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비움을 통한 하나됨', 그리고 '떨림' 모준석 작가 -신인작가소개- HIT: 546
작성자 : 관리자 
2017.06.21 (23:11)


                                                                         <신인 작가를 소개합니다>

                                 '자기 비움을 통한 하나 됨’ 그리고 ‘떨림’ 모준석 작가

본지는 지난 1월부터 <신인작가를 소개합니다> 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주기적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신인 작가들을 집중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주는 여덟번 순서로 ‘자기 비움을 통한 하나 됨’ 그리고 ‘떨림’ 모준석 작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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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떼 오픈 스튜디오에서 모준석 작가                (사진: 황채영)

 

재불 청년 작가 모준석은 국민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2009년 충무 아트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화단에 등장했다. 그 후 수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다 2014년 아내와 함께 도불, 올해 1월부터 5월 까지 파리 국제예술공동체(La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이하 시떼)의 입주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는 7 6일부터 8 15일 까지 열리는 파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는 한국사회와 프랑스 사회, 더 나아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인  “타자와의 평화로운 공존은 과연 가능한가 ?” 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가이다. 동선을 이어 붙여 만든 건축 구조물 형태의 그의 작업은, 뼈대 위에 살을 덧붙여가는 일반적인 소조의 기법과는 반대로, 오히려 덜어내고 비워가는 과정이다. ‘비워내는’ 과정은 위의 문제의식에 대한 작가의 답이기도 하다. 먼저 점토로 만든 덩어리에서 형태를 이루는 선들만 추출해 스케치한 후, 동선(銅線)을 망치로 단조(鍛造)하고 절단해서 용접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혹은 여러 개의 건물들이 중첩된 것 처럼 보이는 건축 구조물 형태에 다양한 색깔의 색유리를 잘라 중간중간(마치 창문처럼) 배치시킨다.

지난 2, 시떼에서 모준석 작가를 만나 작업과정과 완성작을 직접 보고, 그의 작업세계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6 16일 작가를 다시 만나, 새로운 작업, 그리고 7월에 있을 파리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지면을 통해 불을 통과한 금속을 두드리고 자르고 이어붙이는 장면을 실감나게 담아내기는 어렵겠지만, 어려운 주제에 대해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젊은 작가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현장을 파리지성 독자들께 전달하고자 한다.

제일 먼저,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궁금합니다.

-저의 작업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공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공존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함께 하는 것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아우르는 것이고요. 본격적으로 지금의 주제와 형식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석사과정 재학 시절부터였는데요, 석사 논문의 주제가 ‘자기 비움(self-emptying)을 통한 하나 됨’이에요. , 자기 자신을 비움으로써, 그러니까 내려놓음으로써 타자와의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위의 질문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답이라고 할 수 있구요.

‘타자’는 제 작업에서 가장 중심적인 단어입니다. 동일자()와 타자()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던 철학자들, 이를테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를 많이 참고했어요. 사르트르는 ‘타자는 지옥 lenfer cest les autres’ 이라고 말했죠. 타자로 인해 나의 행동이 제한되고 우리는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여 마치 감옥처럼 갇힌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말이에요. 반면에 레비나스는 타자는 나를 완성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타자의 얼굴은 우리에게 내재된 배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그들을 돕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요. 저의 생각은 사르트르보다는 레비나스의 타자 이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가 동일자에 비해 더 큰 무게를 차지한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레비나스와 다르게 이러한 비균형을 넘어 완전한 일치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저는 타자와 동일자가 서로 상호보완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그 가치와 중요도로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주제는 ‘자기 비움을 통한 하나 됨.’ 그럼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일단 재료에 대한 질문인데요, 동선을 주재료로 사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학교에서 굉장히 다양한 재료들을 다루었어요. 고전적인 재료들부터 새로운 것들까지. 그 중에서도 금속 재료들, 이를 테면 철, 스테인레스 스틸, 황동 등을 사용해 보다가 정착한 것이 동선이에요. 동선은 저의 주제의식인 결합, 연결에 가장 걸맞는 재료에요. 스테인레스 스틸이나 철보다는 약하면서 부드럽기 때문에 두드리고 자르고 용접하기에 용이하거든요.

 

결합과 연결. 재료 선택과 제작 방법, 즉 제작 과정 자체가 주제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 두드리고 자르고 연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원래는 두드리지 않은 원형의 강철선을 사용했었어요. 강철선을 자르고 용접으로 연결해서. 그런데 직선형태의 재료이다 보니, 각도가 약간만 틀어져도 너무 두드러져 보이고 거기서 오는 불협화음, 그리고  지나친 반듯함에서 답답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우연한 계기로 선을 두드려서 써 보니 부드럽고 유연한 선의 표현이 가능하더라구요. 마치 공간에 뎃생을 하는 것 같은 자유로움이 좋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철 보다는 무른 동선을 쓰게 됐어요.

그리고 용접은 접합하는 순간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했어요. 같은 동이라도 주물을 뜨는 경우는, 중간에 여러 과정을 거치다 보면 시간도 오래걸리고 원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바로바로 결과물을 보고 싶은 급한 성격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선을 두드리고 자른 후 용접으로 연결 시키는 과정이 저의 주제 의식과 잘 맞아요. 서로 다른 성격과 환경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서 소통하고 화합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죠. 불에 달궈지고 두드려 맞고 하나가 되기 위해 끝과 끝을 녹여 접합(接合) 하는 것이 꼭 닮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작업은 주제와 형식의 일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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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하나됨’을 주제로 작업 했던 한국 시절 작품. 한몸, 2010,            무너지는 기초, 2017, 동선, 스테인드글라스, 72×58×44cm (사진: 황채영)
             동선, 스테인드글라스, 183×110×116cm (사진: 정진우)                              


 

주제와 형식의 일치. 그렇다면, 그 결과물인 완성작의 형태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형태만 봐서는 골조 단계의 건축 구조물 같은데요.

-벽이 없는 건축 구조물 형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에 대한 은유에요. 유년시절의 경험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릴 때 아버지가 건축 관련 일을 하셨어요. 그래서 건설현장이라든지 모델 하우스 같은 곳을 많이 따라 다녔죠. 그리고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그때 주로 살았던 곳이 소위 ‘달동네’라고 하는 산비탈에 작은 판자집들이 따개비같이 모여 있는 동네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간과 집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건물은 사람과 사람을 분리하는 공간이죠. 하지만 저는 좁은 공간을 가족들과 나눠 쓰던 경험 때문에 집을 분리가 아닌 결합과 소통의 공간으로 여기게 됐어요. 대학 시절 기숙사 생활이나 군대 내무반의 경험이 더욱더 그러한 생각을 강화시켰구요. 벽도 구획도 없이 타인과 경계없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이요.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타자는 나와 생활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요. 기숙사와 군대 생활 5년을 통해 그 정의를 몸소 체험했어요. ‘타자’와의 갈등 없는 공존을 위해 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해야만 했고, 그 노력을 꾸준히 했어요. 면이 아닌 선을 사용하는 이유가 그것이에요. 경계와 구분을 의미하는 벽이 없는 공간, 자타의 구분이 없이 열려있고 비어있는 공간을 통해, 다시 한번 자기 비움을 통한 타자와의 화합을 추구하는 거에요.

 

안과 밖, 공간과 공간 사이에 경계가 없는 형태를 통한 소통과 화합의 은유. 그렇다면 중간중간 창문처럼 배치된 색유리들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벽이 없는 건물처럼 투명한 유리도 역시 ‘연결’을 상징하는 것 같은데요.

-스테인드글라스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대학교 3학년 때 유럽에 배낭 여행을 왔을 때에요. 유럽의 대부분의 도시에 있는 중세 교회들의 장미창을 통해 외부의 빛이 내부에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구현되는 것이 경이로웠어요. 그리고 어두운 밤에 길을 걷다가 불켜진 창문들을 보면서,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제게 색유리는 안과 밖을 투명하게 연결하는 창문이면서, 사람의 존재를 은유하는 소재에요. 그리고 색유리의 다양한 색깔은 각양각색의 개성을 상징해요. 건물이 사람이라면 색유리는 그 사람의 개성을 의미하는 거죠. 물론 투명한 유리를 통해 경계 없는 소통과 연결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도 하구요.

, 색유리의 다양한 색은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간의 대화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에요. 공존과 화합이라는 것은 대화를 통해 각자의 개성은 잃지 않으면서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소재와 제작방법, 그리고 형태가 소통과 공존을 가리키고 있네요. 타지에 살게 되면서 더욱 더 그에 대한 사유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은데요,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을 떠나오며 공간이나 도구 등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오랫동안 작업을 멈추었었어요. 2014년 가을에 왔으니 2년 넘게 휴업 상태였죠. 그러다가 작년 여름 잠시 작업 할 공간이 생기면서, 파리에서 느낀 언어 문제로 겪는 소통 불가능,  삶에서 느끼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들을 ‘벽’이라고 상정하고, 한 면이 절단한 것처럼 뚝 떨어지는 형태로 작업 했어요. 그 후 조금씩 프랑스어를 습득하고 또 언어 이상의 소통들을 경험하면서, 다시 이상적인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죠.

세월호 사건을 뒤로 하고 한국을 떠나왔고, 파리에는 크고 작은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라, 공동체, 공존, 화합 등 저의 주제의식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회의를 느끼는 시간이었어요.  프랑스에 오기 전 저의 작업들이 완결된 형태를 통한 이상적인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다면, 바로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쟁들, 그러니까 테러, 난민 문제, 우리나라에서의 정부와 국민의 대립 등을 겪으면서 ‘이상적인 공동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분쟁의 한복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타국에서 고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형성되었구요. 그래서 지금 진행하는 작업들은 이전의 안정적이고 완성된 형태에서 벗어나, 무너지고 뒤틀리고 흔들리고 끊어진 부분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떼에서의 5개월 동안 총 6점의 작품을 완성했는데요, 모두 이와 관련된 주제로 작업을 했어요. 완성된 형태를 포기하고, 어느 한 부분이 무너져 있거나 흔들리거나 혹은 무언가에 의해 관통된 형태를 담고 있어요. 우연찮게도 제가 시떼에 머무는 동안 우리나라에 촛불, 탄핵, 대선이라는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었어요. 이미 ‘무너진 공동체’에 대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 사건들을 목격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기도 했구요. 그러니까 제가 표현하는 ‘무너짐’은 파괴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시작을 전제로 하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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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물어진 완전함, 2017, 동선, 스테인드글라스, 85×52×53cm (사진: 황채영)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예레미야 1:10-

이 성경구절에서 말하는 것 처럼, 재건하기 위한 무너뜨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무너뜨리고 고통스럽지만 다시 세우는 과정을 형상화 하고 싶었어요. 불편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고 분노하고 무너뜨리고 폐허 속에서 다시 세우는 것이요.

감당하기 어려운 대립과 분쟁을 목격한 이상, 자타가 화합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던 과거와 같은 수는 없겠네요. 지난 2월에 시떼에서 만났을 때 개인전을 여는 것이 첫 목표라고 하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곧 있을 파리에서의 첫 개인전에 대해 알려주세요.

-지난 5월 말, 시떼에서 나왔어요. 이제 다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찾아 공간을 확보해서,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새로운 작업에 대한 스스로의 사유가 정리되었고, 목표했던 만큼 작품을 완성했더니 개인전의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시 제목은 « 떨림 Palpitations » 입니다. Palpitation’은 흔들림, 요동 같은 물리적인 떨림과 설레임, 감동 같은 감정적인 떨림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에요.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해 어떤 떨림이 제게 다가왔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작품 한 점, 작년 여름에 완성한 세 점, 그리고 시떼에서 새로 만든 작품 여섯 점, 총 열 점의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어요. 이 전시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파리에서 꾸준히 작업을 이어 가고 싶습니다.

타인과의 경계 없는 화합,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작가 모준석. 그의 작품은 동시대 사회를 바라보는 조형예술가로서의 고뇌와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7월에 있을 그의 파리 첫 개인전,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모준석 개인전  « 떨림 Palpitations »

2017 7 6 ~ 8 15, 갤러리 PARIS HORIZON

203 rue Saint-Martin, 75003, Paris (운영시간: ~13~20)

 오프닝 7 6일 저녁6~9

 + 33 (0) 9 54 82 70 96

contact@galerieparishorizon.com

모준석 작가 홈페이지

http://www.mojunseok.com

 

                                                                                   <파리지성 / 김은정 eunjeong.kim33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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