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 행정법원(Conseil d'État)419일 시민권(국적) 수여식에서 당국자(représentant de l'État)들과 악수를 거부한 알제리계 무슬림(이슬람교도) 여성(Algérienne)에 대한 시민권(귀하 /NATURALISATION) 불허(REFUS DE LA NATIONALITÉ FRANÇAISE, NATURALISATION) 결정이 타당하다고 판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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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발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알제리계 여성은 지난 2016 6월 프랑스 동남부 이제르(Isère) 주에서 열린 시민권 수여식에서 종교적 신념(« convictions religieuses »)을 이유로 고위 당국자, 지역 정치인(secrétaire général de la Préfecture de l’Isère, élu d’une commune du département)과 악수를 거부했다. 이 여성은 2010년 프랑스 남성과 결혼해 배우자 신분으로 프랑스 국적(Nationalité Française, naturalisation, 귀하())을 신청한 상태였다. 

프랑스 정부는 « 이 여성의 행동은 프랑스 사회의 일원으로 동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프랑스 국적 배우자에 대한 시민권(국적) 부여를 반대하기 위해 민법(Code civil)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민법은 « (프랑스) 정부는2년 내에 (프랑스인의) 외국인 배우자가 프랑스 국적 취득에 있어 언어적 사유 외에 불만 또는 (프랑스 사회에) 동화됨에 있어 결격 사유나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 반대할 수 있다 » 고 명시한다.

이 여성은 정부가 시민권 불허를 결정하자 20174« 공권력 남용 (abus de pouvoir)» 이라며 법정 다툼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와 관련한 항고심을 최종적으로 다루는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Conseil d'État)« 정부가 법을 부적절하게 적용했다고 볼 수 없다 » 고 판시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2011년 공공장소에서 눈만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이슬람식 복장인 니캅(niqab)이나 눈 부위까지 망사로 덮어 몸 전체를 가리는 부뤼카(burka)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후 머리에만 쓰는 스카프인 히잡(hijab, voile) 착용 금지도 거론되는 등 무슬림 여성들의 이슬람 전통복장을 두고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슬람식 전통 복장 착용 규제와 관련해 국가 정체성 차원이 아닌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프랑스 가톨릭교회 연합회는 « 프랑스는 이슬람 국가들이 자국 내 소수인 가톨릭 신자들에게 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프랑스 내 무슬림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 아내에게 이슬람 전통 복장 착용 강요한 남성에게 프랑스 시민권 발급 거부 첫 사례*

- ‘남녀 평등세속주의 원칙에 위배 등프랑스적 가치와 양립할 수 없어…-

지난 2010년 자신의 아내에게 이슬람 전통 복장 착용을 강요한 남성에게 시민권(프랑스 국적) 발급이 거부됐다. 이는 당시 프랑스 법무부가 아내에게 복장을 강요하는 남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하는 발표를 한 후시민권 발급 불허 첫 사례로 꼽힌다. 모로코 출신의 이 남성은 당시 프랑스 국적의 여성과 결혼해 외국인 배우자로서 프랑스 국적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게 니캅을 착용하고만 외출할 것을 강요한 사실이 확인 되면서,‘남녀 평등세속주의 원칙에 위배, 프랑스가 추구하는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되 국적 신청이 거부되었다. 이 남성는 평소에도 여성과의 악수를 거부하고 집안에서도 딸과 아들이 한 공간에 있지 못하게 하는 등 극단적인 여성차별과 문화 부적응의 행태를 보여 왔다고 알려졌다. 결국, 이 남성의 시민권 부여 문제를 판단해야 하는 법원은 그가 프랑스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기에는부적합한 사람이라고 판단하여 시민권발급을 거부했다.


< 파리지성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 조기 의무교육 제도화를 통한 학업 평등 목적 VS 아동 감성-인식 미숙에 따른 역효과 큰 우려 - 

20199월 부터 프랑스 어린이의 취학연령이 만 3세로 변경된다. 현재 학교 의무 입학 연령은 만6세다. 이렇게 되면 유치원(Ecole maternelle, 3,4,5)부터 의무교육이 이루어진다. 3세는 유럽(EU)에서 가장 어린 취학연령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의무교육 연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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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Ecole maternelle) 그랑드섹션(grande section, 5-6)수업 장면(2017 3 30). 코르베일-에손(Corbeil-Essonnes (91))지역의 생-스피르(Saint-Spire)재단, 생뜨-마리(Sainte-Marie) 학교. [출저 : La Croix]


엠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은 327일 교육 관련 콘퍼런스(Assises de lécole primaire,초등교육 관계자 총회)에 참석해 초등교육 정책 개편 계획을 발표하며 « 빈곤층 자녀의 이른 진학을 보장해 교육 불평등을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 »고 밝혔다. 그는 « 프랑스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과 해외에 거주하는 학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학교에 덜 보내는 것 같다. 2019년부터 의무화될 경우 우리는 이런 용납할 수 없는 격차를 고칠 수 있다 »고 설명했다. 이미 만 3세 아동부터 국가에서 지원하는 프랑스는 현재 만 3세 아동 98%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르몽드 등에 따르면 만 3세 아동의 입학률이 파리는 93%에 달하지만. 코르시카는 87%, 프랑스령 해외 영토는 70%로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 생활 수준에 따라 교육의 불평등이 야기된다는 마크롱 대통령 주장에 근거가 되는 조사 결과다. 따라서, 이번 프랑스의 3세부터 16세까지 13년의 장기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가장 커다란 목표는 기회균등(학업평등)이다.


이 조치는 특히 부모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프랑스령 해외영토와 일부 빈곤지역 등에서의교육의 평등화를 실현하려는상징적 개혁조치의 일환으로학교를진정한 평등의 장소로 만들려는 마크롱 대통령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는 평가다. 사실, 프랑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3세를 넘었음에도 유치원에 가지 않는 아이는 프랑스 내 2-3만 명가량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 97.6%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아동의 감성-인식 미숙해 오히려 역효과 클 것이라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엘리제궁은 이번 조치에 대해 « 유치원은 더 이상 (아이들을 보살피는) 보육의 형태가 아닌 언어 습득과 아이 발달에 초점을 맞춘 (교육에 초점을 맞춰 학습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실제 학교로 운용될 것 »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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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re collège souhaite accueillir 30 élèves
dans la section internationale coréenne cette année”


Q : Pour la première fois, une section internationale coréenne s’ouvre à la rentrée 2018/2019 dans un collège public français. D’où vient cette initiative ? 
Le projet a été démarré en 2015. Le gouvernement français a souhaité créer plusieurs sections internationales à Courbevoie dans le quartier d’affaires de la Défense. C’était la volonté du Premier ministre et du Ministère de l’Education nationale ainsi que du Président de la région de l’Ile de France et du Président du Département des Hauts de Seine . D’ailleurs, après le Brexit, certaines entreprises ont souhaité se réimplanter sur le quartier de la Défense et les sections internationales dans plusieurs écoles de Courbevoie répondent ainsi aux besoins des familles qui reviennent s’installer en France. Nous étions aussi dans le cadre du 130e anniversaire des relations diplomatiques France-Corée. Tout cela s’est conjugué. 

Le collège Les Bruyères a eu l’idée originale de proposer une nouvelle langue aux élèves et l’opportunité d’ouvrir la section internationale coréenne en partenariat avec le Ministère de l’Education nationale de Corée et de l’Ambassade de Corée en France. Nous sommes les seuls en France avec un collège Vauban à Strasbourg à proposer une section internationale coréenne. C’est tout nouveau ! 


Q :  Quelles sont les conditions d’admission dans la section internationale coréenne ? 
Peu importe la nationalité, coréenne ou française, ou bien binationale. Le point essentiel, c’est que l’élève sache parler et maîtriser les deux langues, français et coréen. 

Le recrutement des élèves se fait sur dossier. Ils doivent dire s’ils sont bilingues et les parents aussi, puis s’ils ont effectué des séjours à l’étranger etc… Nous demandons aussi une lettre de motivation à rédiger par l’élève en français et en coréen. Si la candidature est retenue, il passera un test écrit et un entretien oral avec les professeurs coréens du collège pour évaluer leur niveau de langue. On doit s’assurer qu’il n’y aura pas de difficulté après. Cette année, nous prévoyons d’accueillir une trentaine d’élèves français et coréens sur notre collè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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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Comment se dérouleront les enseignements ? 
Un élève de la section internationale coréenne est inscrit, tout d’abord, dans un cursus classique comme tous les autres élèves, c’est-à-dire qu’il doit suivre 26h des cours hebdomadaires en français. Mais il a des cours supplémentaires en coréen, en parallèle. Il a 3h de langue coréenne, 2h de culture coréenne, ainsi que 2h en mathématiques par semaine en coréen. 

Le programme de mathématiques sera assuré par M. Lee Seung-woo qui exerçait le métier de professeur en Corée et qui a été recruté et envoyé ici pour 3 ans par le Ministère de l’Education nationale coréenne. Puis, Madame Kim So-hee, habitant en France depuis 20 ans, très expérimentée dans l’enseignement du coréen aux enfants. Elle a été recrutée par l’Ambassade de Corée en France. C’est elle qui assurera les cours de langue et de culture coréenne. 


Q : Y a-t-il des droits de scolarité ?
Nous sommes dans le secteur public donc c’est totalement gratuit ! C’est entièrement financé par les Ministères de l’Education nationale française et coréenne. Les droits de scolarité et les professeurs sont rémunérés par l’Etat. Notre objectif est d’offrir à des élèves bilingues, un environnement pour suivre des enseignements en français et en coréen, quelques soient leurs conditions sociales ou professionnelles. Il n’y a pas de sélection par l’argent ! 


Q : Quel diplôme obtient-on à l’issue du collège ? 
A l’issue du collège en section internationale coréenne de la 6ème à la 3ème, les élèves peuvent se présenter à la mention « Série Collège, Option Internationale » du Diplôme National du Brevet (DNB).  Puis, ils peuvent ainsi passer au baccalauréat, de façon à obtenir l’Option Internationale du Baccalauréat (OIB). Les diplômes sont reconnus à l’étranger et ils donneront l’accès aux études supérieurs en Corée plus facilement par rapport au Baccalauréat général. 


Q : Comment se déplacer à votre collège ? 
Pour les élèves parisiens, la gare de Bécon les Bruyères est à deux pas du collège. Depuis la Gare Saint Lazare, vous pouvez prendre un train sur la ligne L qui vous y amène en 15 minutes. Le trajet peut s’effectuer en une demi-heure. Et bien sûr, il y a des bus depuis la Déf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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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Le dernier mot ! 
Le collège Les Bruyères est un grand collège ayant 650 élèves répartis en 23 classes avec d’excellents taux de réussite aux examens (98 à 100 % de réussite au brevet des collèges). Depuis l’an dernier, nous avons commencé les cours d’initiation au coréen, les ateliers de découverte (K-pop, calligraphie, cuisine coréenne etc) auprès de tous les élèves du collège en partenariat avec l’association AFELACC. Ils sont très contents de cette ouverture. D’ailleurs, cela me donne envie de visiter la Corée et je ne vais pas tarder à y aller !!! 


Si vous voulez en savoir plus, venez assister aux portes ouvertes organisées par la direction du collège, le vendredi 4 mai à 18h. Il faudra confirmer votre présence par téléphone (01 49 05 02 30 ) ou par mail à ce.0922523t@ac-versailles.fr 

Collège Les Bruyères
6, rue Volta 92400 Courbevoie

Recueilli par Yoon Park 
kfcmnetwo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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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27일 오전 930,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앞에서 마주 걸어오는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과 뜨거운 손을 맞잡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어서 오세요. 오시는 데 힘들지 않았습니까?”

, 정말 마음 설렘이 그치지 않아요~”

 

이렇게 감격스러운 장면을 전세계에 보여주며 남북의 최고 지도자가 10년여 만에 다시 만난 것입니다.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했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길을 천명함으로써 한반도에 전개될 평화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당장 북핵시설의 폐기와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생기고 남북 철도 연결 등 교류 협력이 이루어집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남 확성기 철거에 들어갔으며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 3자 또는 남···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5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미 수교가 곧 이루어지면 평양가서 냉면 한그릇 먹고 오는 것에 문제가 없을 듯 싶습니다. 그야말로 대 반전입니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쉽에 문재인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끓임없이 평화와 대화의 길을 모색해 온 결과입니다.그리고 김 위원장의 담대한 용기와 결단으로 핵문제가 해결점에 온 것입니다.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고, 핵실험 시설과 관련해서는 기존 시설 외에도 더 크고 튼튼한 두 개의 핵실험장도 5월 중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제 곧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관계는 빠르게 발전할 것입니다. 남북 철도 연결 등 경제 교류와 협력의 강화는 우리 경제의 난기류를 해소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담대한 용기,솔직담백한 태도, 파격적이고 수수한 언행, 겸손한 자세 등이 호감을 얻고 있습니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의 평화의 집이나 자유의 집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분단과 북미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미국과 북한이 최초의 정상회담을 개최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을 합의해 발표한다면 세계사에 큰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파리지성 편집부

 
<파리팡세 Paris Penseur - 정택영 칼럼-5>

“SNS시대와 손글씨”
The era of SNS and the hand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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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이 말은 국제선 승무원 "미즈키 아키코"가 쓴 책명이다. 일등석에 탑승한 사람들은 남에게 펜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필기구를 지니고 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First class의 승객들의 행동과 습관을 면밀히 관찰해보니 그들은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고, 모두 자신만의 필기구를 지니고 다닌다는 것이다. 메모는 최강의 성공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하는 습관은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록. 보존 해주고 그 정확성으로 상대방에게 신뢰를 준다. 그만큼 때를 놓치지 않는 기록과 메모의 습관은 우리 삶을 더욱 알차고 성공의 길로 인도하는 도구임에 분명하다. 

디지털시대를 맞은 오늘날, 사람들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고 날이 갈수록 진화해가는 첨단 디지털기기들에 의존한 채 메모하는 습관을 많이 상실해 가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정해진 약속 일정이나 순간에 떠오른 아이디어도 머리 속에 기억한다고 했다가도 조금 지나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요즘의 현대풍속도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가능했던 암기능력이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거의 대부분의 데이터들을 스마트폰에 저장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열어 확인하는 생활습관으로 인해 스마트폰을 열어보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과거에는 손글씨로 모든 것을 기록하고 보존해왔다. 손글씨 속에는 그 사람의 심성과 특징까지 고스란히 배어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글쓴이의 성품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손글씨란 말미에 ‘씨’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말에 ‘-씨’가 붙는 말이 여러 개 있다. ‘마음씨, 말씨, 글씨, 솜씨’ 등이다. ‘씨’는 언어학적으로 ‘나타내는 것’ 또는 '씨氏' 라는 문자 속에는 "위하여 얻는다." 라는 뜻이 들어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은 말을 ‘삼가자’는 뜻이다. 생각이 말을 낳고 행동을 낳게 되므로 ‘말의 씨’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말씨’와 ‘글씨’는 매우 중요하다. 말씨는 ‘말투’와는 느낌이 다르다. 말씨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말투는 평소 습관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고운 말씨를 쓰는 것, 다른 사람에게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말씨와 관계된다. 글씨와 ‘글투’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글씨는 글의 모양을 나타내는 반면 글투는 글을 쓰는 태도나 습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시험지나 프린트지는 가리방 がりばん(版)을 사용해 인쇄를 하였는데 이것은 등사판 또는 원지를 긁는 철판 위에 기름종이를 올려놓고 철필로 글씨를 쓴 다음 실크판 위에 고정해놓고 롤러로 밀어 잉크가 철필로 쓴 글씨 아래의 종이로 새어 나오게 하는 인쇄기법의 하나였다. 그 당시에는 글씨를 잘 쓰는 필경사가 우대를 받는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날 개인이 프린터를 가질 만큼 흔해빠진 디지털 프린팅 기술의 발달로 인해 필경사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글씨 쓰는 일이 적어지고 있다.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글을 쓰고, 또 보내고는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담고 있는 ‘글씨’는 따뜻하고 정성이 느껴진다. 역설적으로 머지않아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우대 받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마음씨’ 역시 중요하다. 우리는 ‘마음씨가 곱다’‘마음씨가 착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모두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마음씨를 알 수 있는 것은 행동을 통해서이다. 외모보다 마음씨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 속에 ‘씨’가 붙은 낱말들을 통해 어휘의 풍부함과 독창성 그리고 다양성을 느끼게 한다.

소셜네트워크(SNS)시대라고도 불리는 오늘날의 사회는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또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이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SNS를 이용하고 있고 또한 이를 통해 동시다발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을 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중에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는 '친구들은 어떤 전공과 과목을 공부할까? 라는 궁금증으로 온라인상에서 친구들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첫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친구들의 전공과목을 알 수 있는 코스 매치course match, 학내 여학생들의 '얼짱' 프로그램인 ‘페이스 매쉬 face mash’가 바로 페이스북의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도 SNS를 통해 친구가 될 수 있고 또 SNS를 통해 그 사람과 연락을 할 수 있지만, SNS가 가지는 많은 장점 외에 단점 역시 존재한다. 오프라인과는 달리 SNS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 모든 사람과 인맥과 관계를 형성하고, 지식습득과 정보수집의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빠르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신속성, 이동성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빠른 정보전달이 가능하기에 1인 미디어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개인정보 노출과 악용은 SNS의 문제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불분명한 정보의 확산으로 SNS에서 퍼진 소문은 순식간에 확산이 되어 정보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 또한 문제점 중 하나이다.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작은 루머는 결국 침소봉대해져서 남의 인격을 손상시키고 삶을 파괴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SNS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발전시킨다면 우리 생활에 밀접한 연관을 맺는 도구가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이제 대중들에게 보편화된 시대현상 속에서 이를 적절히 활용하고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나가야만 한다. 또한 글자를 입력하는 습관에서 필기구로 직접 메모를 쓰는 손글씨를 써나가는 습관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만년필을 지니고 다니며 어디서든 만년필로 쓰고 서명을 해주기도 한다. 교육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만년필로 글씨를 쓸 때의 촉감이 뇌로 전달되어 기억력이나 암기력을 향상시키고 감성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볼 때 손글씨를 써나가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실행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제에 만년필을 선물하거나 하나씩 사 쓰는 것도 메마른 이 첨단 디지털 시대에 절실한 감성 복원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2018.  5
정택영 (화가/ 파리팡세 칼럼니스트)

 
유럽 4개국 성지 자전거 순례팀(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첫 기착지로 파리에 도착하다.
Bicycle pilgrimage in Europe - France~Spain~Portugal~Italy; 
Camino de Santiago and Francesco'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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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바이크 라이딩 동호회 결성 배경 ㅡ
한국 ROTC (Reserve Officer Training Corps 예비역 장교) 15기 동문들의 자전거동호회(굴렁쇠)가 결성되어 시작된 바이크 라이딩 동호회이다. 이들은 1953~54년생들로 77년 대학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 후 전후방 각지에서 장교로 근무한 후 중위로 전역한 뒤 중동건설과 오퍼상, 국내 대기업에 취업해 철강.조선.중화학 공업의 역군들로 한국경제를 일으킨 베이비붐어 세대였다. 그들이 은퇴한 후, 제2의 인생을 다짐하는 2017년 임관40주년 행사를 가졌는데 "우정40년 그리고 동행"이란 슬로건으로 성대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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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건강과 취미로 자전거 동호회 등 다양한 모임활동ㅡ
굴렁쇠동호회는 32명의 회원으로, 매주 매월 정기 라이딩은 물론 국토종주 자전거길, 4대강 자전거길, 제주도 환상 자전거길를 완주하여 정부의 행.안부로부터 완주증명서와 기념메달을 수령한 바 있고, 이제 자전거로 갈곳이 없으므로 테마여행을 시작, 2017년은 역사탐방 등으로 6.25전쟁 격전지와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Korean 103 Saints)  및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한 복자 124위 (Korean 124 Blesseds)의 생가지.유허지에 조성된 성지와 유적지 순례길 약6000km 완주 후 그 경로를 gpx파일로 만들어 홈페이지( http://caminokorea.org)에 후기와 함께 남겨 다른 사람들이 GPS 트레커 어플에 gpx파일을 다운로드 하여 쉽게 성지순례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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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두번째 버킷 리스트 도전ㅡ
동호회원 중 박두현씨와 정황섭씨가 지난 4월 26일 파리에 도착해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문 중 정택영 화백과, 무역회사 대표이자 조국평화통일위원단 회장인 진 회장 그리고 파리지성 발행인인 정락석 대표들의 환영식을 파리 15구 한인식당에서 조촐하게 가졌다. 이들 일행은 스페인~ 포르투칼 성 야고보 순례길(1500km) 및 이태리 성 아시스 프란치스코 순례길(800km)자전거로 도전 중에 있다. 이들의 자전거 성지순례 루트를 보면 ;
4월25일~6월27일까지 빨간색 라인을 자전거로 2,300km, 몽파르나스~루르드~생장은 TGV등 열차로 이동, 피레네 산맥과 파로돈 고개를 넘어 산티아고에서 성야고보 유해 엎에서 미사룰 올리고 땅끝 마을 피스테러~ 묵시아까지 스페인길 1,000km를 자전거로 달린다.

이후 포르투갈 포르토~파티마~신트라~리스보아 구간은 일부 부분적으로 열차와 버스를 이용하며, 리스본에서 비행기로 나폴리로 건너가 폼페이~소렌토~아말피~살레리노에서 열차로 로마와 바티칸 성지순례를 마친후 아시스 성프란치스코 순례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이후 아시스~피사~파렌체~밀라노 특히 토리노와 안시는 살레시오 성돈보스코 성지로 살레시오고교를 졸업한 순례자가 있어서 툭별한 의미가 크다. 안시에서 열차로 리옹으로 이동 후 Clelles-Mens로 기차로 이동하여 1800고도의 La Salette성모 발현지를 자전거로 올라간다. 이후는 열차로 이동 한국 천주교 역사에 가장 영향이 큰 파리 외방선교회 등 성지순례를 마친 후 투어를 이용 노르망디.몽생미셀을 끝으로 62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귀국 후에는 역시 순례코스의 gpx 경로 파일과 후기를 홈피에 남길 예정이다.

<기사 참조>

 

박두현씨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nselum.park

 

        카카오스토리 https://story.kakao.com/anselum/IX5gi3ag1hA
 

- 사우디 왕세자, 루브르(Louvre) 박물관 전시 들라크르와 명작 감상 화제-

파리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에서는3 29일부터 7 23일까지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르와(Ferdinand-Victor-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63, 화가 작고 100주년 해를 기념해 파리에 개최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로 들라크르와의 걸작 18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시대 순으로 배열된 이번 회고전에서는 들라크르와의 생애 말년에 그린 풍경화 등 그동안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도 공개돼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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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르와(Eugène Delacroix),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 1830 , 루브르 박물관, 파리 : 들라크르와가 프랑스 7월 혁명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이 작품은, 프랑스의 우표와 지폐에도 사용됐으며, 영국의 록 밴드콜드플레이의 앨범 재킷으로도 쓰였다.

고전적이고 아카데믹한 화풍을 혐오하고, (개인이 느낀) 감정에 충실한 색과 형태를 중시한 작품 경향으로 낭만주의의 대표주자로 불리지만, 정작 들라크르와 본인은 자신을고전적인 화가라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들라크르와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당대 그의 예술적 천재성이나 열정을 알아본 유일한 사람은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시인, « 악의 꽃(Les Fleurs du Mal,1857) » 으로 유명한,‘샤를 보들레르 (Charles-Pierre Baudelaire, 1821~1867)’. 그는 « 들라크루아는 열정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냉정하게 열정을 표현한 화가였다. » 고 평했다.


왜 사우디 왕세자의들라크르와 명작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감상이 화제가 되는가 ?


프랑스를 공식 방문한 사우디(Arabie Saoudite) 왕세자 모함메드 벤 살마느(Mohammed ben Salmane, 일명 « MBS ») 왕세자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19세기 거장 들라크르와 회고전을 방문해 작품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외젠 들라크르와, Eugène Delacroix , 1830)을 관람한 사실이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48일 엠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세상일이 한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연일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압박했고 북한의 지도자는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어서 정말 저러다가 미사일이라도 한방 오고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요즘은 이러다가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아직 아무것도 결론지어진 것은 없지만 북한과 미국의 회담은 분명 남북회담보다 진일보한 결과를 내 놓을 것 같다. 다만 북한이 완전한 체제 개방으로 갈 수 없어 보이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안전장치를 하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일정한 수분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반공교육에 깊이 젖은 사람들은 작금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쉽게 받아드리지 못하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이제 서른을 조금 넘긴 북한의 지도자는 너무 과격한 인상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남북한 영수 회담에서 보여준 그의 유연성은 매우 놀랍다. 이면에 무슨 생각과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젊고 똑똑하다는 것에 기대를 걸어본다.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끄는 것에도 그에게는 위험한 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세계의 고립 속에 배고픈 백성의 군주가 된다고 하는 것도 결코 길게 갈 수 없는 길이다.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죽어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그런 결말을 보여주었다. 그런 저런 생각 끝에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라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고 춤을 추고 싶은 일이다.

 

종전 65주년이 지나가면서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기다림에 지쳤고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남북한 경제협력이나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어도 이산가족들이나 실향민들은 마음이 조급하다. 그러나 이러한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가? 벌써부터 파리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갈 것을 기대에 부풀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북한 지도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평화와 통일의 문을 열기만 한다면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러도 좋다. 오래전 서울 삼각산에 밤에 기도를 하러 종종 올라갔었다. 그때 그 산을 오르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잠을 안자고 나와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에 밤새 산이 울었다. 이제 그들의 기도를 전능자가 응답하시는가?

 

 퐁뇌프 김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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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 quelle poignée de main. Le 27 avril dernier, Moon Jae-in de Corée du Sud et Kim Jong-un de Corée du Nord

Ont symboliquement traversé et retraversé la frontière la main dans la main avant de déclarer la fin de la guerre entre leurs deux pays, séparés après la guerre de Corée. Les deux pays sont techniquement en guerre depuis et les familles vivant de l’un ou de l’autre de la frontière ont été séparées. Les liens unissant un seul et même pays ont lentement été gelés par la méconnaissance mutuelle et le ressentiment. L’idée de réunification est restée là, bien présente, poussée par les gouvernements de Kim Dae-jung et Roo Moo-hyun, puis mise au rebut par Lee Myung-bak et Park Geun-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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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commence maintenant

 

Après la détente amorcée par les Jeux Olympiques, où la présence de Kim Yo-jong, la petit soeur de Kim Jong-un avait été très commentée, il s’agit d’une déclaration de la plus grande importance symbolique et politique, mais qui ne doit pas cacher les nombreuses zones d’ombres qui entourent les mois à venir : la paix, pourquoi et sous quelles conditions, avec quelle feuille de route ? Comme tout processus de cet ampleur, c’est finalement maintenant que le plus compliqué commence et il serait présomptueux de de pousser plus loin les suppositions à ce stade. Entre paix, réunion, et réunification, il y a à chaque fois des pas de géant, conditionnés par nombre de facteurs extérie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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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 documenter

 

Tenons-nous-en pour l’heure à l’énormité du symbole, et à l’émotion induite. Paris Jisung avait consacré un portrait à Eva John, auteur de Rencontre entre les deux Corée : l’impossible réunification ?”, portrait de sud et nord-coréens qui recueillait au fil de l’eau leur sentiment sur l’avenir des deux pays, que nous vous recommandons chaudement. Dans notre numéro largement consacré aux Jeux Olympiques d’hiver, nous avions partagé avec vous deux autres références : Le monde selon Kim Jong-un” de Juliette Morillot et Dorian Malovic et Les trois Corées” de Patrick Maurus. Trois opportunités de qualité de reconstituer le puzzle complexe qu’est la Corée du Nord et de sa dynamique avec le S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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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quasi-totalité des sud-Coréens jugent positifs les résultats du sommet intercoréen

La quasi-totalité des sud-Coréens (94,1%) estiment que les résultats du sommet intercoréen du 27 avril sont positifs. C’est ce qui ressort d’un sondage réalisé auprès de 1 077 personnes par un institut de recherche de KBS, trois jours après cette rencontre inédite et historique.


Concrètement, c’est l’engagement de déclarer cette année la fin de la guerre de Corée qui a été considéré comme le résultat le plus important. Viennent ensuite la dénucléarisation complète de la péninsule, l’atténuation des tensions militaires et la cessation de tout acte hostile. A la question de savoir si le Nord renonce à son arsenal nucléaire et balistique, comme il l’a promis dans la déclaration de Panmunjom, signée à l’issue de la rencontre, plus de sept personnes interrogées sur dix ont donné une réponse positive.

Quant aux moyens pour mettre en oeuvre le développement des relations intercoréennes, ils sont les plus nombreux à parler de l’instauration de la confiance militaire. Les autres projets cités concernent la coopération économique, les échanges de visite entre les familles séparées par la guerre de part et d’autre du 38e parallèle et les pourparlers à haut niveau entre le Nord et le Sud. De même, huit sud-Coréens sur dix ont déclaré que leur image de Kim Jong-un avait positivement changé après le sommet. Ce changement était le plus important chez les quadragénaires. 

 

"Black Mapping" de Lee Bae

Du 17 mars au 26 mai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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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Perrotin

Du grand artiste Lee Bae, on a surtout vu depuis quelques années ses tableaux en noir et blanc-crème réalisés notamment avec du médium acrylique. Mais on connaît moins ses œuvres de la fin des années 1990 - début des années 2000, qui à une époque où il était moins reconnu qu’aujourd’hui, ont été peu montrées, voire jamais pour certaines. Or, ces réalisations que l’on pourrait regrouper sous l’appellation « période charbon de bois », au-delà de leur formidable puissance, correspondent à un moment essentiel de la carrière de l’artiste. Elles rappellent en effet son arrivée à Paris qui marque un tournant décisif dans sa démarche avec la découverte et l’utilisation d’un matériau nouveau pour lui à l’époque : le charbon de bois... Lee Bae l’a souvent répété : dès son arrivée en France en 1990, plusieurs raisons l’ont conduit à utiliser du charbon de bois et en premier lieu le fait que ce charbon lui rappelait ses origines, l’univers de l’encre de Chine, la calligraphie, et le profond ancrage de ce matériau dans la tradition coréenne avec sa force symbolique et sa charge poétique...

Les œuvres présentées dans le cadre de cette exposition mettent en avant une quête spirituelle et une dimension du temps omniprésentes dans la démarche de Lee Bae : le temps inhérent à l’histoire même du charbon de bois et à la manière dont il le traite. On ne voit alors plus que ces corps noirs d’une extrême tension, d’une formidable énergie, d’une incroyable densité qui attirent et aimantent immanquablement notre regard. Comme des puits sans fond où chacun va trouver la profondeur qu’il veut bien voir et le vertige qu’il est prêt à ressentir...

Extrait du communiqué de presse réalisé

par Henri-François Debailleux


 

GALERIE PERROTIN
 76, rue de Turenne
75003 PARIS 
Mardi-samedi, 11h-19h

 


 

 

"Foyers" de Yoo Hye-Sook

Du 3 mai au 16 jui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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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s titre (diptyque) - acrylique et graphite sur toile - 73 x 60 cm X 2 - 2018

 

 

 

Vous n’y êtes jamais allé et vous n’irez jamais, mais vous connaissez cet endroit alors qu’il n’existe pas. Contradictoire, oui et non.

Dans ses nouvelles œuvres, Yoo Hye-Sook propose un espace, un endroit qu’elle connaît sans le connaître, un lieu qui n’en est pas un, mais qui fait réagir. Il s’agit pour elle de l’exploration d’un indéfini, née du simple plaisir d’entendre et de voir le crayon passer sur la toile. Un espace, fruit de la rencontre des matières : l’artiste pose d’abord des fonds mats d’acrylique noir sur lesquels des milliers de traits de mine de plomb font apparaître des surfaces en surface qui se transforment petit à petit en perspectives pour faire exister le lieu par un mur, une ouverture, une pièce que l’on devine, un angle anonyme. Or, cette vision rebascule aussitôt vers celle d’une composition géométrique abstraite sans nom car la lumière environnante interagit sans arrêt avec l’œuvre et joue des tours à la perception ; une vision apparaît puis se métamorphose. La matière brillante de la mine de plomb capte et fait se réverbérer la lumière tout en formant la luminosité qui permet aux formes géométriques de « sortir » de la surface noire.

 

 

 

Galerie Maria Lund

48, rue de Turenne 75003 Paris

Mardi-samedi, 12h-19h

 

 

"Chemins de vie"

Exposition de gravures de Lee Chul Soo

Du 25 avril au 30 mai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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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Chul Soo est certainement l’un des plus grands graveurs de Corée. Son travail est caractérisé par un style épuré et poétique, mêlant habilement image et beaux textes.

Il s’agit d’un artiste autodidacte, qui a commencé à dessiner et à peindre dans les années 1980 et s’est peu à peu fait connaître comme artiste engagé. En effet, à travers ses œuvres qui expriment souvent des critiques acérées sur la société et mettent principalement en scène la nature, les paysans et les ouvriers, Lee Chul Soo dénonce les injustices sociales et défend les valeurs de la démocratie.

Mais Lee Chul Soo est également un artiste très attaché à tout ce qui est de l’ordre du spirituel. Il s’intéresse ainsi beaucoup, surtout depuis les années 1990, au bouddhisme et à la pratique du zen dans la vie quotidienne. On retrouve d’ailleurs cette attirance dans la beauté singulière de ses œuvres dans lesquelles on perçoit une belle harmonie entre la création artistique et la spiritualité. Cette exposition réunit une soixantaine d'œuvres réalisées entre 1990 et 2017.

 

Centre Culturel Coréen

2 avenue d’Iéna 75116 Paris

lun-ven 9h30-18h ( jeudi jusqu’à 20h)

sam 14h-19h

 

 

 

 

"L’événement de la nuit" de Kim Tschang-Yeul

Du 22 mars au 3 jui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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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hapelle du Méjan accueille une grande rétrospective de l’œuvre de Kim Tschang-Yeul : une trentaine de toiles exposées aux deux étages, mais également deux cabinets à dessins, un documentaire, ainsi qu’une installation présentée pour la première fois en France.

Après avoir longtemps vécu et travaillé à Paris, Kim Tschang-Yeul ( né en 1929) vit aujourd’hui à nouveau en Corée. « Maître Kim » est l’un principaux acteurs de l’introduction de l’art contemporain coréen sur la scène internationale avec Paik Nam-June et Lee Ufan, dans les années 1960. Exposé notamment à la Galerie Nationale du Jeu de Paume en 2004, il a fait l’objet de nombreuses expositions dans les institutions internationales et aux manifestations prestigieuses consacrées à l’art contemporain.

 

Sa particularité est de peindre un motif formel récurrent : la goutte d’eau, réalisée en trompe l’œil. La goutte d’eau est comme une manie, un leitmotiv, une récurrence. La goutte est une expérience : celle physique de la pluie, de la rosée, de la tempête, de la condensation ; celle de l’intime, de la larme, de la joie ; celle de la présence au monde. D’un côté, la goutte contient l’invisible et invite notre propre inventivité à le pénétrer. De l’autre, la goutte est une loupe sur le visible prétextant notre imaginaire pour s’en extraire. Le peintre nous donne lui-même la clé visuelle de reconnaissance de ses œuvres. Il mélange, depuis le début des années 1980, calligraphie et gouttes d’eau qui apportent une nouvelle profondeur dans sa peinture, ainsi qu’un nouveau sens. Kim Tschang-Yeul sait combiner un geste conceptuel qui associe abstraction et hyperréalisme.

 

 

 

Chapelle du Méjan

Place Nina-Berberova 13200 Arles

Mercredi-dimanche, 14h-1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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