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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부터 논란이 되었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2 17일 법원이 출판과 판매를 금지시켰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 9명이 "제국의 위안부'’가 허위사실을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출판사와 저자 박하 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와 일본 협력자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정신적 위안자, 몸을 희생해 애국한 존재, 일본군과 연애도 하고 애국하는 일,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처녀,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한 부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지 않으면 명예나 인격에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재판부는 "일본군에게 폭력·협박을 당했기 때문에 위안부와 매춘부는 다르다" "위안부 강제동원 등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피해자로서의 지위를 고려해 판결했다"고 밝혔다.
판결이후 한국의 SNS상에서는 찬반 논쟁이 뜨겁게 일었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다
먼저 반대 의견을 보자면, 박유하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며,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법원이 개입한 것, 즉 아무리 박 교수의 저서가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법이 상관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민한 한일관계에서<나눔의 집>의 고소가 무리한 것이며, 결국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고소를 취하하게 만드려는 일부 노력이 있었고, 법원도 중재를 시도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또한 저술에 대해 법정까지 가게 만든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박 교수 저서를 읽어본 어떤 이는, 그가 ‘’생각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이 책이 일본 우익의 논리와 일치한다거나 민족주의 정서에 반하거나, 틀린 주장이라거나, 더 나아가 당사자인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할지라도, 이런 주장은 한 마디도 입 밖에 꺼내어서도 안되는 절대 금기의 것인가라는데에 의문을 품으며, 학술서로 대접해 주고 진지하고 학술적이며 건전한 토론을 통해 그 주장을 논박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같은 주장으로, 논쟁적 주제를 담은 학술적 저서에 대한 비평이나 적절한 평가를 할 때에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상식적인" 과정이 있는데 바로 이 "상식적인 과정"이 철저히 생략되면서 개입할 주체가 아닌 "법원"의 개입을 통해서 한권의 학술적인 책이 담고 있는 다층적 해석과 시각들이 "탈정황화"되고, 그 책에 등장하는 일부 구절들과 표현들이 따로 "발췌" 되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게 부당하다고 하면서, 법원이 강제적으로 "못 읽게" 만드는 것은 마치 독재정권하에서 "공공의 이익"의 이름으로 무수한 "금서"들을 지정하던 모습을 상기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강하게 ‘’제국의 위안부’’를 반대하는 입장에 앞서 무척 어렵고 예민한 문제라 주저하면서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보다는 ‘학문의 책임, 표현의 책임’도 생각해본다는 조심스런 의견도 있었다.
반역, 즉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치
<제국의 위안부> 2, 특히 제2 <하나뿐인 ‘조선인 위안부’ 이야기>는 탈민족주의 담론의 흐름 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이 근대화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조선총독부의 자료를 근거로 사용하고 있고,  조선 민중들의 삶의 토대가 절멸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의도적 왜곡과 같다고 한다. 폭력적인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군과 친밀하게 지내지 않을 수 없었을 일부 위안부-성노예들이 있기도 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렇다고 그들을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홍글씨를 붙이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가 한일 양국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해 쓰여졌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민족 문제가 아닌,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하려면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고 거기에 걸맞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가해자가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피해자 국가의 일부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반역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일본 사회는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 민족주의와 그 역사 왜곡에 맞선, 수난 당하는 ‘양심’이나 ‘영웅’인 것처럼 간주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NHK는 박유하 교수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있고,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에서 벌써 8만부가 팔려나갔다. 일역판에 대한 일본의 서평들은 박선생을 ‘한국의 한나 아렌트’라 불렀다. 이는 결국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하나 던져준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었다.
또한 위안부를 홀로코스트와 다름없는 '전쟁범죄'였음을 일본을 포함,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것을 원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쟁점이 보편적 인권침해와 전쟁범죄 같은 관점으로 진행되지 않고 민족주의와 좌우파 프레임으로 흐르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었다.
이번 법원의 판결에 대한 찬반이 관점의 차이라고도 할수 있겠으나, 찜찜함은 남는다. 만약 프랑스에서 이같은 책이 출판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어리섞은 질문을 해보았다. 2차대전 직후, 친나치했던 이들을 철저하게 찾아내서 처벌해 오욕의 역사를 청산했던 프랑스다. 그리고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이라던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부정하거나 의문을 품는 표현에는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프랑스다. 아직도 친일한 이들이 나라의 권력을 잡고 있고, 특히 위안부 문제는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저술이 학문의 자유로 보호 받아야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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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일과 9일 사이 풍자 언론사인 샤를리 엡도사의 테러로 경찰과 시민 17명이 사망한 다음,

14일 편집장과 만평가들을 잃은 샤를리 엡도사는 이른바, 살아남은 이들이 테러 이후 최신호를 발간했다.

여전히 그들이 희화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만평을 싣었다. 반테러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문구였던 <내가 샤를리다. Je suis Charlie>를 들고 무함마드는 눈물을 흘리며 <모두다 용서했다, tout est pardonne>라는 머리글과 함께 기재되었다.

지난 12월만해도 샤를리 엡도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할 정도였다. 테러가 있기 전날 편집장은 정기 구독인이 50명 추가되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신문이 테러직후 모금, 정기 구독 등으로 1천만유로(1백억 상당)를 벌었다.

정기 구독은 7천에서 12만이 되었고, 평소 6만부를 발행, 절반 정도 판매되던 이 신문은 그날 50배를 늘린 300만부를 인쇄했는데 금방 매진되었다. 7시가 되기전부터 신문을 사기 위해 프랑스 시민들은 거리 가판대에 줄 서 있었다. 신문을 구하기 위해 평상시와는 다르게 새벽에 일어난 이들도 있었다. 테러 이후 샤를리 엡도는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이 같은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권에서는 샤를리 엡도의 최신호 발행 이후 반발이 심하다.

다름 아닌 또 다시 그들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만평을 싣었기 때문이다.

신문사의 변호인, 리샤르 말카는 12일 라디오를 통해, "이는 살아남은 이들이 침묵을 강요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신호 발행을 앞두고 프랑스의 무슬림 사회에서는 반응 자제를 당부했으며, 파리 이슬람 사원 성직자 함마드 함마미는"불에 기름을 붓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한 프랑스 이슬람 단체들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냉정함을 지키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할 것을 호소했다.

샤를리 엡도 테러에 동정적이던 이슬람권은 신문이 다시 무함마드의 만평을 싣자,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테러를 규탄하는데 동참했던 기관인, 이집트 최고종교기관 알아즈하르는 13일 성명을 내고 "새 만평이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증오를 일으키며, 무슬림의 유럽 및 서구 사회로의 융합을 방해한다"고 비난했다.

이집트 이슬람기구 다르 알이프타도 성명에서 "15억 무슬림의 감정에 반하는 정당하지 못한 도발"이라며, "프랑스와 서구 사회에 새로운 증오의 물결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샤를리 엡도 테러가 이슬람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던 이란에서도 반감이 만만치 않았다.

17일에는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구를 1면에 게재한 개혁 성향 일간지 '마르둠-에 에르무즈'의 발행이 금지됐고, 이란 학생들은 테헤란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반샤를리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16일 니제르의 제 2도시 진데르에서 샤를리 엡도 규탄 시위로 5명이 숨진데 이어 다음날 수도인, 니아메에서도 5명의 추가 피해가 나오면서 사망자 수는 모두 10명이 되었다.

프랑스의 과거 식민지였던 니제르에서는 청년들이 주축을 이룬 시위대 1천여명이 교회와 호텔, 술집, 비무슬림 상점, 프랑스 기업체 간판이 걸린 사무실 등을 공격했으며 일부는 상점을 약탈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무슬림 인구가 많은 북캅카스 지역에서도 만평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잉구셰티아에서도 15천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이슬람권 곳곳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일요일 파키스탄 여러 도시들에서도 프랑스 국기가 불타는 등, 반샤를리 엡도 시위가 일어났다.

기독교 목사들도 이슬람 동포들의 규탄 시위에 동참했다,

최근 여론 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들 10명 중 4명이 무함마드 만평을 게재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다.

다시 샤를리 엡도가 무함마드 만평을 싣고 나서 유럽 주요국들은 추가 테러 방지를 위해 경계를더욱 강화했고, 이슬람에 대한 보복 범죄 또한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 남부 아비뇽 인근에서는 14일 모로코 출신 40대 남성이 한밤중에 집으로 난입한 20대 남성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7일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이슬람교도나 관련 시설을 겨냥한 보복범죄가 50건 이상 발생했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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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시작하는 첫 주가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 7일 수요일, 프랑스는 테러를 당했다.


풍자 언론사인 샤를리 엡도에 무장 괴한이 침입, 총을 난사해 12명이 사망하고, 다음날 파리 남쪽 외곽


지역에서 여경이 괴한이 손 총에 또 다시 사망, 그리고 하루 지난 뒤 동시에 두건의 인질극이 벌어져


인질 4명이 사망하고 테러리스트들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17명이 이번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7일 수요일 오후부터 프랑스는 내가 샤를리 다(Je suis Charlie)라는 문구로 도배되었다.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테러에 대항,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움직임이다.

샤를리 엡도는 반종교를 외치며 무정부주의 성향의 풍자 주간 신문으로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인물 풍자화를 싣곤했다. 원래 이슬람에서는 모하메드를 형상화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2011 11, 이 신문사는 방화로 전소되었고, 사이트가 해킹된 사건이 있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샤를리 엡도는 모하메드를 희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국장은 무릎 꿇느니 서서 죽겠다고 한바 있다.

이 주간지는 프랑스의 이슬람 단체들이 종교 모독 행위라고 신문을 압수하라며 고발했는데 기각되었다.

소송을 맡은 검사의 진술을 보면, “샤를리 엡도는 반종교를 부르짖는 자유, 반정부주의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신문임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종교인 카톨릭부터 이 신문의 첫 번째 비판 대상이 되어왔다.

풍자화는 사실을 알리는게 목적이 아니라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언론이 종교 비판을 금지해야 한단 말인가?" 라고 하면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신문은 금지된 것을 금지한다68혁명을 원칙으로 하면서, 좌파 주간지를 자처, 극우파인

국민전선(Front National)과는 적대적인 관계였다.

샤를리 엡도는1995 6월 극우파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들의 풍자에 한계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풍자한 이슬람교를 보자면, 이미 세속화된 카톨릭과는 달리

생활 규범화되어있다. 종교를 떠나 문화이자, 삶의 가치관이라고 할수 있다.

샤를리 엡도의 만평가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일 수 없다.

그것은 약자를 보호하고 차별을 금지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할 때 그 가치를 발휘할수 있을것이다.

이미 프랑스 사회의 대립은 보수와 진보 보다는 프랑스 대 이슬람으로 나가고 있다.

프랑스가 통합하지 못한 이슬람 이주민자들이 이곳에서 느낀 차별과 울분은 2005년 외곽지역 소요사태로

나타나면서, 똘레랑스가 가진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약자들이다.

약자들이 음지로 들어가 복수심을 품을때는 위험하고 잔인해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테러를 단편적인 사건으로 보기 보다는 프랑스및 서방국가들과 이슬람 국가들간의 오랜

역사에서 파생된 뿌리 깊은 갈등속에서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내 무슬림 인구는 유럽내에서 가장 많은 오육백만명에 이른다.

그들은 샤를리 엡도의 모하메드 풍자 만평을 표현의 자유가 아닌 종교 모독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을 해치는 것에는 강력하게 규탄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테러는 용납될수 없다.

하지만 샤를리 엡도가 부르짖었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으리라 본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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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풍자 언론사, 샤를르 엡도에 총격으로 12명 사망

 

2015 1 7일 수요일, 파리 11구에 있는 풍자 언론사인 샤를리 엡도 Charlie Hebdo에 얼굴 가린 무장 괴한들이 침입, 총격을 가해 경찰 2명을 포함한 1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 당했다. 사망자중에는 국장인 샤르보와 이 언론사의 주요 만평가들 3명이 포함되어 있다.

 

괴한들은 편집회의 중에 들어와 만평가 이름을 호명하며 발사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3명으로, 예멘 알카에다 소속이라고 사건 현장에서 밝혔다. 302명은 형제로 도주했으며, 나머지10대는 그날 밤 자수했다.

 

샤를르 엡도는 반종교를 외치며 무정부주의 성향의 풍자 주간 신문으로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인물 풍자화를 자주 싣곤 했다. 이에 이슬람 단체로부터 고발을 받은적이 있지만, 신문 성격상, 표현의 자유로

기각되었다.

 

2011 11월에는 신문사가 방화로 전소되고 사이트가 해킹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최근 국장은 살해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경찰의 보호하에 있었으나, 당일 경찰마저 괴한들의 총에 사망했다.

 

사건이 일어난 7일 밤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파리에서는 레프블릭 광장에 수천명이 모여, “내가 샤를리(Je suis Charlie)”라는 문구가 적힌 표어를 가지고, 희생된 이들의 작업 도구인 펜을 하늘 높이 들고는 테러에 분노했다.

 

프랑스 SNS 사용자들은 프로필 사진을 “Je suis Charlie”로 바꾸고, 교육부는 사이트를 통해 다음날 정오에 프랑스 전 학교에서 희생자들을 위해 1분간 묵념을 할 것이라는 공문을 싣었다. 뿐만 아니라 파리 지하철도 1분 묵념을 위해 정오에 모든 운행을 중단했다.

 

프랑스 정부는 8일부터 3일간을 국장 기간(Deuil National)으로 선포하고, 관공서에는 조기를 게양했다.

 

다음날 8, 파리 남쪽 외곽인 몽루쥬 Montrouge에서 신원 미상의 두 남자가 교통사고를 수습하던 경찰에게 총격을 가해, 25세의 여경이 숨졌는데, 당시 샤를리 엡도 공격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프랑스 경찰은 대테러경보를 최상급으로 올렸고, 팽팽한 긴장감이 파리 전역을 휩싸고 있었다.

 

주프랑스대한민국 대사관은 7일 일어난 총격과 다음날 몽루쥬의 사건을 알리며, 교민 및 여행객들이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 줄것과,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해 줄것을 당부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어진 2건의 인질극

 

신분이 확인된 3명의 범인들중 1명은 자수하고 2명이 경찰 망을 피해 도주하고 있는 와중인 9일 금요일, 파리 드골 공항 근처에서 은신하고 있던 범인인 카우치 Kouchi 형제들은 공항에서 12킬로 떨어진 다마르탱 인쇄소로 들어가 인질 1명을 두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17시경 총을 쏘면서 나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한편 카우치 형제를 풀어주라며 파리 동부, 포르트 벵센느에 있는 유대인 슈퍼마켓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인 공범, 아메디 쿨리발리는 비슷한 시각 경찰의 진압에 의해 사살되었다. 4명의 인질들이 숨진채 발견되었는데, 프랑스 언론은 쿨리발리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에서 동시에 2건의 인질극이 일어났고 함께 진압되었다. 주위에 있는 주민들은 외출을 할수 없었고, 인근의 모든 학교들은 안전을 위해 문을 닫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학생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언론사 테러가 있었던 다음날, 파리 남쪽 외곽인 몽루쥬에서 있었던 경찰 총격은 쿨리발리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또한 7, 비슷한 지역인 퐁테니 오 로즈에서 조깅하던 남성이 총탄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 이에 프랑스 경찰은 동일인인지 현재 조사중이다.

 

한편 카우치 형제가 탄 차를 운전했다는 공범 혐의를 받고 있던 10대의 무라드 하미드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미드는 7일 밤 언론과 SNS에서 자신이 테러용의자로 거론되자 경찰서에 직접 찾아갔으며 50여시간의 조사를 받은 끝에 풀려났다.

 

2차 대전 파리 수복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몰린 범국민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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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일 일요일, 프랑스 정부가 주최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테러에 대항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가 프랑스 전역에서 열렸다. 경찰은 집계가 불가능할만큼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하는데, 4백만명으로 보고 있다.

 

이는 2차 대전시 파리 수복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로 역사적인 시위였다고 프랑스 언론들은 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15시 레쁘블릭 광장에서 나시옹으로 이어지는 집회를 공화국 행진(La Marche Républicaine)이라고 명명했다.

 

파리에만 150만명이 집결했으며, 파리 교통청은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위해 11일은 대중 교통을 무료로 운행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카메룬 영국 수상,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 등 세계 정상 44명이 공화국 행진에 참석했으며, 올랑드 대통령은 ‘’파리는 오늘 세계의 수도가 되었다’’고 했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파리에서는 ‘’샤를리 엡도의 만평은 좋아하지 않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시위에 참석한 이도 있었고, 3살과 5살 자녀들을 데리고 온 아프리카인은 자신은 포르트 벵센트 지역 인질극의 범인인 쿨리발리와 같은 흑인이지만, 이번 일로 인해 흑인들이 침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이른바 « 분노한 이슬람인>들의 동참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이번 테러의 또 다른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는 프랑스에 있는 같은 이슬람교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슬람은 테러리스트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포르트 벵센느에 있었던 인질극 당시 주위에 있던 어떤 이슬람 청년은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댓가를 치러야 한다. 말도 안된다’’며 소리쳤다고 한다.

 

르몽드지 인터뷰를 보면, 집회에 참석한 60세의 모로코 여인은 40년전에 프랑스로 와서 25년 동안 철도청에서 일했다고 한다. 한번도 인종차별을 당한적이 없고, 그녀의 자녀들 또한 증오가 아닌 사랑속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녀는 샤를리 엡도의 만평을 보고 충격 받기는 했으나, 그로 인해 사람을 죽일수는 없다며 이슬람과 테러리스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또한 그녀는 테러 이후로 외출하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이번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망설였으나, 나오려고 노력했다고 하면서, 프랑스인들과 함께 이자리에 있는게 뿌듯하다고 했다.

 

한편 9, 2건의 인질극을 동시에 마무리한 프랑스 경찰은 쿨리발리의 동거녀이자, 몽루쥬 총격때 함께 있었던 하야트 부메리엔을 찾았으나 행방을 알수 없었다.


이른바, ‘’프랑스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로 지목되고 있는 그녀는 12일 월요일, 튀니지를 거쳐 시리아로 간 것으로 프랑스 언론은 전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들 17%만이 테러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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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월 첫번째주인 7일수요일, 파리 11구에 있는 풍자 언론사인 샤를리 엡도 Charlie Hebdo에 얼굴

가린 무장 괴한들이 침입, 총격을가해 경찰 2명을 포함한 1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 당했다.

사망자중에는 국장인 샤르보와 이 언론사의주요 만화가들 3명이 포함되어 있다.

 

괴한들은 편집회의 중에 들어와 만화가 이름을 호명하며 발사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3명으로 예멘, 알카에다 소속이라고 사건 현장에서 밝혔다고 한다.

302명은 형제로, 계속 경찰의 망을 피해 도주하고 있으며, 나머지 10대는 그날 밤 자수했다.

 

샤를르 엡도는 반종교를 외치며 무정부주의 성향의 풍자 주간 신문으로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인물 풍자화를 자주 싣곤 했다. 원래이슬람에서는 모하메드를 형상화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이에 이슬람 단체로부터 고발을 받은적이 있지만, 신문 성격상, 표현의 자유로 대부분 기각되었다.

 

2011 11월에는 신문사가 방화로 전소되는 사건까지 있었다. 그다음날 샤를르 엡도는 화해의 제스처로

국장인 샤르보와 이슬람교인이 진하게 키스하는 삽화를 싣었다.

 

최근 국장은 살해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경찰의 보호하에 있었으나, 당일 경찰마저 괴한들의 총에 사망했다.

 


지금 프랑스는 국상(Deuil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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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7일밤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파리에서는 레프블릭 광장에 수천명이 모여, “내가 샤를리(Je suis Charlie)”라는 문구가 적힌 표어를 가지고, 희생된 이들의 작업 도구인 펜을 하늘높이 들고는 테러에 분노했다.


프랑스 SNS 사용자들은 프로필 사진을 “Je suis Charlie”로 바꾸고, 교육부는 사이트를 통해 다음날 정오에

프랑스 전 학교에서 희생자들을 위해 1분간 묵념할 것이라는 공문을 싣었다. 뿐만 아니라 파리 지하철도 1분 묵념을 위해 정오에 모든 운행을 중단했다.


프랑스 정부는 8일부터 3일간을 국장 기간(Deuil National)으로 선포하고, 관공서에는 조기를 게양했으며,

오는 일요일 11, 10시 대대적인 추모 집회를 가지면서 다시 한번 1분 묵념을 할것이라고 한다.


다음날 8, 파리 남쪽 외곽인 몽루쥬 Monrouge에서 신원 미상의 두 남자가 교통사고를 수습하던 경찰에게 총격을 가해, 25세의 여경이 숨졌는데, 샤를리 엡도 공격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대테러경보를 최상급으로 올렸고, 팽팽한 긴장감이 파리 전역을 휩싸고 있다.


주프랑스대한민국 대사관은 7일 일어난 총격과 다음날 몽루쥬의 사건을 알리며, 교민 및 여행객들이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 줄 것과,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해 줄 것을 당부하는 공문을 보냈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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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 한인 편익 전화번호부 '알로파리 2015'가 발행되어 배포되고 있습니다.

한인 전 업소에서 만나실수 있습니다.

정보에서 오류나 수정할 사항 혹은 신규업체 등록을 원하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parisjisung@gmail.com

06 07 86 05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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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은 비타민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피곤하고 지칠 때 새로운 활력을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바탕이 되어 더나아가, 그것들은 사람과 사람을잇고, 공감대를 조성하는 소통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갤러리를 지나치다 우연히 들린 프랑스인과 작품 하나를 두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곤 한다.

생활풍속과 전통이 다른 그들과 오로지 미술 작품 하나로 한국과 프랑스를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아갈수가 있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 문화 예술의 가치가 있다고 할수 있다.


한파를 예고하듯 겨울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던 성탄절 다음날인 12 26, 어둑해질즈음부터 파리 15구에있는

퐁데자르 갤러리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연말이라 초대한 이들이 많이 참석치 못할 것이라는염려도 있었지만, 갤러리안은 차가운 겨울비를 안온히 감싸줄만큼 사람들의 훈기로 들어찼다.  

퐁데자르 갤러리에서 청년작가 후원을 위한 제3그림이 있어 행복한 생활전 오픈식 이야기다.

김창열, 권순철, 방혜자, 손석, 이배, 정하민, 진유영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으며, 이날 권순철, 손석, 정하민, 진유영

작가가 초대 손님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미술 애호가인 프랑스인들과, 파리의 한인들, 작가 등 50여명이 모여, 수익의일부를 후배 양성을 위해 후원하는 전시라 훈훈함이 더했다. 또한 올해101세 되신 한묵 화백님 내외가 참석해 자리가 더욱 빛났다.

근처에 있는 한국식당에 가진 뒷풀이 자리에 기아의 김용성 법인장 내외가 뒤늦게 합류했다.

김 법인장은 기아가 문화 예술을 통해 프랑스에 있는 한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 있었다고 하면서, 기계적이라고 할수 있는 자동차와 예술과의 피상적인 모순의 관계와 그렇기에 서로 끌릴수 밖에 없는 연관성을 피력했다.

함께 한 어떤 프랑스인은 한국말은 못알아듣지만, 거의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받아들인걸 이야기하는데 놀랄 수준이었다. 어찌 구체적이고, 정확한 언어만이 사람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까?

그 프랑스인은 전시를 매개로 그자리에서 있었고, 그에겐 한없이 생소한한국인들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수 있었다. 문화 예술의 강한 힘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사람들을 어우러지게 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케도 한다. 그렇게 함께 모인 사람의 온기는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떡한조각떼는 나눔 또한 가능하게 한다.

연말에 작가님들과 한인들, 그리고 한동안 뜸했던 이들과 찌개 한그릇 놓고 살아가는 이야기 나눌수 있었던 훈훈한 시간이었다.    

                                                                                                                                     <파리지성>

 
어느 덧 다사다난했던 2014년이 저물어 가는 이때에, 파리지성이 주최하는 3 '그림이 있어 행복한 파리 생활'

展으로 초대합니다.


좋은 그림들에 둘러싸여 훌륭한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파리에서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입니다.


이번 특별 전시는 퐁데자르 갤러리에서 1222일부터 개최되고 있습니다.

김창열, 방혜자, 권순철, 정하민, 진유영, 이배, 손석 작가등의 그림들이 전시되며, 전시 수익금의 일부는 파리지성

청년 작가 공모전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아름답게 마련된 그림 숲으로 산책 나오셔서, 2014년 한 해를 더욱 풍성하고 행복하게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한해의 끝트머리에 서서 지난 시간의 아쉬움 보다는 새롭게 펼쳐질 2015년을 기대해 봅니다.

사랑과 나눔이 흐르는 12, 모든 재불한인들을 그림이 있는 행복으로 초대합니다 .


기쁨의 성탄절을 보내시기 바라고 새해에도 건강과 축복이 가득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파리지성 발행인 정락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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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 28일 세계일보가 발표한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으로 인해 정국이 시끄럽다.


그동안 의혹만 가득했던 정계의 그림자 실세”, “숨은 실세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쯤되면 떠오르는 속담이 하나 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어쨌든 불을 때었으니 연기가 피어오를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건 뭉근하고 애매한 연기가 아닌, 실체가 분명해졌다. 더 이상 의혹이 아닌 확인이다. 그러기에 이번 사안은 가볍지 않다.

 

일은 이랬다 : 주요 등장 인물부터 보자면, 대통령이 있고, 그 대통령을 만나려면 꼭 통해야 된다는 의미로 붙여진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있다. 이들을 비선 실세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정윤회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998년 박근혜의 정치 입문에 관여하면서 비서실장으로 있다가 2007년에 정계를 떠났다.

 

배경을 보자 : 청와대에는민정수석실 산하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는 일종의 감사실이다. 여기서 문고리 3인방의 감찰 보고서를 세계일보가 입수, 발표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민간인인 정윤회가 문고리 3인방을 주기적으로 만나 정치에 개입, 지시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올 초 증권가에 퍼졌던 김기춘 비서실장 중병설, 교체설이 정윤회의 지시였다는게 문건 내용에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씨 부부의 관계를 밝혀주는 문체부 인사 문제가 꼬리를 문다. 박 대통령이 직접 인사권을 챙겼다고 한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불러다가, 으례히 수첩을 펼치고는 문체부의 노 국장과 진 과장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는 말을 흘린다. 이는 인사 조치 시키라는 암시인 것이다.

 

노 국장과 진 과장은 승마협회의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럼 무슨 관계인가? 승마 선수인 정윤회 딸의 특혜 시비를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의 언급은 필요치 않다. 국정을 자신들의 잇권을 위해 쥐락펴락하고 있다.

 

일은 터졌다. 그리고 청와대는 관점을 문건의 언론 유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럴수밖에 없을것이다. 하지만 그건 관점을 비껴간 것이다. 그럴만한 사안이 아니다.

민간인의 국정 개입이 확인되었다. 이건 문건 유출로 시비를 가릴 일이 아니다.

 

그리고 12 7,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지도부와 당 소속 예결산특위 위원들을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찌라시에서나 나올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로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자신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민정수석실 기관에서 만든 문건을 찌라시라고 한것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문체부 인사 문제때, 청와대 대변인은 민정수석실 보고를 보고 취한 조치라고 애둘러댔다. 이것으로 보건데,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인사 조치까지 하게 한 기관의 문서를 찌라시라고 한것이다.

 

이날 대통령은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으로 비선 실세라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농담을 한다. 이에 여당 지도부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무엇이 이리 쉽고 가벼운가! 민간인의 국정 개입을 놓고 다시 한번 우롱당한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대통령이 할 소리는 아니다.

 

동서양의 모든 개념들을 정리해 볼때, 정치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을 위하는게 아닌 측근과 자신의 잇권을 위해 사람을 수단화 시켜버리는게 정치인 세상이다.

 

요즘 유독 뼛속 깊이 파고 드는 한기는 갑자기 추워진 파리 날씨 탓만은 아닐 것이다. 

 

                                                                                                                                                        <파리지성>      
 
                           Sonamou, son·âme·où?

 

소나무 작가협회 정기전그의 영혼은 어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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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마감하기 위해,

파리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국제예술공동체’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갤러리전관에서

소나무 작가 협회(회장 한홍수)의 올해 정기전(총감독 심은록, 학예연구관 이효성, 박희언, 홍일화)

125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고 있다.


소나무작가 협회 (이하, ‘소나무’)는회화, 조각, 설치, 사진, 디지털 아트,퍼포먼스,

모든 장르의예술가들 50여명이 속해있다.

이번 소나무 전시 오프닝에는한묵 화백을비롯한 파리의 주요 예술가들,

이혜민 대사, 이종수 문화원장, Jean-Yves LANGLAIS 국제예술공동체 사장(CitéInternationale des Arts),

Christophe PROVOT 이씨 레뮬리노 부시장, 선완성아시아나 항공 지점장, 김용성 기아 모토 법인장,

Ary Vilaséca 기아 IDFA 사장,

Martine Kim여사, 250여명이 넘는 작가들 및 내빈들이 이번 전시를 축하하러 모였다.


프랑스인들을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이 참석했으며, 보드 앙르봉(Baudoin Lebon) 갤러리스트를

비롯한 갤러리스트들과컬렉터들이 작가들의 작품을 유심히 보며 노트하는 모습도 눈에 띠었다.


소나무 캡쳐 2.png소나무 캡쳐 3.png


이번 전시의 불어 제목인 « son·âme·où? »는 소나무(sonamou)라는 불어 발음과 

비슷한언어유희 «그의 영혼(마음)은어디에? »라는 의미다.

그의 영혼 혹은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여기서 그의 영혼이란,

소나무 작가들의 마음, 관람객들의 감성, 특히예술의 영혼을 의미한다.

예술의 영혼은 크게 세 곳에서 발견된다:


타자’()들 사이에서(1층 전시실 : 1, 2, 3),

’() 혹은지구상 위에서(2층전시실 : 4, 5),

하늘’()혹은우주에서(3층전시실 : 6, 7).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회화, 설치, 비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초상화들이나

몸의 일부가 그려져 있다.


1층의 주제는 사람으로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된다.

마치 거리나 시장에서 온갖 다양한사람들이 신분이나나이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서로 섞여 있는 모습이 재현되었다.


네오-팝아트적인얼굴, 모던 혹은 포스트 모던한 얼굴, 추상적인 몸, 큰 화폭을 가득 채운 육감적인 입술, 헐벗은 등,세상의 고민을 온통 짊어진 듯한 얼굴, 등이 보인다.

20세기의관심의 초점이었던 타자다양성의 문제가 21세기 들어서면서 갑자기 논외가 되었다.

타자가 사라진 것일까 ? 그리고 타자가 거주하던 외부도 없어진 것일까?’


모던 혹은 포스트 모던한 분위기의 얼굴작품들로부터, 권순철 작품의 고난의 얼굴을 거쳐

이를 극복한듯한 손석 작품의 무념 무상 얼굴 사이로 많은다른 얼굴들과 몸이 오가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타자의 얼굴을 상기시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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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의 주제는 혹은 지구 2개의 전시실(4실과 5)로 이뤄졌다.

4실에는 자연과 도시의 모습이 상징적 혹은 추상적으로 재현되었다.

5실에는 서로다른 6개 작품 속에 있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에 맞추어 일직선으로 배치되었다.

이일직선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이기도, 지하철 역의 긴 통로 같기도,

지구와우주의 경계선 같기도 혹은유한과 무한의 경계선에서 진리()를 찾고있는 한 관람객의

먼 시선일 수도 있다.


이는 또한 하늘과 땅(초월성과현실성, 숭고함과 비판), 디지털과 아날로그, 자연과 도시,

특히 예술과 현실적인 삶 사이에서 늘 방황해야 하는 예술가의길()이기도 하다.


 3(6실과 7)으로올라가면 작가들이 표현하는 다양한 하늘혹은 우주의 모습이 보인다.

현대미술의 가장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는, 지금까지 중요시 여겨왔던 숭고함과 초월성의

예술적 아우라가 점점 빛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현시대는 미술시장의 가격이 예술의 기준이 되어가고, 예술작품이 화폐가치를 대변하며

상품화되는 ‘예술가의 몰락’과 ‘예술의 종말’의 시대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 하늘이 아프다 ».


여기서 하늘이란 우주의 깊이, 예술적 이상과 숭고, 또한 은폐와 탈은폐의 진리게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술적 이상과 숭고와진리를 찾는 모습이 3층에서는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6실에는 빛이 있는 푸른 하늘을 형상화한 밝고, 정적이며 고양된 느낌의 작품들이걸려있다.

그리고 마지막 제7실에는 밤의 우주의 역동성을 기하학적으로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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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각층에서 이번 전시의 커다란 성공에 대해 축하 전언을 보내오고 있다.


이번전시가 이처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선은 소나무 작가들의 작품이 훌륭했던 것이   첫번째이자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소나무 작가들의 도움이 컸다. 한홍수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수고와 노력, 신입회원들의 봉사, 임원도 신입회원도아니지만 전시 준비 첫날부터 오프닝 날까지 묵묵히 도와주었던 윤혜성 작가와 이영인 작가, 특히 이번 전시의각 층의 학예연구관이었던 이효성, 박희언, 홍일화 작가들의 도움은 각별했다.


무엇보다 Le Ma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일화 작가는 처남의 갑작스런 서거로상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가지 않고, 어린 딸과함께 파리로 올라왔다.

그는 한편으로는 아이를 돌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시를 도와야 했던 각별히 어려웠던상황이었음에도 전력으로 전시를 돕다가 막상 베르니싸쥬를 마치며 함께 단체사진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외에도 간식을 사오거나, 도움을 주기 위해 전시 준비 기간 동안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로 도움이필요한지 물어보거나 격려하는 작가들 등, 이처럼 많은 작가들의 헌신과 봉사는 소나무가 회원들 간의 끈끈한정()과 단단한유대관계를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소나무 회원들간의 우정과 교류를 느끼며, 다음 정기전부터는 아르스날 당시의 전통을 되살리며, 외부와의 교류의 역사를다시재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라고 본다.


소나무협회의 작가들뿐만아니라, 아르스날 당시 함께 작업했던 외국작가들, 소나무와 상관없이활동을 해온 재불한인작가들과 그리고 유럽, 아프리카, 등의 작가들과 함께 전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욱이 파리라는 도시는 예술의 도시라는 명성은 잃어가고 있지만, 아직은이러한 국제적인 전시가 조금의 노력으로도 가능한 매력적인 « 예술가들의 도시 »이기 때문이다. 

(파리지성/심은록sim.eunlog@gmail.com /모든 사진은 소나무작가협회에서 제공: Association des Artistes SONAMOU, photo: Woojung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