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차 대전 중 유대인 대량 검거(Vel’d’Hiv’) 사건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책임 인정

벨디브 사진.jpg


7 16()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벨디브 검거 75주년 연설에서 ‘벨디브 검거를 조직한 것은 바로 프랑스였다’고 하면서, 이 비극에 프랑스의 책임을 온전히 인정했다.

1942 7 16일과 17일 당시 프랑스의 친나치 정부인 비쉬정권은 나치의 명령으로 파리의 벨로드롬 이베르 Vélodrome dhiver(일명VéldHiv)라는 사이클 경기장에 프랑스 내 유대인 13152명을 검거해서 수용한 이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감시킨 사건이다. 이들 중 약100명 정도만 생존했다. 원래는 7 13일에서 15일로 예정되었는데, 혁명기념일을 피하고자 16일과 17일로 연기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독일인 한명도 참여하지 않은 사건임을 밝히면서, 1995년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벨디브 검거의 장본인은 프랑스임을 인정한 작크 시락과 같은 입장임을 밝혔다. 1995 716일 당시 작크 시락 대통령은 비쉬 정권에게 책임을 돌리기 보다는 유대인 박해 측면에서 프랑스의 책임이라고 인정했다.

벨디브 검거 사건에 대한 프랑스의 책임 여부에 대해 프랑스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왜냐하면 벨디브 검거는 2차 대전중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들을 체포해서 이송시킨 사건이고, 드골과 미테랑은 벨디브 검거에 대해 프랑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작크 시락이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프랑스의 우파 논객인 에릭 제무르의 저서<프랑스의 자살> 에서, ‘시락은 당시의 친나치 비쉬정부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이기도 하다’고 지적하면서, ‘드골에게 있어서 독일군 군화속에 있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통치권을 가지고 있기 않았기 때문이다.

시락의 이같은 발언은 비쉬정부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오로지 휴머니즘에 대항한 범죄임을 증명한 것이었다. 이는 또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식이었는데, 나치에 대항한 유일한 전투였다는 것, 독일과 역사를 떠난 것, 그리고 세계와 유럽의 헤게모니를 위해 국가들의 전투에서 멀어진 해석을 낳게 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테랑 전 대통령 또한 이에 대해 ‘프랑스가 사과해야 된다고 하는 이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 이라고 했다.

벨디브 검거 사건의 프랑스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측은 당시 친나치 정부인 비쉬정권하에서 저질러진 사건이기에 프랑스가 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과 어쨌든 프랑스인들이 한 것이기에 프랑스의 책임이 있다는 측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당시 런던에 프랑스 임시정부를 수립한 드골의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책임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당의 전 대표인 쟝마리 르펜의 딸이자 국민 전선당을 이끌어가고 있는 마린 르펜은 지난 4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벨디브 검거 사건에서 프랑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었다. 르펜은 당시 LCI 방송과 르피가로(le figaro) 등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벨디브 사건’에 대 한잘못과 책임은 ‘당시의 권력자들’로 프랑스와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당시 대선 후보였던 엠마뉘엘 마크롱은 ‘르펜이 역사적·정치적으로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르펜이 쟝마리 르펜의 딸이라는사실을 잊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 부녀는 변하지 않았다.’고몰아세웠다. 르펜의 아버지인 쟝마리 르펜은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을 창당한 극우 정치인으로 외국인 혐오와 유대인 학살 부정 발언 등으로 수차례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스라엘 정부도 르펜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강하게 규탄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프랑스의 유대인들이 나치의 홀로코스트(대학살)로 희생된 것에 대해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이 인정한 역사적 사실을 거스르는 발언’ 이라고 비난했다.

해당 발언이 문제가 되자 르펜은 해명 성명을 내고 진화에 나섰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망명정부는 런던에 있었으므로 프랑스의 책임이 아니라는 뜻에서 발언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덧붙여, 비쉬 정권은 프랑스가 아니었으며, 프랑스인들의 책임이 없다고 말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2012 7 16일 올랑드 전 대통령은 <프랑스에 의해 프랑스에서 저지른 범죄>라고 했다.


                                                                                                                                         <파리지성>

 

                                                                <신인 작가를 소개합니다>

음악과 회화,  그 관계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갈리나 포펠니스카 작가

본지는 지난 1월부터 <신인작가를 소개합니다> 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주기적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작업 활동을하고 있는 신인 작가들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주는 아홉번 째 순서로 ‘음악과 회화,그 관계에 대해 , 우크라이나의 갈리나 포펠니스카 작가  편입니다.


IMG_2227.JPG
                                                     '신비의 정원’ 시리즈 중 한 작품 앞에 선 갈리나 포펠니스카 작가

우크라이나의 해안에 접한 문화도시인, 오드사 Odessa에서 태어난 갈리나 포펠니스카 Galyna Popelnytska26세로, 프랑스로 유학을 와서 파리 8대학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9월부터 파리 1대학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사진 및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2015923일 파리에  도착했다. 그에게 이 날은 두번째 생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예전부터 파리에서 사는 것을 꿈꾸어 왔고, 예술과 파리는 동떨어져서 생각할수 없으며, 예술가로서의 삶의 연장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낼수 있는 도전의 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8대학에서 여러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 또 몽마르트르의 아이 갤러리(I- Galrie)에서 개인전, 파리에서 단체전도 여러차례 가진바 있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갈리나 작가는 혼자 작업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될수 있으면 많은 전시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이것 또한 작업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파리 15구에 있는 그의 집이 아뜰리에다. 어느날 초대 받아 간 그의 집에는 사방이 작품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대부분 정물화였는데,그가 각 작품 마다 얽힌 이야기를 해주는데, 더이상 단순한 정물화가 아닌,작품의 느낌이 달리 다가왔다. 정물화뿐만 아니라, 초상화, 풍경 작업을 하고 있었고, 6년전부터 각 도시를 다니면서 문을 사진 찍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의 회화 작업은 음악과 연관성을 가진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12개월을 표현한 꽃 작업 12점이 있다. 갈리나 작가는 언어가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음악을 들으며 표현해낸 회화 작품들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가 파리와서 작업한 신비의 정원은 은색 혹은 금색 화폭 위에 먹으로 표현했는데, ‘신비한 정원답게 직선과 곡선속에는 숨은그림 찾기하듯 구체적인 형상들을 찾아낼수있다. 그의 작품들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으며,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 예술관까지 끊임없이 설명한다. 풍부한 상상력과 고정되거나,정형화 하지 않은 열린 사고속에서, 음악과 회화를 결부시켜 작업을 하고 있는 갈리나 작가를 만났다.


어릴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

-, 어릴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할아버지가 화가였어요. 방학 때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갔을때 할아버지가 굳게 침묵한 채 집중해서 캔버스에 붓과 여러가지 색깔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나에게는 미지의,신비로운 큰 세계였어요. 그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6살부터 피아노 학교에 다녔어요. 매일 7시간을 피아노를 쳤어요. 그러다가 피아노 학교에 회화 수업 포스터를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몰래 그 수업을 들었어요. 2년뒤에 엄마가 눈치를 챘죠. 그리고는 회화 수업을 허락 하셨어요. 그렇게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미술학교를 졸업하고는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대학을 갔어요. 4년 동안은 작업을 하지 않았어요.


프랑스에 온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불어를 유창하게 하는게 그때 불어를 배웠기 때문이군요.

-나의 첫 고등교육이 프랑스 철학, 문학, 언어였어요. 첫 외국어가 불어, 그 다음 영어, 이태리어였어요. 외국어 교사 자격증을 땄죠.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꿈을 실현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드사 Odessa 예술학교에 들어갈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복도에서 그 학교 교장을 마주쳤어요. 그래서 그에게 말을 걸었어요. 시험전에 당신에게 나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의견을 듣고싶다고 했어요.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내가 정말 작가로서의 길을 갈수 있는 재능이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어린아이의 변덕’’같은건지 나 스스로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장의 반응은 어땠어요 ?

-나의 이 같은 행동에 그가 많이 놀랐어요. 그때 나는 많이 진지했고, 너무 직설적이었거든요. 나의 작품들은 보더니만 재능이 있다고 했어요(특히 수채화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리고는 시험 볼 필요도 없이 예술 이론과 역사 면접 시험만 보고는 바로 2학년으로 월반해서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오드사 예술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어요.


오드사 예술학교에서 주로 어떤 작업을 했나요 ?

-오드사 예술학교에서 정물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정물화에 대한 열정이 생겼어요. 내가 꽃을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바로 알았어요. 그런데 정물화가 습작 역할만을 한다는게 좀 슬프더라고요. 18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가 단지 사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게 아닌 사람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한 방식이었어요. 정물화의 사물안에 온갖 의미들과 신비한 언어들이 숨어 있는거에요. 정물화의 대상이 되는 나비, 새 등이 부, 질병, 혹은 임신 등 어떤 상징과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에요, 정물화 사물에 깃든 상징성을 알고있다면 그안에 숨은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할거에요.


정물화에는 여러가지 사물들이 있는데요, 주로 어떤 사물들에 관심이 있었나요 ?

-나는 모든 이들이 같은 가치로 여겨질수 없는 개인이나 가족의 사물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건 몇몇 특정인들에게는 아주 귀한 것들이고, 친밀한거죠.


그럼 그런 지극히 개인적이고, 친밀한 사물을 정물화시켜 어떻게 관객들과 소통할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작품마다 관련된 콩트 같은글을 써요. 그게 내 나름의 한 소통 방식이에요. 예를 들면, 정물화 중에 푸른 접시가 있는데, 그 접시는 250년 전에 만든 것인데, 나의 증조 할머니가 오드사에서 1917년에 구입했다고 해요. 접시 스타일은 독일 로코코식인데, 아주 비싼 가격에 구입하셨대요. 그런데 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에 증조할머니는 오드사를 떠나셔야 되었대요. 왜냐하면 증조할아버지가 독일인이에요. 그때 베를린에 계셨다고 해요. 그때 이 접시를 가지고 가셨대요. 증조할머니는 특히 당신의 물건에 애착이 있으셨다고 해요.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오드사로 다시 오려고 했는데, 당시 스탈린 법 때문에 정적이 되어 시베리아로 가야 했어요. 스탈린이 죽은 후에 오드사로 다시 돌아오실수 있었는데, 그 모든 여정에 이 푸른 접시를 항상 가지고 다니셨다고 해요. 이 접시는 지금 오드사 집 찬장에 귀중품처럼 보관되어 있어요. 난 이 접시는 어떤 사진보다도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와 나의 엄마, 할머니 등 가족과 연관된 현실적이고 감동적인 물건이기 때문이에요. 이렇듯 이 접시는 나와 나의 조상과 연관된 물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요. 


IMG_2230.JPG
                                                                          비발디의 ‘사계’ 중 5월을 표현한 회화 작품


어릴때 피아노를 배운게 비발디의 사계로 표현한 12개(12)의 꽃 정물화 작업에 영향을 미쳤겠어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지금도 오드사 집에 가면 피아노를 연주해요.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아주 좋아해요.그리고 작곡도 했고요. 처음에는 고전음악이 나의 정물화 표현방식에 영향을 미쳤어요. 그다음에는 이 세상의 모든 소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거리 소음,기계소리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등인데요. 나는 이런 소음과 소리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영혼과 나의 귀와 함께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음악이 된다고 봐요. 도처에 음악이 있는거죠. 칸딘스키와 함께 일한 작곡가 쇤베르크는 음악은 정제된 소음이라고 했어요. 소음은 음악의 기본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소리, 소음 즉 음악의 영향이 작업을 할 때 나타난다는거네요.

-. 행위, ,형태로 나타나요. 지금은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면서 그것을 표현해 보려고 하고 있어요.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12개의 꽃 작업을 했는데요. 비발디에 대해 찾아보니 그 또한 사계를 작곡하면서 다른 것들과의 공감각(synesthésie)을 연구했더라고요. 그는 먼저 각 개월마다 가사, 시를 작사하고 그 다음에 그가 작사한 시를 낭독하면서 멜로디를 찾았더라고요. 또 그 멜로디를 통해 다른 곡의 가사를 작사했더라고요. 다른 작가들을 만나고 작품을 보면서 새로운 것, 새로운 생각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을때 이미 누군가들이, 혹은 한두 세기전에 발견한 것들이었다는 걸 알았을때 내 생각의 증거를 만난것 같아 자부심이 들고 좋았어요.  내가 다른 예술가들의 생각에 함께 참여했다는거죠.  


왜 비발디의 사계를 선택했어요 ?

-사계절마다, 일년의 12개월마다 그 나름의 특성이 있듯이 사람들의 성격도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의 성격이 자연처럼, 안정되지는 않죠. 작업을 할 때 항상 사계를 들었어요.1 월을 작업을 할때는 1월곡만 5,6 시간씩 들었어요. 비발디의 사계에는 각 계절마다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봄의 첫 악장인 알레그로를 1월로 보고있어요.


지금 걸려있는 작품은 12월인 것 같아요.

-나에게는 아니에요. 좋은 질문이에요. 목적은 관객들에게 어떤 달인지 짐작하게 하는게 아니에요. 음악을 듣고 작품을 보면서 각 자에게 어떤 달로 보는가가 중요한거에요. 목적은 다른 감성들을 비교하고, 다른 특성과 성격, 선호도 등을 보는거에요. 마치 둥근 형의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고 작품들에게 개월을 뜻하는 번호를 붙여보라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이 작품들에는 제목이 없어요.그래서 예를 들면 왜 저 작품을 12월이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물어보는거에요. 어떤 관객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어떤 달이냐고 물으면, 틀리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답을 안해요. 여기서 틀린 것은 없어요.

예를 들면 국화는 일본에서는 신성한 꽃이지만, 멕시코에서는 죽음을 상징해요. 그러니 누가 맞고 틀리고의 이야기가 아니죠. 하지만 음악을 듣고 작품을 본다면 자연과 관련된 꽃에 대한 개념과는 거리를 두게 될수 있어요. 내면으로 들어가는 명상이 되어 어린시절의 추억,개인적인 일들이 떠오를수 있죠. 나에게 해바라기는 11월을 상징해요. 개인적인 일로, 오드사 예술학교 정물화 수업 때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그날 하루종일 비가 왔어요. 나갈수가 없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와서 학교 안에 갇혀있다시피 했어요. 그때 해바라기 정물화의 배경색을 짙은 푸른색으로 했어요. 선생님이 보시더니 처음으로 소녀에게서 회화를 남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봤다고 했어요. 그게 나에게는 큰 칭찬이었어요. 그때가 11월이었어요. 


을 사진 찍은 사진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사진 작업에서 은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나는 일상의 평범한 소재들에 가치를 주고, 철학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사실 철학적인 의미와 가치는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인데 많은 이들이 잊고 있어요. 6년 동안 사진을 찍어 많은 사진들이 모이게 되면서, 혹시 이게 집착이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요, 나를 이끈 것은 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은 판도라의 상자 같아요. 사람들이 이런 질문들을 하죠 : ’내가 여기 왜 있지 ?, 왜 태어났지 ? 삶의 목적은 ?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지 ? , 이런 질문들을 할때마다 문을 여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갈 때도 문을 여는거죠. ‘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해요. 을 열고 난후는 몰라요. 나의 사진작업에서 은 알수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일종의 호기심일수도 있고요. 그러고 보니 내가 사진 찍은 문들은 모두 닫혀있었어요.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Ukraine, Odessa, été, 2015 (7).jpg
                                                                                     ‘문’ 사진 작품 (우크라이나, 오드사 2015)


여성들(소녀들) 초상화도 있네요.

-파리에 있는 여러나라의 여성들 초상화를 그렸어요. 각 초상화마다 다른 기술을 선택해서 작업을 했어요. 그녀들에게 왜 파리인가 ?’ 같은 질문을 해가면서 작업을 했어요. 그녀들의 꿈, 가치관 등을 이야기하게 하는, 일종의 일기 같은 초상화 작업이었어요. 왜 여성들이었냐면요,  왜냐하면 여성들은 영감을 주는 뮤즈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여러 작품들이 있는데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요 ?

-파리에 와서 작업한 신비의 정원이에요. 왜냐하면 이 작품을 하면서 나의 스타일, 테마를 찾았고, 테마와 관련하여 나의 독자적인 표현 방식과 기술을 찾을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가 된것 같아요. 누군가가 이 작품을 보면 바로 갈리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해요.


신비의 정원에서 느껴지는 정신 세계와 을 사진 찍은 사진작업도 철학적인 걸 보니 혹시 믿음(종교) 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스 정교를 믿고 있어요. 믿음과 작품에 대해 크게 연관시켜서 생각지는 않았지만요. 당연히 영향이 있겠지요. 나의 인식과 습관, 생활이 몸에 배여있기에 작품으로 나타나겠지요.


오드사와 파리에서 작업할 때와 다른 점이라면요

-신비의 정원작품은 파리에서 구상해서 했어요. 오드사에서는 주로 정물화 작업을 했어요. 거기선 아카데미식 혹은 예술학교에서 원하는, 주로 고전적인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파리에 와서는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전적인 작품 아이디어들을현대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볼수 있어요. 다른 기술과 다른 스타일들을 섞어서 표현해 보았어요. 파리에 와서 작업을 훨씬 자유롭게 했어요. 어떤 제한된 스타일과 기술에서 벗어났어요. 여기서는 아무도 그렇게 하면 안돼’, ‘그것을 사용하면 안돼’, ‘그럼 관객들이 이해를 못할거야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앞으로 파리에서 계속 활동할 계ᅙᅬᆨ이에요 ?

-, 일단은 학교 다니는 동안 배우면서 계속 작업할거에요.    

                                                                                                            

                                                                                                                                       <파리지성>

 

계몽주의의 바로크 전 La Baroque des Lumières


바로크 전.jpg

파리 프티 팔레 미술관에서는 처음으로 18세기 파리 교회들의 종교화들, 특히 오를레앙공 필립의 섭정 시대 (la Régence) 부터 혁명 시대 (la Révolution) 까지 약 200여 점에 달하는 종교화들이 전시 중이다. 아연화(fête galante) 18세기에 미술에서 지배적이었지만 한편에선 몇몇 아티스트들은 종교화 그리길 계속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리의 종교 건축물을 위해 그려졌던 작품들을 전시장에 모아 보여주며 계몽주의 시대 (Siècle des Lumières) 의 종교화를 재발견할 수 있게 한다.

 

전시 기간 : 20173 21일부터 7 16일까지

전시 위치 : 프티 팔레 미술관 Musée du Petit Palais

입장료 : 10유로 / 할인 8유로

----------------------------------------

키퍼-로댕 전 Kiefer-Rodin


키퍼 로댕전.jpg

로댕 서거 100년을 맞아 로댕미술관에서는 독일의 현대 아티스트 알젤름 키퍼(Anselm Kiefer)와 로댕, 이 두 거장의 이례적인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는 이들의 닮음에서 시작한다. 키퍼는 로댕처럼 끊임없이 형태들을 조합하며 실험하는 아티스트였으며 또한 항상 재료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요소들을 조합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다양한 소재와 기법은 예술을 위한 도구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같은 시대를 살진 않았지만, 예술적 공감이 가능했던 키퍼와 로댕, 두 작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시 기간 : 20173 14일부터 10 22

전시 위치 : 로댕 미술관 Musée Rodin

입장료 : 10유로 / 할인 7유로

--------------------------------

모두, 혼혈 Tous, des sang-mêlés


혼혈전.jpg

파리 근교 비트리 쉬흐 센느 (Vitry-sur-Seine)에 위치하고 있는 막 발 Mac Val 현대미술관에서는 출신이 다른 6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문화적 정체성(l’identité culturelle)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국가적, 성적, 문화적 정체성에 질문을 던진다. 한국 작가로는 보따리작업으로 잘 알려진 김수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로 하여금 출신이 다르지만 하나의 공동 문화를 만드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며 문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전시 기간 : 20174 22일부터 9 3일까지

전시 장소 : MAC VAL (Musée d’art contemporain du Val-de-Marne)

입장료 : 5유로 / 할인 2,5유로

---------------------------------------

망갱 : 색의 즐거움 전 Manguin : la volupté de la couleur


망갱전.jpg

14일부터 파리 근교 지베르니(Giverny)에 위치한 인상주의 미술관에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친구로 알려진 앙리 망갱(Henri Manguin)의 작품들을 전시될 예정이다. 파리에서 출생한 망갱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제자이자, 앙리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fauvisme)에 몸담는다. 망갱은 아르카디아(arcadia), 누드, 지중해 풍경, 가족, 정물 같은 소재로 하여금 삶의 행복을 찬양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망갱의 예술적 행보를 볼 수 있는 약 90여점의 작품들과 함께한다.

 

전시 기간 : 2017 714일부터 11 5일까지

전시 장소 : 지베르니 인상주의 미술관 Musée des Impressionnismes, Giverny

입장료 : 7유로 / 할인 4,5유로 또는 3유로

 


IMG_1722.JPG
                                                         서울 디자인 고 학생들의 창작 의상


627()  1830분 소르본 대학 대강당에서 파리지역 기술,직업 고등학교 학생들의 창작 의상 경연 대회가 있었다. 이 행사는 파리 교육청 주관하에 1996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학년말인 6월에 열리고 있는데, 파리의 직업 기술 고등학교 학생들이 창작한 의상및 관련 액세서리로 경합을 벌이고 있다. 파리교육청은 관내 모드 전문 직업학교 학생들의 창의성 계발과세계적 디자이너로서의 성장을 위한 전문성 신장을 장려하기 위해 산학 연계 및 국제 교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오고 있다. 이탈리아와 한국 등 파리 학교들과 교류협정을 체결한 외국 디자인 학교도 초청되어 공동으로 패션 경연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의상 및 관련 액세서리 분야 기업들이 참여하여 지원 및 후원하는 행사로, 직업기술고등학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가치를 높이고자 기획하고 있는 행사이다.

질베르 페꾸 Gilles Pécout,  파리 교육청장 및 파리 교육계 관계자들이 참석해서 학생들의 재능과 열정을 관람하고 축하했다. 올해는 파리 지역 10개의 직업기술고등학교가 참가한 가운데 160명의 모델과, 800명의 고등학생들이 참여했다. 행사 이후 칵테일 파티의 음식은 요리고등학교 학생들의 참여 작품들이었다.

이 행사는 해마다 테마를 정하는데, 올해는 « 냉전시대후 각 나라의 영화 », 파리 패션직업고등학교와 파리 메이크업 직업학교, 헤어학교, 서울 디자인고등학교, 이태리 엔조직업고등학교 등이 참여했다. 서울 디자인 고등학교에서 두벌의 창작 의상을 디자인고 학생 두명이 모델이 되어입고 행진했고, 가방 8개를 선보였다. 또 서울 디자인 고등학교 교장과 교사, 그리고 학생 8명이 참석하였다.

모델들이 번호표를 가지고 행진을 하면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한다. 의상뿐만 아니라 미용, 분장, 가방, 모자, 신발 등 액세서리 분야에서도 1,2 등을 선출하여 상장과 상품을 주었다. 분장에서는 로레알 관계자가, 가방에는 에르메스 관계자가 시상하는 등, 각 분야에서 관련 기업인들이 참석해서 상품을 주며 학생들을 격려하고 축하했다.

1996년 이래로 이 행사를 담당해오고 있는 프랑스 산업과학기술 국가 교육 장학관인 릴리안 림지오넥- 메사쥬 Lylian Rymdzionek-Message 씨는 ‘’지난 20년동안 후원자들, 특히 프랑스 패션,의류 산업 연합의 지원이 없었다면 할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감사함을 전했다. 또 모든 문화와 재능이 소르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은 단순한 손 재능을 선보이는 것이지만, 학생들이 나중에 프랑스의 많은 기술과 문화유산 보존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학생들을 뜨겁게 격려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 순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래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했다.


튀르그 딜 고.JPG
                                                              파리 튀르크틸 고를 방문 중인 서울 디자인 고 학생들

서울 디자인 고와 파리 튀르크틸 고, 화상 수업으로 교류

서울 디자인 고등학교와 파리 튀르크틸 직업 고등학교는 2015 10월에 교류협정을 맺은 이후 꾸준한 화상수업을 통해 교류를 이어왔다. 그런 와중에 20여년 이래로 매년 소르본 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직업기술 고등학교 패션 경연대회에 참여할 것을 제안받아,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서울 디자인고가 참여하게 되었다. 매년 테마가 있는 경연대회에서 프랑스측은 서울 디자인고 학생들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보고 싶다는 의도였다고 한다.

2016 6, 서울 디자인 고는  « 신속 탑승 서울과 파리 »라는 주제로 디자인 공동 작업을 진행하여 소르본 패션 경연대회에 참여했으며 한 학생이 « 국제상»을 수상하였다. 작년 행사는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한불 상호 교류의 해 행사의 한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 이후가진 칵테일 파티에서 질 페꾸 GillesPécout 파리 교육청장은 박재형 서울 디자인 고 교장을 만난 자리에서 ‘행사에 와주셔서 감사하고,학생들을 만나보고 작품들을 보았는데, 굉장히 훌륭했다’’고 했다. 박재형 서울 디자인고 교장은 ‘’고등학생들의 대회인데 새로운 미래가 보였고, 참가해서 너무나 기쁘다’’고 했다. 또 참석한 디자인고 학생들은 ‘’고등학생들이라고 하기에는 수준 높은 패션 경연대회였고, 좋은 경험을 한것 같다’’고 했고, ‘’학생과 어른들이 어우러져 이런 자리를 만들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한국에서 볼수 없었던 세계인들의 디자인을 한꺼번에 볼수 있어서 좋았다’’고 행사 참석 소감을 밝혔다.

서울디자인 고와 파리 튀르크틸 고의 교류 시작 이래로 2년 째 화상 수업 진행과 서울 디자인고의 파리 소르본 패션경연대회 참여를 주관해온 한불언어문화교육자협회의 홍성미 사무총장은 ‘’패션 경연대회에 참여하는 서울 디자인 고 학생들은 지난 3일간 튀르크틸 고교를 방문하여 프랑스 학생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모피,가죽,가방 등을  제작하는 작업 현장을 견학하고, 그 외 엔사마 응용예술 고등공립학교도 방문하여 우수학생들의 작품 설명을 듣고 감상하는 시간을 갖고, 기욤티렐 호텔조리학교를 방문해서는 푸드디자인과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하면서, 이는 ‘’모든 것이 통합되는 시대에 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분야를 보고 경험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고 전해왔다.

서울 디자인 고는파리 직업고와 교류 1년 만에 한국에서 선정한« 국제교류 우수 학교상 »을 수상했다.

                                                                                                                                                        

                                                                                                                                       <파리지성>

 


수빈 오염 기사 사진.jpg

파리시의 오염대항 방침이 한 단계 진전할 것으로 보인다. 7 1일 토요일부터 2001 1월 이전 운행을 시작한 디젤차량은 주간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파리 시내를 주행할 수 없게 된다. 파리 시는 이미 1년 전, 1997 1 1일 이전에 등록된 개인 및 영업용 디젤과 가솔린 차량 운행을 금지시키고, 2년 전에는 2001 101일 이전에 등록된 버스, 수송차량 및 대형 화물트럭의 운행을 금지시킨 바 있다. 파리시의 반 오염 계획은 대기의 질 향상을 위해 파리 시내를 저탄소배출 구역 혹은 차량 제한 운행 구역(zone de circulation restreinte)”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프랑스의 대기오염 문제는 오늘날 주요 공공보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16 6월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해 대기 오염으로 인한 프랑스 내 조기 사망자 수는 4 8천명으로 전체 사망률의 9%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2001년 이전에 등록된 개인 디젤 차량과 2002년 이전에 등록된 영업용 차량의 주행의 금지에 이어, « 2006 10월 이전에 등록된 대형 화물트럭과 관광버스 및 노선버스 » 역시 주행이 전면 금지된다고 파리시는 공식성명을 통해 밝혔다. 해당 차량의 수는 2014 11월 파리시에서 주도한 조사를 통해 산정되었으며, 그 이전까지는 어떤 관련 조사도 공공기관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오염 차량의 범주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느 히달고 파리 시장이 2020년까지 모든 디젤 차량 및 오염 가솔린 차량을 « 뿌리뽑겠다 »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와는 별도로, 지난 1 16일부터 파리 시내의 모든 차량이 공기품질증(pastille Crit’Air) 의무화가 시행되고 있다. 해당 라벨은 차량의 종류과 연식에 따라 6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공식 사이트 (certificat-air.gouv.fr)에서 평균 4.18 유로에 구매할 수 있다. 해당 라벨을 통해 주행 제한 구역에 접근 가능한지를 구분할 수 있으며, 친환경 차량의 경우 주차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7 1일부터 라벨이 없는 차량의 소유주 혹은 2001년 이전 등록된 차량을 주행한 소유주는68유로의 벌금을 물게 된다. 현장에서 즉시 벌금을 물 경우, 45유로로 삭감될 수 있으며, 반대로 체납할 경우 180유로까지 증액된다.

또한 파리시는 파리 거주자들 중 연식이 오래된 오염차량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400유로까지 재정지원을 해준다. 지원은 공공교통카드인 나비고를 충전하는데 일부 지원을 해주거나, 공공 자전거 대여서비스인 벨리브 1년 이용권을 제공하거나 자전거 구입 비용을 환급해주는 등의 형식이 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공공자동차 대여 서비스인 오토리브 정기이용에 50% 할인혜택을 제공받을 예정이다.

이렇듯 파리시는 « 저탄소 배출 구역 », « 주행 제한 구역 »으로 지정된 첫번째 도시로서 대기질 완화 정책에 박차를 기하고 있으며, 파리 이외의 8개 지역에서 같은 정책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유럽 내에서의 최초의 시도는 아니다. 이미 230개의 유럽의 도시권에 이러한 제한 구역이 갖추어져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이미 20년 전부터 주행 규제를 시행 중이다.

                                                                                                <파리지성 / 김수빈 foxy2520@naver.com>

 
                                     '살아온 생의 절반을 한글학교와 함께'

지난 6 14() 16시 파리한글학교의 종업식이 있었다. 이번 종업식은 예년과는 달랐던 것이, 지난 10년 동안 파리한글학교 교장을 맡아 헌신,봉사한 함미연 교장의 퇴임식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파리를 방문한 주철기 재외동포 재단 이사장이 이날 파리한글학교를 방문하여 축사를 하며 함미연 전 교장의 노고를 치하했다. 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릴때 와서 자라나고 있는 재외동포 자녀의 한글교육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아이들의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한글학교의 역할은 크다고 할수 있다. 함미연 전 교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1989년에 학부모로 한글학교를 찾아왔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29년동안 학부모로, 학부모회 회장으로, 그리고 학교장으로 한글학교와 같이 살았다’’고 했다. 살아온 생의 절반을 파리한글학교와 함께 한 함미연 전 교장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IMG_0497.JPG

                                           퇴임사 중인 함미연 파리한글학교 전 교장


10년동안 파리한글학교 교장 직에 계시다가 얼마 전 퇴임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교장직을 맡았던 지난 10년 동안 참 열심히 신나서 뛰어다녔다고 생각해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듯한 요즘,  새로운 파리한글학교로 거듭날 수 있는 기대감으로  저의 퇴임 소감을 밝힙니다.


파리에 오시게 된 계기는요 ?

-대학에서 불문학과 교육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한불 협정으로 모교인 이화여대에 언어청각센터가 설립되었는데, 언어 사용에 문제가 있는 농아, 자폐아, 학습 지진아들을 위해 언어 교정 지도를 하는 곳입니다. 이에 필요한 전문가 양성 교육프로그램에 프랑스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에 오게 되었고 리옹에서 교육학 및 언어 치료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예전부터 교육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

-아버지께서 평생 교직에 계시다가 정년 퇴임하셔서 항상 학교와 연결된 분위기 속에서 자랐어요.  « 함 선생님 »이라고, 아버지께서 제자들로부터 들으시던  호칭인데 제가 듣게 되니 제게 물려주신 소명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도 언어청각센터에서 교사로 일했어요.


파리한글학교와는 오랜 인연이라 들었습니다.

-1989년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파리한글학교에 보내게 되었어요. 프랑스에서 살지만, 한국어 교육은 당연히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성당에서 운영하는 파리한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보내게 되면서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 등하굣길을 함께 했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첫째 아이를 시작으로 세 아이 모두 파리한글학교에 보내며,  그 사이 여러차례 학부모회장을 하고 학교 교장 맡아지내며 온 시간이 29년 되었습니다.


학부모 회장의 역할 또한 클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학부모 회장을 맡게된 때가 파리한글학교 역사상 중요한 일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 한글학교 건립 기금 마련 재불 작가 전시회 » 위한 그림을 모우는 과정에서 학부모회 임원들이 연루되어 한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직후여서 학부모회 이미지를 재 구성해야 했던 시기였어요. 또한 성당에서 한글학교를 설립하여 신부님들께서 1년씩 돌아가며 학교장을 맡아 운영을 하셨는데, 파리한글학교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조금씩 어려움이 생겼던 걸로 기억해요. 결국 프랑스 한인 교민사회의 각계각층의 인사가 모여 사립재단을 설립하며, 1994년에 김용진 선생님이 초대 교장으로 선임되셨죠. 저는 그보다 조금 전부터인 92-93학년도부터 96-97학년도까지 학부모 회장을 맡으며, 파리한글학교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학부모 대표로 학교 변화에 맞는 학부모회를 이끌려고 노력했었습니다.


ham5.jpg
                                                                   2015년 설날 행사에서


새삼스럽지만요,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인지요 ?

-교장은 학교의 대표자이며 책임자이고 운영자입니다. 한글학교는 해외의 교민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문화를 가르치고자  교민사회에서  만들어진 비영리 민간 교육단체입니다.  전문교육기관이 아닌 봉사의식이 기본으로 뭉쳐서 세워진 만큼서로의 신뢰와 양보, 격려가 꼭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교장은 이런 여건 속에서도 최선의 교육이 이뤄지도록 교사양성에 힘써야 하고 학부모님들의 기대에도 부합할 수 있도록 항상 귀를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살펴야합니다. 대외적으로는 학교의 대표자로서 관계 기관 이나 외부 단체와의 교류 및 창구역할을 맡고 있으며  대외 행사를 관리합니다.


선생님이 교장으로 부임하신 2007년과 10년이 지난 지금의 파리한글학교는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 10년 전에는 IMF등의 여파로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었었고 교실 환경도 매우 열악해서 학교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그동안 교육과정을 단계별 학년별로 정리하였고 초등부 맞춤형 교재도 갖게 되었으며 프랑스 학제와 같이 유치부 3학년, 초등부 5학년, 중등부 4학년, 어학당 3학년 등으로 학년별로 체계화 된 수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학생 규모도 250여명에 총 20개 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재외동포 자녀들의 한글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이 보시는 재외동포 자녀들의 한글교육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언어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 무기입니다. 해외에서 살아도 다문화를 이해하면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되지요. 세계가 점점 한 무대의  활동 공간이 되고 있는데 재외 동포로서 어디에 있든 한국인의  뿌리를 잘 내리도록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에 열의를 보여 주셔야 합니다.

집에서 부모가 한글교육을 따로 시킬 수도 있고, 이곳의 한불 가정과 한인가정의 자녀의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 한글 공부를 시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좋겠지만 한글 학교를 보내는 것이 더 좋은 이유가 있다면요...

-한글을 익히고 난 후에도 지속적인 어휘 공부와 표현 그리고 쓰기공부가 단계별로 발전해가면서, 학습시켜야 하는데 집에서 지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교육과정이 연계되고 이에 따라 연구된 맞춤 교재로 학습을 하기에 집에서 하는 것보다는 탄력이 생기며, 무엇보다도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성장해가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훨씬 더 되고 다양한 교육소재를 접할 수 있어 교육 효과가 배가 됩니다. 한국 정부 교육기관과 재외 동포재단에서 지원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도 있구요.


재외동포자녀들을 위한 한글 교육을 위해 있는 한글학교지만 학생들만 있는게 아니고, 교사와 학부모들이 있지 않습니까 ? 이런 관계들을 아우르시면서 중심을 잡고 계셨을것 같은데요.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이지요. 저는 파리한글학교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저의 관심과 열정을 정확히 세 등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마냥 희생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학생들을 위하고, 교사를 위하고, 학부모를 위하며 제 마음을 세 부분으로 골고루 나누는 것을 운영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학생들이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며, 교사들의 경우,학교를 채워가는 것은 교사들의 몫임을 일깨워주고, 계속해서 자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며, 어려운 점이 있을 때에는 언제든 이를 해결하는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학부모님과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학생들을 위해 최고의 교육 방안을 모색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cats.jpg
                                              퇴임식 때 파리한글학교 학생들이 만들어준 롤링페이퍼 북

지난 10년동안 파리한글학교 교장으로 계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이 있으셨다면요 ?

-이번에 퇴임하면서 받은 롤링페이퍼 북을 열어 본 순간입니다.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한 마음으로 각반에서 수업시간 중에  아이들에게 교장선생님이 떠나게 된 것을 설명하고 그 느낌을 아이들이 표현한 것들을 묶은 책인데요, 페이지 마다 감동이었습니다.

유치원 반의 김태훈, 새싹 반의 임준오, 그리고 정인이,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교장선생님에 대한 것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10년 이상을 다니고 졸업한 관우, 혜지, 은태, 혜민...그들과 공유한 기억들이 보람입니다.


이젠 우회적으로 파리한글학교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글학교에서 저의 반 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관심은 한글학교의 발전을 위해 움직일 것을 확신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한글학교와 한인사회를 위하는 일에 일조를 하겠습니다.


떠나시면서 파리한글학교에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파리한글학교는 학원이나 어학기관처럼 한국어 학습만이 전부인 공간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심어줘야 하고, 학부모님들께는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이라는 목표로 뭉친 하나의 공동체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결국 혼자 자생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며, 수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 한도에서, 다른 한인단체들과 연계해가면서 보다 넓은 세계관을 갖고 발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한인사회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 더 나아가서는 세계 속의 한글학교로 인식하여 시대에 맞게 발전할수 있길 소망합니다.


                                                                                                                               <파리지성>

 


지현 어두운 시대의 에쑬 사진 6.jpg
                                            패튼 개드 Faten Gaddes의 설치작품 “샌드백 Punching ball”

5 27일부터 시작된 이슬람의 신성한 절기인 라마단이 지난주 25일에 끝났다. 한달에 가까운 이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과 음료 섭취및 담배나 성행위 등이 금지된다. 이는 굶주린 이들의 고통을 체험하며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더욱 경건히 기도를 하여 믿음을 회복하려 함이다

그러나 몇년전부터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들은 이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그들의 조직원과 추종자들에게 폭력을 유발하는 지령을 보내어 테러를 종용하였다. 성스러운 전쟁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자행하는 테러들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이 기간은 '피의 라마단’이라고 역설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7년에도 성월 시작5일 전인 지난달 22, 영국 맨처스터 공연장의자살 폭탄 사건부터 유럽과 중동 전역에 빈번히 일어난 테러들로 도시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으며 특히 유럽에서는 이슬람 공포증과 같은 반 이슬람 정서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1 9.11 테러 후 반이슬람 감정을 지나치게 조장하는 미디어에 의해 미국 사회 내에 고조되었고 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파리 샤를 엡도 총격사건 이후 유럽내에서도 서서히 자리잡게 되었다

20151월 샤를리 엡도 언론사 테러가 있고난 후 프랑스 전역에서 테러를 규탄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기 위한 행진이 계획되었다. 전날인 1 10, 한 남미 여학생은 파리 생제르망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스타쥬를 마치고 여느때처럼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녀는 버스 안쪽으로 네명이 마주보고 앉는 자리에 먼저 자리잡고 앉아 있던 한 무슬림 커플 맞은 편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잠시 후에 술에 취한 한 남성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음악을 듣고 있어 잘 들리지 않았으나 그 남성은 무슬림 커플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커플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취객의 행패에 신경쓰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그 때였다그 술취한 남성이 갑자기 볼펜을 꺼내어 무슬림 커플 중 남성의 목에 볼펜을 꽂은 것이다. 깊이 박혔다 빠진 볼펜으로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남자의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가 간호사인,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 남미여학생은 눈앞에 벌어진 위급한 상황에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그의 출혈을 막고자 손으로 목을 지압했고 응급차가 오기전까지 20분을 버텼다. 이 갑작스러운 폭력적인 상황으로 아연실색한 여학생이 기억하는 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미친 듯이 울부짖던 피흘리는 남자의 연인이었다.

다음날 이 친구는 자신이 목격한 이 사건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그 날 이후, 우리는 이 사건을 그 어떤 기사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고 필자와 가까운 친구인 그녀는 프랑스의 위선을 목격했다며 참석하려던 전국민 대행진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무슬림과 테러리스트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진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감으로 비롯된 적대감과 혐오감 등의 차별적 시선을 우린 곧 잘 마주하게 된다. 올해 초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이슬람권 7개국 입국을 금지하는 등, 전 세계는 수많은 무슬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하고있다이는 과거 인종에 의한 차별이 이제 종교에 의한 차별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유대교인이고 이슬람교인이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이끈 쟈스민 혁명이 일어난 튀니지 출신 작가 패튼 개드 Faten Gaddes 2012년 예술의 봄 전시에  Punching ball 샌드백이라는 그녀의 유명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각각의 샌드백에는 머리카락을 수염과 히잡처럼 교묘히 묘사한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속에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종교의 심벌이 표현되어 있고 그 하단에는 프랑스어로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유대인이다""나는 튀니지인이다"라고 쓰여져 있다. 이 이미지들은 이미 각각의 종교에서 기피되고 거부당했던 사진들이다. 2011년 시위에 참석한 그녀에게 누군가가 무슬림인지 튀니지인인지를 물어본 이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더욱 잘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세가지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로 인해 종교의 다양성과 종교의식에 대한 자유를 표현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옹호함으로 극단론자와 광신론자를 비난하고자 하였다

전시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한 아랍 신문에 이 작품 속 이미지 중 하나가 작가의 집 주소와 "살인 교사"라는 문구와 함께 게재되었다. 결국 이 작품은 살라피스트들에 의해 소각되었으며 그녀는 확인할 수 없는 우울증에 사로잡혔고 더 이상 튀니지에서 전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무슬림들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이슬라모포비아들에 의해 희생되고 피해를 입고 있으나 미디어의 주목을 덜 받고 있기에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지난해 통계를 살펴보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죽을 확률이 이슬람계 테러리스트에 의해 죽을 확률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유럽 사회에서 살아가는 무슬림들이 테러를 반대하면서도 그것을 규탄하는 공식적인 행동에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테러가 그들에의해 벌어지고 있다라는 낙인이 더욱 깊게 찍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빈번한 테러로 공포감이 증폭되는 라마단 절기에 그들은 더욱 움추리게 되고 반 이슬람 정서로 인한 증오 범죄 또한 증가하여 무고한 무슬림들은 경건하고 고요하게 보내야할 이 기간을 공포에 떨며 보내야 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파리지성 /김지현 july7911@gmail.com>

 

최옥경 교수의 이우환 저서 « LEEUFAN, Espaces Non-Agis » 출판기념회

파리 미술전문서점, 아르뀌리알(Artcurial)에서 개최

IMG_1066.JPG

                              책에 사인해 주고 있는 저자, 최옥경 교수와 이우환 작가



세계적인 미술작가 이우환((李禹煥,Lee Ufan,1936-)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다룬 책, « LEE UFAN, Espaces non-agis », (출판사(Éd.) Cercled’Art, 280 p.) – 저자 뒤포르제 최옥경 (Duporge-Chae, Okyang)- 출판 기념회가 6 22 () 18 30 분 부터 파리 샹젤리제거리(Champs-Elysées)에 위치한 미술서적 전문서점인 아르뀌리알(Artcurial)서 열렸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는 저자 뿐 아니라 이우환 작가가 참석해 사인회로 진행되었다.

« LEE UFAN, Espaces non-agis »은 저자 뒤포르제 최옥경 박사(Duporge-Chae, Okyang, 미술사,Histoire de l’art)의 박사논문 (2006년 파리 4 소르본 대학, Université Paris IV-Sorbonne)을 지난 10여년에 걸쳐 다듬고 보충한 결과물이다.

불문학 전공 학생이었던 저자는 1999년 갤러리 뒤랑 데쎄르(Galerie Durand-Dessert)에서 우연히 마주한 이우환 작가의 돌과 철판을 소재로 한 설치 작품에서 느껴지는 묘하고 특별한 공간성에 발길을 옮길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우환 작가 특유의 (오브제 설치를 통한)‘제시(re-présentation)’, 일상성을 깨뜨리고 신선한 지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만남에서 저자는 미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울림이 가슴속에 일었던 것이리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바로 이때부터 저자는 길고 긴이우환 (예술)세계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책 서문과 인터뷰등에서 밝힌다. 이후 쉽지 않은이우환의 예술에 접근하기 위해 저자는 작가와의 인터뷰, 관련 서적 탐독은 물론 특히,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이우환 작가의 전시를 방문해 작가의 작품에 대해올바로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IMG_1250.JPG
                               최옥경 교수의 이우환 저서 출판기념회에서

이우환 작가는 오래전 한 미술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 « 물론 내 작품 의도와는 관계없이 주관적인 비평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고, 또 그런 개인의 비평적 취향을 막을 권리는 물론 없습니다. 그러나 제발 올바로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

글로벌 시대, 생존작가로 이미 미술사에 전설적 입지를 굳힌 작가로 이우환을 꼽는데 이견을 달리 할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이우환은 비록 상투적인 말이지만 세계적인 작가다.‘예술가 자체가 곧 예술이 된 작가’, 하지만 그의 예술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역시 미술계 전반의 인식이다. 다시말해, 비평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데 모두가 선뜻 동의 하지만 글 쓰는데는, 비평의 대상으로는 어려운 인물이다. 더구나 작가 자신이 이미 훌륭한 철학자이자 이론가, 비평가다. 누구나가 알 수 있는 너무나 쉬운말로 명쾌하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아주 쉽게 이해시키는 능력자로 이미 정평이 난 인물이다.작가는 또한 이러 저러한 비평에도 자신의 목소리로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도 거부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뒤포르제 최옥경 박사의 오랜 연구 결실인 이번 저서 « LEE UFAN, Espaces non-agis »가 작가 이우환 예술의 실체에 한발제대로다가설 수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에 대한 기대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책은 영어판(Lee Ufan: Untouched Space, 번역Rachel Zerner, 출판사Cercle d’Art, 280 pages)도 동시에 출간되어 프랑스어권뿐만이 아니라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이우환의 예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10년전 독일인에 의해서 이우환 작가에 관한 책이 한 권 나온 이래로, 처음으로 이우환 작가의 최근 작품들까지 다룬 불어, 영어판 책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할수 있다.

출판기념회에는 국제적 작가의 예술세계를 다룬 책 출간에 걸맞게 프랑스의 예술애호가들과 수집가들 그리고유명 파티시에 삐에르 에르메(Pierre Hermé, 1961-)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특히, 아랍 미술권 전문 미술사가이자 전시 커미셔너 브라임 아라위(BrahimAlaoui :파리의 현대미술박물관(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연구원 및 파리 아랍권 재단 박물관(musée de l'Institut du Monde Arabe à Paris)디렉터 역임. 저서로 아랍 현대미술가와 관련한 다수의 책과 카탈로그를 출판)도 참석해 이우환 작가와의 오랜 인연을 자랑했다. 그는 특히 1994년 파리의 아랍권 미술관에서 조직한 전시에서 이우환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뒤포르제 최옥경 박사의 논문 지도교수였던 세르즈 르무와느(Serge Lemoine, 오르세미술관 관장 역임)소르본 대학 교수도 참석해 제자의 노고를 격려하고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 파리지성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폭염 속의 프랑스, 이색 시위

                                                  -낭트의 대중교통 남성 운전자들 치마 입고 출근-      

          nante travail en jupe.jpg


지난 주 프랑스는 폭염 속에 있었다. 여름에 그리 더운 날들이 많이 없는 프랑스에는 에어콘은 고사하고 선풍조차 잘 구비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그런 프랑스에서 지난주 36,37 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프랑스 지방 도시인 낭트에서 대중 교통 남성 운전자들의 이색 시위가 있었다.

620일 화요일, 낭트지역 프랑스 민주 노동연합(CFDT)6명의 남성 운전자들이 치마를 입고 출근을 했다고 프랑스 언론들은 밝혔다. 낭트 지역의 버스 및 전동차 운전자들은 기온이 30도를 넘고 있을때 당국에 반바지를 입고 버스운행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를 거부당한 것에 대항하기 위한 차림으로,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 관계자는 폭염속에서 운전자가 있는 버스 앞 유리창 쪽은 50도 가까이 되고 있고, 버스에 에어컨이 없기에 긴바지를 입고 운전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고 하면서, 여성 운전자들이 치마를 입고 근무할수 있는 상황에서 이는 일종의 차별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하루종일 치마를 입고 있을거에요. 오늘 같은 기온이면 바지 입은 것보다 휠씬 낫다 ‘’고 하면서,‘’반바지 차림의 근무는 현대에 걸맞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들은 승객들에게 새로운 차림이라고 가볍고 재미있게 이야기했고, 버스 승객들은 그들의 차림새를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반바지 근무 허용 쟁취   

낭트 지역 대중교통 민주 노동연합의 운전자들은 폭염속 반바지 근무 허용을 2013년부터 요구해 오고 있었는데 계속 거부 당하다가, 이번 치마 차림 출근이 프랑스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난뒤인,  622() 당국은 운전자들의 반바지 차림근무를 허용했다. 다음날인 23() 아침, 며칠전 치마 차림으로  출근을 했던 이들은 이날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해서는 만족해하면서, 여성 운전자들과 사무실 행정 직원들도 폭염속에서는 반바지 차림으로 근무할수 있기를 원한다고 했다.


                                                                                                                                     <파리지성>

 

2017 파리 퐁피두 센터, 데이비드 호크니 회고전


데이비드 전 .jpg

6 21일부터 영국의 팝아트 아티스트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Hockney) 회고전이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2017 파리 전시 가장 기대되는 전시이기도 전시는 런던과 뉴욕의 대형 미술관들과 함께하는 순회 전시로 그의 80 예술 인생을 있는 160 이상의 작품으로 구성된 대형 회고 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호크니의 대표작인 수영장,  더블 포트레이트, 풍경화 뿐만 아니라 최근의 작품들까지 있다.


전시 장소 : 파리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 Paris

전시 기간 : 2017 6 21 –2017 1023

입장료 :  14유로 / 할인11유로

------------------


그랑 팔레, 로댕  Rodin, l'exposition du centenaire


로댕전 포스터.jpg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조각가 이자 근대 조각의 선구자인 로댕(1840-1917)의 전시가 그의 사망 100주년을 맞아 파리 그랑 팔레에서 진행 중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로댕의 주요 작품들 뿐만 아니라 카르포(Jean-Baptiste Carpeaux), 부루델(AntoineBourdelle), 클로델(Paul Claudel),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등 로댕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됨으로써 로댕의 위상을 보여준다.


전시 기간 : 3 22 - 7 31

전시 장소 : 그랑 팔레 Grand Palais, Galeries nationales

입장료 : 13유로 / 할인 9유로

----------------------


서용선 개인전


서용선 개인전 포스터.jpg

지난 수십 동안 역사, 도시, 풍경, 자화상, 신화 등의 다양한 주제에 천착하며 인간에 대한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해온 작가이자,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라고도 있는 서용선은 파리의 미술 협회인 Villades Arts 초청을 받아 18구의 갤러리에서 달간 전시 중이다.


전시 기간 : 2017 6 19 부터 7 16 까지

전시 장소 : Galerie La Ville A des Arts, 15 rue Hégésippe-Moreau 75018 Paris

----------------------


루이비통 재단, 아트/아프리카, 새로운 아뜰리에 Art/Afrique, le nouvel atelier


루이 뷔통 아프리카 전 포스터.jpg

이번 루이비통 재단의 아프리카 전시에서는 192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는 루이비통 재단 소유의 컬렉션들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예술계 신인들의 작품들을 까지 다양하게 있다. 또한, 문학, 음악, 영화 등과 함께 있어 흥미롭다.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예술적 정체성을 있는 전시이다.


전시 기간 : 2017 4 26일부터 8 28일까지

전시 장소 : 루이비통 재단 Fondation Louis Vuitton

입장료 : 14 유로 / 할인 10유로 또는 5유로

 
처음 1 2 3 4 5 6 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