생들만 있는게 아니고, 교사와 학부모들이 있지 않습니까 ? 이런 관계들을 아우르시면서 중심을 잡고 계셨을것 같은데요.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이지요. 저는 파리한글학교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저의 관심과 열정을 정확히 세 등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마냥 희생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학생들을 위하고, 교사를 위하고, 학부모를 위하며 제 마음을 세 부분으로 골고루 나누는 것을 운영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학생들이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며, 교사들의 경우,학교를 채워가는 것은 교사들의 몫임을 일깨워주고, 계속해서 자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며, 어려운 점이 있을 때에는 언제든 이를 해결하는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학부모님과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학생들을 위해 최고의 교육 방안을 모색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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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임식 때 파리한글학교 학생들이 만들어준 롤링페이퍼 북

지난 10년동안 파리한글학교 교장으로 계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이 있으셨다면요 ?

-이번에 퇴임하면서 받은 롤링페이퍼 북을 열어 본 순간입니다.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한 마음으로 각반에서 수업시간 중에  아이들에게 교장선생님이 떠나게 된 것을 설명하고 그 느낌을 아이들이 표현한 것들을 묶은 책인데요, 페이지 마다 감동이었습니다.

유치원 반의 김태훈, 새싹 반의 임준오, 그리고 정인이,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교장선생님에 대한 것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10년 이상을 다니고 졸업한 관우, 혜지, 은태, 혜민...그들과 공유한 기억들이 보람입니다.


이젠 우회적으로 파리한글학교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글학교에서 저의 반 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관심은 한글학교의 발전을 위해 움직일 것을 확신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한글학교와 한인사회를 위하는 일에 일조를 하겠습니다.


떠나시면서 파리한글학교에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파리한글학교는 학원이나 어학기관처럼 한국어 학습만이 전부인 공간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심어줘야 하고, 학부모님들께는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이라는 목표로 뭉친 하나의 공동체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결국 혼자 자생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며, 수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 한도에서, 다른 한인단체들과 연계해가면서 보다 넓은 세계관을 갖고 발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한인사회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 더 나아가서는 세계 속의 한글학교로 인식하여 시대에 맞게 발전할수 있길 소망합니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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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튼 개드 Faten Gaddes의 설치작품 “샌드백 Punching ball”

5 27일부터 시작된 이슬람의 신성한 절기인 라마단이 지난주 25일에 끝났다. 한달에 가까운 이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과 음료 섭취및 담배나 성행위 등이 금지된다. 이는 굶주린 이들의 고통을 체험하며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더욱 경건히 기도를 하여 믿음을 회복하려 함이다

그러나 몇년전부터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들은 이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그들의 조직원과 추종자들에게 폭력을 유발하는 지령을 보내어 테러를 종용하였다. 성스러운 전쟁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자행하는 테러들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이 기간은 '피의 라마단’이라고 역설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7년에도 성월 시작5일 전인 지난달 22, 영국 맨처스터 공연장의자살 폭탄 사건부터 유럽과 중동 전역에 빈번히 일어난 테러들로 도시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으며 특히 유럽에서는 이슬람 공포증과 같은 반 이슬람 정서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1 9.11 테러 후 반이슬람 감정을 지나치게 조장하는 미디어에 의해 미국 사회 내에 고조되었고 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파리 샤를 엡도 총격사건 이후 유럽내에서도 서서히 자리잡게 되었다

20151월 샤를리 엡도 언론사 테러가 있고난 후 프랑스 전역에서 테러를 규탄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기 위한 행진이 계획되었다. 전날인 1 10, 한 남미 여학생은 파리 생제르망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스타쥬를 마치고 여느때처럼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녀는 버스 안쪽으로 네명이 마주보고 앉는 자리에 먼저 자리잡고 앉아 있던 한 무슬림 커플 맞은 편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잠시 후에 술에 취한 한 남성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음악을 듣고 있어 잘 들리지 않았으나 그 남성은 무슬림 커플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커플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취객의 행패에 신경쓰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그 때였다그 술취한 남성이 갑자기 볼펜을 꺼내어 무슬림 커플 중 남성의 목에 볼펜을 꽂은 것이다. 깊이 박혔다 빠진 볼펜으로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남자의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가 간호사인,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 남미여학생은 눈앞에 벌어진 위급한 상황에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그의 출혈을 막고자 손으로 목을 지압했고 응급차가 오기전까지 20분을 버텼다. 이 갑작스러운 폭력적인 상황으로 아연실색한 여학생이 기억하는 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미친 듯이 울부짖던 피흘리는 남자의 연인이었다.

다음날 이 친구는 자신이 목격한 이 사건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그 날 이후, 우리는 이 사건을 그 어떤 기사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고 필자와 가까운 친구인 그녀는 프랑스의 위선을 목격했다며 참석하려던 전국민 대행진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무슬림과 테러리스트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진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감으로 비롯된 적대감과 혐오감 등의 차별적 시선을 우린 곧 잘 마주하게 된다. 올해 초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이슬람권 7개국 입국을 금지하는 등, 전 세계는 수많은 무슬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하고있다이는 과거 인종에 의한 차별이 이제 종교에 의한 차별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유대교인이고 이슬람교인이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이끈 쟈스민 혁명이 일어난 튀니지 출신 작가 패튼 개드 Faten Gaddes 2012년 예술의 봄 전시에  Punching ball 샌드백이라는 그녀의 유명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각각의 샌드백에는 머리카락을 수염과 히잡처럼 교묘히 묘사한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속에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종교의 심벌이 표현되어 있고 그 하단에는 프랑스어로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유대인이다""나는 튀니지인이다"라고 쓰여져 있다. 이 이미지들은 이미 각각의 종교에서 기피되고 거부당했던 사진들이다. 2011년 시위에 참석한 그녀에게 누군가가 무슬림인지 튀니지인인지를 물어본 이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더욱 잘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세가지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로 인해 종교의 다양성과 종교의식에 대한 자유를 표현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옹호함으로 극단론자와 광신론자를 비난하고자 하였다

전시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한 아랍 신문에 이 작품 속 이미지 중 하나가 작가의 집 주소와 "살인 교사"라는 문구와 함께 게재되었다. 결국 이 작품은 살라피스트들에 의해 소각되었으며 그녀는 확인할 수 없는 우울증에 사로잡혔고 더 이상 튀니지에서 전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무슬림들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이슬라모포비아들에 의해 희생되고 피해를 입고 있으나 미디어의 주목을 덜 받고 있기에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지난해 통계를 살펴보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죽을 확률이 이슬람계 테러리스트에 의해 죽을 확률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유럽 사회에서 살아가는 무슬림들이 테러를 반대하면서도 그것을 규탄하는 공식적인 행동에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테러가 그들에의해 벌어지고 있다라는 낙인이 더욱 깊게 찍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빈번한 테러로 공포감이 증폭되는 라마단 절기에 그들은 더욱 움추리게 되고 반 이슬람 정서로 인한 증오 범죄 또한 증가하여 무고한 무슬림들은 경건하고 고요하게 보내야할 이 기간을 공포에 떨며 보내야 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파리지성 /김지현 july7911@gmail.com>

 

최옥경 교수의 이우환 저서 « LEEUFAN, Espaces Non-Agis » 출판기념회

파리 미술전문서점, 아르뀌리알(Artcurial)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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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사인해 주고 있는 저자, 최옥경 교수와 이우환 작가



세계적인 미술작가 이우환((李禹煥,Lee Ufan,1936-)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다룬 책, « LEE UFAN, Espaces non-agis », (출판사(Éd.) Cercled’Art, 280 p.) – 저자 뒤포르제 최옥경 (Duporge-Chae, Okyang)- 출판 기념회가 6 22 () 18 30 분 부터 파리 샹젤리제거리(Champs-Elysées)에 위치한 미술서적 전문서점인 아르뀌리알(Artcurial)서 열렸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는 저자 뿐 아니라 이우환 작가가 참석해 사인회로 진행되었다.

« LEE UFAN, Espaces non-agis »은 저자 뒤포르제 최옥경 박사(Duporge-Chae, Okyang, 미술사,Histoire de l’art)의 박사논문 (2006년 파리 4 소르본 대학, Université Paris IV-Sorbonne)을 지난 10여년에 걸쳐 다듬고 보충한 결과물이다.

불문학 전공 학생이었던 저자는 1999년 갤러리 뒤랑 데쎄르(Galerie Durand-Dessert)에서 우연히 마주한 이우환 작가의 돌과 철판을 소재로 한 설치 작품에서 느껴지는 묘하고 특별한 공간성에 발길을 옮길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우환 작가 특유의 (오브제 설치를 통한)‘제시(re-présentation)’, 일상성을 깨뜨리고 신선한 지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만남에서 저자는 미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울림이 가슴속에 일었던 것이리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바로 이때부터 저자는 길고 긴이우환 (예술)세계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책 서문과 인터뷰등에서 밝힌다. 이후 쉽지 않은이우환의 예술에 접근하기 위해 저자는 작가와의 인터뷰, 관련 서적 탐독은 물론 특히,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이우환 작가의 전시를 방문해 작가의 작품에 대해올바로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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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옥경 교수의 이우환 저서 출판기념회에서

이우환 작가는 오래전 한 미술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 « 물론 내 작품 의도와는 관계없이 주관적인 비평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고, 또 그런 개인의 비평적 취향을 막을 권리는 물론 없습니다. 그러나 제발 올바로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

글로벌 시대, 생존작가로 이미 미술사에 전설적 입지를 굳힌 작가로 이우환을 꼽는데 이견을 달리 할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이우환은 비록 상투적인 말이지만 세계적인 작가다.‘예술가 자체가 곧 예술이 된 작가’, 하지만 그의 예술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역시 미술계 전반의 인식이다. 다시말해, 비평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데 모두가 선뜻 동의 하지만 글 쓰는데는, 비평의 대상으로는 어려운 인물이다. 더구나 작가 자신이 이미 훌륭한 철학자이자 이론가, 비평가다. 누구나가 알 수 있는 너무나 쉬운말로 명쾌하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아주 쉽게 이해시키는 능력자로 이미 정평이 난 인물이다.작가는 또한 이러 저러한 비평에도 자신의 목소리로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도 거부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뒤포르제 최옥경 박사의 오랜 연구 결실인 이번 저서 « LEE UFAN, Espaces non-agis »가 작가 이우환 예술의 실체에 한발제대로다가설 수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에 대한 기대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책은 영어판(Lee Ufan: Untouched Space, 번역Rachel Zerner, 출판사Cercle d’Art, 280 pages)도 동시에 출간되어 프랑스어권뿐만이 아니라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이우환의 예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10년전 독일인에 의해서 이우환 작가에 관한 책이 한 권 나온 이래로, 처음으로 이우환 작가의 최근 작품들까지 다룬 불어, 영어판 책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할수 있다.

출판기념회에는 국제적 작가의 예술세계를 다룬 책 출간에 걸맞게 프랑스의 예술애호가들과 수집가들 그리고유명 파티시에 삐에르 에르메(Pierre Hermé, 1961-)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특히, 아랍 미술권 전문 미술사가이자 전시 커미셔너 브라임 아라위(BrahimAlaoui :파리의 현대미술박물관(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연구원 및 파리 아랍권 재단 박물관(musée de l'Institut du Monde Arabe à Paris)디렉터 역임. 저서로 아랍 현대미술가와 관련한 다수의 책과 카탈로그를 출판)도 참석해 이우환 작가와의 오랜 인연을 자랑했다. 그는 특히 1994년 파리의 아랍권 미술관에서 조직한 전시에서 이우환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뒤포르제 최옥경 박사의 논문 지도교수였던 세르즈 르무와느(Serge Lemoine, 오르세미술관 관장 역임)소르본 대학 교수도 참석해 제자의 노고를 격려하고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 파리지성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폭염 속의 프랑스, 이색 시위

                                                  -낭트의 대중교통 남성 운전자들 치마 입고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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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프랑스는 폭염 속에 있었다. 여름에 그리 더운 날들이 많이 없는 프랑스에는 에어콘은 고사하고 선풍조차 잘 구비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그런 프랑스에서 지난주 36,37 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프랑스 지방 도시인 낭트에서 대중 교통 남성 운전자들의 이색 시위가 있었다.

620일 화요일, 낭트지역 프랑스 민주 노동연합(CFDT)6명의 남성 운전자들이 치마를 입고 출근을 했다고 프랑스 언론들은 밝혔다. 낭트 지역의 버스 및 전동차 운전자들은 기온이 30도를 넘고 있을때 당국에 반바지를 입고 버스운행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를 거부당한 것에 대항하기 위한 차림으로,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 관계자는 폭염속에서 운전자가 있는 버스 앞 유리창 쪽은 50도 가까이 되고 있고, 버스에 에어컨이 없기에 긴바지를 입고 운전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고 하면서, 여성 운전자들이 치마를 입고 근무할수 있는 상황에서 이는 일종의 차별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하루종일 치마를 입고 있을거에요. 오늘 같은 기온이면 바지 입은 것보다 휠씬 낫다 ‘’고 하면서,‘’반바지 차림의 근무는 현대에 걸맞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들은 승객들에게 새로운 차림이라고 가볍고 재미있게 이야기했고, 버스 승객들은 그들의 차림새를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반바지 근무 허용 쟁취   

낭트 지역 대중교통 민주 노동연합의 운전자들은 폭염속 반바지 근무 허용을 2013년부터 요구해 오고 있었는데 계속 거부 당하다가, 이번 치마 차림 출근이 프랑스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난뒤인,  622() 당국은 운전자들의 반바지 차림근무를 허용했다. 다음날인 23() 아침, 며칠전 치마 차림으로  출근을 했던 이들은 이날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해서는 만족해하면서, 여성 운전자들과 사무실 행정 직원들도 폭염속에서는 반바지 차림으로 근무할수 있기를 원한다고 했다.


                                                                                                                                     <파리지성>

 

2017 파리 퐁피두 센터, 데이비드 호크니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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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1일부터 영국의 팝아트 아티스트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Hockney) 회고전이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2017 파리 전시 가장 기대되는 전시이기도 전시는 런던과 뉴욕의 대형 미술관들과 함께하는 순회 전시로 그의 80 예술 인생을 있는 160 이상의 작품으로 구성된 대형 회고 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호크니의 대표작인 수영장,  더블 포트레이트, 풍경화 뿐만 아니라 최근의 작품들까지 있다.


전시 장소 : 파리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 Paris

전시 기간 : 2017 6 21 –2017 1023

입장료 :  14유로 / 할인11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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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팔레, 로댕  Rodin, l'exposition du cente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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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조각가 이자 근대 조각의 선구자인 로댕(1840-1917)의 전시가 그의 사망 100주년을 맞아 파리 그랑 팔레에서 진행 중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로댕의 주요 작품들 뿐만 아니라 카르포(Jean-Baptiste Carpeaux), 부루델(AntoineBourdelle), 클로델(Paul Claudel),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등 로댕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됨으로써 로댕의 위상을 보여준다.


전시 기간 : 3 22 - 7 31

전시 장소 : 그랑 팔레 Grand Palais, Galeries nationales

입장료 : 13유로 / 할인 9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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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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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동안 역사, 도시, 풍경, 자화상, 신화 등의 다양한 주제에 천착하며 인간에 대한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해온 작가이자,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라고도 있는 서용선은 파리의 미술 협회인 Villades Arts 초청을 받아 18구의 갤러리에서 달간 전시 중이다.


전시 기간 : 2017 6 19 부터 7 16 까지

전시 장소 : Galerie La Ville A des Arts, 15 rue Hégésippe-Moreau 75018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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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재단, 아트/아프리카, 새로운 아뜰리에 Art/Afrique, le nouvel ate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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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루이비통 재단의 아프리카 전시에서는 192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는 루이비통 재단 소유의 컬렉션들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예술계 신인들의 작품들을 까지 다양하게 있다. 또한, 문학, 음악, 영화 등과 함께 있어 흥미롭다.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예술적 정체성을 있는 전시이다.


전시 기간 : 2017 4 26일부터 8 28일까지

전시 장소 : 루이비통 재단 Fondation Louis Vuitton

입장료 : 14 유로 / 할인 10유로 또는 5유로

 

                               프랑스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옥경 교수를 만나다.

                        -6 22 이우환 작가 관련 저서, <LEE UFAN espaces non-agis> 출판 기념회-


최옥경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가 2015 9월 프랑스 한인회에서 주최한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기메 박물관 한국관 탐방이었다.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은 전 세계 아시아 유물 박물관으로는 최대 규모이며, 한국관에는 김홍도의 풍속도, 퇴계 이황의 글씨, 고려청자 , 금동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선사 시대의 유물부터 조선시대의 그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미술사를, 그것도 프랑스에서 태어나거나, 어린나이에 와서 자라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최옥경 교수는 자료를 준비해서 나누어 주면서 한국어와 불어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단순한 전달식 강의가 아닌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끌어내었다. 이같은 열정은 박물관을 방문하던 다른 이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최 교수의 설명을 듣게 했다당시 그런 그를 보면서 느낀건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구나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저런 열정은 나올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온다. 그것은 주위사람들까지도 기분좋게 물들이곤 한다. 파리 국립동양어문화대학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옥경교수는 한국 미술 관련해서 불어로 된 자료가 거의 없다며 한탄한 바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3월 불국사 석굴암 관련 저서가 프랑스 세르클 다르출판사 Editions Cercle d’Art 에서 출간되어 주 프랑스 한국 문화원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그가 공저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이우환 작가에 대한 책  <LEEUFAN espaces non-agis>을 출간,  6 22일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현대미술로는 가장 중요한 서점 아르퀴리알 Artcurial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진다.

얼마전 어떤 전시에 갔는데, 한 프랑스인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로 추정되는 한국 호랑이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직인만이 있을뿐 작자나, 작품 관련해서 어떠한 설명도 없다면서 답답한듯 물어온 적이 있다. 바로 최옥경 교수가 이야기했던, 프랑스에 한국 미술 관련 자료가 없다는게 떠올랐다. 최 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 교수의 역할은 크다고 할수 있겠다. 이우환 작가 저서 출간에 즈음하여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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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9월, 프랑스 한인회 주최, 기메 박물관 한국관 탐방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하고 있는 최옥경 교수


한인회 기메 박물관 탐방때 청소년들에게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인회 행사에 여러번 강연을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 한인회 주최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한국 미술을 잘 모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메 박물관 탐방 행사를 기획했다고 초대를 해서 네 번의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 다. 그런 자리는 처음이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두시간이라는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마지막 탐방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때  청솔회 어른들이 많이 참석하셨어요. 그날은 한국 역사와 문화를 저보다도 오래전에  체험하신 그분들 앞에서 내가 무엇을 덧붙일수 있나 하는 생각에 더 긴장되었어요. 결국 2시간 동안 서서 열심히 들으시는 모습에 제가 감동을 했답니다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들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강연자가 서서 말을 하는게 더 힘들텐데 어떻게  편하게 앉아서 듣냐고 하시면서  앉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탐방은 제가 누군가를 가르친다기 보다는 하나의 만남의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 이곳 한인들과 심리적으로 많이 가까와진 느낌이에요.

프랑스 학생들이 한국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지요 ?

-정말 관심이 많아요한국학과에 온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기 때문에 한국 미술 이전에  한국 문화 자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 1학년 학생들은 거의 200명이 되는데 미술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수업후에 저를 보러와서졸업하고 한국 미술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한번은 프랑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한국 여행을 가서는 석굴암과 불국사 앞에서 찍은 사진을 제게 보내왔어요제게  배우지 않았더라면 이 문화유산들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몰랐을 것이라는, 한국어로 쓴  감사의 글과 함께 말이지요. 석굴암은 한국 미술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화 유산으로 수업 중에 제가 많이 강조하는데그 학생들이 저의 수업을  듣고 힘들게 돈을 모아서 한국에 문화 유산을 직접 체감하러 간 거에요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더한 선물을 바랄 수 있을까요 ?  

지난 3, 선생님 공저인  불국사,석굴암 관련 저서 <Trésors de Corée - Bulguksa et Seokguram> 이 불어와 한국어로 나와 한국문화원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는데요, 그책에 대한 말씀 좀 해주세요.

제가 그 책 출간에 참여한 것은 사람이  정말로 무엇인가를 원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제게는 아주 소중한 계기가 되었어요. 몇년 전프랑스에서 한국 미술사와 한국 문화유산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더 생생한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름 방학때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가서 여러 문화 유산 유적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내가 느낌이 있어야  학생들한테 그 느낌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에 , 오래전에 가 보았던 곳들을 다시 돌아보며  남쪽으로 내려오다 경주 석굴암까지 오게 되었어요.

예전에도 몇 번이나 와서 보았던 보호 유리벽으로 막힌 석굴암 앞에 섰는데 같은 광경인데도 그때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어요우선 그 위엄스런 본존불에게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한 느낌을 받았을뿐 아니라 불상들을 넘어서 조각상들 사이에 있는 석굴암의 공간을 보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에서 멀리 와서바로 눈 앞에 두고 도굴 안에 들어가 유리벽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언젠가 베니스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파도바에 도착하고도 예약을 못해서 교회 안에 있는 지오토의 그림을 못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었어요. 그래서 유리벽 너머로 석굴암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저 곳에 들어가야지’’ 라고 마음을 먹으며 힘들게 발길을 돌리고 말았답니다.

그때가 2014 8월이었는데,  2015 1월에  현대미술 전시 일로 방혜자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고 우연히 석굴암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방선생님은 제 눈을 똑바로 보시며 하늘이 저를 보냈다고 하시는거에요. 알고보니 오래전부터 방혜자 선생님께서 석굴암과 불국사 관련 불어 서적 출간을 열망하고 계셨던거에요.  그리고는 같이 석굴암에 가자고같이 책을 만들자고 하셨어요그렇게 해서 그 해 4월 우리는 같이 석굴암에 들어갔답니다저로서는 오히려 그 분이야말로 하늘이 제게 보낸 사람 같았어요제 꿈이 불과 몇개월 뒤에 이루어졌으니까요

그 책을 위해 한국 불교미술의 대가이신 강우방 선생님도 글을 쓰셨고, 프랑스 사진 작가 실바와 평생을 석굴암 사진을 찍어오신 안장헌 선생님께서도 그 귀한 사진들을 주셨지요실제로 저는 그 책 프로젝트에서 부족했던 바퀴의 한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작은 조각이라도 그 조각이 없으면 바퀴가 구를 수 없는 것이기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운명처럼 적시에 만난 것이라고 볼 수 있죠이 아름다운 만남이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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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출간된 이우환 작가 저서 <LEE UFAN espaces non-agis>  표지         최옥경 교수 공저인<Trésors de Corée, 한국의 문화 유산 >표지


석굴암 안에 들어가 보신 느낌은 어땠어요 ?

주실로 들어가기 전에 전실에서 석굴암 큰 스님과 함께  예불을 드렸어요. 스님의 염불소리와  목탁 소리가  동굴안에서 신비스럽게  울렸어요. 그리고 뛰는 가슴으로 본존불 뒤 원형 주실로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사십여구에 가까운  불보살 부조상들을 볼 수 있었죠저는 학생들에게 작품을 볼 때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해요. 몸 전체로나의 존재 전체로 보는거라고 말하곤 합니다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공간에 들어가서  직접 몸으로 느낀 것들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불교 미술은 5세기 인도의 굽타미술에서  양식적인 절정을 이루었어요이 미술은 인도에서 시작되어서 한편으로는 동남아시아로 다른 한편으로는 비단길을 거쳐 극동으로 뻗치면서 전파되었는데 그 영향은 석굴암에 까지 미쳤어요석굴암은 문화 흐름의 종착역 같은 곳으로 극동에 핀 마지막에 핀 꽃과같습니다경주 토함산의  한 구석에 있지만 그 당시 국제적으로 가장 세련된 양식을 받아들여서 그 위에서 한국적으로 발전시킨 것이에요통일 신라인들은 외래의 영향이 단순한 모방으로 그치지 않게 할 불심과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대단한 예술을 이루어낸 것이죠

 

이번에 세르클다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우환 작가 관련 저서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 책은 제가 2006년 소르본 4대학에서 받은  미술사 박사 학위 논문을  좀 더 다듬고 보완한 것이에요논문 발표 이후에 하신 작품도 고려를 해서 업그레이드를 했지요그 사이 십여년이 넘는 동안 이우환 작가의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이 눈부셨고 이제는 아시아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셨지요

 

원래 전공이 미술사였나요 ?

-불문학 전공이었어요. 소르본 대학에  들어가니  복수전공을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그 당시 문학쪽 제 DEA 논문 주제가 미술과 관련이 있어서  그논문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 미술사 과정에도 등록을 했어요결국 불문학과 미술사 두 군데에서 DEA학위를 받았는데 박사논문을 시작할 때는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프랑스에 공부를 하러 왔으면 배우고 가는것도 중요하지만 무언가 학계에 보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으로서 언어를 다루는 문학쪽으로는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었고곳곳에 미술관이 산재한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미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지요.  

 

이우환 작가와의 인연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요.

- 이우환 선생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문학을 하던 내가 그를 주제로 논문을 쓸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요. 그러던 차에 1999년 우연히 갤러리 뒤랑 데쎄르에서 이우환 작가 전시를 보게 되었어요커다란 화랑에  터치 한 두 개 있는 큰캔버스 몇 개와 돌과 철판으로 된 조각, 그 정도가 다 였는데 아주 특이한 공간감을 느꼈어요그 공간감에 이끌려 오랫동안 그 화랑에서 나가지를 못했었죠그로부터 몇달 후 지도 교수가 독일에서 한 전시를 보고 와서 그 중에는 이우환이라는 대단한 한국 작가도 있다는 얘기를 하셔서 그 작가를 주제로 하면 박사논문 지도를 받아주시겠구나 생각하고 , 말씀드려 미술사 박사 학위를 하기로 결정하게 된 거죠.  

이우환 작가에게 전화해서는, 선생님에 대해서 논문을 쓰겠다고 했는데, 바로 그날 뵙게 되었지요작품이나 책을 통해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감지했기에 처음부터 어설프게 그를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처음에는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철저하게 공부를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유럽을 오가시는데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파리에 오실때마다 뵙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뢰가 조금씩 쌓여나갔지요.  

소르본  대학의 제 지도교수는 그르노블 미술관 관장이셨다가 이후에는 오르세 미술관 관장도 하신 분인데 그 분에게서  확실히 배운 것은미술사는 구체적으로 작품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술의 본질은 작품입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지만 다 컨트롤  할수 있는게 아니에요.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닙니다. 작품은 작가를 넘어설 수 있는 거에요그런데 한국에서 이우환 작가에 대해 쓴 논문들을 보면 흔히 작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장황한 상황론만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저는 연구의 기본이 되는 것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논문을 시작하면서  영국, 독일, 한국, 일본 이태리 그리고  논문 후에도 베니스 비엔날레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등, 대부분의 전시를 보러다녔죠석굴암의 경우처럼 작품의 힘은 내가 직접 보고 느껴야 글을 쓰거나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옥경 교수 출판 기념회 엥비타이시옹.jpg

 

조금전 말씀하신 것 처럼 예술의 본질은 작품이라는, 그 관점에서 이책을 구성하신거겠네요.

-물론이죠제 책의 출발점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작품 설명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우환 작가의  자서전적인 요소는 거의 배제되어 있습니다. 제 책은왜 그렇게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여백이 많고 만들지 않은 면이 많은가, 그러면서도 왜 그런 특이한 공간감을 자아내는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지요그것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  1장의 일본 모노파 미술 운동에 대한 것이에요작가가 가진 세계에 대한 비전이 그때 거의 형성되기 때문에 모노파 시기의 활동들은 중요하지요스무살의 나이에 한국에서  건너 온 이우환이라는 작가가  60년대말  일본 현대미술사에서도 중요한  모노파 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산재했던  반일 감정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지요. 이 부분을 연구할 때 일본에 가서 작가들과 비평가들을 만나고 인터뷰도 했습니다너무 고맙게도 일본인 친구가 일본어 자료 번역과 통역을 많이 도와주었어요이우환 선생님이  60-70년대에 일본어로 쓴 글이나 다른 이들의 비평또 한국 미술계에서 쓰여진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자주 만나고 있는 사람이 그 당시에 그처럼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신화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발견 검증해가다가 선생님을 파리에서 다시뵐 때 가끔은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지요.     

이우환  작가는 단순히 자기표현만을 위해서 작품을 하는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세계 미술사에 도전하는 작가입니다. 제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학계에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듯이, 작가도 미술사에 어떤 자기만의 해답을주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제 책에서도 미술사의 맥락에서 이우환 작품이던지는 문제 제기를 재조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그의 작품들을 세잔이나 마티스모리스 루이스, 샘 프란시스, 마르탱 바레나, 니엘 토로니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백과 비교하거나고찰하고 조각에 있어서도 리처드 세라 등을 비롯한 포스트 미니멀리스트들과 비교 연구합니다.   제 책 각장들은 기본적으로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만 각각의 장은 주제가 있고 그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우환 작가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오늘의 작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작품 기술을 세밀히 추척하는 것이지요.  

다행히 제가 불어로 쓴 이 책 출간과 동시에 영어판 번역도 나왔습니다그래서 프랑스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읽힐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전 독일 사람에 의해서 책이 한 권 나온 이후, 최근 작품들까지 다루며 이우환 작가론을 낸 사람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논문에서 시작해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 책의 출간으로 마침내 인생의 한 단계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모퉁이를 돌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선생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미술사 관련 자료 많이 남겨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처음 유학왔을 때는 한국 미술사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서양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하지만 그 길을 둘러 다시 재발견하는 한국 미술사의 매력은 굉장합니다.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알아야될 것이 많고 또 개인적으로도 알고 느끼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최근에 제가 불국사· 석굴암에관련된 글을 쓰거나 채색화 (민화) 혹은  단색화에 대한 컨퍼런스 등을 하거나 혹은 지난 주에 오픈한 이응노 작가전시 도록에 글을 쓰는 등, 미술사의 다양한 시기를 오가는 것이 산만해 보이기 쉽겠지만 실은 이 모든 것들은 제 머리속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불어로 된 한국미술사를 쓸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그렇게 살아왔듯이 꿈을 꾸면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최옥경 교수 <LEE UFAN, ESPACES NON-AGIS> 출판 기념회

(저자, 작가 참석 싸인회)

일시 : 6 22() 1830분부터 21시까지

장소 : ARTCURIAL Librairie d’Art  

        7 Rond-Point  des Champs-Élysées75008 Paris

문의 : Géraldine Martin. 01 42 99 16 20

              gmartin@artcurial.com

 
                                                  문화원 로고 1.jpg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은 2017년도 2차 행정직원을 채용하고자 하니 역량 있는 인재들의 많은 응시바랍니다.

1. 채용직종 및 인원

ㅇ 일반직 행정직원 1, 기타직 행정직원 1

 

2. 담당업무

 ) 일반직

  ㅇ 문화원 행사 기획 및 홍보

  ㅇ 교육, 영화, 문학, 체육 등 관련 행사 지원 및 문화원 행정업무

 ) 기타직

  ㅇ 문화원장 및 행정업무 보조

  ㅇ 문화원 및 파리관광문화센터 관련 제반 업무 

 

3. 자격요건

   ㅇ 학사 학위 이상 취득한 자로 프랑스 체류 및 문화원 업무 수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

     ※ 일반직 행정직원의 경우 문화예술, 행사 기획, 교육, 출판 및 이와 유사 분야 전공 석사 학위 이상 취득 자, 관련 분야 유경험자 우대

   ㅇ 한국어 및 프랑스어에 능통한 자

   MS-OFFICE, 한컴 오피스, 포토샵 등 사무관리 및 정보화 능력 우수자

 

4. 채용 및 근무 조건

ㅇ 수습 기간 : 유급 수습 기간 후 최종 채용 결정

ㅇ 기본급, 수당(상여금, 시간외 근무수당 외), 사회보장비 등은 「재외한국문화원·문화홍보관 행정직원에 관한 규정」 및 「재외한국문화원·문화홍보관 행정직원채용 및 운영지침」에 따름

ㅇ 근무지 : 주프랑스한국문화원(2 AVENUE D'IENA 75116 PARIS)

ㅇ 근무시간 : 35시간

 

5. 제출 서류

ㅇ 이력서(자유양식) : 한국어 및 프랑스어 각 1

   ※ 연락 가능한 휴대전화 번호와 이메일 주소 기입

ㅇ 자기소개서(자유양식) : 한국어 및 프랑스어 각 1

ㅇ 여권 사본 1

ㅇ 프랑스 체류증 사본 1(소지자에 한함)

ㅇ 개인정보 제공 및 이용 동의서 1 : 문화원 홈페이지에서 파일 다운로드 후 작성 및 서명, 스캔하여 제출

ㅇ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및 성적증명서 사본 각 1

ㅇ 어학성적증명서 : DELF B2 또는 TCF Niveau 4 이상 어학 증명서 사본 1

   ※ 단, 프랑스 국립대학교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는 해당 학위 증명서로 어학성적 증명서 대체가능

   ※ 외국 국적자의 경우 TOPIK 5급 이상 증명서 제출 (, 한국 소재 대학교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는 해당 학위 증명서로 어학 성적 대체 가능) 

ㅇ 보유자격증 증명서 사본 각 1(이력서에 기재한 경우)

 

6. 선발 방법

1 : 서류전형

2 : 언어 능력 평가

   ※ 평가 당일에 여권, 체류증,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자격증 등 원본서류 지참(기 제출 사본과 원본 대조)

3 : 최종 면접

 

7. 전형 일정

ㅇ 지원서 접수 : 2017 6 9()부터2017 6 28() 18시까지(파리 기준)

ㅇ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 2017 7 5() 예정

ㅇ 언어 능력 평가 : 서류전형 합격자에 한해 일정 개별 통보

ㅇ 최종 면접 : 언어 능력 평가 합격자에 한해 일정 개별 통보

ㅇ 최종 합격자 발표 : 7월 셋째 주 예정, 개별 통보

※ 모든 전형 일정은 내부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8. 채용 시기

 ) 일반직: 2017 9 1() 예정

 ) 기타직: 2017 10 2() 예정

 

9. 서류 제출 방식 및 시한

ㅇ 제출 방식 : 이메일로만 접수

ㅇ 서류접수 이메일 주소 : job@coree-culture.org

※ 이메일 제목은 반드시 다음과 같이 표기 : ‘일반직/기타직 행정직원 지원(본인 성명)

※ 제출 서류 순서에 맞춰 하나의 파일로 압축(ZIP 포맷 등)하여 제출

※ 우편 및 방문 접수 받지 않음

ㅇ 제출 시한 : 2017 6 28() 18시까지(파리 기준)

ㅇ 문의 : job@coree-culture.org (전화문의 받지 않음)

 

10. 유의사항

ㅇ 서류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 합격 통지 후에도 채용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ㅇ 이력서 상의 기재 착오 또는 누락, 제출서류 미비 등으로 인한 책임은 전적으로 응시자에게 있습니다.

ㅇ 최종 합격 통지 후에도 신원조사 등을 통해 부적격 사유가 발견될 경우 합격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ㅇ 전형 결과 적임자가 없는 경우 채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인 작가를 소개합니다>

                        공간과 나, 그리고 타인과 나, 그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해서, 권혁이 작가

본지는 지난 1월부터 <신인작가를 소개합니다> 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주기적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신인 작가들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주는 일곱번째 순서로 ‘’공간과 나 , 그리고 타인과 나, 그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해서, 권혁이 작가’’  편입니다.


혁이 프로필 사진.png
                                                                     흙 작업 퍼포먼스 영상 촬영 준비 중인 권혁이 작가

지난해 12월 파리 퐁데자르 갤러리 크리스마스 선물전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데생-콜라쥬 인데 콜라쥬 재료가 무엇인지 모르게 익숙하다. 다름 아닌 작가가 입었던 옷을 잘라붙인 것이었다. 작품 제목은 ‘’나의 방 Ma chambre’’ 였다. 방에 있는 침대와 책상 등, 흔히 접할수 있는 평범한 방의 데생위에 작가가 입었던 티셔츠, 바지를 잘라 조각내어 붙여놓았다. 왠지 방이라는 공간과 작가가 입던 옷, 사이에 무언가가 있을것만 같았다. 이 같은 작업을 하는 작가는 앙제 보자르 아트 미디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파리 1대학에서 조형미술 석사과정에 있으며, 파리를 중심으로 퍼포먼스,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을 하고 있는 권혁이 작가다.

작가 자신의 흔적이 묻어있는 옷을 잘라 작품속에 붙였다는 특이함이 있다. 또한 설치작업에서는 옷을 잘라 이어서 특정 공간 안에서 ‘’나의 방 Ma chambre’’을 재현해내고 있다. ‘’Ma chambre’’는 개인의 일상이 녹아있는 방이라는 공간과 작가 자신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관계로 얽혀져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물질화, 시각화 하기 위해 실제로 살았던 방의 둘레와 방의 가구들, 출입구와 창문 등을 프랑스에서 실제로 입던 옷들로 측정했고 그것들로 공간의 테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에게 옷은 방이라는 공간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담고 있으며, 2의 피부로 보고 있고, 방은 제 3의 피부라고 한다. 그렇게 작가는 공간과 자신간의 밀접한 관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를 작품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의 체취가 남아있는 옷으로 재현한 방은 작가의 ‘’자화상’’이다.

‘’나의 방 Ma chambre’’에서 또 중요한 부분은 유목민적으로 작품의 설치와 해체를 반복하는데에 있다. 이는 프랑스에 와서 자주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과 안정되지 못한 삶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사람간의 보이지 않는 관계에 중점을 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음악 이론가인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가 열거한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의 죽음이라는 세가지 죽음에서, 미디어를 통해 처음에는 나와 별 상관없는 ‘’그의 죽음’’을 접하다가 또한 그 미디어를 통해너의 죽음이 될수 있다고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세 살배기 난민 아이였던 아일란 쿠르디 (Aylan Kurdi)의 죽음을 예로 들었다.

여기서 작가는 더이상그의 죽음이 아닌너의 죽음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게 된다. 이미 매체를 통해 접한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없는 나와의 관계 안에서의 사람의 죽음이다. 티비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이의 죽음, 즉 타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이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알아간다. 그때부터 희생된 이들의 죽음은 더이상 어느 누군가의 죽음이 아닌너의 죽음이 되고 그 죽음은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미디어란 장치를 통해 만들어진이야기에 의해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이미지의 힘에 관해서도 아닌,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타인에게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미 ‘’나의 방 Ma chambre’’에서 공간과 자신의 관계를 표현했고, 자신과 사람들간의 관계를너의 죽음화해서 접근하면서, 이같은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퍼포먼스나 설치 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권혁이 작가를 만났다.


혁이 나의 방 설치 사진.png
                             My room #1, Vêtements, fil de fer, fil de nylon, 345 x 480 x 210cm, Angers, 2014

데생, 조각, 설치, 퍼포먼스까지 쟝르를 불문하고 작업하고 있던데요.

-일단 기본적으로는 데생을 좋아해요. 설치도 기본 작업인 데생을 먼저 하는데, 공간 안에서 데생을 한다는 느낌으로 해요. 그런데 사실 장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무언가 표현하고자 할때 거기에 맞는 쟝르가 있는데 저는 그게 데생이에요. 제 작업은 데생, 퍼포먼스, 설치로 추려져요.

 

그럼 데생, 퍼포먼스, 설치가 진행되어 가는 작업 과정이라고 할수 있나요

-완성은설치면서퍼포먼스이에요. 보통 데생은 제 아이디어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것으로 완성이 아닌 바탕 작업이고요.

 

퍼포먼스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

-퍼포먼스는 공간이 중요하고요. 주어진 재료들 사용하는것도 재미있어요 . 2014년에 한 퍼포먼스는 데생이나 공간 개념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어요. 제가 입던 구멍난, 낡은 옷을 입은 채로 관객들에게 바늘을 주고 꿰매게 한 퍼포먼스를 했어요. 그 퍼포먼스는 데생 없이 바로 진행되었던거에요. 전 주로 설치 작업을 완성해 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어요.

 

작업 과정이 퍼포먼스라는게 인상적이었어요. 보통 퍼포먼스는 작가가 따로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작업 과정이라기 보다는 몸을 사용해서, 즉 행위를 통해서 결과물을 찾아가는거에요. 작업과정 자체가 작업이고, 결과물은 따로 있는거죠. 저는 그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를테면 과정, 진행되는 것이요. 얼마전에 흙을 파내고 나서 그안에 발을 넣어 뜨는 작업을 퍼포먼스화 했는데요, 결과물에서는 발을 흙속에 넣는 감각을 느낄수가 없죠. 발을 흙에 넣었을때 느껴지는 감촉, 감각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제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돼요. 예전에는 못느끼는 감각을 새롭게 느끼는거에요. 흙이라는 자연을 거쳐서 저 자신을 느끼는거죠그런 의미에서 이 과정을 퍼포먼스화 하는거에요. 그리고 공간 설치 작업을 완전히 퍼포먼스화 시키고 싶어요. 설치하고 해체하면서 다른 공간으로 옮겨 다시 설치,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설치하는데 10시간 정도 걸려요. 이 작업에 유목민적인 개념을 부여했으니깐 그것을 다른 공간으로 옮겨다니면서 더 살리고 싶어요.

 

설치와 데생 작업 소재가나의 방이더군요. 방을 주제로한 이유가 있나요 ?

-제목은 될수 있으면 간단하게 붙여요. 별 의미는 없어요. 제목이 좀 거창하면 제목 때문에 작품의 의미가 바뀔수도 있을것 같아서요. 제목은 잘 안붙이다가, ‘나의 방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방은 편안한 공간이기도 하고, 나를 지키기도 하면서 몸, 피부 같아서였어요. 나의 방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방을, 파리에서 작은 방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이들의 방과 그들이 입던 옷으로 설치하고 해체해서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요.


혁이 퍼포먼스 사진.png
                                        Recoudre, performance, 6 heures, 3 vêtements, à Centquatre-Paris, Jeune création, 2014

 

방에서 가진 편안함은 이해가 되는데, 데생을 봤을 때 좀 특이했던게 작가가 입었던 옷을 오려 붙여놓았쟎아요. 그런데 왜 하필 입었던 옷이어야만 했어요 ?

-옷이라는게 그 사람의 이미지의 한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그 사람이 입고 다니던 기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신적이면서 신체적, 물질적이라는 점에서 옷이라는 소재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나의 방 Ma chambre’’ 설치에서 유목민적인 것을 표현하려면 좀 약하고 가는, 쉽게 변형되는 소재가 필요했어요.

 

옷은 주로 티셔츠를 해요 ?

-옷은 가리지 않고 해요. 그런데 그동안 작업해보니 바지가 가장 좋았어요. 제일 천이 많이 나오거든요.

 

유목민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게 안정스럽지 못한 이곳 프랑스 유학 생활을 상징할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학생활을 어땠나요 ?

-정말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여러가지 상황과 사정으로 정말 많이 옮겨다녔어요. 예전에 한국에서 살때는 전혀 접하지 못했던 일들이었어요.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작가노트에서 보니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일시적이면서 동시에 영속적인 성격에 대한 고찰’’이란 귀절이 있던데요. 공간이 가진 영속적인 성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바뀌는거 같아요. 도시, 건물, 자연이라는게 사람에 비하면 영속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이 세계 자체가 하나의 변화하는 흐름 같아요. 그 흐름 자체에서 본다면 도시,건물, 자연이라는 것도 우리와 같이 일시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요.

 

조금전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을 재료로 ‘’작은 방’’ 퍼포먼스와 설치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그럼 그 사람이 입던 옷으로 작가가 설치와 퍼포먼스 하는건가요 ?

-, 제일 좋은건 그 사람이 직접 설치하고 철수하는, 퍼포먼스를 하는거에요. 그렇게 여러 명을 참여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런 개개인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 그러니깐 천을 설치 작업을 하는게 고정시키는게 쉽지 않았을것 같은데요. 무슨 재료를 사용했나요 ?

-윗쪽은 낚시줄로 고정시켰어요. 천이 약하다 보니 다른 부분은 테이프를 사용했어요. 대부분 작업을 하면 고급 재료를 사용하는데, 그런게 아니라 낚시줄, 스카치 테이프 같은 재료들을 사용했어요.

그 이유는요 ?

-제가 작은 존재라는 것, 하찮은 존재라는 것과 특히 외국에 나와서내가 작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서 작품 설치하면서 이런 재료들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다른 퍼포먼스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세요. 2014년에 한 퍼포먼스는 ‘’나의 방 Ma chambre’’와는 좀 다른것 같은데요.

-저의 구멍 나고 낡은 스웨터를 제가 입고 관객들이 바늘과 실로 구멍을 꿰매는 것이었는데요. 처음에는 노숙자의 옷으로 하려고 했어요. 평화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거든요. 찢어지고 구멍난 것들이 상처라고 할수 있잖아요. 그것들을 꿰매주면서 공감과 위로를 주고 싶었는데 생각을 바꾸었어요. 이유는 제가 그사람의 인생을 모르면서 섣불리 시도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그런 위치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해서 결국 제 옷으로 한거예요. 타인과의 거리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퍼포먼스에선 그 반대로 타인이 제 개인 공간에 들어온다는 거에 의미를 두었어요. 내 피부와 맞닿는 옷을 관객이 바늘과 실로 꿰매는 것이니까요. 날카로운 바늘을 가지고 있는 타인 즉 관객이 그것으로 나를 찌르는게 아닌 나의 아픔을, 부족함을 꿰매주는, 즉 사람간의 신뢰를 상징했어요.

 

그럼 바늘을 가지고 작가가 입고 있던 옷을 꿰맨 사람은 누구이고, 몇 명이 그 퍼포먼스에 참여했나요 ?

-큰 전시안에 하루동안 퍼포먼스로 참여한 것이었는데, 참여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에게 바늘과 실을 주었어요.

관객들 반응은 어땠어요

-많이 참여해주셨어요. 이게 6시간 정도 했는데요. 2시간 정도는 친구가 대신해 주었어요.

 

작업의 주된 주제는 관계인 것 같던데, 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가치관이 있다면요.

-관계 자체가 저를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타인을 통해 저를 아는거죠.


혁이 흙작업 사진.png
                                                                         Sans-titre, installation ciment blanc, 2017

 

2017년 작업에서는 숲으로 나갔더라고요. 흙을 파내고 발을 넣고 뜨는 작업이던데요. ‘나의 방 Ma chambre’ 에서 야외로 혹은 자연으로 나간거라고 할수 있나요 ?

-자연이라면 자연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도시이기도 해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이니까요.

 

이 흙 작업도 퍼포먼스화 했던데요, 이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건 무엇인가요 ?

-사실 작업할 때 관객을 생각해야된다고 하잖아요. 저는 생각하지 않고 해요. 개인적인 창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완성한거니 제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똑같이 느껴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똑같이 생각하는것도 불가능한거 같아요. 창작 그이후에는 관객들에게 모두 맡겨요. 그건 강요할수 없는거니깐요.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데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작업에 항상 작가의 몸이 들어가네요. , 즉 천과 나의 몸, 흙과 발, 그리고 작년 청년작가협회 신입전에 전시한 큰 콜라쥬 작품에서도 작가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떠서 깨어 붙였쟎아요. 몸이 작업의 한 도구라고 할수 있겠네요.

-그게 불어로 하면, faire le corps avec le monde extérieur 라고 항상 이야기하는데요, 몸을 통해서 하나가 바깥세계와 하나가 되는 시도를 하는거죠.

 

작업에서 몸이 도구가 되는 등, 몸을 항상 어필하고 있는듯 한데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혹시 영향 받은 작가가 있나요 ?

-처음 영향을 받았던 작가는 오를랑 Orlan 이라는 작가의 젊었을 때의 작업 중에 ‘’mesurage 측량이 있는게 전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자기 몸으로 측량하는 작업을 한거에요.

 

그럼 몸이 측량 도구인가 되는거네요.

-어떻게 보면, 항상 몸이와 같이 세계를 보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어요.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측정할때 발걸음의 길이가 기준이 되어 단위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측정한다는거 자체가 인간의 몸으로 세계와 맞닿는, 그러면서 보는 것이라고 할수 있잖아요. 그런게 재미있었어요.

 

계획된 전시가 있나요 ?

-올 가을에 있을 재불 청년작가협회 정기전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 전시에는 흙을 파내고 그안에 발 넣고 뜬 작업을 전시할 계획이에요. 여름 방학 동안 집중적으로 그 작업만 할 작정이에요.

                                                                                                                      

 

이응노 군상 사진 수정.jpg
Lee Ungno, sans titre, 1987, encre et couleurs sur papier
© Musée Cernuschi /Roger-Viollet

아시아 근대 미술의 거장 명으로 뽑히는이응노(1904-1989) 화백의 회고전이 프랑스 아시아 대표 시립 미술관인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 (Musée Cernuschi)에서 오는 6 9()부터 11 19()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이응노 화백은 1950년대부터 기존 전통 회화의 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추상회화 형식을 창조하며 한국의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1958 도불한 작가는 파리 아방가르드 미술에 많은 영감을 받아 동양화의 전통적 필묵을 활용한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했고, 이후 여러 세대의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추상과 서예를 접목, ‘문자추상’양식에 몰두하는 , 다양한 추상 작품을 창작한 이응노 화백은 1970년대부터 한국 민주주의를 비유한 '군중' 형상을 작품의 상징적 테마로 삼기 시작한다. 이후 이응노 화백은 1989 작고 전까지 그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군상’ 연작을 제작하며 인간에 대한 사유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한편, 이번 전시를 개최하는 세르누치 아시아 미술관과 이응노 화백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1971 이응노 화백은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에서  프랑스인에게 서예와 동양화를 가르치며, 동양예술을 서양에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이응노와 깊은 인연을 맺고있는 세르누치 미술관은 1953년부터 1989 사이에 이응노 화백이 작업한 작품들을 백여 이상 소장하고 있다

마엘벨렉(Mael Bellec) 학예실장의 기획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부터 1989년까지의 이응노 화백 작품을 9개의 섹션으로 나눠 관객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주제는 ▲전통 회화부터 현대미술까지, ▲파리미술학교, ▲이응노, 서예, ▲대나무 회화, ▲추상을 쓰다, ▲기호부터 형태까지, ▲풍경과 전통의 쇄신, ▲조각과 장식예술, ▲군상 등으로 9개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 소장품을 비롯한 한국의 이응노 미술관(대전)소장품으로 구성되어 이응노 화백의 회화와 서예, 추상화를 총망라하는 작품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 이응노 회고전 

  o 기간 : 69() ~ 1119()

 o 장소 :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

            7, avenue Vélasquez 75008 Paris

 o 입장료 : 8유로 / 6유로(할인)

 o 홈페이지 : www.cernuschi.paris.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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