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며…, 손 석 HIT: 152
작성자 : 관리자 
2019.06.07 (22:20)


기다리며…,
손 석 


IMG_2067.jpg
어두움 속에서 서서히 얼굴이 드러난다. 그 얼굴이 끝까지 드러나 명료해질까 싶어 한참을 어둠과 마주해 기다리고 있지만, 결국 얼굴은 다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아니라 그녀일지도 모른다. 가까이서  멀리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오가며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왠지 엄숙한 그림 앞에서 실례하는 것 같아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얼굴의 입꼬리가 언뜻 올라가는 듯 미소를 지은 것 같아, 다시 한번 그 미소를 찾지만, 자취조차 찾을 수 없다. 이번에는 반대로 왠지 슬픔이 배어 나오는 듯하여, 그 자취를 찾아보지만 역시 찾을 수 없다. 또다시 정적에 빠져들며, 결국 무념무상의 조용한 세계로 점점 침잠하는 나를 보게 된다. 하나의 작품이 이처럼 많은 감성의 폭을 선사하기는 드물다. 손석의 작업은 다양한 느낌을 선사하는데, 이는 실제로 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그의 작업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손석의 작업 제목은 늘 <attente>(기다림) 이다. 여러 가지 의미와 상징이 있겠지만, 우선 먼저 그의 작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하나의 작업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반복과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처음부터 다르다. 가장 기본적인 캔버스 자체부터 다른데, 그는 가운데가 다소 볼록한 굴곡이 있는 캔버스를 사용한다. 그 위에 주형 뜬 것을 붙이고 가로줄과  세로줄로 수백 개 이랑을 만든다. 아크릴 컬러로 그리면서 형체를 쌓아 올린다. 색점과 같은 물감을 입히고, 그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또 물감을 입히고, 이처럼 수천 번의 손작업에 의해 작품이 완성된다. 시간의 층을 쌓아 올리고, 인내와 기다림의 층을 겹겹이 포갠다. 작가가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르게 채색하기에 다른 형태와 다른 색이 나온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서 볼 때는 푸른 색조인데, 왼쪽에서 보면 붉은 색조가 드러나기도 한다. 눈으로 만지는 것 같은 릴리에프(부조)에 명암을 넣어 그림을 그리기에 오브제가 배경에서 떠오르며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실제보다 더 강하게 드러나는 이 입체감은 움직일 때마다 마치 관람객과 함께 스스로 방향을 바꾸는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지독한 아날로그가 디지털의 컨셉으로 도달한 것”이다. 아날로그가 스스로 그 극에 이르면서 현대적인 디지털로 전환한 신비한 현상이다. 
작업 방식이나 주제는 손석과  아주 다르지만, 이러한 옵티컬 현상을 공교롭게도 올해 초 두 개의 훌륭한 전시에서 볼 수 있었다. 모더니즘의 구호가 된 에즈라 파운드의 명구를 제목으로 인용한 ‘새롭게 하라’(Make it new, Bibliothèque Nationale François Mitterand,  2018.11.5-2019.2.10) 전시에, 프랑수아 모를레의 <2중의 검은 격자> (2 doubles trames noires)가 전시됐었다. 이 작업은 우선 검은 가로 선과 세로 선을 0°와  90°로 교차하게 그렸고, 이 격자무늬를 45°로 돌려서 다시 한번 그렸다. 이 위에 하얀 격자를 30°, 60°, 75°에서 세 번 겹쳐 그린다. 이렇게 생긴 기하학적 무늬는 검은 선이 하얀 선에 의해 적당히 지워지면서 시각적 혼란을 일으킨다. 때로는 원이 퍼져가는 것 같기도,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서 도형도 같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또 다른 하나는 현재 퐁피두 센터에서 개최되고 있는 옵아트(Op Art)의 아버지,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6-1997)의 거대 회고전에서 본 작업이다. 바자렐리는 원래는  자신의 작업을 ‘옵아트’가 아니라, “키네틱 탐구(recherche cinétique)라고 불렀으며, 키네티즘(cinétisme)은 움직임으로, 예술 내의 움직임(mouvement dans l’art)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미크로코슴과 마크로코슴, 양자역학과 천체물리학, 너무 작아서 알 수 없는 신비한 것으로부터  너무 커서 상상의 한계를 넘는 것까지, 그사이를 오가는 것이 바자렐리 미학의 영역임을 이 퐁피두 전시는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주었다. 바자렐리는 니콜라 쉐퍼(Nicolas Schöffer, 1912-1992)와 각별했다. 바자렐리는 ‘회화성’이 강한 키네틱 옵아트라면, 쉐퍼는 ‘설치’의 옵아트적 키네틱인 셈이다”7). 갑자기 옵아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옵아트는 미술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근사한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그 차원에서 발견되는 작가 중의 한 명이 손석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작업에서 그는 하나의 작업에서 ‘다양한 감성적 옵아트’를 보게 해 주고 있다. 많은 미술 관계자들이 바자렐리의 그림 형태와 비슷한 다른 작가의 작업 형태를 보면서 쉽게 ‘옵아트’라고 하는데, 옵아트의 가장 근본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연구된 바탕하에서 작업 자체 내에 움직임과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손석의 작업은 ‘구상’적이며 ‘형태’ 역시 바자렐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바자렐리가 진정 추구하고 했던 움직임과 그 움직임으로 인한 시각적 환영, 그것도 차원을 넘어서는 환영이 있기에 손석 작가의 작업의  오히려 다른 작가들보다 바자렐리의 미술철학과 닮았다고 본다.

| 전시기획 심은록(SIM Eunlog) |
회화를 확장하는 진유영 진유영은 예술 분야 최초의 한국 장학생으로 도불하여, ‘회화의 죽음 시..
관리자 
19.06.07 | 조회수:206
숯의 작가,  이 배 프랑스 파리를 기점으로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특히 미국), 등지로 활발한 ..
관리자 
19.06.07 | 조회수:190
기다리며…, 손 석  어두움 속에서 서서히 얼굴이 드러난다. 그 얼굴이 끝까지 드러나 명료해..
관리자 
19.06.07 | 조회수:153
타자의 얼굴,  권순철 얼굴이라는 주제 외에도, 다양한 풍경화, 오브제, 추상화, 등을 함께 그..
관리자 
19.06.07 | 조회수:138
빛의 화가,  방혜자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빛의 화가’로 불리는 방혜자의 작품이 프랑스 고..
관리자 
19.06.07 | 조회수:297
              사이버네틱 예술의 창시자 니꼴라 쉐페르 Nicol..
관리자 
16.07.20 | 조회수:3435
  진유영 작가는 1969년 서울 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후, 예술분야 최초의 국가 장학 생으로 도불 이후..
관리자 
14.11.27 | 조회수:2421
NO. 722 / 2014년 8월 13일(수) 'SALVE' 첫째는 미래에 대한 약속 '첫 번'이라는 뜻이 얼마나 귀..
관리자 
14.10.06 | 조회수:1769
 “성의 역사”에서 촉각과 미각을 예로 그리스 자유인들이 ‘자기 주체화’와 ‘자신 삶의 예술화’..
관리자 
14.09.16 | 조회수:1370
“우리 고유의 얼굴상과 체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우리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름다..
관리자 
14.09.16 | 조회수:950
 1 2 3 4 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