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한인사회 다함께 지혜를 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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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한글학교 운영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공청회가 지난 1 21 4시 파리 15구 구청에서 파리 한글학교 학부모회와 교사회의 주최 하에 열렸다. 공청회가 열리는 동안 파리한글학교 정종엽 총무이사와 학부모회 사이에 고성이 오고가는 등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180여 가정으로 구성된 파리한글학교 학부모회와 24명 교사로 구성된 파리한글하교 교사회는 28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는데 이어 대사관에 민원을 제출하는 등 단계적으로 실력행사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파리한글학교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그런데 왜 학부모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난 것인가?



문제의 핵심은 ‘한글의 집’ 소유권을 가진 한글학교매입추진협회(이하 한매협)와 한글학교와 첫 관계 설정부터 잘못된 인식으로 출발되었고, 최윤규 한매협 회장이 한글학교 이사장직도 겸하는 상태에서 두 단체간 모호하게 얽힌 관계로 인한 불합리한 운영, 그리고 정종엽 한글학교 총무이사가 제안한 한글학교 개정 정관에 동의할 수 없기에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반대하며 나섰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한글학교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정점에 서있는 최윤규 한글학교 이사장과 정종엽 한글학교 총무이사의 사퇴와 250명의 학생과 학부모, 이사진과 교사들이 다같이 화합하는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선에 도달할 때 해결될 전망이다.



프랑스에서 한인사회의 숙원 사업이었던 한글학교 교사매입은 30여년의 긴 세월 전으로 거들러 올라간다.  1989년 백건우,강동석 음악 자선회로부터 시작된 한글학교 교사매입 모금운동은 이후 재불 한인 화가들의 헌신적인 작품 기부로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9년 한글학교매입추진협회를 창설하게 되었다. 이후 재불한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2016 9 크레믈린 비세트르에 마침내 독자적인 교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한인사회는 한글학교 교사 매입을 위해 힘써온 이철종 전 한매협 회장과 협회의 노력에 감사해 하면서도 대다수 프랑스 한인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고 있는 점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매협은 2016년 그 본분을 다한 만큼 마련된 교사를 한인사회와 한글학교에 넘겨주고 해체되었다면 아름다운 퇴장이 되었을텐데 교실 20개를 갖춘 교사를 매입할 때까지 모금을 계속하겠다며 교사 매입 후에도 영향력을 전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교사는 1400여명에 달하는 프랑스 한인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한인의 자산이다. 그런데 소유권을 한매협이 갖고 있다는 것부터가 잘못 되었다는 인식이다. 또한 한글학교 정관에 있었던 내용이지만 정종엽 총무이사가 제시한 개정 정관 초안을 보면 파리에서 한국어로 교육을 하는 유일한 학교라며1장부터 프랑스 한인사회를 반목시키는 문구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파리한글학교 이외에도 이미 10년 전부터 운영되어 온 오페라 한글학교 등을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권한 밖의 것으로 프랑스 한인사회에 분란의 불씨를 남겨둔 문구다.



프랑스 한인들의 요구는 소임을 다한 한매협은 해체하라는 것이고 구입한 교사를 프랑스 한인전체와 한글학교에 넘겨주고 프랑스 한인 대표자들이 공청회를 통해 합의된 것으로 운영해 나갈 때 정상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금 내역과 교사 구입 과정, 공사 진행상황 등을 비롯해 그동안 한글학교와의 관계 등을 상세히 밝히고 프랑스 한인대표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어 조속한 매듭을 짓도록 해야한다.



‘건강한 한글학교’를 위해 나선 학부모들의 결의처럼 지혜를 모아 정관을 합법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으로 개정하고, 파리한글학교와 한글의 집의 재정 및 운영 관계를 분명하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 협회법을 적용시켜 나갈 때 파리한글학교의 바른 발전 방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락석,파리지성 발행인 


 

 

격한 변화 견디는 힘을 길러야..

우리는 어떤 것이 진실이고 무엇이 옳은 것이지도 분별하기 힘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존의 상식과 질서를 넘어서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견뎌 있는 힘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지난해 조국은 대통령 탄핵, 북한과의 극한 대립 등으로 죽었다 살아났다는 표현이 맞을 싶습니다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간 국정농단 세력들은 1 내내 투덜 감옥으로 갔고 자리 곳곳에 나라다운 나라가 새롭게 세워지고 있어 희망적입니다. 국민이 견뎌낸 고통만큼 나라의 나갈 방향도 잡아 것이라 위안을 가져 봅니다.

막혔던 남북 관계도 드디어 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지난 9일에는 남북 고위급 회담을 가졌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공식 확정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끊겼던 서해군 통신선도 복구되었습니다. 다음달에 개최될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과 함께 손잡고 입장하는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며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할 것입니다.

이렇듯 나라 안팎의 불안한 정국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1 5천여 재불한인들은 이제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새해에 새로운 도전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재불 한인사회와 함께 걸어왔던 파리지성도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변화를 선언합니다. 빠른 현지 뉴스를 비롯해 유익한 정보와 구인 구직 등을 파리지성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리고 종이신문은 격주로 배포합니다. 한불네트워크(KFCM Newtork)와의 협력을 통해 불어와 한국어 2개국어로 발행하여 많은 한류 팬들과 입양인 그리고 프랑스 현지인들에게 다가서는 동포지로 변신하고자 합니다. 부수도 대폭 늘려 다양한 국적의 현지인들이 한국을 어렵지 않게 접할 있도록 계획입니다.

 

파리지성은 올해도 어김없이 프랑스 생활의 편익을 위한 전화번호부인 ‘2018 알로파리 발간 배포했습니다. 재불 한인들은 물론 프랑스인들에게도 필요한 유용한 정보 책자가 되리라 믿습니다. 또한 올해부터는 불어판 한식 사이트도 운영해 현지인들에게 우리 음식과 문화를 적극 알릴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프랑스 동포사회의 역사를 담은 ‘k파리지앙 출판한데 이어 올해에는 ‘k파리지앙2’ 출판을 목표로 프랑스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한인들 중에서 청년들의 예술과 도전의 이야기를 기록할 것입니다또한 파리지성은 2008 파리15구에 퐁데자르 갤러리를 개관한 이래 2015 8월엔 서울 삼청로에퐁데자르 서울점 개관하고 프랑스와 한국을 잇는 본격적인 예술 교류의 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한국 유망작가를 프랑스에, 그리고 프랑스에서 주목 받은 청년 작가를 한국에 소개할 것입니다.

 

파리지성은 이렇듯 정보제공 이외에 예술 분야에서도 교량의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파리지성이 걸음 여러분 곁에 다가설 있는 것은 재불 동포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8, 재불 한인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정락석,파리지성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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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1 18 주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 최종문 신임대사가 부임 이후 일정으로 파리 15구에 있는 프랑스 한인회관을 방문해 한인회 임원들과 함께 상견례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상무 재불한인회장은 환영인사를 전하면서 한인회 임원소개와 50 역사의 프랑스 한인의 연혁과 발자취를 영상과 함께 소개했다.

회관 내부 수리부터 시작해서 지난해에 있었던 코리안 페스티발과 김치담그기 행사까지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한인회 모습을 설명하였다.

최종문 신임 대사는 프랑스에 오면서 어깨가 무거웠는데 든든한 한인사회와 함께 있어 부담을 덜었다면서 재불한인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엄무 중의 하나라면서최대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최대사는 문화 강국인 프랑스에서 배울 것이 많지만 한불간 관계에 있어 가장 아쉬운 점은 80-90억불에 불과한 통상 규모라면서 이는 캄보디아와 비슷한 교역 수준인데임기 동안 확대할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양국 정상의 교환 방문이 있을 것이라면서오는 3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한국 방문과 시테 국제기숙사촌 한국관 개관그리고 주불한국문화원 이전 등에 관련해서도 의견을 피력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의 위상 교민 사회도 함께 발전할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종문 신임 주불 한국대사는 1959 생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외무고시(17) 통해 1983 외교부에 입문주미 참사관(2002), 대통령 비서실 근무(2007),  스리랑카 대사(2011-2014), 유네스코협력대표(2015), 2016년부터는 다자외교 조정관 등을 거쳤다.

주불 한국대사는 지난해 9 모철민 대사가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귀국한 이후 4개월 넘게 여성준 대리대사가 수행하며 공석으로 있었다.

사진설명/최종문 주불 신임대사 (가운데) 공식일정으로 프랑스 한인 회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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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황혼으로 저물고 여명과 함께 떠오른 찬란한 새해를 맞이했다

지난 역사는 어둠 속에 묻히고 새해는 밝은 빛으로 태어난 것이다.

칠흙 같은 어둠은 누아 noir이고 찬란한 밝음은 블랑 blanc 이다. 영어의 black은 어둠이고 그래서 검정색이다. Black 어원은 중세 영어의 blak (“black”)과 고대 영어 blāc (pale)에서 유래한 Blake와 고대 프랑스어 blanc (white)에서 유래한 Blanc의 변화형이 곧 블랙이다. 영어 black(검정)과 프랑스어 blanc(하양)이 한 뿌리에서 태어난 것이다. 독일어 blank(빛나는· 반짝이는)에 원뜻이 남아있듯, 프랑스어blanc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빛나다· 불타다'의 의미인 것이다. 밝게 불타는 존재와 이미 다 타고 난 검은 숯덩이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검정이란 뜻의 누와 noirniger 니게르 란 말에서 나왔다. 느와르(Noir)라는 영화 장르는 부패, 배반, 냉소주의, 환멸 등이 기본 줄거리로 다루어진다, 조직폭력, 마피아 등 사회의 암울하고 어두운 부분(암흑가)을 다룬 갱스터 영화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서로 영향을 주어 각 나라 말로 고착되어 사용되고 표현된다. 역사에 의하면 영국 법정의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였고 여왕과 귀족들은 불어를 사용했으며 대부분의 서류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양과 검정이 한 뿌리라는 아이러니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어둠은 밝은 것으로부터 밀려가고 밝은 것이 힘을 잃을 때 어둠이 닥쳐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섭리인 것이다. 어둠과 밝음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서로를 밀어내고 서로를 흡수하려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새로움이란 뜻의 우리말 도끼 ()나무토막 ()”세워놓고 ()” 쪼갰을 때 드러난 하얀 속살이란 의미를 상형적으로 그린 문자이다. , 새로움이란 이제까지 해왔던 일들을 변혁시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행방안을 세워 행해가는 것이 곧 새로운 시작이란 말인 것이다.

우리말 시작 ()”이란 의미는 의미부인()와 소리부인 (기뻐할 이·별 태)가 합해진 글자로 곧 여자가 아기를 잉태해 낳듯 만물의 시작이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란 곧 새로운 생각을 낳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양육시켜나가는 일을 새로운 시작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 사자성어에 제구포신 除舊布新 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묵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펼친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행해오던 잘못된 일들, 시행착오들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도출해내고 그것을 새롭게 행해가는 것이 곧 새로운 시작이란 것이다.

새로움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구태의 옷을 벗고 이제까지 행해오던 방법과 태도를 완전히 탈바꿈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래된 습관을 버려야 하고 똑 같은 방식으로 해오던 생각을 바꿔야 하며 남들이 하지 않는 방법을 도출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안일한 생각과 태도로는 새로운 시작은 어불성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십 수년 전부터 파리 교민들에게 눈과 귀가 되어주고 있는 교민지 파리지성이 불어판 지면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어쩌면 파리에서 발행되는 매체이니 당연히 불어판으로 간행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이러한 변신은 기실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에 담을 컨텐츠가 충실해야 할 것이고 번역 작업이 뒤따를 것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또한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교민지로서의 파리지성이 새로운 패턴으로 변혁을 가져오기 위해 마땅히 겪을 산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내자가추 (來者可追)란 말이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찌할 수 없으나 미래의 일은 조심하여 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새로운 무술년 한 해를 맞이하고 다시 새로운 도약을 위해 탈태를 지향하는 교민지 파리지성의 시도는 처음에 다졌던 초심으로 새로운 탄생을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 길만이 점점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현대 미디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것이며 새로움을 향한 파리지성의 면모를 갖추게 되리라 생각된다.

새로운 변신에는 피할 수 없는 산고의 고통이 뒤따를 것이지만 잘 참고 견디면 견실한 열매로 보답할 것이라 확신한다.

파리지성의 새로운 변신에 갈채를 보내며 끊임없는 일취월장 발전을 기대해 본다.


2018.  1

정택영 (화가/파리팡세 칼럼니스트)

 
걸그룹 미쓰에이(miss A)가 해체된다.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는 27일 "소속 걸그룹 미쓰에이가 해체됐다"고 밝혔다.

미쓰에이 네 멤버 중 페이는 지난해 5월, 수지는 올해 8월 JYP와 재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5월 전속 계약이
만료된 지아는 재계약을 맺지 않고 팀을 떠났고, 민은 올해 4월 계약 만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
자연스럽게 계약이 종료됐다.

-- 중략 --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19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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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는 양상이다. 최근 마크롱 정부 집권 초기부터 추진해온 친기업 정책에 힘입어 최근 미국, 영국등 각국에서 기술 인재들이 모여들며 투자 러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한달 후 100억유로의 스타트업(start-up)펀드를 조성했다. 지난 8개월 동안 모금된 벤처 자금은 27억 유로( 35000억원)로 사상 처음 영국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프랑스가 변하고 있다’ ; 기업가들과 벤처자금 프랑스로

혁신적 기업가와 투자자들, 벤처자금이변하고 있는프랑스로 몰리고 있다. 유럽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엠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정부가 친()기업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내놓은 각종 지원책과 노동시장 개혁정책 등에 호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인 취업비자 심사를 강화하고,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브렉시트)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영국 대신 프랑스를 선택하는 기술 인력도 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프랑스의 벤처자금 조달액이 올해 처음으로 영국을 앞섰다. 또한,프랑소와 올랑드(François Hollande) 전 대통령 재임 중 규제 강화와 징벌적 세금 부과를 피해 미국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 등지로 떠난 기업인들도 프랑스로 돌아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14일 보도했다.


‘프렌치 테크 비자(French Tech Visa)’프로그램 등 정부의 다양하고 실질적 지원

미국과 영국을 떠나는 창업가들이 프랑스를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프랑스 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다. 예를 드면, 기술인력(가족 포함)이 최장 4년까지 프랑스에서 거주·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대폭 간소한‘프렌치 테크비자(French Tech Visa)’프로그램이 있다. 인재 유입을 촉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 프로그램은 지난 4월 도입됐다. 정부가 이주 비용 일부와 사무 공간도 제공한다. 이미 수천 명이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 무니르 마주비(Mounir Mahjoubi) 디지털 경제부 장관은 « 수백 명의 과학자가 프랑스로 오기 위해 비자를 받으려고 한다 »고 밝혔다. 뇌인지 과학자인 뉴턴 하워드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는 역시 프랑스 정부가제공하는 인센티브의 혜택을 받았다. 그는 최근 파리에서 인공 뇌를 개발하는 스타트업(start-up,신생 벤처기업) ni20을 창업했다.


사상 첫 영국 추월 벤처자금 투자액

벤처 캐피털(VC) 투자도 늘고 있다. 올해 1월에서 8월까지 유럽 각국이 유치한 VC 자금을 조사한 결과 프랑스가 모금한 벤처자금이 27억유로( 35000억원)에 달했다. 사상 처음으로 영국(23억유로)을 앞섰다. 같은 기간 독일이 조달한 벤처자금은 11억유로다.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요하네스 후트 유럽 대표는 «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확신한다 »고 말한다.마크롱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 뒤인 6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100억유로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같은 달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start-up 캠퍼스‘스테이션 F’도 파리에 문을 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 프랑스를 초혁신(hyper-innovation) 국가로 이끌겠다 [……] 기업가들이 나라를 뒤흔들고 변혁하도록 독려하겠다 » 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업들 역시 프랑스의 창업 열기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 네이버도스테이션 F에 입주해 각각 인공지능(AI)과 콘텐츠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같은 기업·기술 친화 정책이 프랑스 내 창업을 촉진하고 있다는 것에 많은 기업가가 공감하고있다.특히, 펀드 결성은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창업 기업에 투자하고 창업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타 지역 고급인력의 이주와 정착을 위한 환경 조성,세제 혜택 등의 실질적 지원은 창업 기업의 활성화에 기여한다. 프랑스 중앙은행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0.5%포인트 높은1.7%를 기록할 전망이지만, 이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아직 창업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견해도 많다. 마크롱 대통령의 추가 개혁 작업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마크롱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22년까지 33.3%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낮추기로 했다. 한편, 프랑스 의회는 지난달 130만 유로 이상 자산을 보유한 개인에게 물리는연대세’를 부동산 보유분에만 부과하고,자산소득에는 비례세율(기존 :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세제개편 안을 통과시켰다. 해고 요건 완화가 골자인 노동개혁 안도 9월 의회를 통과했다.


< 파리지성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프랑스한인회 2017 송년의 밤 및 정기총회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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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한인회 2017 송년의 밤 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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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18시부터 프랑스한인회(회장 이상무) 2017 송년의 밤 및 정기총회가 <응답하라> 라는 주제로, 파리 15구 구청 1층 축제실에서 있었다. 18시부터는 2017년 한해 동안 한인회가 한 행사 및 회계 감사보고, 그리고 2018년 계획 발표가 있었고, 2부 순서로 풍물팀 온터의 공연 및 뮤지컬 배우, 박건형의 무대, 재즈 밴드인‘swinginparis’의 연주가 있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애국자 제창으로 정기총회가 시작되었다. 이상무 프랑스 한인회 회장은 2017년을 돌아보며 교민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정기총회를 파리 15구 구청에서 열게된 것에 파리 15구 구청과 관계자들에게 또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먼저 이상무 회장은 2017년에 있었던 한인회 행사들을 영상을 통해서 설명했다 : 어르신들을위한 떡국잔치, 재불 단체장들과 함께 한 신년하례식, 삼일절기념행사,차세대멘토링대회, 체육대회, 노르망디2차 세계대전 전적지 방문, 전국노래자랑 프랑스예선전, 코리안페스티벌, 김치페스티벌, 무료한방진료서비스, 그리고 2917 FLC EMEA REUNION & 유럽 한인 차세대 대회.

이상무 회장은 11월에 있었던 무료한방진료 서비스의 미담 사례를 소개했다 : 당시 진료를 받았던 한 유학생은 상당히 호전되어 진찰을 받았던 선생님께 같은 약을 조제를 해달라고 해서 현재 한국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약을 받아 학생에게 보내어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무 회장은 올 한해 프랑스 한인회가 할수 있었던 최선의 행사들을 해온 것 같다고 했다. 특히 2회 코리안페스트벌, 김치페스티벌, 멀리 말메종에서 해왔던 체육대회를 파리 15구에서 했었고, 파리 15구와 좋은 관계를 가지면서 송년의 밤과 정기총회를 할수 있는 장소를 무료로 제공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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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프랑스 한인회 사업계획을 발표 중인 이상무 회장

이어 임영리 감사의 회계 보고가 있었다. 총 수입 96696.87유로에서 지출 86996.28유로로 잔액 9700.59유로라고 발표하면서, 집행액이 십만 유로에 가까와오니 회계감사도 전문인으로 뽑아야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올 한해 한인회에서 주최한 11개 행사에 대한 회계 내용을 영상을 통해 설명했다. 외부 후원은 국가보훈처, 재외동포재단,외교부, mbc 그외에 몽쥬약국, 라발레빌라쥬, 한불상공회의소, 재향군인회 등이 있었다. 이후 김동락 감사가 한인회가 집행액이 거의 십만유로의 시대를 열었다고 하면서, 이는 어르신과 각 기관 단체들이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어진 질문시간에서 김현주 전 한인회 회장은, 한인회에서 한국에서 열리는 전국체전과 한민족 축전에 이곳 한인 차세대들과 한인 어른들을 참가시키는 것을 제안했다.


2018년 한인회 사업 계획 발표

이상무 회장은 2018년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2018년은 한인회가 오십주년이 되는 해임을 상기하면서,  4가지 사업을 중점적으로 할 것이라고 했다. 먼저 삼일절 기념 행사는 내년에는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했고, 두번째는 프랑스한인회 오십주년 기념 코리안 페스티벌을 928일 전야제를 하고, 29일 본행사를 할 것이며, 세번째는 mbc와 함께 하는 김치행사, 그리고 차세대 사업으로는 멘토링 대회를 할 것이라고 했다.

정기총회를 마치고 2부 순서로 송년의 밤 행사가 이어졌다.

먼저 온터공연이 있었다. ‘온터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젊은 예술인들이 모인 단체로서 한민족 가락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박진감 넘치는 사물놀이 가락과 몸짓으로 한국의 미를 전파하고 있다. 이어 뮤지컬 배우, 박건형의 무대가 있었으며, 재즈 밴드인 ‘swinginparis’ 의 공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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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한인회 2017 송년의 밤 행사에서

이날 한인 및 프랑스인들 100여명이 참석하여 한해를 보내는 송년의 밤에 함께 했으며, 재즈 가락에 맞추어 흥겹게 어우러져 춤을 추기도 했다.     

행운권 추첨이 있었는데, 상품은 한인회에서 제공하는 한국 배 1박스씩 10박스, 유로마트에서 안성탕면 1박스씩 10박스, 청솔회에서 김포쌀 9킬로짜리 10포대, 에이스마트에서 30유로 상품권 10, silk&spice에서 2인 식사초대권, EPS여행사에서 서울-파리 왕복 항공권 1, 대한 항공에서 서울-파리 왕복 항공권 1매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여성준 대리대사의 인삿말이 있었다. 여성준 대리대사는 지난 9월부터 예상치 않게 대사대리를 하게 되어 부담이 컸었는데, 그런데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배려해주셔서 큰 탈없이 잘 넘어갈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 이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이상무 회장님과 한인회 관계자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는 또 해마다 이때쯤되면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하는 시간인데,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어려운 일이 있었고, 불편했던 관계도 있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이 송년의 자리에서 혹시 섭섭하고 불편했던 관계가 있으면 훌훌 털어버리고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함께 기원해 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모든 가정에 행복과 웃음이 가득한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파리지성>

 
- 삶에 대한 태도와 원칙은 무엇입니까?

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직, 성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단어로만 봤을 때 얼핏 구태의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세 가지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개인적인 가치관들이 CEO로서의 행동기준과 경영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가치관은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 속에도 녹아 들어 있습니다. 즉, 정직은 고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에, 성실은 세 가지 핵심가치 모두에, 공부하는 자세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뿌리로 해 제게는 또한 ‘삶의 원칙’과 ‘판단 기준’이라는 현실적 줄기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중심을 잡아줄 삶의 원칙은 내 자신에게만 적용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용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이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삶의 원칙’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아요.

첫째,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둘째, 높은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셋째,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넷째,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외부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섯째, 항상 자신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며, 조그만 성공에 만족하지 않으며, 방심을 경계한다.
여섯째, 기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곱째, 천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키고자 하는 삶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나이, 성별, 학벌 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둘째,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셋째, ‘너는 누구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끼리 비교하지 않는다.
넷째, 다른 사람을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지 않는다.
다섯째, 내 스타일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삶의 원칙 못지않게 ‘판단 기준’ 또한 그 사람의 삶에 있어 무척 중요하죠. 판단기준에 의해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러한 선택들 하나하나가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요. 어떤 판단을 해야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으로 결정을 합니다.

첫째 기준은 원칙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매사가 순조롭고 편안할 때는 누구나 원칙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칙을 원칙이게 만드는 힘은 어려운 상황, 손해를 볼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지켜냄으로써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힘든 상황 하에서도 원칙을 지켜간다면, 언젠가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기준은 본질에 충실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사안에 대해 여러 가지 선택이 주어질 경우가 있는데, 본질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은 제외하고 본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들만 고려해서 판단을 내린다면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돈, 명예, 주위의 평판 등은 본질이라기보다는 열심히 노력한 후에 얻을 수 있는 결과이기 때문에, 판단을 할 때 고려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에 해당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고려해야 할 점들이 훨씬 단순해져서 올바른 판단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죠.

제가 판단기준으로 삼는 셋째 기준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이익이나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당장에는 작은 이익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의 순간적인 이익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옳은 쪽으로 판단하고 차근차근 일을 진척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결국 참된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어요. 성공이라는 것의 본질 자체가 단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처음 회사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변함없이 제 자신, 개인보다 전체 조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자체가 사람들이 모인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조직의 크기와 상관없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생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단언하건대, 전체가 잘될 수 있다면 나는 개인적인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로만 이야기하기 보다는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준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한 행동들 중에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놀라운 선택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모든 선택들은 나 나름대로의 기준에서 우리 모두가 잘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죠. 그런 마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제 인생의 성공의 정의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Make a difference’하고 싶네요. 내가 죽고 나서도, 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것이 이 세상에 남았으면 해요. 크로마뇽인의 벽화처럼, 이름이 남아있지도 않고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나 제도, 책, 조직처럼 누군가가 있었다는 흔적이 남기를 바라는 거죠.

영화 ‘스파이더맨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그는 파워를 원하진 않았지만 그걸 가지고 있으면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한 사람 두 사람, 소문 나서 사람들이 보고 있고 기대를 해 책임감도 생겼어요. 제가 원하지 않는 책임감이지만 많은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해선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 젊은 시절 가장 열중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공부 양이 많았던 의대생이다보니 공부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시절에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이익들이 결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조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동시대에 산업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의 노력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인데, 당시 저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주어진 공부만 성실히 해내면 그러한 혜택들을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항상 빚진 마음이 들었고, 어떻게 하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가 받은 혜택의 일부라도 돌려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 고민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구로동 공단이나 무의촌 주변에서 무료 진료를 실시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이 나중에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생각의 기초가 된 것 같습니다.

- 젊은 날에 지녔던 초심을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살아가면서 내 스스로가 만든 삶의 원칙들을 100% 지켜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늘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 제 판단 기준 첫 번째는 ‘원칙을 지킨다’ 입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도 많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원칙이 더 필요한 순간이죠. 힘든 상황, 손해 볼 것이 뻔한 상황 하에서도 원칙을 지켜간다면, 그것이 언젠가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처음 백신을 개발한 후 의대 교수로서, 군의관으로서 일하며 틈틈이 시간을 쪼개 백신 개발을 계속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에 컴퓨터와 의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되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거듭된 고민을 해결해 줄 실마리는 ‘내가 이때까지 살아왔던 삶은 남이 보기 좋은 삶이었다’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풀렸습니다. 서울대 의대 졸업, 20대 의학 박사, 20대 의대 교수로 이어지던 순탄한 과정은 남이 보기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컴퓨터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자부심, 보람, 사명감, 성취감 등을 주지는 못했죠. 살아온 시간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시점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해 나갈 일이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14년간 공부해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던 의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죠. 많은 고민을 했지만

-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죠. MBA과정을 40대 중반에 밟게 됐는데 편하게 청강생이나 연구원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7년 동안 공부를 했지만 마음 편하게 하는 공부는 남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거쳐 학위과정을 선택했어요. 과제, 프로젝트, 시험 등 고생을 하며 공부할 때가 남는 것이 많기 때문이었죠.

‘No pain, no gain’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입니다. 공부할 때 편하다고 생각하면 나에게는 위험신호에요. 회사경영만 10년 해서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떤 부분은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경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었죠.

- 본인에게 부모님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씀을 많이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신문에 난 적이 있는데 신문배달 하는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료진료를 해주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올해 여든이신 데 환자 볼 때 말고는 계속 책만 읽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님께선 50대 중반의 나이에 가정전문의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하기도 하셨죠. 제가 뒤늦게 공부하러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싶어요.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늘 존댓말을 쓰셨어요. 고등학교 때, 급한 일로 택시를 타게 되어 어머니가 택시를 잡아주셨는데 차가 떠나자마자 기사가 내게 물었어요. “형수님이신가요?” 제가 어머니라고 대답하자 그는 깜짝 놀라면서 “학생은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으니 나중에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잘 모셔야 한다.”고 했어요. 늘 듣던 말이라서 그랬는지 그날도 “다녀오세요.” 하는 말에 그냥 “예” 하고 대답했던 것인데 택시기사가 그 점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것이었죠. 그런 영향으로 군 대위로 복무하던 시절에는 하급자들에게 반말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배려는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배려의 모습은 이렇게 부모님께 배운 것들이죠.

저는 어릴 적부터 기계나 전자 부품 만지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적성만 생각하면 공대에 가는 것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제 스스로 의과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모님이 내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말씀은 안 하시지만 의대 진학을 바라신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어요. 부모님께서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 인생에서 돈이란 무엇입니까?

정보보안 분야는 특히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철학적으로 무장하지 않고 단순히 돈벌이로만 접근하면 사회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안 문제는 누가 책임지고 대응할 수 있는지, 그런 조직이 있는지가 근본적인 질문이 돼야 합니다. 지난 1999년 CIH 바이러스 사태, 2003년 인터넷 대란, 2009년 디도스 공격 때 안철수연구소가 자체 인력을 투입해 혼란을 막은 바 있죠. 외국에서 엔진만 갖고 와서, 또는 돈벌이만 생각하고는 그 같은 일을 제대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젊은 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의대 본과 일 학년 과정이 끝난 겨울 방학 때에 저는 부산에 내려가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실컷 놀았습니다. 정처없이 기차를 타고 낙동강 변의 아무 역에나 내려 낚시를 하기도 하고 바둑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부산에서 길지 않은 겨울 방학을 보내고 서울에 올라가야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잘 참고 있었는데 불쑥 그런 감정이 치솟아 오른 것이죠. 도저히 서울로 갈 마음이 나질 않았습니다.

의대생들에게는 성적이 평생 지고 다닐 멍에가 됩니다. 레지던트 시험에도 학부 때의 성적이 그 중요한 지표가 돼죠. 반에서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야 자기가 원하는 과를 갈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과도 같은 처지인 것이죠.

말하기로는 십등 안에는 들어야 자기 원하는 과를 선택할 수 있다고들 했어요. 그 등수 안에 들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성적을 따야 했기에 걱정이 되어 겨울 방학 끝나기 일주일 전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미리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숙을 하던 방에 발을 디딘 순간 혼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데 늪에 빠지는 듯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제 주위에는 친구도 없어서 고민을 털어놓고 말할 사람도 없었어요. 더구나 부모님들은 멀리 계셨으므로 내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모르실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답답해져 왔습니다. ‘성적이 잘 나온 걸 보고 서울 생활에 잘 견디고 있는 줄로만 아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부모와 자식 간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그때가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점점 정처를 모르고 떠돌아 다녔어요. 방황이란 말이 처음으로 실감되었는데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든 솔직한 심정으로는 학교에 다니기 싫었습니다. 어쩔 줄 몰라 쩔쩔 매다가 어머니께 장거리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는 울면서 말했어요. “어머니, 공부가 너무 힘이 듭니다.”

깜짝 놀라신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셨습니다. 그날로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셨어요.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저는 계속 울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주셨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눈물부터 먼저 나왔어요.

아버지께서는 걱정스런 마음에 저를 잘 아는 정신과 의사한테 보내셨어요. 그 의사 선생님께 제 이야기를 털어놓았죠. 그러나 결국은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의 고민과는 거리가 있는 조언이었죠.

선생님은 의과대학 공부만 하다 보니 시야가 너무 좁아져서 그러는 것이니까 이제는 서클에도 들고 친구도 사귀고 놀러도 다니고 그래 보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그 길은 바로 성적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성적이 떨어지게 돼 있는데 어떻게 그 길을 택할 수 있겠어요?

부산에서 며칠을 보내고 마음을 달랜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하며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의과대학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스스로의 구속과 기대를 어느 정도 풀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 첫사랑이란?

의과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들어갔던 서클에서 내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들어간 지 일년쯤 되어 지금의 아내가 된 한 여학생을 만났던 것이죠.

의과대학생들은 흔히 본과 이 학년 때 서클엘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본과 일 학년 올라갈 때는 전투를 치르는 심정으로 또는 수도자처럼 모든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 결심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돼요. 그렇게 긴장하며 살다가 일 년쯤 시간이 흐르면 대개는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됩니다. 거기서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포자기나 낙오를 의미하구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흔히 성적이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깊은 고민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심하면 휴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상 정도의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더 잘하고는 싶은데 몸은 따라가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그 여학생도 그런 적응 기간이 끝나갈 무렵인 본과 이 학년 올라갈 때 서클에 들어왔습니다. 카톨릭 신자였으므로 자연스럽게 그 서클엘 들어오게 된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학생보다 한 학년이 높아서 삼 학년이 되었을 때였어요.

아내에겐 이미 고백한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그 여학생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여학생도 나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하더군요.

진료 서클이었으므로 그 활동 내용을 놓고 우리끼리 세미나를 자주 열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가 있다고 치고 그 환자를 어떻게 진단하고 처치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공부해 두는 것이죠. 그런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여학생은 무척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 진료를 가기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나와서 커피를 뽑아들고 혼자서 한잔 하려는데 저만치에 그 여학생이 보였습니다. 친구들과 따로 떨어져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서 말을 걸었어요. 가만히 보면 그 여학생은 늘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내 눈길을 더 끌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누구 못지 않은 나였지만 본과 이 학년 올라가서부터는 노선을 바꿔서 남들하고 많이 어울려 다니려고 노력하던 중이었으므로 그 여학생은 아마도 나의 본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때 나를 본 사람들은 내가 무척 활동적인 사람인 줄 알았을 거에요. 그러나 혼자 있기 좋아하는 제 본성이 어디가겠어요. 우리 두 사람은 척 보기에도 무척 닮은꼴이었어요.

같은 서클 후배였으므로 부담없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살아온 과정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도 비슷했어요. 공부하다 잠깐 쉬러 나왔던 것이 그냥 세 시간 동안 정신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고 말았어요. 도서관 앞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더구나 우리는 일 초가 아쉬운 의과대학생들이었는데도 말이죠. 하는 수 없이 다음 날을 기약했습니다. 그 뒤로도 거의 매일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던지 만나면 이야기가 끊어질 줄을 몰랐어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죠. 그러다가 그 여학생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내 눈에는 남자도 들어오기 힘든 서울 의대에 여자가 들어와서 배겨내는 것이 장하게만 보였어요.

알고 나서 봐도 두 사람은 무척 닮은꼴이었습니다. 의과대학 다니면서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것부터 시작해서 혼자서 책읽기를 좋아하며 자란 것이 우선 비슷했습니다.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해서였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참 편한 데이트 상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생들은 일상 대화에도 의학용어가 섞인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동기들과 만나 이야기할 때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수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들이 불쑥 나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컴퓨터 쪽 사람들을 만날 때는 의도적으로 의학용어를 쓰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 여학생을 만나서는 공통 화제도 많은 데다 서로 사용하는 의학용어를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아주 편했어요. 가족들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렵게 설명할 필요없이 말이 척척 통하곤 했죠.

의과대학교 삼 학년때는 학기제가 아닌 학년제로 학점을 주기 때문에 일년 걸 몰아서 두 달 동안 시험을 다 봅니다. 장거리 경주라서 시험 하나 끝나도 쉴 틈이 없이 곧바로 다른 과목 공부를 해야 하므로 정말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할 수 있어요. 저야 그 고비를 어떻게든 넘겼지만 그 여학생이 겪을 때에는 너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힘들게 레지던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보고도 크게 도와줄 수 없어 미안했죠. 레지던트 때에는 이미 우리가 혼인을 하고 아이까지 있었던 때라 아내에게는 무리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그 지독한 과정을 무사히 다 끝내고 나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아내는 아주 사람이 달라 보였습니다. 제가 학교 생활에 잘 견디는 체질인데 반해 아내는 사회 생활 체질이었다. 늠름하게 직장을 다니며 어느 자리에서건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는 아내를 보면서 저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뜻밖이라 놀라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만 자라서 그런지 공부밖에 할 줄 몰랐던 저는 특히 대인 관계에서는 아내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가장 바꾸고 싶은 순간은 언제입니까?

후회는 하지 않는 편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님을 바라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 아버님처럼 백발이 성성하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니 오히려 의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산다면 그 이후에 할 일이 정해진다는 신념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독일의 유명한 문호 마틴 발저의 말처럼,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고 ‘무엇’인가가 되는 데 가장 유익한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사람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이 많습니다. CEO로서 롤 모델 중 한 분은 인텔사의 전 CEO였던 앤디 그로브였습니다.

또한 교수로서 롤 모델 중 한 분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랜 로디쉬 교수입니다. 그는 현업에서 학생들의 창업을 도와준 케이스가 몇 백 건이나 될 정도며, 마케팅 분야에서 학문적으로도 유명한 분이죠. 학생들이 제시하는 사업계획이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도전해보라며 격려하고 창업자금을 직접 투자하기도 하는 등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 또는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일본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의 한 구절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 상을 받은 바 있는 저명한 학자입니다. 그 책을 보면 한 평범한 사람이 노력을 거듭한 끝에 원래 천재였던 사람보다 더 빛나는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그 책은 제 정신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책의 내용에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에는 저의 갈 길을 한 줄기 빛이 인도하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후 남보다 더 노력하고자 했습니다. 항상 노력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과거에는 한 사람의 천재가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을 갖춰야 합니다. 자기 분야만 알고 다른 분야 사람과는 협조도 이해도 안 된다면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는 사람이죠.








-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현대 사회는 10년 후를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인기 있었던 직업도 현재에는 다른 직업이 각광받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 여섯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자신에게는 엄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하기 쉬운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태도가 많은 사람들이 발전 없이 제자리에만 머무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내적인 능력과의 비교가 아닌, 외적인 모습만의 비교는 삶을 불행하게 할 뿐입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많죠. 말 잘 하는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 그리고 지위가 높은 사람, 이렇게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일종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내적인 능력과 비교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에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결과로 나타나는 외적인 부분들만 가지고 비교를 한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주변 사람들의 외적인 모습과 비교하는 것은 불행한 삶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라’입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사물과 현상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즐거울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밝게 만듭니다. 반면에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나 주변 상황에 대해서 불평하고 절망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조직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외부적인 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그 환경을 탓하고 불평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주어진 일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다보면, 결국 자기 인생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죠. 따라서 부정적이고 방어적으로 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바꾸거나 환경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삶이 가치 있는 삶입니다.

넷째는 ‘매순간을 열심히 살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매 순간 어려움에 닥쳤을 때,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바로 지금이, 내 한계를 시험하는 순간이라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쉽게 포기해버린다면 바로 거기가 자신의 인생에서 평생 다시는 넘지 못할 한계가 되는 것이죠. 매 순간이 자신의 한계를 만들어가는 때라는 것을 명심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다섯째, ‘미래의 계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30대, 40대, 50대, 60대의 모습을 스스로 그려보세요.
‘계획 없는 삶은 꿈이 없는 삶이고, 꿈이 없는 삶은 불행한 삶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꿈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활력을 주고 발전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꿈이 가지는 의미에요. 그리고 만약 노력 끝에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여섯째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삶의 철학, 즉 원칙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원칙을 정하는 것이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그 삶 속에서, 행동에서 일관성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관성을 인식하는 것이죠.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무게중심이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실천해 나가면서 수정하고 보강해나가면 되기 때문이죠. 반면에 그런 원칙조차 없다면 삶을 살아가는 동안 흔들리고 우왕좌왕하다가 좌절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보통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크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종교에는 나름대로의 가이드라인, 원칙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경영하는 CEO로서 인생의 원칙을 하나하나 정립하고 만들어간다면 그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들 수는 있더라도 결코 불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귀여운 효마스 그래서 그 사람이 스스로 만족하고 팀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야 조직이 잘 굴러간다. 귀여운 효마스 음악은 인류가 이해할 수 없는 더 높은 인식의 세계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영적인 출입구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몇번이나 하고 리어카를 끌고 어데론가 바쁘게 가시는 허리굽은 그 할머니의 뒷모습... 귀여운 효마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누구나 사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최고인 똑순이 누나, 나의 누이야! "나는 말주변이 없어"하는 말은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둔한 사람이다"하는 소리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귀여운 효마스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귀여운 효마스 사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결과물보다 너의 '상상'이다. 귀여운 효마스 아파트 주변에도 이름 모를 새들이 조석으로 찾아와 조잘댄다. 귀여운 효마스 코끼리가 역경에 처했을 때는 개구리조차도 코끼리를 걷어 차 버리려 한다. 귀여운 효마스 리더는 자기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자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귀여운 효마스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때,최선의 정성을 다하여 마치 나의 일처럼 돌봐 주는 일. 귀여운 효마스 네 꿈은 반드시 네 꿈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꿈이 네 것이 될 수는 없어. 귀여운 효마스 열망이야말로 어떤 운동 선수의 성공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들은 한번의 실패로 포기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은 실패를 포기의 이유로 보지 않는다. 화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 인생의 많은 문을 닫히게 한다. 귀여운 효마스 단순한 선함이 아니라 목적있는 선함을 가져라. 귀여운 효마스 이사람은 마침내 전세계의 생활 패턴을 바꾼 희대의 걸작물을 탄생시킨 스티브 잡스 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항상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젊은 유대인 부부가 아이를 낳자마자 업둥이를 하였습니다. 귀여운 효마스 그 이후 그는 내면적 자아로 부터 해방 되었습니다. 귀여운 효마스 달리기를 한 후 샤워를 끝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귀여운 효마스 내겐........친구들이 곁에있다...아주 소중하고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사람들은 연인끼리,가족끼리만 사랑하는줄안다... 귀여운 효마스 훌륭한 위인들의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귀여운 효마스 이 생의 길에서 너를 만난 인연을 감사하며 기도한다. 귀여운 효마스 거절하기로 결단하라. 너무 많은 일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도록 하라. 귀여운 효마스 개는 돌을 던진 사람이 아니라, 돌에게 화를 낸다. 귀여운 효마스 자녀 때문에 화가 날수 있다. 속터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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