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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셑카봉 금지 사진.png

3 6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셀카봉이 베르사이유 궁에서 추방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며칠전부터 안전 요원들이 내부에서 셀카봉 사용을 금지 시키고 있다고 한다. 베르사이유에서 셀카봉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취한 조치라고 하는데, 이미 33일 미국 워싱톤에 있는 19개의 박물관을 총괄하는 기관(Smithsonian)에서는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액세서리 사용을 금지했다고 전했다.  
금지 이유는 많은 방문객들이 몰릴 경우에 작품과 방문객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미 기관은 셀카봉을 사진기 삼각대쯤으로 인식해 박물관 안밖 모두 금지시켰다.
최근에 미국 박물관들은 셀카봉 사용을 금지했는데, 로스엔젤레스의 제티  J. Paul Getty 박물관은 정원에서는 사용토록했다. 지난 여름 이래로 셀카봉 판매는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고 하면서, 파리는 아시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이유궁에 셀카봉 사용자가 많다고 했다.
셀카 봉은 2005년 캐나다인에 의해 만들어져서 제일 먼저 한국에 들어가 인기를 얻게 되었고, 2014년에 한국은 증가하는 셀카봉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베르사이유 궁은 80%가 외국인 방문자들이다. 다가올 시즌 예방책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 경우는 밖의 피라미드에서 셀카봉을 많이 사용한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삼각대나 플래쉬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은 셀카봉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퐁피두 센터도 현상을 인식하고 있지만 금지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오르세 박물관은 이같은 현상과 함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전까지는 사진을 찍을수 있었으나, 공사로 인해 안전과 방문의 흐름에 방해가 될까봐 금지시켰다.
셀카봉 금지는 지난 7월 프랑스 문화부에서 만든 <모두 사진사가 되자>는 헌장을 애매하게 만드는것이다. 문화부는 박물관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사진촬영의 즐거움을 주고,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SNS에 게재할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이는 셀카봉을 중심으로 유명 작품들을 다른 이들과 함께 감상할수 있게 했고, 그로인해 박물관을 찾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이 헌장이 발표되었을때 프랑스에서 셀카봉은 없었다.
지난 2월 뉴욕의 화이트 뮤지엄에서는 제프 쿤즈의 회고전이 있었다. 박물관측은 방문객들에게 <쿤즈는 셀카봉에는 최고>라는 메시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한편 워싱톤에 있는 박물관들은 « 셀카봉은 가방안에 두고 작품 사진을 많이 찍어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 »고 권했다.
르몽드는 이같은 셀카봉 사용 제한은 지금까지 박물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문객들의 열정에 제동을 걸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베르사유궁에는 셀카봉 금지를 알리는 픽토그램(그림문자)가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파리지성>
 
삼일절.jpg

96회 삼일절 기념행사가 파리 주불문화원에서 재불한인회(이상무 회장) 주최로 개최되었다.
이혜민 재불 대사, 한인 원로 한묵 화백을 비롯해 공관 관계자와, 각 기관 단체장, 재불교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상무 한인회장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어 이혜민 주불대사는 박근혜 대통령
3.1절 기념사를 대독했고, 정하민 청솔회 회장의 만세삼창으로 기념식을 마무리했다.
                                                                                                                                                          <파리지성>
 
한인회관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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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6, 33대 재불 한인회(이상무 회장)가 한인회관을 새롭게 단장하고 오픈식겸
재불한인회 창립 47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노무현 논두렁 시계 사진.png


2 25,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경향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사 당시의 비화를 공개했다.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했고, "그 사건을 맡은 것 자체가 내겐 불행이었다" ‘’이후 내 진로도 틀어지고 가족들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25일부터 27일까지3일에 걸쳐서 노 전 대통령 검찰 수사 당시의 비화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27일에도1면에 '국정원 직원과 검사, 멱살잡이 했다'는 기사를 게재해 2009년 노 전 대통령 조사 당시 국정원의 적극적 수사 개입 행태를 보도했다.

신문은 당시 대검 중수부 관계자 증언을 바탕으로 검찰은 '노 대통령 구속수사', 국정원은 '불구속수사' 입장을 각각 주장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번 보도는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점과 언론보도까지 관리했다는 점이 당시 고위 검찰간부의 입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진상규명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상대의 의도를 파악한 치밀한 정략 또한 요구된다.

이 보도를 접하자 심증만 있었던게 물증으로 드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 오늘의 유머 »라는 인터넷 코뮤니티는 당시 논란이 되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에 대해 밝혔다.

2009년 광우병 촛불시위 사태로 위기를 맞은 이명박 정권은 국면 전환으로 노무현 게이트를 만든다.

먼저 미국에서 주택구입을 위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500만불에 대해서 권양숙 여사의 차용증이 증거로 나와 뇌물의 근거가 없어지자, 바로 문제의 ‘’논두렁 시계’’건을 터트린 것이다.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회갑을 맞아 선물로,  1억원의 피아제 시계를 형 노건평씨를 통해 대통령에세 전달해 달라고 했다. 이에 노건평씨 부인이 권양숙 여사에게 전화로 알리니, 여사는 그런 것 받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형님이 가지시던지 버리라고 했던 것이다.

검찰과 국정원의 조작으로, ‘’1억원 시계 받은것 들키자 논두렁에 버려’’로 언론에 둔갑해 등장했다.

당시 검찰, 국정원, 경찰, 언론까지 합세해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번 보도의 핵심은 진상규명만은 아닐 것이다. 왜 이 시점에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진보 성향의 일간지와 인터뷰를 통해 수사 비화를 밝혔는가 하는 것이다.

무슨 의도였을까 ?

그로부터 며칠뒤,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 정치공작 청문회를 열것 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박근혜 정권이 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 수준인 30%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는 와중에 새 비서실장에 현직 국정원장이 임명됐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직접 관여된 우병우를 민정 수석으로 앉혔다. 그리고 발표된 노 전대통령 수사 비화였다. 박 정권은 지금 야당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이명박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다.

한 언론은 ‘’이렇게 되면 연말정산 폭탄, 담배세 인상 등 서민증세, 법인세 정상화 등을 놓고 형성된 정책대결 정국이 흐트러질 공산이 크다’’고 했고, 정치 전문가는 ‘’ ‘노무현 정국으로 가는 것 자체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것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마이뉴스는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피의자 부재에 따라서 수사가 종결된 건이 이런 식으로 언론 보도화 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지지율 급락에 개각과 보좌진 개편을 감행한 집권세력은 국민이 원하는 '이명박 파일'이 아닌 '노무현 파일'로 현 위기상황의 반전을 모색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국정원이 당시 검찰수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만 5년이 지난 건에 대한 실정법 처벌이 가능할 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파리지성 >

 
간통죄 폐지 사진.jpg


2 26일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사생활 비밀과 자유 침해'를 이유로 '간통죄'를 위헌으로 보고 폐지했다. 간통죄는 19054 20일 대한제국 법률 3호로 공포된 형법대전이 기원이다. 법무부는 1992년 형법개정안에서 간통죄를 삭제하면서 세계적으로 폐지 추세에 있는 점을 강조했으나, 실제 개정 때는 삭제안이 반영되지 못했다. 

간통죄는 ‘’그동안 가부장적인 문화의 전통 속에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이나 상처를 받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이제는 과거와 같이 가부장적 문화권 속에서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손해 받고 불이익을 받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고 있고, ‘’여성의 성해방 이전에는 여성은  즐길 권리가 없었지만 이제는 여성도 성적인 주체로 주장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간통죄 폐지는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간통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대해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대체로 인권을 존중한 정당한 판결이라고 했다. 이들은 간통죄 자체가 구시대의 산물이고 시대 변화에 따라 사문화돼 폐지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라고 봤다. 특히 개인의 성관계는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간 풀어야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혼인제도 파괴와 가족공동체 해체를 촉진하게 할수 있고, '불륜' '합법'으로 포장되며, 무엇보다 간통죄 폐지는 국민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처벌한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이유나, 세계적 추세, 혹은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인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보다 더 앞세우는 것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되면 간통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법적으로 대처할 방법이 없어질 것 같다""가정을 보호하는 '저수지의 문'을 확 열어버리는 꼴이 되지 않을까"라고 우려하는 주부도 있었고, "혼인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부부가 되니 당사자가 도덕적,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하지만 위헌 결정으로 앞으로 혼인에 대한, 배우자에 대한 책임감이 가벼워질 것 같아 걱정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간통죄가 있음으로 인해 개인의 일탈을 막고 도덕성을 지켜주는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아무리 법적 실효성이 없어졌다고 해도 법적으로 죄가 되는 것과 단지 양심의 가책만 느끼고 끝나는 문제는 다르다"고 지적한 주부도 있다.

간통죄 폐지로 어느 정도의 혼란이 예상돼 상대적으로 남성의 외도가 많은 사회 현실을 반영해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혼 남성의 외도율이 높은 상황에서 어떤 법적 조치를 통해 책임성을 물을 것인가 하는 민법적 조치가 보완돼야 하는데 아직은 "더 큰 문제는 간통죄를 없애면서 이로 인해 수반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점"이라며 "배우자 불륜으로 인한 민사소송 시 위자료를 현행보다 몇 배 더 부과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통죄 폐지는 형법상의 처벌만 사라지는 것이지, 민법상의 책임은 더욱 커질 거라고 한다. 이혼사유 및 위자료 청구소송의 근거가 되고, 현행 민법은 오히려 더 강력한 제재력을 발휘할수 있다고 하는데, 즉 민법에서는 부적절한 수준의 정신적 교류도 부부간의 정조의무를 위배한 부정행위로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민법은 부부간의 신의원칙을 보다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어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형법보다 훨씬 효과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동안 형사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게 책정됐던 위자료 액수도 오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미 밝혔다시피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현재 법원은 배우자의 간통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위자료로 통상 3천만원을 결정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이런 위자료 수준을 올려 배우자의 간통으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와 관련한 새로운 법제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법원이 당장 이혼 위자료를 일정 수준으로 올리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간통죄 위헌 결정이 주식시장에 ‘수혜주’ 바람이 일었다. 콘돔 생산업체 유니더스는 헌재의 판결 직후 폭등해 상한가를 기록했다. 27일에도 한때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날 주가 상승률은 3.21%로 전날 상승률(14.92%)에는 한참 뒤지지만 거래량은 649만주로 전날(323만주)의 두 배였다고 한다. 유니더스의 상승세는 매출이 늘어날 거라는 전망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등산장비, 사후피임약 등도 같은 까닭에서 매출이 늘어날 거라고 예상된다고 한다. 이는 간통죄를 폐지하면 간통이 늘어난다는 단순한 생각에 주식을 사들인거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지...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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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부터 논란이 되었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2 17일 법원이 출판과 판매를 금지시켰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 9명이 "제국의 위안부'’가 허위사실을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출판사와 저자 박하 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와 일본 협력자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정신적 위안자, 몸을 희생해 애국한 존재, 일본군과 연애도 하고 애국하는 일,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처녀,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한 부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지 않으면 명예나 인격에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재판부는 "일본군에게 폭력·협박을 당했기 때문에 위안부와 매춘부는 다르다" "위안부 강제동원 등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피해자로서의 지위를 고려해 판결했다"고 밝혔다.
판결이후 한국의 SNS상에서는 찬반 논쟁이 뜨겁게 일었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다
먼저 반대 의견을 보자면, 박유하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며,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법원이 개입한 것, 즉 아무리 박 교수의 저서가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법이 상관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민한 한일관계에서<나눔의 집>의 고소가 무리한 것이며, 결국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고소를 취하하게 만드려는 일부 노력이 있었고, 법원도 중재를 시도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또한 저술에 대해 법정까지 가게 만든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박 교수 저서를 읽어본 어떤 이는, 그가 ‘’생각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이 책이 일본 우익의 논리와 일치한다거나 민족주의 정서에 반하거나, 틀린 주장이라거나, 더 나아가 당사자인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할지라도, 이런 주장은 한 마디도 입 밖에 꺼내어서도 안되는 절대 금기의 것인가라는데에 의문을 품으며, 학술서로 대접해 주고 진지하고 학술적이며 건전한 토론을 통해 그 주장을 논박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같은 주장으로, 논쟁적 주제를 담은 학술적 저서에 대한 비평이나 적절한 평가를 할 때에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상식적인" 과정이 있는데 바로 이 "상식적인 과정"이 철저히 생략되면서 개입할 주체가 아닌 "법원"의 개입을 통해서 한권의 학술적인 책이 담고 있는 다층적 해석과 시각들이 "탈정황화"되고, 그 책에 등장하는 일부 구절들과 표현들이 따로 "발췌" 되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게 부당하다고 하면서, 법원이 강제적으로 "못 읽게" 만드는 것은 마치 독재정권하에서 "공공의 이익"의 이름으로 무수한 "금서"들을 지정하던 모습을 상기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강하게 ‘’제국의 위안부’’를 반대하는 입장에 앞서 무척 어렵고 예민한 문제라 주저하면서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보다는 ‘학문의 책임, 표현의 책임’도 생각해본다는 조심스런 의견도 있었다.
반역, 즉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치
<제국의 위안부> 2, 특히 제2 <하나뿐인 ‘조선인 위안부’ 이야기>는 탈민족주의 담론의 흐름 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이 근대화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조선총독부의 자료를 근거로 사용하고 있고,  조선 민중들의 삶의 토대가 절멸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의도적 왜곡과 같다고 한다. 폭력적인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군과 친밀하게 지내지 않을 수 없었을 일부 위안부-성노예들이 있기도 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렇다고 그들을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홍글씨를 붙이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가 한일 양국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해 쓰여졌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민족 문제가 아닌,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하려면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고 거기에 걸맞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가해자가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피해자 국가의 일부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반역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일본 사회는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 민족주의와 그 역사 왜곡에 맞선, 수난 당하는 ‘양심’이나 ‘영웅’인 것처럼 간주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NHK는 박유하 교수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있고,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에서 벌써 8만부가 팔려나갔다. 일역판에 대한 일본의 서평들은 박선생을 ‘한국의 한나 아렌트’라 불렀다. 이는 결국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하나 던져준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었다.
또한 위안부를 홀로코스트와 다름없는 '전쟁범죄'였음을 일본을 포함,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것을 원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쟁점이 보편적 인권침해와 전쟁범죄 같은 관점으로 진행되지 않고 민족주의와 좌우파 프레임으로 흐르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었다.
이번 법원의 판결에 대한 찬반이 관점의 차이라고도 할수 있겠으나, 찜찜함은 남는다. 만약 프랑스에서 이같은 책이 출판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어리섞은 질문을 해보았다. 2차대전 직후, 친나치했던 이들을 철저하게 찾아내서 처벌해 오욕의 역사를 청산했던 프랑스다. 그리고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이라던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부정하거나 의문을 품는 표현에는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프랑스다. 아직도 친일한 이들이 나라의 권력을 잡고 있고, 특히 위안부 문제는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저술이 학문의 자유로 보호 받아야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파리지성>
 
갈등의 골 사진.png


1 7일과 9일 사이 풍자 언론사인 샤를리 엡도사의 테러로 경찰과 시민 17명이 사망한 다음,

14일 편집장과 만평가들을 잃은 샤를리 엡도사는 이른바, 살아남은 이들이 테러 이후 최신호를 발간했다.

여전히 그들이 희화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만평을 싣었다. 반테러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문구였던 <내가 샤를리다. Je suis Charlie>를 들고 무함마드는 눈물을 흘리며 <모두다 용서했다, tout est pardonne>라는 머리글과 함께 기재되었다.

지난 12월만해도 샤를리 엡도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할 정도였다. 테러가 있기 전날 편집장은 정기 구독인이 50명 추가되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신문이 테러직후 모금, 정기 구독 등으로 1천만유로(1백억 상당)를 벌었다.

정기 구독은 7천에서 12만이 되었고, 평소 6만부를 발행, 절반 정도 판매되던 이 신문은 그날 50배를 늘린 300만부를 인쇄했는데 금방 매진되었다. 7시가 되기전부터 신문을 사기 위해 프랑스 시민들은 거리 가판대에 줄 서 있었다. 신문을 구하기 위해 평상시와는 다르게 새벽에 일어난 이들도 있었다. 테러 이후 샤를리 엡도는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이 같은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권에서는 샤를리 엡도의 최신호 발행 이후 반발이 심하다.

다름 아닌 또 다시 그들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만평을 싣었기 때문이다.

신문사의 변호인, 리샤르 말카는 12일 라디오를 통해, "이는 살아남은 이들이 침묵을 강요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신호 발행을 앞두고 프랑스의 무슬림 사회에서는 반응 자제를 당부했으며, 파리 이슬람 사원 성직자 함마드 함마미는"불에 기름을 붓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한 프랑스 이슬람 단체들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냉정함을 지키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할 것을 호소했다.

샤를리 엡도 테러에 동정적이던 이슬람권은 신문이 다시 무함마드의 만평을 싣자,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테러를 규탄하는데 동참했던 기관인, 이집트 최고종교기관 알아즈하르는 13일 성명을 내고 "새 만평이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증오를 일으키며, 무슬림의 유럽 및 서구 사회로의 융합을 방해한다"고 비난했다.

이집트 이슬람기구 다르 알이프타도 성명에서 "15억 무슬림의 감정에 반하는 정당하지 못한 도발"이라며, "프랑스와 서구 사회에 새로운 증오의 물결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샤를리 엡도 테러가 이슬람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던 이란에서도 반감이 만만치 않았다.

17일에는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구를 1면에 게재한 개혁 성향 일간지 '마르둠-에 에르무즈'의 발행이 금지됐고, 이란 학생들은 테헤란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반샤를리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16일 니제르의 제 2도시 진데르에서 샤를리 엡도 규탄 시위로 5명이 숨진데 이어 다음날 수도인, 니아메에서도 5명의 추가 피해가 나오면서 사망자 수는 모두 10명이 되었다.

프랑스의 과거 식민지였던 니제르에서는 청년들이 주축을 이룬 시위대 1천여명이 교회와 호텔, 술집, 비무슬림 상점, 프랑스 기업체 간판이 걸린 사무실 등을 공격했으며 일부는 상점을 약탈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무슬림 인구가 많은 북캅카스 지역에서도 만평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잉구셰티아에서도 15천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이슬람권 곳곳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일요일 파키스탄 여러 도시들에서도 프랑스 국기가 불타는 등, 반샤를리 엡도 시위가 일어났다.

기독교 목사들도 이슬람 동포들의 규탄 시위에 동참했다,

최근 여론 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들 10명 중 4명이 무함마드 만평을 게재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다.

다시 샤를리 엡도가 무함마드 만평을 싣고 나서 유럽 주요국들은 추가 테러 방지를 위해 경계를더욱 강화했고, 이슬람에 대한 보복 범죄 또한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 남부 아비뇽 인근에서는 14일 모로코 출신 40대 남성이 한밤중에 집으로 난입한 20대 남성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7일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이슬람교도나 관련 시설을 겨냥한 보복범죄가 50건 이상 발생했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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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시작하는 첫 주가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 7일 수요일, 프랑스는 테러를 당했다.


풍자 언론사인 샤를리 엡도에 무장 괴한이 침입, 총을 난사해 12명이 사망하고, 다음날 파리 남쪽 외곽


지역에서 여경이 괴한이 손 총에 또 다시 사망, 그리고 하루 지난 뒤 동시에 두건의 인질극이 벌어져


인질 4명이 사망하고 테러리스트들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17명이 이번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7일 수요일 오후부터 프랑스는 내가 샤를리 다(Je suis Charlie)라는 문구로 도배되었다.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테러에 대항,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움직임이다.

샤를리 엡도는 반종교를 외치며 무정부주의 성향의 풍자 주간 신문으로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인물 풍자화를 싣곤했다. 원래 이슬람에서는 모하메드를 형상화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2011 11, 이 신문사는 방화로 전소되었고, 사이트가 해킹된 사건이 있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샤를리 엡도는 모하메드를 희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국장은 무릎 꿇느니 서서 죽겠다고 한바 있다.

이 주간지는 프랑스의 이슬람 단체들이 종교 모독 행위라고 신문을 압수하라며 고발했는데 기각되었다.

소송을 맡은 검사의 진술을 보면, “샤를리 엡도는 반종교를 부르짖는 자유, 반정부주의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신문임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종교인 카톨릭부터 이 신문의 첫 번째 비판 대상이 되어왔다.

풍자화는 사실을 알리는게 목적이 아니라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언론이 종교 비판을 금지해야 한단 말인가?" 라고 하면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신문은 금지된 것을 금지한다68혁명을 원칙으로 하면서, 좌파 주간지를 자처, 극우파인

국민전선(Front National)과는 적대적인 관계였다.

샤를리 엡도는1995 6월 극우파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들의 풍자에 한계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풍자한 이슬람교를 보자면, 이미 세속화된 카톨릭과는 달리

생활 규범화되어있다. 종교를 떠나 문화이자, 삶의 가치관이라고 할수 있다.

샤를리 엡도의 만평가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일 수 없다.

그것은 약자를 보호하고 차별을 금지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할 때 그 가치를 발휘할수 있을것이다.

이미 프랑스 사회의 대립은 보수와 진보 보다는 프랑스 대 이슬람으로 나가고 있다.

프랑스가 통합하지 못한 이슬람 이주민자들이 이곳에서 느낀 차별과 울분은 2005년 외곽지역 소요사태로

나타나면서, 똘레랑스가 가진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약자들이다.

약자들이 음지로 들어가 복수심을 품을때는 위험하고 잔인해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테러를 단편적인 사건으로 보기 보다는 프랑스및 서방국가들과 이슬람 국가들간의 오랜

역사에서 파생된 뿌리 깊은 갈등속에서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내 무슬림 인구는 유럽내에서 가장 많은 오육백만명에 이른다.

그들은 샤를리 엡도의 모하메드 풍자 만평을 표현의 자유가 아닌 종교 모독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을 해치는 것에는 강력하게 규탄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테러는 용납될수 없다.

하지만 샤를리 엡도가 부르짖었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으리라 본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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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풍자 언론사, 샤를르 엡도에 총격으로 12명 사망

 

2015 1 7일 수요일, 파리 11구에 있는 풍자 언론사인 샤를리 엡도 Charlie Hebdo에 얼굴 가린 무장 괴한들이 침입, 총격을 가해 경찰 2명을 포함한 1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 당했다. 사망자중에는 국장인 샤르보와 이 언론사의 주요 만평가들 3명이 포함되어 있다.

 

괴한들은 편집회의 중에 들어와 만평가 이름을 호명하며 발사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3명으로, 예멘 알카에다 소속이라고 사건 현장에서 밝혔다. 302명은 형제로 도주했으며, 나머지10대는 그날 밤 자수했다.

 

샤를르 엡도는 반종교를 외치며 무정부주의 성향의 풍자 주간 신문으로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인물 풍자화를 자주 싣곤 했다. 이에 이슬람 단체로부터 고발을 받은적이 있지만, 신문 성격상, 표현의 자유로

기각되었다.

 

2011 11월에는 신문사가 방화로 전소되고 사이트가 해킹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최근 국장은 살해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경찰의 보호하에 있었으나, 당일 경찰마저 괴한들의 총에 사망했다.

 

사건이 일어난 7일 밤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파리에서는 레프블릭 광장에 수천명이 모여, “내가 샤를리(Je suis Charlie)”라는 문구가 적힌 표어를 가지고, 희생된 이들의 작업 도구인 펜을 하늘 높이 들고는 테러에 분노했다.

 

프랑스 SNS 사용자들은 프로필 사진을 “Je suis Charlie”로 바꾸고, 교육부는 사이트를 통해 다음날 정오에 프랑스 전 학교에서 희생자들을 위해 1분간 묵념을 할 것이라는 공문을 싣었다. 뿐만 아니라 파리 지하철도 1분 묵념을 위해 정오에 모든 운행을 중단했다.

 

프랑스 정부는 8일부터 3일간을 국장 기간(Deuil National)으로 선포하고, 관공서에는 조기를 게양했다.

 

다음날 8, 파리 남쪽 외곽인 몽루쥬 Montrouge에서 신원 미상의 두 남자가 교통사고를 수습하던 경찰에게 총격을 가해, 25세의 여경이 숨졌는데, 당시 샤를리 엡도 공격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프랑스 경찰은 대테러경보를 최상급으로 올렸고, 팽팽한 긴장감이 파리 전역을 휩싸고 있었다.

 

주프랑스대한민국 대사관은 7일 일어난 총격과 다음날 몽루쥬의 사건을 알리며, 교민 및 여행객들이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 줄것과,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해 줄것을 당부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어진 2건의 인질극

 

신분이 확인된 3명의 범인들중 1명은 자수하고 2명이 경찰 망을 피해 도주하고 있는 와중인 9일 금요일, 파리 드골 공항 근처에서 은신하고 있던 범인인 카우치 Kouchi 형제들은 공항에서 12킬로 떨어진 다마르탱 인쇄소로 들어가 인질 1명을 두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17시경 총을 쏘면서 나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한편 카우치 형제를 풀어주라며 파리 동부, 포르트 벵센느에 있는 유대인 슈퍼마켓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인 공범, 아메디 쿨리발리는 비슷한 시각 경찰의 진압에 의해 사살되었다. 4명의 인질들이 숨진채 발견되었는데, 프랑스 언론은 쿨리발리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에서 동시에 2건의 인질극이 일어났고 함께 진압되었다. 주위에 있는 주민들은 외출을 할수 없었고, 인근의 모든 학교들은 안전을 위해 문을 닫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학생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언론사 테러가 있었던 다음날, 파리 남쪽 외곽인 몽루쥬에서 있었던 경찰 총격은 쿨리발리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또한 7, 비슷한 지역인 퐁테니 오 로즈에서 조깅하던 남성이 총탄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 이에 프랑스 경찰은 동일인인지 현재 조사중이다.

 

한편 카우치 형제가 탄 차를 운전했다는 공범 혐의를 받고 있던 10대의 무라드 하미드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미드는 7일 밤 언론과 SNS에서 자신이 테러용의자로 거론되자 경찰서에 직접 찾아갔으며 50여시간의 조사를 받은 끝에 풀려났다.

 

2차 대전 파리 수복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몰린 범국민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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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일 일요일, 프랑스 정부가 주최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테러에 대항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가 프랑스 전역에서 열렸다. 경찰은 집계가 불가능할만큼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하는데, 4백만명으로 보고 있다.

 

이는 2차 대전시 파리 수복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로 역사적인 시위였다고 프랑스 언론들은 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15시 레쁘블릭 광장에서 나시옹으로 이어지는 집회를 공화국 행진(La Marche Républicaine)이라고 명명했다.

 

파리에만 150만명이 집결했으며, 파리 교통청은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위해 11일은 대중 교통을 무료로 운행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카메룬 영국 수상,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 등 세계 정상 44명이 공화국 행진에 참석했으며, 올랑드 대통령은 ‘’파리는 오늘 세계의 수도가 되었다’’고 했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파리에서는 ‘’샤를리 엡도의 만평은 좋아하지 않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시위에 참석한 이도 있었고, 3살과 5살 자녀들을 데리고 온 아프리카인은 자신은 포르트 벵센트 지역 인질극의 범인인 쿨리발리와 같은 흑인이지만, 이번 일로 인해 흑인들이 침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이른바 « 분노한 이슬람인>들의 동참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이번 테러의 또 다른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는 프랑스에 있는 같은 이슬람교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슬람은 테러리스트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포르트 벵센느에 있었던 인질극 당시 주위에 있던 어떤 이슬람 청년은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댓가를 치러야 한다. 말도 안된다’’며 소리쳤다고 한다.

 

르몽드지 인터뷰를 보면, 집회에 참석한 60세의 모로코 여인은 40년전에 프랑스로 와서 25년 동안 철도청에서 일했다고 한다. 한번도 인종차별을 당한적이 없고, 그녀의 자녀들 또한 증오가 아닌 사랑속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녀는 샤를리 엡도의 만평을 보고 충격 받기는 했으나, 그로 인해 사람을 죽일수는 없다며 이슬람과 테러리스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또한 그녀는 테러 이후로 외출하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이번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망설였으나, 나오려고 노력했다고 하면서, 프랑스인들과 함께 이자리에 있는게 뿌듯하다고 했다.

 

한편 9, 2건의 인질극을 동시에 마무리한 프랑스 경찰은 쿨리발리의 동거녀이자, 몽루쥬 총격때 함께 있었던 하야트 부메리엔을 찾았으나 행방을 알수 없었다.


이른바, ‘’프랑스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로 지목되고 있는 그녀는 12일 월요일, 튀니지를 거쳐 시리아로 간 것으로 프랑스 언론은 전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들 17%만이 테러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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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월 첫번째주인 7일수요일, 파리 11구에 있는 풍자 언론사인 샤를리 엡도 Charlie Hebdo에 얼굴

가린 무장 괴한들이 침입, 총격을가해 경찰 2명을 포함한 1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 당했다.

사망자중에는 국장인 샤르보와 이 언론사의주요 만화가들 3명이 포함되어 있다.

 

괴한들은 편집회의 중에 들어와 만화가 이름을 호명하며 발사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3명으로 예멘, 알카에다 소속이라고 사건 현장에서 밝혔다고 한다.

302명은 형제로, 계속 경찰의 망을 피해 도주하고 있으며, 나머지 10대는 그날 밤 자수했다.

 

샤를르 엡도는 반종교를 외치며 무정부주의 성향의 풍자 주간 신문으로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인물 풍자화를 자주 싣곤 했다. 원래이슬람에서는 모하메드를 형상화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이에 이슬람 단체로부터 고발을 받은적이 있지만, 신문 성격상, 표현의 자유로 대부분 기각되었다.

 

2011 11월에는 신문사가 방화로 전소되는 사건까지 있었다. 그다음날 샤를르 엡도는 화해의 제스처로

국장인 샤르보와 이슬람교인이 진하게 키스하는 삽화를 싣었다.

 

최근 국장은 살해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경찰의 보호하에 있었으나, 당일 경찰마저 괴한들의 총에 사망했다.

 


지금 프랑스는 국상(Deuil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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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7일밤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파리에서는 레프블릭 광장에 수천명이 모여, “내가 샤를리(Je suis Charlie)”라는 문구가 적힌 표어를 가지고, 희생된 이들의 작업 도구인 펜을 하늘높이 들고는 테러에 분노했다.


프랑스 SNS 사용자들은 프로필 사진을 “Je suis Charlie”로 바꾸고, 교육부는 사이트를 통해 다음날 정오에

프랑스 전 학교에서 희생자들을 위해 1분간 묵념할 것이라는 공문을 싣었다. 뿐만 아니라 파리 지하철도 1분 묵념을 위해 정오에 모든 운행을 중단했다.


프랑스 정부는 8일부터 3일간을 국장 기간(Deuil National)으로 선포하고, 관공서에는 조기를 게양했으며,

오는 일요일 11, 10시 대대적인 추모 집회를 가지면서 다시 한번 1분 묵념을 할것이라고 한다.


다음날 8, 파리 남쪽 외곽인 몽루쥬 Monrouge에서 신원 미상의 두 남자가 교통사고를 수습하던 경찰에게 총격을 가해, 25세의 여경이 숨졌는데, 샤를리 엡도 공격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대테러경보를 최상급으로 올렸고, 팽팽한 긴장감이 파리 전역을 휩싸고 있다.


주프랑스대한민국 대사관은 7일 일어난 총격과 다음날 몽루쥬의 사건을 알리며, 교민 및 여행객들이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 줄 것과,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해 줄 것을 당부하는 공문을 보냈다.


<파리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