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옥경 교수를 만나다.

                        -6 22 이우환 작가 관련 저서, <LEE UFAN espaces non-agis> 출판 기념회-


최옥경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가 2015 9월 프랑스 한인회에서 주최한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기메 박물관 한국관 탐방이었다.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은 전 세계 아시아 유물 박물관으로는 최대 규모이며, 한국관에는 김홍도의 풍속도, 퇴계 이황의 글씨, 고려청자 , 금동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선사 시대의 유물부터 조선시대의 그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미술사를, 그것도 프랑스에서 태어나거나, 어린나이에 와서 자라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최옥경 교수는 자료를 준비해서 나누어 주면서 한국어와 불어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단순한 전달식 강의가 아닌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끌어내었다. 이같은 열정은 박물관을 방문하던 다른 이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최 교수의 설명을 듣게 했다당시 그런 그를 보면서 느낀건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구나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저런 열정은 나올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온다. 그것은 주위사람들까지도 기분좋게 물들이곤 한다. 파리 국립동양어문화대학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옥경교수는 한국 미술 관련해서 불어로 된 자료가 거의 없다며 한탄한 바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3월 불국사 석굴암 관련 저서가 프랑스 세르클 다르출판사 Editions Cercle d’Art 에서 출간되어 주 프랑스 한국 문화원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그가 공저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이우환 작가에 대한 책  <LEEUFAN espaces non-agis>을 출간,  6 22일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현대미술로는 가장 중요한 서점 아르퀴리알 Artcurial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진다.

얼마전 어떤 전시에 갔는데, 한 프랑스인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로 추정되는 한국 호랑이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직인만이 있을뿐 작자나, 작품 관련해서 어떠한 설명도 없다면서 답답한듯 물어온 적이 있다. 바로 최옥경 교수가 이야기했던, 프랑스에 한국 미술 관련 자료가 없다는게 떠올랐다. 최 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 교수의 역할은 크다고 할수 있겠다. 이우환 작가 저서 출간에 즈음하여 그를 만났다.


최옥경 교수님 사진 .JPG
                            2015년 9월, 프랑스 한인회 주최, 기메 박물관 한국관 탐방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하고 있는 최옥경 교수


한인회 기메 박물관 탐방때 청소년들에게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인회 행사에 여러번 강연을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 한인회 주최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한국 미술을 잘 모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메 박물관 탐방 행사를 기획했다고 초대를 해서 네 번의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 다. 그런 자리는 처음이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두시간이라는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마지막 탐방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때  청솔회 어른들이 많이 참석하셨어요. 그날은 한국 역사와 문화를 저보다도 오래전에  체험하신 그분들 앞에서 내가 무엇을 덧붙일수 있나 하는 생각에 더 긴장되었어요. 결국 2시간 동안 서서 열심히 들으시는 모습에 제가 감동을 했답니다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들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강연자가 서서 말을 하는게 더 힘들텐데 어떻게  편하게 앉아서 듣냐고 하시면서  앉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탐방은 제가 누군가를 가르친다기 보다는 하나의 만남의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 이곳 한인들과 심리적으로 많이 가까와진 느낌이에요.

프랑스 학생들이 한국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지요 ?

-정말 관심이 많아요한국학과에 온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기 때문에 한국 미술 이전에  한국 문화 자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 1학년 학생들은 거의 200명이 되는데 미술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수업후에 저를 보러와서졸업하고 한국 미술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한번은 프랑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한국 여행을 가서는 석굴암과 불국사 앞에서 찍은 사진을 제게 보내왔어요제게  배우지 않았더라면 이 문화유산들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몰랐을 것이라는, 한국어로 쓴  감사의 글과 함께 말이지요. 석굴암은 한국 미술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화 유산으로 수업 중에 제가 많이 강조하는데그 학생들이 저의 수업을  듣고 힘들게 돈을 모아서 한국에 문화 유산을 직접 체감하러 간 거에요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더한 선물을 바랄 수 있을까요 ?  

지난 3, 선생님 공저인  불국사,석굴암 관련 저서 <Trésors de Corée - Bulguksa et Seokguram> 이 불어와 한국어로 나와 한국문화원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는데요, 그책에 대한 말씀 좀 해주세요.

제가 그 책 출간에 참여한 것은 사람이  정말로 무엇인가를 원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제게는 아주 소중한 계기가 되었어요. 몇년 전프랑스에서 한국 미술사와 한국 문화유산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더 생생한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름 방학때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가서 여러 문화 유산 유적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내가 느낌이 있어야  학생들한테 그 느낌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에 , 오래전에 가 보았던 곳들을 다시 돌아보며  남쪽으로 내려오다 경주 석굴암까지 오게 되었어요.

예전에도 몇 번이나 와서 보았던 보호 유리벽으로 막힌 석굴암 앞에 섰는데 같은 광경인데도 그때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어요우선 그 위엄스런 본존불에게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한 느낌을 받았을뿐 아니라 불상들을 넘어서 조각상들 사이에 있는 석굴암의 공간을 보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에서 멀리 와서바로 눈 앞에 두고 도굴 안에 들어가 유리벽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언젠가 베니스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파도바에 도착하고도 예약을 못해서 교회 안에 있는 지오토의 그림을 못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었어요. 그래서 유리벽 너머로 석굴암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저 곳에 들어가야지’’ 라고 마음을 먹으며 힘들게 발길을 돌리고 말았답니다.

그때가 2014 8월이었는데,  2015 1월에  현대미술 전시 일로 방혜자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고 우연히 석굴암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방선생님은 제 눈을 똑바로 보시며 하늘이 저를 보냈다고 하시는거에요. 알고보니 오래전부터 방혜자 선생님께서 석굴암과 불국사 관련 불어 서적 출간을 열망하고 계셨던거에요.  그리고는 같이 석굴암에 가자고같이 책을 만들자고 하셨어요그렇게 해서 그 해 4월 우리는 같이 석굴암에 들어갔답니다저로서는 오히려 그 분이야말로 하늘이 제게 보낸 사람 같았어요제 꿈이 불과 몇개월 뒤에 이루어졌으니까요

그 책을 위해 한국 불교미술의 대가이신 강우방 선생님도 글을 쓰셨고, 프랑스 사진 작가 실바와 평생을 석굴암 사진을 찍어오신 안장헌 선생님께서도 그 귀한 사진들을 주셨지요실제로 저는 그 책 프로젝트에서 부족했던 바퀴의 한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작은 조각이라도 그 조각이 없으면 바퀴가 구를 수 없는 것이기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운명처럼 적시에 만난 것이라고 볼 수 있죠이 아름다운 만남이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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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출간된 이우환 작가 저서 <LEE UFAN espaces non-agis>  표지         최옥경 교수 공저인<Trésors de Corée, 한국의 문화 유산 >표지


석굴암 안에 들어가 보신 느낌은 어땠어요 ?

주실로 들어가기 전에 전실에서 석굴암 큰 스님과 함께  예불을 드렸어요. 스님의 염불소리와  목탁 소리가  동굴안에서 신비스럽게  울렸어요. 그리고 뛰는 가슴으로 본존불 뒤 원형 주실로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사십여구에 가까운  불보살 부조상들을 볼 수 있었죠저는 학생들에게 작품을 볼 때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해요. 몸 전체로나의 존재 전체로 보는거라고 말하곤 합니다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공간에 들어가서  직접 몸으로 느낀 것들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불교 미술은 5세기 인도의 굽타미술에서  양식적인 절정을 이루었어요이 미술은 인도에서 시작되어서 한편으로는 동남아시아로 다른 한편으로는 비단길을 거쳐 극동으로 뻗치면서 전파되었는데 그 영향은 석굴암에 까지 미쳤어요석굴암은 문화 흐름의 종착역 같은 곳으로 극동에 핀 마지막에 핀 꽃과같습니다경주 토함산의  한 구석에 있지만 그 당시 국제적으로 가장 세련된 양식을 받아들여서 그 위에서 한국적으로 발전시킨 것이에요통일 신라인들은 외래의 영향이 단순한 모방으로 그치지 않게 할 불심과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대단한 예술을 이루어낸 것이죠

 

이번에 세르클다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우환 작가 관련 저서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 책은 제가 2006년 소르본 4대학에서 받은  미술사 박사 학위 논문을  좀 더 다듬고 보완한 것이에요논문 발표 이후에 하신 작품도 고려를 해서 업그레이드를 했지요그 사이 십여년이 넘는 동안 이우환 작가의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이 눈부셨고 이제는 아시아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셨지요

 

원래 전공이 미술사였나요 ?

-불문학 전공이었어요. 소르본 대학에  들어가니  복수전공을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그 당시 문학쪽 제 DEA 논문 주제가 미술과 관련이 있어서  그논문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 미술사 과정에도 등록을 했어요결국 불문학과 미술사 두 군데에서 DEA학위를 받았는데 박사논문을 시작할 때는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프랑스에 공부를 하러 왔으면 배우고 가는것도 중요하지만 무언가 학계에 보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으로서 언어를 다루는 문학쪽으로는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었고곳곳에 미술관이 산재한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미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지요.  

 

이우환 작가와의 인연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요.

- 이우환 선생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문학을 하던 내가 그를 주제로 논문을 쓸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요. 그러던 차에 1999년 우연히 갤러리 뒤랑 데쎄르에서 이우환 작가 전시를 보게 되었어요커다란 화랑에  터치 한 두 개 있는 큰캔버스 몇 개와 돌과 철판으로 된 조각, 그 정도가 다 였는데 아주 특이한 공간감을 느꼈어요그 공간감에 이끌려 오랫동안 그 화랑에서 나가지를 못했었죠그로부터 몇달 후 지도 교수가 독일에서 한 전시를 보고 와서 그 중에는 이우환이라는 대단한 한국 작가도 있다는 얘기를 하셔서 그 작가를 주제로 하면 박사논문 지도를 받아주시겠구나 생각하고 , 말씀드려 미술사 박사 학위를 하기로 결정하게 된 거죠.  

이우환 작가에게 전화해서는, 선생님에 대해서 논문을 쓰겠다고 했는데, 바로 그날 뵙게 되었지요작품이나 책을 통해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감지했기에 처음부터 어설프게 그를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처음에는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철저하게 공부를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유럽을 오가시는데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파리에 오실때마다 뵙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뢰가 조금씩 쌓여나갔지요.  

소르본  대학의 제 지도교수는 그르노블 미술관 관장이셨다가 이후에는 오르세 미술관 관장도 하신 분인데 그 분에게서  확실히 배운 것은미술사는 구체적으로 작품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술의 본질은 작품입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지만 다 컨트롤  할수 있는게 아니에요.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닙니다. 작품은 작가를 넘어설 수 있는 거에요그런데 한국에서 이우환 작가에 대해 쓴 논문들을 보면 흔히 작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장황한 상황론만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저는 연구의 기본이 되는 것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논문을 시작하면서  영국, 독일, 한국, 일본 이태리 그리고  논문 후에도 베니스 비엔날레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등, 대부분의 전시를 보러다녔죠석굴암의 경우처럼 작품의 힘은 내가 직접 보고 느껴야 글을 쓰거나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옥경 교수 출판 기념회 엥비타이시옹.jpg

 

조금전 말씀하신 것 처럼 예술의 본질은 작품이라는, 그 관점에서 이책을 구성하신거겠네요.

-물론이죠제 책의 출발점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작품 설명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우환 작가의  자서전적인 요소는 거의 배제되어 있습니다. 제 책은왜 그렇게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여백이 많고 만들지 않은 면이 많은가, 그러면서도 왜 그런 특이한 공간감을 자아내는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지요그것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  1장의 일본 모노파 미술 운동에 대한 것이에요작가가 가진 세계에 대한 비전이 그때 거의 형성되기 때문에 모노파 시기의 활동들은 중요하지요스무살의 나이에 한국에서  건너 온 이우환이라는 작가가  60년대말  일본 현대미술사에서도 중요한  모노파 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산재했던  반일 감정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지요. 이 부분을 연구할 때 일본에 가서 작가들과 비평가들을 만나고 인터뷰도 했습니다너무 고맙게도 일본인 친구가 일본어 자료 번역과 통역을 많이 도와주었어요이우환 선생님이  60-70년대에 일본어로 쓴 글이나 다른 이들의 비평또 한국 미술계에서 쓰여진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자주 만나고 있는 사람이 그 당시에 그처럼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신화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발견 검증해가다가 선생님을 파리에서 다시뵐 때 가끔은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지요.     

이우환  작가는 단순히 자기표현만을 위해서 작품을 하는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세계 미술사에 도전하는 작가입니다. 제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학계에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듯이, 작가도 미술사에 어떤 자기만의 해답을주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제 책에서도 미술사의 맥락에서 이우환 작품이던지는 문제 제기를 재조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그의 작품들을 세잔이나 마티스모리스 루이스, 샘 프란시스, 마르탱 바레나, 니엘 토로니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백과 비교하거나고찰하고 조각에 있어서도 리처드 세라 등을 비롯한 포스트 미니멀리스트들과 비교 연구합니다.   제 책 각장들은 기본적으로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만 각각의 장은 주제가 있고 그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우환 작가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오늘의 작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작품 기술을 세밀히 추척하는 것이지요.  

다행히 제가 불어로 쓴 이 책 출간과 동시에 영어판 번역도 나왔습니다그래서 프랑스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읽힐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전 독일 사람에 의해서 책이 한 권 나온 이후, 최근 작품들까지 다루며 이우환 작가론을 낸 사람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논문에서 시작해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 책의 출간으로 마침내 인생의 한 단계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모퉁이를 돌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선생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미술사 관련 자료 많이 남겨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처음 유학왔을 때는 한국 미술사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서양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하지만 그 길을 둘러 다시 재발견하는 한국 미술사의 매력은 굉장합니다.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알아야될 것이 많고 또 개인적으로도 알고 느끼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최근에 제가 불국사· 석굴암에관련된 글을 쓰거나 채색화 (민화) 혹은  단색화에 대한 컨퍼런스 등을 하거나 혹은 지난 주에 오픈한 이응노 작가전시 도록에 글을 쓰는 등, 미술사의 다양한 시기를 오가는 것이 산만해 보이기 쉽겠지만 실은 이 모든 것들은 제 머리속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불어로 된 한국미술사를 쓸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그렇게 살아왔듯이 꿈을 꾸면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최옥경 교수 <LEE UFAN, ESPACES NON-AGIS> 출판 기념회

(저자, 작가 참석 싸인회)

일시 : 6 22() 1830분부터 21시까지

장소 : ARTCURIAL Librairie d’Art  

        7 Rond-Point  des Champs-Élysées75008 Paris

문의 : Géraldine Martin. 01 42 99 16 20

              gmartin@artcurial.com

 
                                                  문화원 로고 1.jpg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은 2017년도 2차 행정직원을 채용하고자 하니 역량 있는 인재들의 많은 응시바랍니다.

1. 채용직종 및 인원

ㅇ 일반직 행정직원 1, 기타직 행정직원 1

 

2. 담당업무

 ) 일반직

  ㅇ 문화원 행사 기획 및 홍보

  ㅇ 교육, 영화, 문학, 체육 등 관련 행사 지원 및 문화원 행정업무

 ) 기타직

  ㅇ 문화원장 및 행정업무 보조

  ㅇ 문화원 및 파리관광문화센터 관련 제반 업무 

 

3. 자격요건

   ㅇ 학사 학위 이상 취득한 자로 프랑스 체류 및 문화원 업무 수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

     ※ 일반직 행정직원의 경우 문화예술, 행사 기획, 교육, 출판 및 이와 유사 분야 전공 석사 학위 이상 취득 자, 관련 분야 유경험자 우대

   ㅇ 한국어 및 프랑스어에 능통한 자

   MS-OFFICE, 한컴 오피스, 포토샵 등 사무관리 및 정보화 능력 우수자

 

4. 채용 및 근무 조건

ㅇ 수습 기간 : 유급 수습 기간 후 최종 채용 결정

ㅇ 기본급, 수당(상여금, 시간외 근무수당 외), 사회보장비 등은 「재외한국문화원·문화홍보관 행정직원에 관한 규정」 및 「재외한국문화원·문화홍보관 행정직원채용 및 운영지침」에 따름

ㅇ 근무지 : 주프랑스한국문화원(2 AVENUE D'IENA 75116 PARIS)

ㅇ 근무시간 : 35시간

 

5. 제출 서류

ㅇ 이력서(자유양식) : 한국어 및 프랑스어 각 1

   ※ 연락 가능한 휴대전화 번호와 이메일 주소 기입

ㅇ 자기소개서(자유양식) : 한국어 및 프랑스어 각 1

ㅇ 여권 사본 1

ㅇ 프랑스 체류증 사본 1(소지자에 한함)

ㅇ 개인정보 제공 및 이용 동의서 1 : 문화원 홈페이지에서 파일 다운로드 후 작성 및 서명, 스캔하여 제출

ㅇ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및 성적증명서 사본 각 1

ㅇ 어학성적증명서 : DELF B2 또는 TCF Niveau 4 이상 어학 증명서 사본 1

   ※ 단, 프랑스 국립대학교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는 해당 학위 증명서로 어학성적 증명서 대체가능

   ※ 외국 국적자의 경우 TOPIK 5급 이상 증명서 제출 (, 한국 소재 대학교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는 해당 학위 증명서로 어학 성적 대체 가능) 

ㅇ 보유자격증 증명서 사본 각 1(이력서에 기재한 경우)

 

6. 선발 방법

1 : 서류전형

2 : 언어 능력 평가

   ※ 평가 당일에 여권, 체류증,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자격증 등 원본서류 지참(기 제출 사본과 원본 대조)

3 : 최종 면접

 

7. 전형 일정

ㅇ 지원서 접수 : 2017 6 9()부터2017 6 28() 18시까지(파리 기준)

ㅇ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 2017 7 5() 예정

ㅇ 언어 능력 평가 : 서류전형 합격자에 한해 일정 개별 통보

ㅇ 최종 면접 : 언어 능력 평가 합격자에 한해 일정 개별 통보

ㅇ 최종 합격자 발표 : 7월 셋째 주 예정, 개별 통보

※ 모든 전형 일정은 내부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8. 채용 시기

 ) 일반직: 2017 9 1() 예정

 ) 기타직: 2017 10 2() 예정

 

9. 서류 제출 방식 및 시한

ㅇ 제출 방식 : 이메일로만 접수

ㅇ 서류접수 이메일 주소 : job@coree-culture.org

※ 이메일 제목은 반드시 다음과 같이 표기 : ‘일반직/기타직 행정직원 지원(본인 성명)

※ 제출 서류 순서에 맞춰 하나의 파일로 압축(ZIP 포맷 등)하여 제출

※ 우편 및 방문 접수 받지 않음

ㅇ 제출 시한 : 2017 6 28() 18시까지(파리 기준)

ㅇ 문의 : job@coree-culture.org (전화문의 받지 않음)

 

10. 유의사항

ㅇ 서류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 합격 통지 후에도 채용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ㅇ 이력서 상의 기재 착오 또는 누락, 제출서류 미비 등으로 인한 책임은 전적으로 응시자에게 있습니다.

ㅇ 최종 합격 통지 후에도 신원조사 등을 통해 부적격 사유가 발견될 경우 합격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ㅇ 전형 결과 적임자가 없는 경우 채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인 작가를 소개합니다>

                        공간과 나, 그리고 타인과 나, 그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해서, 권혁이 작가

본지는 지난 1월부터 <신인작가를 소개합니다> 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주기적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신인 작가들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주는 일곱번째 순서로 ‘’공간과 나 , 그리고 타인과 나, 그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해서, 권혁이 작가’’  편입니다.


혁이 프로필 사진.png
                                                                     흙 작업 퍼포먼스 영상 촬영 준비 중인 권혁이 작가

지난해 12월 파리 퐁데자르 갤러리 크리스마스 선물전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데생-콜라쥬 인데 콜라쥬 재료가 무엇인지 모르게 익숙하다. 다름 아닌 작가가 입었던 옷을 잘라붙인 것이었다. 작품 제목은 ‘’나의 방 Ma chambre’’ 였다. 방에 있는 침대와 책상 등, 흔히 접할수 있는 평범한 방의 데생위에 작가가 입었던 티셔츠, 바지를 잘라 조각내어 붙여놓았다. 왠지 방이라는 공간과 작가가 입던 옷, 사이에 무언가가 있을것만 같았다. 이 같은 작업을 하는 작가는 앙제 보자르 아트 미디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파리 1대학에서 조형미술 석사과정에 있으며, 파리를 중심으로 퍼포먼스,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을 하고 있는 권혁이 작가다.

작가 자신의 흔적이 묻어있는 옷을 잘라 작품속에 붙였다는 특이함이 있다. 또한 설치작업에서는 옷을 잘라 이어서 특정 공간 안에서 ‘’나의 방 Ma chambre’’을 재현해내고 있다. ‘’Ma chambre’’는 개인의 일상이 녹아있는 방이라는 공간과 작가 자신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관계로 얽혀져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물질화, 시각화 하기 위해 실제로 살았던 방의 둘레와 방의 가구들, 출입구와 창문 등을 프랑스에서 실제로 입던 옷들로 측정했고 그것들로 공간의 테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에게 옷은 방이라는 공간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담고 있으며, 2의 피부로 보고 있고, 방은 제 3의 피부라고 한다. 그렇게 작가는 공간과 자신간의 밀접한 관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를 작품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의 체취가 남아있는 옷으로 재현한 방은 작가의 ‘’자화상’’이다.

‘’나의 방 Ma chambre’’에서 또 중요한 부분은 유목민적으로 작품의 설치와 해체를 반복하는데에 있다. 이는 프랑스에 와서 자주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과 안정되지 못한 삶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사람간의 보이지 않는 관계에 중점을 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음악 이론가인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가 열거한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의 죽음이라는 세가지 죽음에서, 미디어를 통해 처음에는 나와 별 상관없는 ‘’그의 죽음’’을 접하다가 또한 그 미디어를 통해너의 죽음이 될수 있다고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세 살배기 난민 아이였던 아일란 쿠르디 (Aylan Kurdi)의 죽음을 예로 들었다.

여기서 작가는 더이상그의 죽음이 아닌너의 죽음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게 된다. 이미 매체를 통해 접한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없는 나와의 관계 안에서의 사람의 죽음이다. 티비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이의 죽음, 즉 타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이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알아간다. 그때부터 희생된 이들의 죽음은 더이상 어느 누군가의 죽음이 아닌너의 죽음이 되고 그 죽음은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미디어란 장치를 통해 만들어진이야기에 의해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이미지의 힘에 관해서도 아닌,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타인에게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미 ‘’나의 방 Ma chambre’’에서 공간과 자신의 관계를 표현했고, 자신과 사람들간의 관계를너의 죽음화해서 접근하면서, 이같은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퍼포먼스나 설치 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권혁이 작가를 만났다.


혁이 나의 방 설치 사진.png
                             My room #1, Vêtements, fil de fer, fil de nylon, 345 x 480 x 210cm, Angers, 2014

데생, 조각, 설치, 퍼포먼스까지 쟝르를 불문하고 작업하고 있던데요.

-일단 기본적으로는 데생을 좋아해요. 설치도 기본 작업인 데생을 먼저 하는데, 공간 안에서 데생을 한다는 느낌으로 해요. 그런데 사실 장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무언가 표현하고자 할때 거기에 맞는 쟝르가 있는데 저는 그게 데생이에요. 제 작업은 데생, 퍼포먼스, 설치로 추려져요.

 

그럼 데생, 퍼포먼스, 설치가 진행되어 가는 작업 과정이라고 할수 있나요

-완성은설치면서퍼포먼스이에요. 보통 데생은 제 아이디어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것으로 완성이 아닌 바탕 작업이고요.

 

퍼포먼스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

-퍼포먼스는 공간이 중요하고요. 주어진 재료들 사용하는것도 재미있어요 . 2014년에 한 퍼포먼스는 데생이나 공간 개념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어요. 제가 입던 구멍난, 낡은 옷을 입은 채로 관객들에게 바늘을 주고 꿰매게 한 퍼포먼스를 했어요. 그 퍼포먼스는 데생 없이 바로 진행되었던거에요. 전 주로 설치 작업을 완성해 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어요.

 

작업 과정이 퍼포먼스라는게 인상적이었어요. 보통 퍼포먼스는 작가가 따로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작업 과정이라기 보다는 몸을 사용해서, 즉 행위를 통해서 결과물을 찾아가는거에요. 작업과정 자체가 작업이고, 결과물은 따로 있는거죠. 저는 그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를테면 과정, 진행되는 것이요. 얼마전에 흙을 파내고 나서 그안에 발을 넣어 뜨는 작업을 퍼포먼스화 했는데요, 결과물에서는 발을 흙속에 넣는 감각을 느낄수가 없죠. 발을 흙에 넣었을때 느껴지는 감촉, 감각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제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돼요. 예전에는 못느끼는 감각을 새롭게 느끼는거에요. 흙이라는 자연을 거쳐서 저 자신을 느끼는거죠그런 의미에서 이 과정을 퍼포먼스화 하는거에요. 그리고 공간 설치 작업을 완전히 퍼포먼스화 시키고 싶어요. 설치하고 해체하면서 다른 공간으로 옮겨 다시 설치,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설치하는데 10시간 정도 걸려요. 이 작업에 유목민적인 개념을 부여했으니깐 그것을 다른 공간으로 옮겨다니면서 더 살리고 싶어요.

 

설치와 데생 작업 소재가나의 방이더군요. 방을 주제로한 이유가 있나요 ?

-제목은 될수 있으면 간단하게 붙여요. 별 의미는 없어요. 제목이 좀 거창하면 제목 때문에 작품의 의미가 바뀔수도 있을것 같아서요. 제목은 잘 안붙이다가, ‘나의 방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방은 편안한 공간이기도 하고, 나를 지키기도 하면서 몸, 피부 같아서였어요. 나의 방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방을, 파리에서 작은 방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이들의 방과 그들이 입던 옷으로 설치하고 해체해서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요.


혁이 퍼포먼스 사진.png
                                        Recoudre, performance, 6 heures, 3 vêtements, à Centquatre-Paris, Jeune création, 2014

 

방에서 가진 편안함은 이해가 되는데, 데생을 봤을 때 좀 특이했던게 작가가 입었던 옷을 오려 붙여놓았쟎아요. 그런데 왜 하필 입었던 옷이어야만 했어요 ?

-옷이라는게 그 사람의 이미지의 한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그 사람이 입고 다니던 기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신적이면서 신체적, 물질적이라는 점에서 옷이라는 소재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나의 방 Ma chambre’’ 설치에서 유목민적인 것을 표현하려면 좀 약하고 가는, 쉽게 변형되는 소재가 필요했어요.

 

옷은 주로 티셔츠를 해요 ?

-옷은 가리지 않고 해요. 그런데 그동안 작업해보니 바지가 가장 좋았어요. 제일 천이 많이 나오거든요.

 

유목민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게 안정스럽지 못한 이곳 프랑스 유학 생활을 상징할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학생활을 어땠나요 ?

-정말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여러가지 상황과 사정으로 정말 많이 옮겨다녔어요. 예전에 한국에서 살때는 전혀 접하지 못했던 일들이었어요.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작가노트에서 보니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일시적이면서 동시에 영속적인 성격에 대한 고찰’’이란 귀절이 있던데요. 공간이 가진 영속적인 성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바뀌는거 같아요. 도시, 건물, 자연이라는게 사람에 비하면 영속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이 세계 자체가 하나의 변화하는 흐름 같아요. 그 흐름 자체에서 본다면 도시,건물, 자연이라는 것도 우리와 같이 일시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요.

 

조금전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을 재료로 ‘’작은 방’’ 퍼포먼스와 설치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그럼 그 사람이 입던 옷으로 작가가 설치와 퍼포먼스 하는건가요 ?

-, 제일 좋은건 그 사람이 직접 설치하고 철수하는, 퍼포먼스를 하는거에요. 그렇게 여러 명을 참여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런 개개인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 그러니깐 천을 설치 작업을 하는게 고정시키는게 쉽지 않았을것 같은데요. 무슨 재료를 사용했나요 ?

-윗쪽은 낚시줄로 고정시켰어요. 천이 약하다 보니 다른 부분은 테이프를 사용했어요. 대부분 작업을 하면 고급 재료를 사용하는데, 그런게 아니라 낚시줄, 스카치 테이프 같은 재료들을 사용했어요.

그 이유는요 ?

-제가 작은 존재라는 것, 하찮은 존재라는 것과 특히 외국에 나와서내가 작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서 작품 설치하면서 이런 재료들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다른 퍼포먼스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세요. 2014년에 한 퍼포먼스는 ‘’나의 방 Ma chambre’’와는 좀 다른것 같은데요.

-저의 구멍 나고 낡은 스웨터를 제가 입고 관객들이 바늘과 실로 구멍을 꿰매는 것이었는데요. 처음에는 노숙자의 옷으로 하려고 했어요. 평화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거든요. 찢어지고 구멍난 것들이 상처라고 할수 있잖아요. 그것들을 꿰매주면서 공감과 위로를 주고 싶었는데 생각을 바꾸었어요. 이유는 제가 그사람의 인생을 모르면서 섣불리 시도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그런 위치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해서 결국 제 옷으로 한거예요. 타인과의 거리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퍼포먼스에선 그 반대로 타인이 제 개인 공간에 들어온다는 거에 의미를 두었어요. 내 피부와 맞닿는 옷을 관객이 바늘과 실로 꿰매는 것이니까요. 날카로운 바늘을 가지고 있는 타인 즉 관객이 그것으로 나를 찌르는게 아닌 나의 아픔을, 부족함을 꿰매주는, 즉 사람간의 신뢰를 상징했어요.

 

그럼 바늘을 가지고 작가가 입고 있던 옷을 꿰맨 사람은 누구이고, 몇 명이 그 퍼포먼스에 참여했나요 ?

-큰 전시안에 하루동안 퍼포먼스로 참여한 것이었는데, 참여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에게 바늘과 실을 주었어요.

관객들 반응은 어땠어요

-많이 참여해주셨어요. 이게 6시간 정도 했는데요. 2시간 정도는 친구가 대신해 주었어요.

 

작업의 주된 주제는 관계인 것 같던데, 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가치관이 있다면요.

-관계 자체가 저를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타인을 통해 저를 아는거죠.


혁이 흙작업 사진.png
                                                                         Sans-titre, installation ciment blanc, 2017

 

2017년 작업에서는 숲으로 나갔더라고요. 흙을 파내고 발을 넣고 뜨는 작업이던데요. ‘나의 방 Ma chambre’ 에서 야외로 혹은 자연으로 나간거라고 할수 있나요 ?

-자연이라면 자연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도시이기도 해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이니까요.

 

이 흙 작업도 퍼포먼스화 했던데요, 이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건 무엇인가요 ?

-사실 작업할 때 관객을 생각해야된다고 하잖아요. 저는 생각하지 않고 해요. 개인적인 창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완성한거니 제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똑같이 느껴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똑같이 생각하는것도 불가능한거 같아요. 창작 그이후에는 관객들에게 모두 맡겨요. 그건 강요할수 없는거니깐요.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데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작업에 항상 작가의 몸이 들어가네요. , 즉 천과 나의 몸, 흙과 발, 그리고 작년 청년작가협회 신입전에 전시한 큰 콜라쥬 작품에서도 작가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떠서 깨어 붙였쟎아요. 몸이 작업의 한 도구라고 할수 있겠네요.

-그게 불어로 하면, faire le corps avec le monde extérieur 라고 항상 이야기하는데요, 몸을 통해서 하나가 바깥세계와 하나가 되는 시도를 하는거죠.

 

작업에서 몸이 도구가 되는 등, 몸을 항상 어필하고 있는듯 한데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혹시 영향 받은 작가가 있나요 ?

-처음 영향을 받았던 작가는 오를랑 Orlan 이라는 작가의 젊었을 때의 작업 중에 ‘’mesurage 측량이 있는게 전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자기 몸으로 측량하는 작업을 한거에요.

 

그럼 몸이 측량 도구인가 되는거네요.

-어떻게 보면, 항상 몸이와 같이 세계를 보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어요.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측정할때 발걸음의 길이가 기준이 되어 단위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측정한다는거 자체가 인간의 몸으로 세계와 맞닿는, 그러면서 보는 것이라고 할수 있잖아요. 그런게 재미있었어요.

 

계획된 전시가 있나요 ?

-올 가을에 있을 재불 청년작가협회 정기전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 전시에는 흙을 파내고 그안에 발 넣고 뜬 작업을 전시할 계획이에요. 여름 방학 동안 집중적으로 그 작업만 할 작정이에요.

                                                                                                                      

 

이응노 군상 사진 수정.jpg
Lee Ungno, sans titre, 1987, encre et couleurs sur papier
© Musée Cernuschi /Roger-Viollet

아시아 근대 미술의 거장 명으로 뽑히는이응노(1904-1989) 화백의 회고전이 프랑스 아시아 대표 시립 미술관인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 (Musée Cernuschi)에서 오는 6 9()부터 11 19()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이응노 화백은 1950년대부터 기존 전통 회화의 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추상회화 형식을 창조하며 한국의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1958 도불한 작가는 파리 아방가르드 미술에 많은 영감을 받아 동양화의 전통적 필묵을 활용한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했고, 이후 여러 세대의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추상과 서예를 접목, ‘문자추상’양식에 몰두하는 , 다양한 추상 작품을 창작한 이응노 화백은 1970년대부터 한국 민주주의를 비유한 '군중' 형상을 작품의 상징적 테마로 삼기 시작한다. 이후 이응노 화백은 1989 작고 전까지 그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군상’ 연작을 제작하며 인간에 대한 사유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한편, 이번 전시를 개최하는 세르누치 아시아 미술관과 이응노 화백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1971 이응노 화백은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에서  프랑스인에게 서예와 동양화를 가르치며, 동양예술을 서양에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이응노와 깊은 인연을 맺고있는 세르누치 미술관은 1953년부터 1989 사이에 이응노 화백이 작업한 작품들을 백여 이상 소장하고 있다

마엘벨렉(Mael Bellec) 학예실장의 기획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부터 1989년까지의 이응노 화백 작품을 9개의 섹션으로 나눠 관객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주제는 ▲전통 회화부터 현대미술까지, ▲파리미술학교, ▲이응노, 서예, ▲대나무 회화, ▲추상을 쓰다, ▲기호부터 형태까지, ▲풍경과 전통의 쇄신, ▲조각과 장식예술, ▲군상 등으로 9개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 소장품을 비롯한 한국의 이응노 미술관(대전)소장품으로 구성되어 이응노 화백의 회화와 서예, 추상화를 총망라하는 작품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 이응노 회고전 

  o 기간 : 69() ~ 1119()

 o 장소 : 세르누치 아시아 박물관

            7, avenue Vélasquez 75008 Paris

 o 입장료 : 8유로 / 6유로(할인)

 o 홈페이지 : www.cernuschi.paris.fr


 

그랑 파리 사진.jpg

그랑 파리 프로젝트(Grand Paris Project)의 일환인 철도 교통망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7년 전 소시에테 뒤 그랑 파리(Société du Grand Paris, SGP)4개의 새로운 무인 지하철 노선 개통을 결정한 바 있다. 15년 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이 세기의 공사는 200km 가량의 지하철 터널과 68개의 역 건설을 목표로 하며, 그 중 3분의 2는 기존의 노선과 연결하여 환승이 가능하다. 올 봄 시작된 포르 디씨방브클라마르(Fort-d’Issy - Vanves – Clamart)역 건설 공사만큼이나 규모가 큰 공사로 알려져 있다. 해당 역 공사는 기차역뿐 아니라 25미터 아래 서쪽 오--(Hauts-de-Seine)지역의 퐁--세브르(Pont-de-Sèvres)와 동쪽 발드마른(Val-de-Marne) 지역의 누아지-(Noisy-Champs)을 잇는 신노선인 15호선이 개통될 예정이다.

필립 이뱅(Philippe Yvin) SGP 대표는 « 철도 교통망 확장 공사는 유럽에서 시도되는 최초의 인프라 공사로 런던 크로스레일보다 공사 규모가 두 배 크다. 중국과 인도의 교통망 확장 계획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 대규모 공사 »라고 밝혔다. 이 거대 프로젝트를 통해 일드 프랑스 지역의 교통망이 새롭게 규정되고, 소외되었던 다수의 지역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하철 노선과 역 건설을 위해 10여 년간 약 250억 유로가 사용될 예정이며, 새로 생겨날 역 주변의 주거공간 및 도시 재개발 프로그램까지 고려한다면 예산은 1,080억 유로에 이를 것이다. 이미 SGP의 발주 총액은 35억 유로에 달하며, 그 중 6억은 중소기업으로 편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드 프랑스 남쪽에서도 공사는 한창이다. 까샹(Cachan)에서는 지하역 건설 준비를 위해 B선 아래 3개의 거대 대들보 공사를 진행 중이다.

« 2017년에는 40곳 이상에서 철도 교통망 확장 공사가 진행될 것이며, 그 결과 여섯 개의 역과 안전 및 환기갱() 등의 부속 시설이 건설될 예정 »이라며 필립 이뱅(Philippe Yvin) 대표는 밝혔다. 남쪽으로 15호선 첫 터널 공사는 11월로 예정되어 있으며, 2020년 이후에는 15, 16, 17호선이 지나다닐 수 있는 20여 개의 터널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관련 학술기관, 부동산 중개인, 엔지니어 회사, 건축사, 토목공학자들이 15호선이 지나갈 지역을 6개로 분류해 각각에 투입되었다. 필립 이뱅 대표는 « 공사 계획이 빠듯해 모든 전문가 및 참여 회사들이 공사에 착수 »했음을 밝혔다. 목표는2022 15호선을 개통한 후 2024년 이전에 센-생드니(Seine-Saint-Denis)를 지나는 16호선을 개통하는 것이다. -생드니는 2024년 올림픽이 개최지가 파리로 선정될 경우 경기가 이루어질 지역이다.

철도 교통망 확장 공사로 인한 경제적 효과 역시 기대된다. SGP에 따르면, 현재 700여 명 근로자가 15호선 공사에 투입되었으며, 2018년에는 3,5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외에 지하철 공사를 위해 40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었는데, 그 중 2,500명은 엔지니어, 건축가, 공사 감독관 등 공사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2020-2021년에는 12,000명에서 15,000명 사이의 인력이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공사에 참여하는 각 기관은 최소 5%의 인력을 프랑스 내 생계 곤란 인구를 고용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SGP는 새로운 지하철 노선 개통은 11 5천 개에서 12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파리지성 / 김수빈 foxy2520@naver.com>

 

                            코끼리 협회 주최, 도시 몽타주 MONTAGE CITADIN 전시

                                                       -파리 퐁데자르 갤러리-

                                                  코끼리 협회 전시 포스터.jpg

베르티에(Paul BERTIER), 임정현(Jeonghyun LIM), 바오산 (Baosan LI), 윤민석(Minsuk YOON)

« 도시 몽타주 MONTAGE CITADIN » 에는 도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존재한다. 대도시의 구성원으로서, 혹은 이방인으로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시를 바라보는 각각의 작가들의 다양한 방식의 도시풍경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그들의 작업을 하나의 전시의 형태로 엮어, “동시대 작가들에게 대도시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읽어내려는 기획자들의 해석을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참여작가 베르티에, 임정현, 바오산 , 윤민석은 각기 다른 매체로 도시를 바라보는 독특한 작가적 시각을 구현한다.

프랑스 작가인 베르티에는 선택된 풍경을 단순화, 도식화하여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회화작업을 통해 도시성 대한 의문을 던진다. 임정현은 도시곳곳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모순적 공간인 공사장에 천착한다. 불완전한 공간인 공사장. 그러나 그의 사진속 그가 찾아낸 완전한 선과 색이 이루는 조형성에서 그가 보는 것은 바로  유토피아이다. 바오산 리의 사진은 도시, 이방인으로 머물렀던 파리 근교의 도시와 대만의 자신의 출신 도시를 오가며 담아낸 풍경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사진을 통해 단순한 풍경이 아닌 도시라는 배경 위에 겹쳐지는 오브제들건물, , 표지판, 자동차 만들어내는 콜라주(collage) 발견하게 것이다. 윤민석은 보자르 시절 머물렀던 디종을 무대로 퍼포먼스, 영상작업, 사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도시풍경을 단지 바라보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뚫고 들어가 안에 사람이 있다는 ,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다양하고 재치있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작년 9 번째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에 이어, 한불문화교류협회코끼리(Co : Qui Rit)이번 전시 또한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국적의 청년작가들, 그리고 청년문화예술기획자들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다. 국적과 장르를 초월한 젊은 문화예술기획을 표방하는 코끼리의 번째 기획전시 «도시 몽타주MONTAGE CITADIN » , 대도시의 삶에 대한 젊은작가들의 치열한 탐구, 그리고 도시풍경을 바라보는 새롭고 깊이 있는 시각을 경험하는 기회가 것이다.

퐁데자르 갤러리, 4 Rue Péclet, 75015 Paris France

2017/06/03()-06/13()

14:00-19:00, 월요일 휴관

오프닝 2017/06/03 18:00-21:00

 

전시기획: 김지영, 김은정

주최: 코끼리 협회 Association Co : Qui Rit

coquirit.paris@gmail.com, www.facebook.com/CoQuiRit/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중도신당 후보가 지난7 () 25번째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선 기간 내내 친환경적 전환(transitionécologique)에 주안점을 두고, 탈화석 연료,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정책의 우선순위라고 밝혀온 마크롱의 에너지 정책에 관심이 쏠린다. 세계는 지금 각 국가들이 미세오염 등 공기오염에 몸살을 앓고 있는 만큼, 기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대기 및 생활 환경의 질을 높이고자 각종 에너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재생 에너지*정책은 각 국의 주요현안 중 하나다.  

* 신·재생 에너지는 기존의 화석 연료를 재활용하거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에너지다. 태양 에너지, 지열 에너지, 해양 에너지,바이오 에너지 등이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에너지 정책으로친환경적 전환’을 내걸었다. 따라서, 현재 에너지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의 변화도 예견된다.

      마크롱 에너지 사진.jpg

⊙ 원전 비중은 축소 전망 : 마크롱 대통령은 원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현재 총 발전량의 75% 가량을 차지하는 원전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제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발전용량 약 25GW를 감축해야 하는 규모다.

프랑스의 최고 노후 원전으로 폐로가 논의돼 왔던 페센에임(Fessenheim)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견해도 분명히 했다. 페센에임 원전 폐쇄령은 지난달 49일 환경부장관(세골렌 루와이얄,Ségolène Royale)의 승인과 함께 관보(Journal officiel)에 게재됐다.그러나,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이를 대통령선거 이후로 결정을 미루며 최종결정을 보류한 상태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페센에임 원전 폐쇄 확정과 동시에 노르망디 지역 플라만빌(Flmanville)에 건설 중인 제 3세대 원자로 EPR(유럽형 가압경수로)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 원자력 안전청의 역량 강화 : 재생 에너지 분야는 2022년까지 태양광, 풍력 용량을 늘려나간다는 현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 11.7GW 규모의 풍력 설비 용량을 23.3GW, 6.8GW규모의 태양광은 13.5GW까지 증대시키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재생 에너지 분야 민간투자를 장려해 300억유로의 투자를 유치하고,재생에너지 보급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에너지 저장장치ESS(EnergyStorage System)**,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분야 연구개발R&D(research and development)와 투자 활성화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도 지원한다.


**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 신재생 에너지는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에서 중요하게 쓰이는데,ESS를 이용하면 원하는 시간에 전력을 생산하기 어려운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 에너지를 미리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대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필요 발전량은 냉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최고 수요 시점을 기준으로 설정돼 있는데, ESS는 피크 수요 시점의 전력 부하를 조절해 발전 설비에 대한과잉 투자를 막아준다. ESS는 돌발적인 정전 시에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준다.또한 ESS는 태양광, 풍력,조력, 파력 등 신재생 에너지 또는 소규모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수시로 전력망에 공급되거나 전기자동차 충전소 등에서 높은 출력으로 갑자기 전기가 소비될 때 유용하다. ESS는 전기의 불규칙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고 수시로 변화하는 주파수를 조정해 전력망의 신뢰도를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ESS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스마트 그리드에서의 핵심 설비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 스마트그리드는 « 똑똑한 Smart »와 전기, 가스 등의 공급용« 배급망, 전력망, Grid »가 합쳐진 단어다. 차세대 전력망, 지능형 전력망으로 불린다. 스마트그리드의 핵심은 전력망에 IT기술을 합쳐 소비자와 전력회사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소비자는 전기요금이 쌀 때 전기를 쓸 수 있고,전자제품이 자동으로 전기요금이 싼 시간대에 작동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꿔 말하며,전력생산자 입장에서는 전력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전력공급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전력 사용이 적은 시간대에 최대전력량을 유지하지 않아도 되므로 버리는 전기를 줄일 수 있고, 전기를 저장했다가 전력 사용이 많은 시간대에 공급하는 탄력적인 운영도 가능하다. 또 과부하로 인한 전력망의 고장도 예방할 수 있다. 현재 전력망은 중앙집중형 발전 형태로, 공급자 중심으로 설비를 운영하며, 최대 수요량에 맞춰 예비율을 두고 일반적으로 예상 수요보다 15% 정도 많이 생산한다. 또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로 대규모 발전하며,이렇게 생산한 전기가 동시에 버려지기도 한다. , 효율성이 떨어지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및 환경오염으로부터 인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기대되는 기술이다.


⊙ 화석연료 사용 제한 등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정책 다수 제시 :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까지 • 석탄화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하고, 발전소 부지를 다른 용도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와 함께 파리협정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셰일가스(shale gas : 모래와 진흙 등이 단단하게 굳어진 퇴적암 지층인 셰일층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가스)탐사를 금지하고, • 탄화수소자원 탐사의 신규 허용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탄소가격 인상 또한 추진된다. 환경비용을 탄소가격에 포함하고 2030년까지 탄소세를 100/tCO₂로 인상하는 것이 골자다.


◈ 신·재생 에너지의 등장 배경 : 인구 증가와 산업 발달로 화석 연료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자원의 고갈과 함께 국제 가격이 상승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화석 연료가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주목되면서 그 사용량이 많은 국가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등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신·재생 에너지의 특징

① 신 · 재생 에너지는 화석 연료와 달리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갈되지 않는다.

② 오염 물질이나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어 환경친화적이다.

③ 화석 연료에 비해 비교적 지구 상에 고르게 분포한다.

④ 발전소를 건설할 때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⑤ 개발 초기에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경제성이 낮은 편이다.


                                                             < 파리지성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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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 금요일 18시부터 파리 퐁데자르 갤러리에서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 전시,‘ 여정 작은 위로 있었다. 전시는 프랑스, 이태리, 호주에서 활동하는 작가 5명이 참여한 전시로, 독일의 클레르 씨가 주관하고,파리의 김수진 씨가 기획을 맡았다.참여 작가로는 프랑스 강시온 작가가 세라믹과 사진 작품,이성아 작가는 회화, 이오은 작가는 동영상, 이태리의 조경희 작가는 회화를, 그리고 호주의 백소요 작가는 동영상을 전시했다.또한 이날 오프닝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파리 전시에 대한 인사를 동영상으로 볼수 있었으며, 이날 오프닝 행사로 최정우 씨의 자작곡인 진도연주와 유은영 씨의   낭독,그리고 최정우 씨의 기타와 이인보 씨의 대금 듀엣 연주가 있었다. 이날 파리의 많은 한인 프랑스인들이 참석하여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자리를 가졌다.전시는 5 21 일요일까지 계속된다.

                                                                                                                                                       <파리지성>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국제적 현대미술 축제 중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art contemporain de Venise, la Biennale di Venezia)*의 막이 올랐다. 올해로 제 57회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는 5 13일부터 11 26일 까지 6개월간 열린다. 이 기간 동안 평균 약 50여 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이중 8천여명이 기자들이다.

* 비엔날레(Biennale) :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 » 라는 뜻으로, 전 세계 현대미술의 동향을 교류하기 위해 미술분야에서 2년마다 열리는 국제전시 행사다. 2년 마다 열리는 전시는비엔날레’, 3년마다 열리는 전시는트리엔날레라고 부른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부의 은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시작된 120년의 전통을 가진 미술축제다. 한국은 1995년 광복 50주년과 미술의 해를 기념해 광주에서 처음으로비엔날레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퐁피두센터의 책임학예사(conservatrice au Muséenational d’art moderne - Centre Pompidou)인 크리스틴 마셀(ChristineMacel)이 총감독을 맡아 « 비바 아르테 비바 »(Viva Arte Viva, 예술 만세)를 주제로 전시를 조직했다.

마셀 총감독은 « 갈등과 충격으로 가득한 오늘날 세상에서 예술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최후의 보루이며, 개인주의와 무관심에 대항하는 분명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예술가의 책임과 목소리,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고 말했다. 그는 또한 « 예술가와 함 께하는, 예술가에 의한, 예술가를 위한 행사가 될 것(avec les artistes, par les artistes et pour les artistes) » 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나라별로 자체 기획해 경쟁하는 국가관 전시와 총감독이 초청한 작가들이 기량을 겨루는 본 전시(국제전)로 나뉜다. 국제전(본전시)에는 51개국 120명의 작가가 초청돼 19세기에 지어진 조선소 건물인 아르세날레(Arsenale)에서 작품을 선보인다. 초청 작가 가운데 103명은 이번이 첫 베니스 비엔날레 데뷔 무대다.

본전시 한국 참여작가로는 김성환(1975년 생) 이수경(1963년 생)의 작품이 전시된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영상과 사운드, 조명,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김성환은 흑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번역된 도자기 » 시리즈로 알려진 작가 이수경은 버려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 붙여 만든, 높이가 5m에 이르는 «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 » 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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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작 « 늘 거울 생활 » 중 일부(, 2014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와 이수경 작 « 번역된 도자기 »()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는 2009년 구정아, 양혜규가 참여한 후 6년 만인 지난 2015년 김아영, 남화연, 임흥순 등 3명의 작가가 포함됐다. 이 중 임흥순 작가가 영상 작품 « 위로공단 »으로 2등상에 해당하는 은사자상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본전시 외에 국가별 커미셔너가 자국의 현대미술을 소개하기 적합한 작가들을 선정해 조직하는 국가관 전시는 앞서 10일 공개됐다. 국가관 전시에는 2년전보다 4개국 적은 85개국이 참가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카리브해연안의 나라 앤티가 바부다, 태평양의 섬나라인 키리바시가 처음으로 국가관을 선보였다.


한국관 전시, «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 :The Stone and the Mountain) » 주제로 공개

자르디니(Giardini)’(이탈리아어로정원)에 자리잡은 나라별 국가관 전시에서 한국관(연면적 242.6)의 전시주제는, «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더 스톤 앤 더 마운튼(The Stone and theMountain) » : « 균형을 잡아주는 평행추 » 를의미한다.

1995년 부터 운영 중인 한국관은 올해 대표작가로 재미 작가 코디 최(1961년생, 본명 최현주)와 작가 이완(1979년생)이 선정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 아트디렉터 이대형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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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 최는 한국관 건물 외부에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카지노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 « 베네치아 랩소디 »를 설치해 국제 미술계에 뿌리 내린 « 카지노 자본주의 »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재미 작가인 그는 또한 이민 초기에 동서양의 문화적 충돌 속에 소화 불량에 걸린 자전적인 경험담을 녹인 « 생각하는 사람 », « 코디의 전설과 프로이트의 똥통 » 10점의 작품도 함께 선보였다.

작가 이 완은 전 세계인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 그 중 668명 각자를 나타내는 668개의 시계로 구성된신작 « 고유시(Proper Time) »« 미스터 K 그리고 한국사 수집 »등 총 6점을 출품했다. 이완 작가에 따르면, « 고유시(Proper Time) » « 각 개인의 연봉, 노동시간, 식사비용 등에 따라 벽면을 가득 채운 시계가 각기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현장에서 개인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불균형한 세상을 짚어내고자 한 것 » 이라 말한다. 이밖에, 이완 작가의 동명 작품이기도 한 제3의 인물 « 미스터K »는 작가가 서울 황학동에서 단돈 5만원에 구입한 사진 1412. 1930년대 생의 실존 인물인 고() 김기문 씨의 삶을 통해 한 개인의 치열한 삶을 넘어 한국 근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한국관 예술감독 이대형은 «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지 못하는 다수, 약소국의 이민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강대국의 신고립주의 등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의 함수관계 속에서 인간에 대한 배려가없어진 21세기의 폭력성을 역설적으로 지적하고자 했다 » 고 기획의도를 설명한다.

< 파리지성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신인 작가를 소개합니다>

                      실내 건축가에서 가구 예술가로, 훈 모로(전 훈) 작가

2017년을 맞이하여 본지는 지난 1월부터 <신인작가를 소개합니다> 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주기적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신인 작가들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주는 여섯번째 순서로, “실내 건축가에서 가구 예술가로, 훈 모로(전 훈) 작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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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 모로(전 훈) 작가, -보아 갤러리 개인전에서 작품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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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일 파리 보아 갤러리에서 가구 예술가,  훈 모로 Hoon Moreau(전 훈)의 개인전 오프닝이 있었다, 비가 촉촉히 내리는 가운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무척 고급스러웠다. 가는 테이블이 천연 바위덩이의 뽀족한 부분위에서 균형감을 유지하며 놓여져 있었고,나무 결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살아있는 가구 겉면에는 용암이 분출하듯 강렬한 선들이 춤을 추고 있는듯 했으며, 나무가 껍질을 터트리며 속살을 보여주는듯한 문양들은 마치 세월의 흔적 같은 자국을 남기고 있다. 또 버섯 모양의 작은 테이블들이 가진 곡선들은 현대적이면서 디자인적인 감각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작품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고급스러운 간결함이라고 할수 있겠다. 보통 고급스러움에는 부담스러운 무게감이 느껴질법도 한데, 어떻게 이런 간결함을 줄수 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훈 모로 (전 훈) 작가는 서울대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도불해서 카몽도 학교에서 실내건축과 환경 디자인 공부한 이후 프랑스 건축회사에서 일을 했다. 20년간, 빌모트 & 아소시에(Wilmotte & Associés) 건축사무소를 비롯해 프랑스 건축회사에서 팀장으로 여러나라의 박물관,, 고급 호텔, 주택 등의 실내 건축,가구 디자인의 기획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업 시작한 것은 2년 정도 되었다. 신인작가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그리 적당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20년간 현장 경험의 영향이 지금의 그를 즉, 가구 예술가로 있게 했기 때문이다.또 이미 프랑스 갤러리들의 초청으로 파리, 뉴욕, 런던, 룩셈부르그 등 아트 페어에 참가해 좋은 성과를 이루고, 2017년 파리에서의 첫 초대 개인전을 시작으로 9, 10월 다음의 초대 개인전과 유럽 여러 전시들이 계획되어 있다.

도불, 카몽도 실내건축-디자인 학교, 20년간 건축 회사 생활, 그리고 뒤늦게 가구 예술가로 도전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각을 전공했는데 왜 조각을 계속하지 않고 가구 예술을 했나요?

-저는 프랑스에서 contemporary art furniture, 현대 예술가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 디자이너라고 소개됩니다. 그런데 저는 조각을 하고 저의 조각 작품들에게 기능성을 주어 우리의 삶에 참여하게 한다고 해요. 제 작품들은 그들의 존재 자체와 기능성과의 디알로그, 즉 대화 가운데 있어요

예술이라고 하면, 제 마음에 와닿았던 ‘예술’을 말하는 글이 있어요.신영복 교수 글 중... ‘담론’ (2015) “내가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나는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습니다.몇 번에 나누어서라도 가능하면 끝까지 다 듣습니다.() 유심히 주목하면 하찮은 삶도 멋진 예술이 됩니다.() 예술의 본령은 우리의 무심함을 깨우치는 것입니다.(251~252).

조각, 가구의 장르 구분은 저에겐 크게 중요하지않아요.


프랑스로 유학을 오게 된 계기는요?

-어렸을때 부터 저에게 조각가는 멋졌어요. 그런데 흙을 주무르고, 부치고 떼고… 나무를 쓰다듬으며, 깍고, 파는 등, 시각적으로 전달 할 수 있는지적 나눔만큼 접촉에서 오는 촉각의 나눔도 저에겐 중요했어요. 이 나눔을 제 작품에 담을 수 있기 위해 삶에서 우리가 접하는 사물들 그리고, 삶의 공간을 공부하기로 했죠. 일상 생활과 밀접한 나만의 예술 세계를 찾고 싶었던거에요. 그래서 우선 나를 둘러 싼 삶의 환경, 나의 생활 주변을 설계하기로 하고 실내 건축과 환경 디자인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유학을 왔어요.

대학 마치고 유학 오기전 한국 인테리어 회사에 이년 남짓 다녔는데 그때 다니던 회사 사장님의 남편이 프랑스인이었어요. 그렇게 프랑스와 연결이 되었어요. 그리고 주워진 순간 순간 열심히 하다보니 카몽도 학교를 마치고 프랑스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20년을 프랑스 회사에서 실내건축과 디자인 기획을 하다가 왜 회사를 그만두고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된건지요?

-전 제 지금의 나이가 너무좋아요. 머리속에도 마음속에도 어느정도 여유로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어요. 죽을 병이 아닌 이상, 죽을 죄가 아닌 이상 그리 심각한 것은 없다고 항상 상대화 시킬수 있는 너그로움도 생겼어요. 경제적으로도 욕심을 갖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게 되었고요. 오랜 사회 생활을 해 오면서 시간을 조직적으로 이용하여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 나갈 수 있는 훈련도 잘 되어있어요.

요즘은 100세 인생이라고 하쟎아요? 난 인생의 반 밖에 안 왔으니 무언가 다시 시작하기엔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소중히 관리하며 앞으로의 반 인생을 열정적으로 재미있게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이제 정말 해 볼만한 시기라고 결정했죠. 그래서 내가 전공한 조각과 회사에서 20년 동안 쌓아왔던 생활 공간에서의 디자인을 접목시켜서 내 작품을 하기 시작했던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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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전 오프닝에서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훈 모로 작가


쉽지 않은 도전 같아요. 고민도 많았을듯한데요

-사람들이 저한테 훌륭한 월급에 멋진 프로젝트에 무엇이 불만이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냐고 묻곤해요. 그럼, 매일 교통체증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아침마다 나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한다고 농담을 하죠. 또 다른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요.


무릇 가구 예술이라고 하면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시대에 따라 유행의 흐름이있다고 봐요,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몇 년전부터 빈티지 디자인 가구 이후 현대 예술 가구(Contemporary Art Furniture) 작품들이 점점 선보여지고 있어요.


프랑스 실내 건축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게 쉽지 않았을거 같아요.

-언어가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어요.그런데 더 큰 걸림돌이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앎, 지식 ? 언어, 문화, 경제, 정치, 역사, 과학, 예술 등 모든 것이 부족했어요.지금도 이 걸림돌들을 계속 밟아 가고 있어요. 처음에는 말단사원부터 시작을 했었죠. 처음 현장감리 책임자로 나갔을때 여기 사람말대로, “조그마한 동양 (중국)여자애가” 라고 똑똑히 들리는 비웃음을 그냥 삼켜야할 때도 있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항상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다닌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작지 않아요. 하하하 그리고 실수도 무진장했어요. 그래서인지 실력을 점점 더 쌓을 수 있었어요.

크라이언트의 변덕에 차분함을 발휘하며, 설득해 가며,미적 개념을 교육해야 하기도 했고요, 사장에겐 비유도 맞출 줄 아는, 또 한편으로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그렇지만 내가 주인이 아니기에 바로 내자리인 단지 팀장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그런데 능력 없는 상사는 정말 괴로웠어요. 난 팀장으로서 팀원에겐 일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때로는 엄격하게 그러나 대부분은 다독임을 아끼지 않았어요. 전 크로키가, 디자인이, 설계가, 현장 일, 모든게 즐거웠어요.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영국 등 유럽 프로제는 물론 그 더위에 온몸이 다 가려지는 긴 검은 옷과 머리를 다 감싸야 하는 검은 스카프를 착용 해야했던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에서의 프로젝트, 전쟁으로 무너진 흔적인지 건축 중인지 구분이 안가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프로젝트, 장인들과의 의사 소통이 어려웠던 우크라이나 프로젝트 등, 모두 나에겐 점점 더 커다란 풍요로운 경험의 보따리를 꾸릴수 있게 해 주었어요.

20년 넘게 이곳, 반은 내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프랑스에서, 아니 유럽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접하며« 사회생활 »을 했어요. 항상« “잘" 살아야지 » 하는 가치관을 지키려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 “잘" 사는거 »에 항상 의문을 던지기도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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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형의 바위” 와 뒤에는“세월의 상흔” 시리즈

조각 전공에 실내 건축, 디자인에, 많은 부분을 다룬거네요.

-저는 뎃생, 회화, 조각, 공예, 가구 등 쟝르에 경계를 두고 싶지 않아요. 회사에서 실내건축과 디자인을 할때 나무,, 금속, 타일, 유리, , 설비, 전기, 조명, 조경, 음향, 장식… 각 분야의 엔지니어들, 장인들,노동자들… 때로는 수 십명이 함께 회의를 해요. 전 정확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되어 각 분야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들을 미의 시각으로, 기능성을 우선으로, 뎃생을 무기로, 그때 그때 풀어주는 능력을 키워왔어요. 그래서인지 저에겐 장르를 구분하는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네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작업하고 싶어요. 관찰하고. 분석하고. 그리고 해석하는 등,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거죠.


이번 보아 갤러리 개인전 제목이 ‘시간의 시각 (Lœil du temps)’이던데 작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건가요?

-저는 아름다운게 좋아요. 아름답고 싶고, 아름다운 시각을 가지고 싶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마술사이고 싶어요. 항상 ‘미의 본질’은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선뜻 ‘예쁘다’ 하는 것이 정말 예쁜게 아닌 경우가 많았어요. 사람과의 관계도 많은시간이 지나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알고 이해했을때 소중하고 멋지게 느껴졌거든요. 작품에서도 그것을 표현하고싶었어요. 시간이 지나서 나무가 갈라지고 터지면서 안에 있는 소중한 것, 귀한 중심이 보이는거죠. 그리고 뿌리가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라든지, 화산의 용암을 표현한 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오는 자연의 현상이쟎아요.

그래서 이번제 작품들은 아름다움의 본질, ‘’흐르는 시간의 시각’’으로 본 자연을 표현한거에요. 예를 들어 작품 “평형의 바위 Roche en équilibre” 같은 경우에는 바위가 바람과 파도에 깎여서 뾰족한 채로도 지탱하고 서 있는 놀라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거에요. 흐르는 시간의 눈으로 본 자연은 항상 균형을 찾고 있어요. 인간의 삶도 그런것 처럼, 일상생활에서 나, 가정 그리고 일과의 균형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끊임없는 나 자신과의 협상속에 그 균형을 찾아가고 있을 때, 그리고 부부간의, 가족들간의, 친구들간의,회사 동료간의 인간 관계에서 조화로운 균형를 찾았을 때 삶의 아름다움이 보여진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는 디자인만 했고, 시공은 맡긴거네요. 20년 동안 디자인만 하다가 이제 작업을 하니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을것 같은데요

-그동안 손이 근질근질했죠, 그런데 그때는 회사의 경향과 크라이언트에 맞는 디자인을 했어요. 나의 영혼이 들어간,나만의 디자인은 아니었어요. 나를 표현하는 많은 크로키들은 따로 간직하고 있었어요.그리고 작업을 시작한 이후 계속 배우고 나만의 기술을 찾아가고 있어요.


“평형의 테이블” 같은 작품 보면 가는 테이블이 어떻게 뽀족한 모양의 바위 위에 버티고 있나 싶어요, 과학적인 테크닉을 요하는 작품 같아요.

-안에 금속 구조가 들어있어요. 상판을 많이 부셔 버렸죠. 상판과 밑 받침의 균형을 찾기위해 여러번 시도해 수십개버리고 찾은거에요. “그림자 빛살” 같은 경우에도 실을 통과시키는 방법을 찾으려고 엮었다가 풀었다가를 수차례 했어요. 그것도 2년이란 시간이 걸렸어요. 제 작품들에 필요한 기술은 제가 20년 동안 뛰어난 장인, 엔니지어들과 함께 일하면서 터득한 것들의 응용된 결과에요. 그것들이 나의 중요한 재산이 되어,조각과 디자인 두가지를 겸비할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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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빛살”(좌) 과 “매혹의 마법 탁자”(우)

아뜰리에는 어디에 있어요?

-부르곤느 Bourgogne 지방에 파리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가야 해요. 10년간 비어있는 돌아가신 시할머니 댁을 제가 아뜰리에로 바꾸었어요.저는 청소년 딸이 둘인데 저녁 10시에 딸들이 필요로 하는 엄마 역할을 다 끝내고 나면 아뜰리에로 가서 메일 확인하고 바로 자요. 그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하고 다시 파리로 와요. 제 작업과 중요한 엄마 자리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딸들과의 대화, 식사, 음악학교 픽업 등.. 그리고 밤 10시에 또다시 아뜰리에 내려가는 생활을 거의 매일 같이 하고 있어요. 파리 근처로 아뜰리에를 옮길 수 있을때까지는요


많이 힘들겠어요. 

-너무 재미있어요.예전에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때에 비해서 많이 자유로운거에요. 회사 다닐때 한꺼번에 6, 7개의 프로젝트를 하곤했어요. 여행 가방을 정리할 필요도 없이,출장 다녀오면 며칠 있다가 프로젝트 준비해서 바로 또 떠나고 할때가 많았어요. 일주일씩 집에 없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금은 딸들 스케쥴과 방학 등을 고려해 제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날때마다 너무 행복한거에요. 일은 지금도 회사에 다닐때 만큼 하죠.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밤새도록 작업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요.그렇지만 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시간적인 자유로움은 어떤 것과도 바꿀수 없는 것 같아요.


회사에 다닐때부터 항상 언젠가는 작업을 할거라고 염두에 두고 있었나요 ?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버린 적이 없어요


작품을 보면요 아주 섬세한 것 같으면서도 대담한 것 같아요. 작가의 성정이 당연히 작품안에 녹아있을건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작품을 자세히 보면 굉장히 여성스러운데 언뜻 풍겨지는게 남성적이라고도 하더라고요. 글쎄요. 내 이름이 남자 이름이쟎아요? 태어날때 아버지가 당연히 아들일거라는 확신이 있으셔서 이름을 그렇게 지어놓았는데 딸인거에요. 그래도 이름만은 안바꾸겠다고 하셨어요. 그런 영향일까요 ? 살아온 것을 보면 사소한 것에서 부터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항상 잘 알았어요.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런 성향들이 어떤 대담함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싶어요. 또 살면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포장된 내 모습이 아닌, 자신있게« 나 자신 그대로가 되는 것 »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 나 자신으로 사는 것 »을 계속 훈련하고 있어요.« Etre sois même », 삶을 자신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좋은 훈련이 되어 주고 있죠. 그러다 보니 나를 끝없이 알아가고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들에서 저를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훈 모로 (전 훈) 작가와의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즐겁고 활기차게 삶을 엮어나가고자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풍겨졌다. 미술 비평가인 호리아 마루프 Horya Makhlouf는 그에 대해 “그는 자연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들을 « 가구로 번역 »하려는 기발한 몽상가’라고 표현했다. 훈모로( 전 훈)작가와 그의 작품을 한 문장으로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개인전은 파리 보아 갤러리에서 62일까지 계속된다.                                             

                                                                                                                                        <파리지성>


Galerie BOA

11, Rue d’Artois 75008 Paris


훈 모로 작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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