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 역사학자와의 인터뷰(26) - 프랑스 고지도로 본 한반도의 모습 변천 I. HIT: 2,052
작성자 : 관리자 
2014.11.09 (01:17)


NO. 734 / 2014년 11월 5일(수)


이진명 역사학자와의 인터뷰(26)
프랑스 고지도로 본 한반도의 모습 변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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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록, 이하 '심') 프랑스의 고지도들을 보면 서양의 한국에 관한 지리 지식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진명, 이하 '이') 그래요. 지리지식은 지도에 반영이 돼요. 지도는 어느 시기의 땅의 형체를 작게 축소하여 종이 위에 나타내며, 그 속에 지형, 위치, 지명, 등을 표시해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해요. 과거에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거나 탐험을 하면서 지리 지식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지식을 획득했어요. 지리 지식을 알아보기 쉽게 표시하는 지도 제작 기술, 즉 제도(製圖) 기술도 필요해요. 
직접 가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말로만 들은 지역에 대해서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지도를 그렸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이나, 항해, 탐험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그린 지도들이 시대를 거치면서 변천하여 점점 실제와 같게 되지요. 오늘날은 인공 위성으로 관찰한 것을 지도에 나타내지요. 또 인공 위성, 무선 송신 시스템, 컴퓨터에 의한 계산을 이용하여 항공기, 선박, 자동차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지도에 표시하여 내비게이터의 스크린에 나타내 주기도 해요.

서양의 한국에 관한 최초의 지리 지식
(심) 과학적인 측량이 가능해진 18세기 이전의 서양의 한국에 대한 지리 지식은 어땠나요?

(이) 16-17세기만 해도 상상의 시대였어요. 이 시대에 한국에 관한 지식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나 다른 여행가들의 여행기에 기술된 것이 전부였어요. 1650년대에 유럽의 예수회
[사진 1] 1617, 폴 루벤스, "한국인" 또는 "한복을 입은 남자",
미국 로스 앤젤레스, 폴 게티 박물관
선교사들이 중국에 오게되는데, 이때 유럽의 천문학, 지리학,


수학이 전래되어요. 일본에는 1543년에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포르투갈 선원들이 도착하고, 1549년에는 예수회 성 프랑수아 자비에(St. François Xavier) 신부가 도착하여 카톨릭을 전파해요. 그후로 1600년부터 일본이 개항하는 1854년까지 유럽인으로는 유일하게 홀랜드 사람들이 나가사키 앞의 조그만 섬 데지마에 상관을 열고 일년에 2-3회 배를 보내 무역을 하고 있었어요.

한국에는 1627년에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화란인 잔 잔세 벨테브리 (Jan Janse Weltevree) 외 2 명이 도착하여 2명은 병자 호란 때 사망했고, 벨테브리는 박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국여자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살다가 한국에서 죽었어요. 그후 1653년에 헨드릭 하멜 (Hendrik Hamel) 외에 38명을 화란인들이 도착했는데, 그중 하멜은 화란으로 돌아와 "표류기"를 저술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심) 바다를 "방황하는 화란인"(바그너의 오페라)이라는 표현이 이해가 됩니다. 당시 화란인들은 세계 구석구석 안 다닌 곳이 없군요. 혹시 한국의 존재를 처음 서구에 알린 사람도 화란인 인가요? 

(이) 아니에요. 한국의 존재가 서구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아랍 지리학자 이븐 코르다베(Ibn Khordabeh, 912년에 사망)에 의해 신라(알 실라, Al Sila)로 알려졌다고해요. 그 4세기 후에 마르코 폴로가 그의 여행기(1307)에서 한국의 존재를 언급했어요. 그 다음 징기스칸의 궁전에 파견된 플라망 수도사 기욤 드 뤼브릭(Guillaume de Rubrick)이 그의 여행기에서, "징기스칸의 궁전에서 '롱가(Longa)' 또는 '솔롱가 (Solonga)'의 사신(使臣)들을 만났다"고 기록했는데, 이들이 바로 고려인들이라고 해요. 당시 몽고인들은 한국을 이렇게 불렀는데, 이는 몽고어로 "무지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심)  "무지개"라고 불렀다니 상당히 흥미로운 이름이네요. 이렇게 부르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어쩌면 한국 가을의 단풍, 한옥의 단청, 한복, 등의 화려한 색깔을 보고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닐까요? 요즘의 한국은 화사하고 풍성한 색의 잔치가 벌어진 한 폭의 그림 같기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림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유명한 폴 루벤스(Paul Rubens)의  "한국인 (Homme coréen)" [사진 1]이 떠오르는데, 이 한국인이 어떻게 루벤스의 그림에 등장하게 되는 지 혹시 아시나요?  

(이) 폴 루벤스는 한국인을 최초로 그린  서양 화가이에요. 그의 데생 "한국인 (Homme coréen)" 또는 "한복을 입은 남자 (Homme en costume coréen)" 은 1617년에 그려졌어요. 이 작품은 1993년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팔려, 현재 미국 로스 앤젤레스 소재의 폴 게티(Paul Getty)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요.

이 데생의 모델은 안토니오 코레아(Antonio Corea, 1578-1626)로 추정되고 있어요. 루벤스가 로마에서 코레아를 만나 이 초상화를 그렸다고 해요. 안토니오 코레아는 개성 상인의 후예로, 임진 왜란 때인 1597년에 전쟁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거기서 다른 4명의 조선인들과 함께 플로렌스의 상인 프란체스코 카르레티 (Francesco Careletti)에게 노예로 팔렸어요. 인도의 고아에서 카르레티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었고, 그중 이탈리아어를 제일 잘 하는 코레아를 이탈리아로 데려갔어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유럽에 온 사람이 되지요. 1606년 플로렌츠에 도착한 코레아는 카톨릭 세례를 받고 살았어요. 그후 로마에서 루벤스를 만나 루벤스의 스케치 모델이 된 듯해요. 말년에 코레아는 이탈리아 남부 알비(Albi)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남쪽 시실리아 섬 맞은편에 위치한 알비에는 코레아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集姓村)이 있는데, 이들이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들이라고 해요.   
   
(심) 이미 언급하셨던 서양인이 직접 체험한 한국 사정을 기록한 책인 "하멜 표류기"(1668년 화란어로 출판, 1870년 불어 출판)에는 한국의 지명이 몇 곳이나 나오는 지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이) "하멜 표류기"에 나오는 한국의 지명은 15개 정도입니다. 그 후에 나온 서양 최초의 한국에 관한 저서는 1874년에 출판된 달레의 "한국교회사"이고요. 이 책에는 근대 한국 전도가 첨부되어 있다고 이미 소개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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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섬에서 반도로
(심) 서양 지도에 한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언제인가요?

(이) 서양 지도에 위치로 보나 형체로 보아 한국임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게 나타낸 지도는, 1595년 벨기에의 안트워프에서 발간된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lius, 지리학자) / 루도빅 텍세이라 (Ludovic Teixeira, 폴투갈 선교사, 수학자, 지리학자)의 " 일본"지도예요[사진 2]. 이 지도에 한국이 길쭉한 고구마 형태의 섬(Corea Insula)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 지명이 두 개 나와요. 고려 (Corij)와 조선(Tauxem)이에요.

텍세이라 타입의 한반도의 모습은 1596년의 나탈리우스 메텔루스(Natalius Metellus) [사진 3], 1606년의 조도쿠스 혼디우스 (Jodocus Hondius), 1635년의 윌렘 잔스 블애우 (Willem Jansz Blaeu), 1636, 1648, 1658년의 요안 잔소니우스(Joannes Janssonius)의 아시아 지도에 그대로 답습되었어요.
또, 한국이 둥근 형태의 섬으로 나타나는 지도들이 있어요. 그 첫 지도가 1596년에 홀랜드의 핸드릭 플로렌트 반 랑그렌 (Hendrik Florent van Langren)이 그린 아시아 지도[사진 4]입니다.
1661년의 프랑스 지리학자 피에르 뒤발(Pierre Duval)의 아시아 지도에는 한반도가 사각형의 섬으로 나타나 있어요[사진 5].
1647년의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의 "한국 및 일본 지도" [사진 6]에는 한국이 긴 섬 형태로 나타나 있고, 그 속에 30여 개의 지명이 있으며, 그 오른쪽에 "한국해 (Mare di Corai)"라고 이탈리아어로 표기되어 있어요.

(심) 언제 한국이 반도로 제대로 표기되나요?

(이) 한국이 반도로 나타나는 최초의 서양 지도는 마르티노 마르티니 (Martino Martini)의 지도[사진 7]입니다. 이탈리아 신부인 마르티니는 1614년 이탈리아의 트렌토 (Trento)에서 태어나 1661년 중국의 항주에서 사망했어요. 그가 중국에 13년간 체류하는 동안, 중국의 17개 지방을 망라한 중국 지도책을 제작했어요. 마르티니는 이 지도로 유명해졌어요. 그의 지도 중에 "조선 왕국"도 나타나 있어요. 비로소 한국이 반도로 중국 대륙에 붙어서 표시되어 있어요. 지도 속의 조선 8도의 지명은 한자의 중국어식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것이고, 제주도는 풍마(Fungma)로 표기되어 있어요. 한국의 수도의 이름은 없는데, "서울" 이라는 한글 명칭이 수도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으므로, 한자로 표기될 수 없어서, 오랫 동안 서양 지도에 한국의 수도가 "경기(Kingki)"로 나타나 있었어요.

마르티니의 지도는 당시에 가장 정밀하고 정확한 지도였기 때문에, 마르티니  타입의 한반도 형태는 17세기 후반기 내내 여러 지도 제작자들에 의해 채택되었어요. 한국의 모습이 텍세이라의 지도(1595)의 섬의 형태에서 마르티니의 지도(1655)에서와 같이 중국 대륙에 붙어 반도로 나타나는데 60년이 걸렸습니다.마르티니 타입의 한반도 형태는 1666년의 피터 구스(Pieter Goos)의 "한국, 일본, 타타르 해도(海圖)" [사진 8]와 1675년 프레데릭 드 비트(Frederick de Wit)의 "아시아 해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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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1666, Pieter Goos, Nautical Chart of the Coastlines of Korea, Japan and Tartary, Amsterdam.

서양 최초의 정밀한 한국 지도
(심) 서양에서 마르티니보다 좀더 정밀하게 한국 지도를 제작한 사람은 누구예요?

(이) 18세기 전반부에 활약한 프랑스 왕실 소속 지리 학자 당빌(d'Anville)이에요. 그가 1720년경, 당시로서는 가장 정밀하고 정확한 중국 및 한국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 가 있있던 서양 신부들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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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강희 황제 재위시, 1707년에서 1717년 사이의 10여 간, 서양 신부들이 주축이 되어 수 천 명의 사람을 동원하여 중국 전역을 측량하여 지도를 제작하는 전대미문의 대대적인 작업을 벌렸어요. 이 사업의 결과로 제작된 것이 " 황여전람도"예요. 이 지도집을 제작하는 과정에 조선도 그려 넣기 위해 중국 조정은 조선 조정에 조선전도를 제작하여 보내 달라고 요청했어요.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 그려 보낸 조선 전도가 "황여전람도"에 포함이 되었어요. 이 "황여전람도"의 사본이 파리에 전해졌어요.

 프랑스 지리 학자 장 프랑수아 부르기뇽 당빌 (Jean François Bourgignon d'Anville)이 "황여전람도" 중의 "조선 지도"를 바탕으로 "조선 왕국 전도" (Carte du Royaume de Corée, 43 cm x 75 cm) [사진 9-1]를 1720년에 제작했어요. 당빌의 이 필사본 "조선 왕국 전도"를 동판에 긁어 인쇄하여 장-바티스트 뒤 알드(Jean-Baptiste Du Halde) 신부가 저술하여 1735년에 출판된, 방대한 전4권의 기념비적인 저서 "중국 제국 전지(全誌)"에 실렸어요. 이 책에 레지스(Gégis) 신부의 "조선 서술"도 들어 있어요.

(심) 당빌(1720년 제작)의 지도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1861년)보다 140여 년 전에 제작되었네요. 그런데, 청나라에서는 자국 전도를 제작하면서 조선 전도를 요청했다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자기 영역의 변방 정도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죠. 그러나 저러나 당빌의 지도에서 한국은 얼마나 상세히 기술되었나요?
[사진 9-1] 1735, d'Anville, Carte du Royaume de Corée, Paris.
(이) 이 "조선 왕국 전도"에 400여 개의 지명이 등장합니다. 지명은 한자의 중국식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것이에요. 당시로서는 놀라울 만큼 정밀한 지도였어요. 이 지도에 조선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말을 한자로 표기할 수 없었던 관계로, 그 이전의 서양 지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경기도 (Kin Ki Tao)"로 표기 되어 있어요. 이 지도에 울릉도는 "울"을 "반"으로 착각하여 " 반릉도 (Fan-ling-tao)"로 표기했고, 독도를 가리키는 "우산도(于山島)"은 "천산도(千山島, Tchian-chan-tao)" 으로 표기했고, 당시의 다른 조선 지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산도"가 "울릉도" 왼쪽에 나타나 있어요[사진 9-2, 9-3].

당빌의 이 "조선 왕국 전도"는 서양의 많은 지도 제작자들이 발간한 동양 지도에 19세기 초엽까지 100년 이상, 크고 작은 형태로 모사(복사)되어 반복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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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2] 1735, d'Anville, Royaume de Corée, 부분도. [사진 9-3] 1735, d'Anville, Carte du Royaume de Corée,
울릉도(Fan-ling-tao)와  독도(Tchian-chan-tao) 부분도.

마르티니의 간단한 한반도 모습(1655)에서 자세한 당빌의 한반도 모습(1720)이 나타나기까지 걸린 세월이 65년이나 돼요.
<심은록/파리지성info.simeunlo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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