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화가 정택영 작가와의 대담 HIT: 686
작성자 : 관리자 
2018.02.07 (16:07)


파리지성(발행인 정락석)은 재불한인사의 정립과 조명을 목적으로 현재 인터뷰를 통한 재불한인역사를 파리지성의 지면을 통해 연재하고자 합니다. 이 기획은 재불한인들의 초창기 역사가 잊혀지기 전에 그리고 현재의 살아있는 뜨거운 역사의 현장이 차가워 지기 전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분들을 찾아 뵙고 그 인터뷰로 기록하고자 하는 기획으로 재불작가이신 정택영 화백의 예술세계와 삶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바쁘신 가운데도 재불한인과 한불 교류의 역사를 위한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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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서의 삶과 철학에 대해

- 모든 인간은 각자 자신의 역사를 씁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쓰여지든 그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관과 그 궤적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제 자신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제 인생의 노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많은 학자들과 현자들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젊은 시절, 인생에 대해 저에게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은 독일철학자 레싱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가치는 그가 획득한 진리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획득하기 위해 겪은 고통으로 측정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 질풍노도가 있기 마련인데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련과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깨닫는데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고난을 통해 인간은 더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으며 그를 통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역지사지의 힘이 생길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적 가치와 자세를 통해 일관된 삶을 살았고 그것이 예술가로 살아온 저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중심으로 본인 소개를 해 주시죠.

- 저의 유년기는 한국의 서정시에 나오는 정경 그대로 황무지에서 자랐습니다. 육이오 동란이 끝난 직후에 태어나 자랐던 까닭으로 저의 유년기는 흙에서 뛰놀고 실개천에서 가재와 게, 물방개를 잡으며 자라났습니다. 짙은 향토색 내음이 제 몸에 깊이 배었고 풀섶에서 뛰놀며 자랐기 때문에 자연과 친했고 자연이 곧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일곱 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는 제 옆집에 사시는 90세 되신 할아버지에게 데려가 한자를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친척 되시는 그 할아버지는 향교 교장을 지내신 분으로 한학에 조예가 깊은 분이셨고 몇 년을 드나들면서 천자문과 소학, 명심보감 등을 읽고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을 하여 서양화를 전공하게 되었고 한국의 미술계에서 여러 중책을 맡아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원을 마친 후, 바로 전국 각지의 대학을 무대로 시간강사로 시작하면서 대학교수로의 길을 걸었고 그 후 모교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힘 기울였습니다. 1986년 첫 개인전을 광화문 근처에 위치한 서울프레스센터 미술관에서 갖게 되었고 연이어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심히 펼쳐나갔고, 앞으로 이 지구촌이 국제화가 되리라는 예견을 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영어를 수학하고   국제창작미술협회를 조직해 전세계 40여 개 국의 작가들 150여 명과 교류를 하고 세미나를 개최하여 통역으로 도와가며 한국미술을 해외에 알리는데도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90년대 초 저의 아들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보내게 된 것이 파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가생활과 교수생활을 병행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작가가 걸어야 할 길이 어느 길인가를 깊이 깨닫고 2006년 대학교수 생활을 접고 파리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재불예술인총연합회를 설립하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하면서 그룹전시를 펼치고, 파리교민사회와 연계해 여러 협업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파리시나 지방의 시에서 개최하는 코리언 페스티벌에 드로잉작가로 초대되어 드로잉 퍼포먼스를 펼쳐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통해 그 위상을 알리는데 작은 일조를 해왔습니다. 또한 파리 유학생들을 모아 인문학 특강과 미술과 종교 등의 주제들을 통해 청년들의 비전을 심어주는 멘터로서의 역할도 병행해 오면서 이제 파리생활도 십 수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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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에 예술의 본질은? 예술관과 예술세계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지독한 고독과의 싸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가는 사회참여와 개인의 창작활동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예술인도 사회구성원의 하나이므로 사회활동을 통해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만 현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데 이것에 너무 경도되면 개인의 예술관이 흐트러질 수 있고 또 창작에만 몰두하게 되면 사회로부터 고립될 우려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부딪치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무엇 때문에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고 예술을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자기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카소는 우리 모두는 예술이 진리가 아님을 알고 있다. 예술은 진리를, 적어도 인간으로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를 파악하도록 가르쳐주는 일종의 거짓말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술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일종의 거짓말이란 표현이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예술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와 진리를 이해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생각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사를 통해 무수한 예술가들이 이 땅을 살아갔지만 오늘날 역사를 장식하는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술 행위가 개인적인 사변으로 일관되어 자신의 도그마에 빠지던가 아니면 인류를 대상으로 호소하고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예술만이 오래 역사에 남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의 본질은 인간의 삶에 꿈과 비전을 주고 생명의 가치와 그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미술과 문화가 폭력적이고 성적인 문제와 심리적 교란 상태를 표현한 작품들이 범람하여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이 영화나 에니메이션, 디지털 게임의 프로그레머들과 연계되어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화현상에 대해 저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명관과 가치관, 그리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고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의 작품세계의 대주제들은 생의 예찬에서 출발해 생명과 빛”, “빛의 언어등으로 전개되고 시각예술의 본질은 눈의 즐거움이 아니라 가슴의 울림이어야 한다는 저의 예술철학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조부님께서 시인으로 아는데요,

-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제가 태어난 곳은 옥천이었고 그곳에 향수시를 지으신 정지용 생가가 있습니다. 향수 시에서 상상할 수 있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저는 그곳에서 자라났습니다. 향수 시를 쓰신 정지용 시인은 저의 큰 조부님으로 청년시절 일본 도지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시고 귀국해 이화대학에서 가르치셨고 경향신문 주필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일본 교토에서 유학 당시 윤동주 선생과의 교분으로 가깝게 지내시기도 했다는 기록과 함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국문학계의 모더니스트로 인정을 받으시고 문학계에서 많은 문하생들을 길러내기도 하셨습니다. 6.25동란 때 동두천 부근 논두렁에서 전투기에 폭사하셨다는 증언을 듣기도 했음에도 당시 정부는 월북작가로 취급하면서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라서 그 후 깊은샘 출판사 박현숙 사장님의 노력으로 평양교도소를 방문해 수감자 명부에 이름이 없음을 확인한 자료를 통해 월북작가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했고 마침내 해금이 되어 조부님께서 쓰셨던 모든 시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어 출판이 되었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고 파리에 있는 L’Harmattan 아마탄 출판사를 통해 불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어 모든 사람들이 시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지만 이런 개인사적인 난관은 한 가문의 어려움 뿐만이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고통이고 아픔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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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 예술인총연합회 이야기좀 해주세요? 보람과 아쉬운점 등..

제가 파리에 정착한 이후,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던 젊은 분 다섯이 모여 저와 몇 차례 예술인들의 공동 창구의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 했고 파리에서 활동하고 계신 원로작가 30여 분들의 예총설립에 대한 동의 서명서를 보여주며 초대 회장직으로 추대하고자 한다는 제의를 받았으나 적임자가 아니라는 판단으로 몇번 고사를 하다가 수락을 하고 재불예술인총연합회를 설립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5명으로 구성된 임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설립 업무를 시작했고 마침내 2011 4월 파리 이에나 주불한국문화원에서 재불예술인총연합회(Fédération des artistes coréens en France: FACF)” 발족식을 가짐으로써 재불예술인총연합회가 설립되었고 정부기관에 예총설립에 대한 인가 (Recepisse de Declaration de CREATION de l'association FACF n W751209599 2011 4 10 )를 받고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예총 설립 후 저를 비롯한 파리거주 한국작가들과 프랑스 작가들과의 공동전시를 소르본느 수플로 갤러리에서 여는 등 한.불문화교류의 기획을 필두로 여러 기획과 행사를 펼쳐나갔고 시테 국제기숙사단지에 한국관이 없음을 애태우던 교민사회의 뜻에 동참해2011 9월 원로작가님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파리 OECD한국본부의 특별전시관에서 시테국제기숙사촌 한국관 건립을 위한 특별전을 통해 한국관 건립을 위한 예술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재불예술인의 날행사를 주불한국문화원에서 3일간 펼쳐 수백 명의 프랑스 시민들이 참여했고 한국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예총을 발족시키는데 헌신했던 중심 임원들이 각자의 생각과 서로의 이견과 마찰로 발기 임원 모두가 사퇴하기에 이르러 예총 조직을 이끌어가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오래된 미술단체들도 예총 설립에 대해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고 방관적인 태도였으며 새롭게 임원을 선출하고 협회를 이끌어가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3년 여를 유지하다가 남은 임원들마저 한국으로 귀국하는 등 실무를 담당해줄 임원이 없어지게 되어 불가불 잠정적으로 휴면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간 협회를 이끌어오면서 시테 기숙사촌 한국관 건립기금마련에 동참했던 일이나 프랑스 사회에 한국예술인들의 활동을 소개한 점 등으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반면,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파리에서의 활동을 도모해줄 예술총연합회가 존속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협회를 이끌어갈 자체 경비조달과 임원으로 봉사할 예술인을 찾기가 어려워 휴면상태에 이르게 된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뜻이 있으신 누군가가 이 협회를 다시 이끌어나가면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대외적인 창구역할을 해나가면서 한국과 프랑스 예술인들의 교류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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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기숙사 건립을 위해 뜻 깊은 전시회를 했떤 것으로 아는데?

- 앞서 언급했던 대로, 시테 국제기숙사촌에는 전 세계 45개국에서 세운 각국의 기숙사관이 있고 아시아지역 국가도 일본이나 중국, 캄보디아 등 몇 개 국의 기숙사관이 있으나 한국관이 없어 한국 유학생들이 파리에 거주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한국관 설립을 위한 기금마련전시의 일환으로 재불원로작가 특별전 OECD한국주제부 특별전시관에서 5일간 열였고 많은 기업가들과 정.재계인사들이 전시장을 방문하여 출품된 작품 거의가 판매되었고 작품판매액 4만 유로 상당의 작품판매비를 주불대사관에 전달하여 마침내 한국관 건립 조인식을 갖게 되었고 2014년 착공한 이래 금년에 준공식을 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시테 국제기숙사 한국관 건립을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작품을 기증해주신 여러 재불 원로작가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재삼 감사를 드립니다.

 

교민신문등에 컬럼을 게제하는 등 파리 한인사회와 소통도 많으신 걸로 아는데그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 재불 한인사회는 아시는 바와 같이, 정부 주요기관이나 관공서 주재원들을 포함해 파리에 정착해 삶을 일군 교민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대부분 유학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정치,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들은 파리 땅에 촌락을 이루며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나  한국교민 소사이어티는 타국에 비하면 아주 작아 교민들의 현지 활동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근간에 일어난 국정농단 사건이나 이와 관련된 주불대사의 연루 등의 문제로 교민사회의 분위기가 적잖이 침체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고 다른 경제관련 주무대사관도 채용직원을 대사관 부인이 개인용도로 일을 시키거나 공무가 아닌 사적 업무를 지시한 것에 반발한 것을 불만을 품고 사직 통보를 한 경우 등을 목격하면서 이국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본분과 공사관계를 분명히 할 줄 아는 교민사회 풍토가 형성되어야만 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파리교민신문을 통해 칼럼이나 인문학 시론을 써서 게재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척박한 이국생활에서 조금이라도 현실적이며 정신적인 삶의 자양분이 되어 긍정적인 자세로 견인하는데 작은 힘을 보태기 위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파리 여러 시청이나 기관 주최로 코리언 페스티벌이 개최될 때마다 드로잉 퍼포먼스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한국인의 긍지와 위상, 문화와 예술을 프랑스 시민사회에 알림으로써 자연스럽게 한국교민들의 입지와 가치를 획득하고 상호교류와 소통을 원활히 하고자 하는데 그 뜻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파리지성의 정락석 대표님이 저술해 발간한 <K-파리지앙> 책은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이 책에서 다룬 수많은 예술가와 기업인 정.재계 관계인사들의 일화일담을 통해 한국교민사회의 긍지와 결집을 이루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평가하며 작은 일이지만 그 책에 여러 관련내용 드로잉 작품을 완성해 동참한데 대해 기쁘고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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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화백님의 작품세계와 예술관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 1970년대 초 한국미술계를 지배하던 극사실 회화인 하이퍼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을 시작으로 극사실 기법을 통한 우주적 현상론과 인간의 존재론에 대한 모색 (Hyperrealism 경향의 극사실적 묘사와 오브제 꼴라쥬의 혼용) 으로1986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색면추상(Drawing & Color field Painting) 의 경향> 으로 드로잉과-> 상형문자의 획(Calligraphy & Stroke)의 드로잉 이미지와 형태의 결합을 통한 색면추상으로 현대 회화적 표현한 작품경향을 보였고, 1990년대에는 <색면대비와 한국성 모색(Color Contrast & Groping on Korean Identity) 의 경향>으로 한국 민족의 전통적 오방색과 민속성연구를 통한 한국성의 아이덴티티  모색하는 경향으로 작업이 이루어졌고, 2000년대에는 <이미지의 단순화(Simplifying Images) 경향>으로 생의 예찬(The Admiration of Life) 연작으로, 생명의 본질과 모든 생명의 존재론적 접근을 통한 생명관과 이에 대한 조형성을 접목한 작품경향을 했으며, 2009에서 최근에는 <상징의 해석과 코드화(Interpreting on Symbol and Coding)의 경향>으로 생명의 근원을 하나의 원형질, 즉 씨앗의 타원형으로부터 모색하고 이를 현대적 형태분석과 해석을 통해 다색(Polychrome)을 사용하되, 색의 절제를 통한 미니멀적인 현대회화로 생명의 근원을 모색하면서 표현한 작품 경향을 보이며 근작들은 <빛의 언어 The Lamguages of Light>라는 대주제로 빛과 사물들과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존재방식을 시각언어로 표현해오고 있습니다.

 예술작품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생명을 지닌 사고(idee)의 결정체라고 저는 봅니다. 미디어의 급격한 발전은 현대미술의 존재와 그 양태를 새롭게 변모시키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데 과거의 전통적인 평면회화는 입체작품과 인스털레이션, 그리고 비디오 아트 등 테크놀러지 미학과 접합을 하면서 더욱 새로운 회화의 양식을 띠면서 변종(hybrid)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의 본질을 테크놀러지에 의존해서 찾기보다 내 자신의 삶에서 획득된 경험적 인식에서 그 근원을 찾고자 하며 시각적 체험과 기억을 회화의 기본 요소로 풀어가고자 하며, 저에게 있어, 회화의 본질은 삶, 그 자체이며 삶의 흔적과 생명의 지속적 행동이 결과 되어지는 이성과 감성이 결합된 감정의 표출에 다름 아니라 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은 가시세계에 산재된 불특정 생명체들의 생존방식과 소생의 미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고, 모든 생명체의 미시적micro 또는 거시적macro 접근 방식을 통해 새로운 우주관을 인식하고 우주적인 생명관을 통해 바라본 생의 본질과 의열을 화면에 재현시켜봄으로써 나의 회화적 해석을 통한 내 자신의 각성이 감상자(또는 대중)들에게 전달됨으로써 생명의 본질을 공감하기를 기대합니다.


파리에서의 도전과 예술가로서의 재도약 등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곤경과 난관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앞서 드린 말씀 대로, 예술가로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어려움에 부딪치곤 합니다. 언어문제라든가 주거지 문제, 생활비 마련, 그리고 작품활동을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 수많은 문제들을 부딪치게 됩니다. 한국의 미술교육은 과거에는 일본 도제식 미술교육이 대세를 이루다가 미국 유학파 교수들이 대거 임용이 되면서 거의 미국 현대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작가가 된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적 미술경향에 많은 영향을 받아온 저는 파리에서의 수많은 전시회와 미술관 방문 등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을 접하고 과거의 조형예술관과 표현양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이고 질료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 즉 사고하는 인간, 창작하는 자세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근래에 <빛의 언어>란 대 명제 아래 빛을 통해 모든 사물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고 그 사물들이 각각의 생명을 지니고 있으며 각자의 존재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현상을 회화적 양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빛을 통해서만 생명은 유지될 수 있고 모든 사물의 고유한 형태와 색채를 드러내게 되고 빛은 곧 생명이며 그 사물의 속성을 드러내는 촉매이기도 합니다. 모든 빛은 고유한 언어를 갖고 있고 그 빛의 언어를 시각적으로 해독하고 읽어냄으로써 사물과의 교감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빛에 의해 형상을 드러낸 모든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는 곧 우주 질서와 같다고 봅니다. 따라서 모든 사물들의 존재방식은 우주의 질서와 같은 방식으로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 사물의 존재와 형상을 시각적으로 동일화면에 병치시킴으로써 사물들이 구축한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고 이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통해 빛의 존재와 에너지를 통찰하고 조형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저의 조형예술의 표현방식입니다. 결국 빛은 곧 언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작업을 통해 프랑스 미술계에 좀 더 적극적이고 넓게 소통하며 전시활동을 펼쳐 나가고자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하시고 싶은 말씀은요?

- 저의 삶과 예술관에 대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파리지성 대표님과 수고하시는 편집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잘 진행해온 것처럼 파리 교민사회가 좀 더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게 프랑스 사회에서의 원활한 소통과 문화, 예술을 통한 교류에 힘을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 대표님의 저서 <K-파리지앙>에 적으신 대로, “예술이 끊임없는 자기변모에서 생명력을 얻듯이, 재불 한인들의 삶 역시 그러해야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미약하지만 파리 한국교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동참하고 힘써 나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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