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얼굴, 권순철 HIT: 138
작성자 : 관리자 
2019.06.07 (22:18)


타자의 얼굴, 
권순철


십자가 2015.jpg
얼굴이라는 주제 외에도, 다양한 풍경화, 오브제, 추상화, 등을 함께 그린 지 오래되었음에도, 권순철 하면, 여전히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그의 <얼굴> 작업이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그리는 풍경, 오브제, 추상 작업도 마치 내 살덩이처럼 아프고 예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신체의 개념’처럼, 권순철의 ‘얼굴’이나 ‘신체(의 일부분 혹은 전체)’는 외부 세계의 일부분으로 의식보다 훨씬 큰 세계와 연계되어 있으며, 내부와 외부를 중재하고 있다. 즉, “내 존재와 세계 존재와의 동시적인 접촉”3)이 그의 작업에서 재현되고 있으며, 메를로-퐁티의 표현대로, “왼손[권순철의 그림에서는 ‘신체’의 일부]이 오른손[신체 외의 세계]을 만지는지 혹은 오른손이 왼손을 만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권순철의 캔버스에 가득 차게 그려진 <얼굴> 작품들은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영화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잘생기고 매끈한 얼굴이 전혀 아니다. 삶의 어려움과 노고가 그대로 담겨 있는 얼굴이다. 시간의 자취가 쌓인 듯한 두꺼운 마티에르, 초상화라기보다는 바윗덩어리나 벌거벗은 산이 표현된 듯한 무채색에 가까운 게 무겁디 무거운 표현[실제로 그의 팔레트와 캔버스를 보면 온갖 화려한 색이 다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전체적인 작업의 느낌 때문에, 화려한 원색의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등이 오히려 무채색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나이, 신분, 표정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 시골 장터에서 역 대합실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삶의 어려움을 하나도 비껴가지 않고 얼굴로 모두 담아낸 중년 혹은 노년의 초상이다. “삶과 세상에 지치고, 일상에 지치고 생로병사에 지친 얼굴은 그 피부만큼 거친 터치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삶의 고단함이 지층처럼 한 켜 한 켜 쌓여가듯 캔버스 상의 마티에르는 점점 더 두꺼워진다. 커다란 캔버스가 가득 차도록 크게 얼굴을 그리는데도, 그 인물의 삶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는지, 머리 일부가 화면 밖으로 밀려나 관람객의 상상에 맡기기도 한다. 짙은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애환과 삶이 그대로 그려진 얼굴이지만, 바로 이 얼굴들이 담아내는 온갖 삶의 지층과 이를 묵직하게 승화해 내는 아름다움이 있다.”4)
이러한 “얼굴들이 좀 더 심정적 추상적으로 재현되어 <넋> 시리즈가 되고, 얼굴이 좀 더 공간화(空間化) 되고 보편화되면서 <산>이나 ‘풍경’ 시리즈로 전개된다. 그래서, 권순철의 <얼굴> 작품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노라면, 그곳에서는 얼굴의 주인공이 삶을 나눈 자연, 대지, 산, 등이 보인다. 반대로 그의 <풍경> 연작이나 <넋> 연작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어려움을 어느 하나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다 받아내고 겪어내며 한 켜 한 켜 지층처럼 쌓인다”5). 때로는 이러한 감성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다가와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지긋이 바라보면, 거기에는 그 모든 것을 삭히고 극복한 승화된 얼굴과 삶에 대한 경외감이 드러난다. 이러한 느낌은 다른 주제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권순철이 그의 화업내내 신체에 구애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 존재라고 할 수 있는  ‘타자의 얼굴 혹은 신체’, 그 외부에 있다고 여겼던 세계는 사실 확장된 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메를로-퐁티의 말대로, ‘초월성의 깊은 움직임’이기 때문이다6). 나와 너,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안과 밖, 등이 권순철에게는 보이지 않는 큰 신체의 일부로 재현된다.
권순철은 대학 때부터 얼굴에 관심을 뒀으며, 골상 구조에 대한 해부학과 미학을 공부하여 「한국미술에 나타난 얼굴 형태에 관한 고찰」이라는 석사 논문을 집필하는 등 학문적인 연구도 하면서 동시에 이를 작품으로 표현해 왔다. 그가 그린 사람들만 모아도 족히 한 도시의 인구는 될 것이다. 이처럼 일찍부터 그는 보편적이며 획일적인 미(美)에 반대하여, 고유의 美를 탐구해 왔다. 그런데, “가장 고유한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역설적인 말이 그의 작업에 실현된다. 그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감정을 오히려 많은 사람이 절절하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풍토, 전통, 역사, 음식의 맛처럼, 각 민족의 얼굴 모양도 존재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철학적 眞理의 기준,  종교적 善의 기준, 예술적인 美의 기준이 절대화되면, 있는 그대로의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려우며, 더 나아가 신의 존재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자아 밖에 존재하는 사물, 타인, 神 등, 자기 외재성을 자기화하고 통합하는 자아 중심적 전체성의 독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타자의 얼굴”을 만나고 인정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얼굴과 같지 않은 나를 마주 보고 있는 ‘절대적 다름’인 ‘타자 얼굴의 받아들임’은 타자를 이성적 보편의 빛에 비추어서가 아니라 절대적 타자로 인정해 주는 존재로서의 존중이며, 내면의 닫힌 세계에서 ‘밖으로의 초월’[형이상학적인 아래에서 ‘위로의 초월’이 아니라]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타인의 얼굴을 수용하는 것은 자아의 초월 작용이다. 권순철 작가는 오랜 세월 꾸준하게 “타자의 얼굴”을 보여줌으로, 이성적 보편 판단의 美感이 아닌, ‘절대적 다름’의 味感을 통해 ‘자기 외재성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1989년 도불한 권순철 작가는, 1991년 한국 작가 수 명과 함께 파리 근교의 이씨레뮬리노 시에 있는 옛 탱크 정비공장을 개조하여 46개의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그리고 운영을 위해 다국적 작가로 구성된 ‘소나무 협회’(초대회장 권순철)를 창설했다. 이 협회는 국제적인 교류를 활성화하고, 이 지역의 공장지대를 예술구로 변화시키는 등, 이씨레뮬리노 시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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