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파리지앙 II - 미슐랭 원스타 즈 키친갤러리 최수빈 쉐프 인터뷰 HIT: 598
작성자 : 관리자 
2018.03.29 (13:32)


 

세느강변 갤러리들이 밀집해있는 6구 고즈넉한 골목에 즈 키친 갤러리가 있다. 레스토랑실내는 마치 갤러리를 온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식욕을 불러 일으키는 컬러플한 작품들이 레스토랑 곳곳에 전시되어 있어 손님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주는 레스토랑 주방은 유리로 가려진 오픈키친으로 구성되어 있어 손님들은 스탭들의 움직임도 볼 수 있는데, 이곳 레스토랑에최수빈 쉐프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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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즈 키친갤러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아시아 식재료를 프랑스식으로 재해석, 향과 질감 등에서 독특한 균형감을 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정통성과 깊이를 이해하지만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놀랍지 않거나 다소 무료하기 쉬운 프랑스 요리를 아시아라는 퍼포먼스로 깊지만 산뜻하고 경쾌하게 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오너셰프 윌리엄 르되이는 서슴없이 정통 프렌치를 지향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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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슐랭을 받게 된 요소는 무어라 생각하시는지요?
미슐랭의 요소는 단지 음식의 맛으로만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맛은 물론 와인 선정이나 스탭들의 서비스, 식기류 하나까지 그 하모니를 정밀하게 평가하게 됩니다. 즈 키친 갤러리의 홀은 우아하지만 주방은 정교하게 짜여진 모시 한 필처럼 그 씨실과 날실이 단단합니다. 정해진 역할에 따라 시스템으로 움직여지고요,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 개발에 고심을 하며, 마지막 플레이팅 정점을 찍을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습니다. 미슐랭은 이 모든 것의 결합을 본 것이라 여겨지고요. 개인적으로 전 즈 키친갤러리가 선택하는 음식의 무료하지 않은 아시아적 향과 육수의 배합, 최상의 식재료가 내는 신선함을 매우 좋아합니다.


3. 재료는 어떻게 공급받나요?
프랑스의 각 지방과 아시아에서 신선한 재료를 공급받습니다. 즈 키친갤러리와 소통하는 최상의 재료를 공급하는 농부들이 있고요, 믿을 수 있는 도매상을 통해 아시아 재료들을 들여옵니다. 가끔씩 식재료를 공급하는 분들이 직접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요리사들과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4. 어떤 계기로 요리를 배우게 되었는지, 본인 소개를 해주세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술을 전공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여겨졌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요리사를 선택했습니다. 어머니는 한국에서 잘 알려진 와인전문가이자 기자이셨는데요, 퇴근 하시면 저녁 식사하며 리슬링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면 전 늘 어머니께 감자전을 부쳐 드렸어요. 감자를 손으로 강판에 갈아 밀가루를 섞지 않고 얇고 고소한 감자전을 구워내곤했지요. 밀가루를 섞지 않고 완벽한 감자전을 부쳐내는 일은 쉽지 않은데 제가 생각해도 참 잘했어요. 어머니는 늘 칭찬을 하셨지요. 팔을 확 걷어 부치고 부엌에서 뭔가를 하는 것이 좋았어요. 패션디자이너가 되려고 대학을 넣어놨다가 포기하고 요리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2010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트렁크 두 개를 들고 혼자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첫 목적지는 리옹이었습니다. 얼마전 타개하신 폴 보퀴즈를 들어가고 싶었어요. 프랑스 미식의 본거지인 리옹에서 어학을 하며 폴 보퀴즈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부모님은 어학이 어느정도 된 다음 학교를 들어가라고 권하셨고, 전 2년정도 어학을 하며 프랑스의 문화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폴보퀴즈는 한국학생을 단 2명 뽑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미 요리사인 쟁쟁한 분들이 밀고 들어오니 제가 설 자리는 없어보였습니다. 해서 파리로 올라와 꼬르동블루를 입학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미 제가 그동안 불어를 어느정도 익혀놨고, 따라서 수업진행이 순조로웠다는 것입니다. 정통 프랑스 퀴진을 전공하고, 졸업할 무렵 즈 키친갤러리로 견습을 나온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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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식당에서 일하게 된 경위와 일하고 있는 파트가 궁금합니다.
르 꼬르동 블루의 수업 중 졸업께 마지막 시즌은 레스토랑 견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때 제가 선택한 곳이 즈 키친 갤러리였습니다. 정식 견습기간은 본래 2개월이지만, 막상 현장 2개월의 견습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학교와 현장은 너무나 달랐고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서 다시 르 꼬르동 블루 견습 담당자를 찾아갔습니다. 난 더 배워야겠으니 견습을 연장 하고 싶고,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졸졸 따라 다니며 졸랐습니다. 이것은 비자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레스토랑과 소통을 해야하기 때문에 귀찮게 찾아와 연장을 요구하는 학생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생각이 납니다. 제가 연장 시켜 달라며 교수 눈을 응시하고 꼼짝 않자 자기가 들고 있던 물컵을 집어 던지더군요. 아마 안시켜주면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을 그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2달을 더 연장 받고, 레스토랑 지하에서 종일 버섯과 야채를 다듬으며 현장감을 익혀갔습니다. 다시 약정된 견습이 끝날 무렵 오너 셰프 윌리엄은 제 비자를 해결하여 즈 키친갤러리에서 근무하기를 원했습니다. 견습생을 정식직원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레스토랑으로서도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는 부분입니다. 우선 비자를 내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야하고, 최소 3천유로가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간 제가 일하는 것을 지켜본 오너는 워킹비자를 내주기로 결정을 합니다. 서류와 변호사를 선임하며 완벽하게 일을 추진했읍니다만, 프랑스는 원천적으로 자국도 실업난이 큰데 막 시작하는 견습생의 워킹비자를 내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유럽권 내에서도 저같은 수준의 요리사는 많으니까요. 그러나 오너는 뭔가 가능성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레스토랑측에서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워킹비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초청비자입니다. 한국으로 들어가 있으면 바로 초청비자를 내서 데려올 것이라고 셰프는 말했습니다. 석달정도 한국에 머물며 잠깐 한국 전통 궁중음식을 익혔습니다. 그 사이 초청비자가 나왔고, 다시 파리로 들어왔습니다.

본래는 퀴진쪽 전공이나 즈 키친갤러리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디저트쪽이었습니다. 디저트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저는 빠르게 숙련을 했습니다. 모든 레시피는 제 머릿속에 담겨 있었지요. 게다가 저에게는 선천적으로 맛의 지도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감각이 있는 듯 합니다. 무엇이 부족하고 더 첨가해야하고 어떤 균형과 이질성을 끌어내야 하는지 저도 모르게 튀어 나오더군요. 본래 그림을 그렸던 것은 접시를 플레이팅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학적인 감성을 요구하는 파인다이닝에서 제게 접시는 마치 하나의 캔버스나 마찬가지였어요. 본래 정해진 모양이 있지만 같은 위치에 놓아도 제가 던져놓는 재료는 살아있는 듯이 느껴졌나 봅니다. 동료 요리사들은 말했지요. “수빈, 네가 접시를 플레이팅할 때는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해서 저는 디저트 부분은 덤으로 습득한 셈입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파인다이닝의 주방은 시스템입니다. 단계가 있고, 한 단계를 올라가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 동료들과 끊임없는 교감을 필요로 합니다. 저 혼자 잘해서는 되는 것이 아니지요. 주방은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되어야합니다. 각자 내는 화음이 접시 하나에 집중되어 똑같은 목소리로 아름다운 미감을 표현해내야 하는 것이지요. 해서 같이 일하는 팀원 하나라도 컨디션이 안좋다거나 인간성이 괴팍하다거나 문제가 생기면 음식에도 결함이 생깁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나 어머니는 음식은 정성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는데요, 그 정성이라는 의미가 한국요리에서 부모님의 요리는 개인의 정결한 집중력이라면 하루 100명이상의 접시를 만들어 내는 정통 서양 파인다이닝에서는 1등하는 한 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20명 모두 같은 수준을 끌어내야하는 화음의 결정체라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전 디저트를 거쳐 전식파트를 관리하는 셰프 드 팍티(Chef de partie)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국물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이라서인지 특히 부용(bouillon, 고기나 채소를 끓여 만든 육수로서 맑은 수프나 소스용으로 씀)쪽에 강한 것 같습니다. 코를 킁킁거리며 향만 맡아도 전 육수의 맛이 느껴집니다. 저희는 동양적 해석을 하는 요리인지라 국물을 많이 쓰고, 육수를 끓여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요, 아마 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국물맛내기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6. 셰프로서 요리 철학은? 어떤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어머니께서 제가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 들려주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요리사는 테이블에 앉을 수 없는 사람이다. 늘 뜨겁고 눅눅하며 냄새나는 공간에서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조리를 해야하는 사람이지. 그러니 절대로 환상을 갖고 시작하지는 말아라. 다만 요리를 통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임을 명심해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면서 너 또한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라.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요리, 행복하게 하는 요리, 인류를 위한 요리를 해라



분명한 것은 요리는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입니다. 위험한 도구가 널려있고, 따라서 동료와 호흡과 인간적 배려가 중요하며, 종일 서서 집중해야합니다. 지금은 주말이면 오직 잠이 필요할 정도로 힘들지만 이 과정이 지나고 제가 조금 더 커졌을 때 전 저만의 특징이 있는 요리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사람을 아끼는 요리를 할 것이라는 것, 그래서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식재료를 써서 건강한 식문화를 만들 것이고요, 전 요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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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파리에서 원스타 식당이면, 이 식당의 요리와 가격대를 소개해 주세요.

점심은 엉트레, 쁠라, 디저트 코스로 50유로 정도 하고요, 저녁에는 6코스 메뉴에 78유로입니다.



8. 셰프로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행복해 할 때, 추억 하나는 쌓고 갈 때, 그래서 다시 찾아 줄 때 제일 행복하지요. 지금은 어쩌면 경제논리로 요리를 하지만 언젠가는 자선요리도 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시골 섬마을 어린이들에게 경험하지 못한 맛을 보여주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9. 본인처럼 한국의 청년들이 셰프를 꿈구며 파리에 와서 요리를 배우고자 할 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요리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닙니다. TV에서 스타 셰프들을 양산하니 겉모습만 보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체력과 인내, 인간적인 부분까지 모두 따라줘야 하니 자기수련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10.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은 있나요?
지난 해에는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행사가 한국과 프랑스에서 두루 열렸는데요, 저희 레스토랑이 한국 식재료에도 관심이 많고, 요리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부분이 있어 이 행사에도 초대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저는 오너 셰프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가서 2회에 걸친 한불수교 130주년 만찬을 노보텔 등에서 진행했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식재료 때문에 애먹었던 기억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모두 들고 들어가기로 했고, 당연히 공항에서 모두 압수 당했습니다.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 설득되지 않더군요. 해서 다시 그 유사재료를 구하기 위해 시장통을 누비며 전전긍긍했던 기억을 합니다.

11. 하루가 아주 바쁜 것 같은데 평상시 하루는 어떤가요?
아침 8시에 출근하여 하루를 꼬박 지내고 밤 12시께 퇴근합니다. 즉 8시께 레스토랑에 나가면 바로 점심서비스 음식재료를 준비하는데요, 점심은 11시께 5분정도 급하게 때웁니다. 손님들이 몰려오고, 점심 서비스가 끝나면 3시에서 5시까지 쉽니다. 그러나 이 때도 새로운 메뉴를 토론하거나 하기도 하는데요, 가능하면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대부분 잠을 잡니다. 그래야 하루를 버티니까요. 5시부터 저녁 준비를 해서 7시15분 손님이 오기시작합니다. 그 전에 스탭들은 간단하게 식사를 합니다. 밤 10시쯤 저녁서비스가 끝나면 주방을 정리하고 다음날 필요한 식재료를 주문합니다. 12시께 무거운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하지요. 해서 대개 레스토랑 가까이에 숙소를 둡니다. 자건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지요. 안그러면 못버팁니다.

12. 그동안 일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었나요?
요즘은 알러지가 있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한번은 10가지 이상의 재료에 알러지가 있는 손님이 오셔서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정말 맛있게 즐겼다고 편지를 남기는 손님이 있는가하면 직접 인사를 나누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고요. 이곳 음식이 프렌치지만 동양인들 코드에 잘 맞아서 한국분들도 많이 다녀갑니다.

 

13. 한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 근무하는 레스토랑이 동양식재료를 적극적으로 쓰는 곳이고요, 저 또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 한식의 일부분을 적극 제안하는 편입니다. 특히 고추장 된장 간장 등 한국의 발효음식은 어느 곳도 따라올 수 없는 깊이가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식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고요, 제가 배운 서양요리와 한식의 접점을 요리에 응용하고 싶습니다.

14.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는지요?
부엌에서 뭔가를 만드는 일을 참 좋아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서프라이즈 요리를 선보이곤 했지요. 그 때 어머니는 제 어설픈 요리에 대해 맛의 균형이나 사례등을 들어 필요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꼬집어 주는 분이셨고요, 아버지는 무조건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15. 지금 식당에서 한식재료를 이용한 요리가 있는지요?
라비올리에 고추장소스를 곁들인다거나 파스타도 김치를 이용한 소스를 사용합니다. 김 등 해조류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요, 특히 국물문화인 육수를 많이 씁니다.





16. 꼬르동블루를 좀 소개해 주세요.
120년 역사를 지닌 명문 요리학교로 전 세계에 40여개 캠퍼스가 있습니다. 정통 프렌치 퀴진을 가르칩니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이 진행되기도 하며, 수업평가 또한 명확해서 대충 수업 빼먹고 이수해야할 부분을 놓치면 진급을 시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파리 꼬르동블루의 장점은 프랑스에서 나오는 가장 좋은 재료를 실습재료로 쓰며, 쟁쟁한 교수진들의 포진일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만져보기 힘든 메추라기 등 가금류 등 현지에서 만날 수 있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씁니다. 식재료는 숨만 끊어 그냥 던져집니다. 토끼가 눈이 박힌채로 등장해서 식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재료의 처음과 마지막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퀴진 외에 제빵쪽을 선택하는 분들도 있고요, 와인코스도 있습니다. 요리 영화 ‘줄리 & 줄리아’에서 메릴스트립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줄리아는 르 꼬르동블루 실제 졸업생입니다. 계단에 그녀의 사진이 붙어있지요. 전 세계에서 요리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한국에 동문들이 제법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할 때도 몇 명 있었는데요, 졸업 후 파리에 남은 것은 저 혼자입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바쁜 주방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듭니다. 저같은 경우는 요리학교에 들어오기 전 어학을 하며 프랑스문화를 익히는데 약 2년6개월을 보냈습니다. 따라서 불어가 가능했고, 주방에서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언어가 되지 않았다면 레스토랑은 저를 선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파인다이닝의 주방은 각자의 역할을 맡은 요리사들의 하모니이니까요.

17.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키나 체격 등 다른 한국여성에 비해 체력조건이 좋은 편입니다. 그래도 제일 힘든 것은 체력입니다. 종일 서서 일해야하니까요. 주방도 하나의 사회이다보니 남성중심이어서 아무래도 여성들이 견뎌내기에는 정말 호탕하고 통이 커야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지인처럼 언어를 해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고요,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을 숙련시키며 인내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8. 한식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발효식품의 가능성은 무한대이고요, 한식을 먹고 자라서인지 참 건강한 음식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텃밭에서 식재료를 우두둑 뽑아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만들어내던 어머니의 영혼의 음식들. 그 음식의 코드를 한식이 지녔습니다. 좀 더 체계화하고 정리하면 한식이 돋보일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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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업으로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나요?
힘든 때가 많기 때문에 가끔은 혼돈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주방에서 집중할 때 가장 힘이 나고 빛이 나더군요.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꿔왔던 부분이 있어 그림에 대한 미련이 불쑥불쑥 튀어 나옵니다. 조금 안정이 되면 접시에 페인팅을 해볼 생각입니다.



20. 앞으로 계획은? 꿈은?
당초에 제 꿈은 프랑스에서 정통 프랑스요리를 익히고 이태리나 스페인 등지에서의 숙련을 거쳐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태안 안면도로 들어가 정말 좋은 식재료를 이용, 세상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는 요리를 하고 싶었지요. 텃밭에서 직접 재료를 기르고, 가까운 바다에서 사철 신선한 제철 해산물이 나오며, 음식의 근간인 소금이 생산되고, 고추 마늘 생강 등 한국 향신료의 주산지가 태안 안면도 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키친’이 지중해기후로 좋은 식재료가 나와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몰리는 스페인 바닷가라면, 전 ‘대한민국의 키친’을 한국의 바닷가 섬에 만들고 싶었거든요. 기자생활을 하던 어머니께서 1년 휴직을 할 때 저도 중학교 1년을 섬에서 보냈거든요. 그래서 그 섬과는 인연이 깊습니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너무나 길어요. 요즘 생각으로는 한식과 프렌치를 결합한 음식점을 파리에서 열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있습니다만,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요리를 잘하는 것과는 다른 부분인 것 같습니다. 경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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