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 역사학자와의 인터뷰(27)-프랑스 고지도로 본 한반도의 모습 변천 II HIT: 1,524
작성자 : 관리자 
2014.11.17 (06:21)


이진명 사진 1.png

 "한국해 (Mer de Corée)"의 등장 과 확산

(심은록, 이하 '심') 18세기에 한반도 와 일본 열도 사이의 바 다에 "한국 해"로 표기된 지도는 얼마나 있는 지 알 수 있나요?

(이진명, 이하 '이') 내가 파악해 본 바 로는, 18세기에 제작된 서양 지도들 중 동해 부분에 바다 이름을 표기한 서양 고지도 253 점 중 약 80%에 " 한국해 (Mer de Corée)"라고 표기되어 있어요. "일본해(Mer du Japon)" 로 표기된 지도는 9 %이에요.

그 외 의 지도에는 "동양해(Mer Orientale)" 등, 다른 명칭들이 사용되었어요. "한국해 (Mer de Corée)"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1705년 제작된 프랑 스 지리학자 기욤 들릴(Guillaume Deslisle)의 지도[사진 1-1, 1-2]에 "동양해(Mer Orientale)"와 함께 병 기 되었다가, 들릴의 1723년 지도부 터는 "한국해(Mer de Corée)" 하나 로만 표기돼요. 그 후, 프랑스 지리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영국의 헤르 만 몰(Herman Moll) [사진 2]과 존 세넥스(John Senex) [사진 3], 프랑 스의 로베르 드 보공디 (Robert de Vaugondy) [사진 4], 등 18세기 유 럽의 거의 대부분의 지리 학자들이 이 명칭을 사용했어요. 현재 세계 여러 나라의 대부분의 지도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이름으로 "일본해 / Mer du Japon / Sea of Japan" 하나만 사용하고 있는 데, 이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한국에 서 사용하는 명칭 "동해 /Mer de l'Est / East Sea"와 일본 및 다른 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일본해, Mer du Japon / Sea of Japan"를 대등하게 함께 표기하고, 또 그렇게 불리도록 하는 것이에요. "일본해"를 들어내고 "동해"를 사용해 달라는 것이 아니고, "동해/일본해"로 병기(倂記)해 달 라는 것이지요.

(심) 한국은 역사적 증거 자료가 될 수 있는 서양 지도상의 "한국해"를 왜 주장하지 않나요?

(이)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바다 명칭으로 "한국해"를 주장해야 한다 고 말하는 학자도 몇 분 있기는 해요. 그러나 "한국해"는 서양인들이 붙인 외래 지명이에요. 한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이 바다를 "동해(東海)"로 부르고 있어요. 지명은 어느 지역이나 국가, 국민의 정체성과 아이콘을 나타내요. 지명은 많은 것을 함축해요. 우리가 "동 해" 하면 떠올리는 것이 많아요. 역사 적, 지리적, 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관광, 여가, 어업, 해저 자원, 기상(氣 像), 국방, 등등 사람들마다 어떤 지명을 들었을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민족의 정체성(idendité)이 서려있는 것이 지명이므로, 지명은 대단히 중요해요.    

(심) 하지만 일본은 "일본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이) "일본해"의 경우, 이 명칭도 서양인들이 붙인 외래 명칭이에요. 옛날에 일본인들은 주위의 바다에 이름을 붙여 사용하지 않았어요. 바다에 명칭을 기재한 일본 고지도는 없어요.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개국을 하고 외국 문물을 받아들일 당시, 서양 지도에 나타난 "일본해"를 그대로 채용해서 "일본해"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이 1992년부터 공식적으로 UN의 지명표준화 위원회, 국제수로기구, 외국의 지도 제작사, 언론사, 교과서 출판사, 지리학자들, 등에 "동해"도 같이 써야 한 다고 주장을 하니까, 일본, 특히 일본 외무성이 국제 사회를 향하여, 자기 나라 이름이 붙은 바다 명칭을 적극 옹호하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바다 명칭을 두고 한국과 일본이 긴장하고, 대립하고 있는 것이에요.    

프랑스인들에 의한 울릉도와 독도의 발견

(심) 18세기 내내 당빌의 "조선 왕국 전도"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네요. 그 지도 이후에 중요한 변화나 발전이 있었던 해도(海圖)들로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이) 그 이후 18세기 말, 19세기 초반부에 제작된 해도(海圖)는 탐험 과 실제 관측과 과학적인 측량에 기 초하여 제작이 되었어요.

1787년 프랑스의 라페루즈 (La Pérouse, Jean François Galaup, comte de) 탐험대 가 사상 처음으로 제주도를 과학적인 장비를 사용하여 측정했는데, 이 때 한라산의 높이를 1960 미터로 계 산했어요. 이는 현재의 높이와 동일해요. 또 해안선을 측정하여 제주도 (켈파르 Quelpaert 섬) 해안선을 그렸고, 1787년 5월 27일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울릉도를 발견(목격)하고, 울릉도의 정확한 좌표를 측정하고, 울릉도 해안선을 그렸어요. 이때 울릉도를 최초로 목격한 수학자 르포 트 다줄레(Lepaute Dagelet)의 이름 을 따서 울릉도에 "다줄레"라는 이름 을 붙여요. 이 이름이 서양 지도 상에 1950년대까지 사용되어요. 150년간 사용된 것이지요.

라페루즈 탐험대의 "세계 탐험기" 전 4권 및 대형 아틀라스가 1797년에 출판되었어요. 그런데 아틀라스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어요[사진 5]. 이것이, 그때까지 서양에서 " 한국해"로 불리던 동해가 "일본해"로 바뀌어 불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요. 왜냐하면, 라페루즈의 자 료는 당시로서는 가장 앞선 것이었고, 신빙성이 높고, 정밀하고, 과학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서양 여러 나라의 해군과 지도 제작자들은 이 자료를 19세기 중엽까지 50여년 간 기본 데이터로 사용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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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한국해"로 불려왔던 것을 단번 에 "일본해"로 바꿔 버렸으므로 우리 에게는 불행한 순간이었네요.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지명 표기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오랜 싸움의 불씨가 되었고요.

(이) 그래요. 그 이후 "일본해"는 전세계 지도상에 근 200여년 이상 사용되어 오고 있어요. 라페루즈의 해도에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 사이의 전 해역에 대한 명칭으로 "대한해협(Detroit de Corée)"이 사용되었어요. 일본은 이 해협의 이름도 "쓰시마 해협"으로 바꾸려고 시도하는데, 전 세계 지도에 현재까지 "대한 해협"이 표준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 후 1803-1806년에 러시아의 크루젠슈테른 (Krusenstern)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한국 동해안을 측정 하여 해안선 지도를 그렸어 요. 이 해안선은 1854년 러 시아 함정 팔라스 (Pallas) 함 에 의해 다시 측정되어 수정이 돼요[사진 6]. 그 다음에 프랑스 르 아브
르 항에 선적을 둔 윈슬루 (Winslou) 포경 회사 소속 포 경선 리앙쿠르 (Liancourt) 호가 동해에서 어로 작업을 하던 중 1849년 1월 27 일, 당시의 어떤 서양 지도 나 해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은 바위 섬을 발견하고 이 섬의 정확한 좌표(위도와 경 도)를 측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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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이 프랑스 해군성 본부에 알려져서, 해군성은 독도를 " 리앙쿠르 바위섬, Rochers Liancourt"이라 명명(命名) 하고, 이 섬의 발견 사실을 해군성이 발간하는 수로지 (Annales hydrographiques) 1851년판[사진 7]에 수록하고, 역시 그 해에 해군성이 발간한 "태평양" 해도에도 표시해요. 그때부터 현재 까지 서양의 지도와 해도에는 독도에 대해 "리앙쿠르 바 위섬 / Rochers Liancourt / Liancourt Rocks"이 사용되 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독도 에 대한 표준 명칭으로 "리앙 쿠르 록스(Liancourt Rocks)" 를 사용해요. 독도에 대해 한국 명칭 "Dokdo"나 일본 명 칭 "Take-shima"를 사용하던 서양의 지도 제작사들이, 두 이름 중 하나를 사용하면 한국이나 일본이 항의를 함으로, 현재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Liancourt Rocks"로 명 칭을 바꾸어 가는 추세예요.

프랑스 포경선의 독도 발견 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러시아의 팔라스 함도 1854 년에 독도를 발견하고 좌표를 측정하고, 독도의 두 섬에 "올리부차" 및 "메넬라이" 라는 명칭을 붙여요. 또한 독 도 그림 3점도 그려, 이것을 1857년 러시아 해군이 발간 하는 "조선 동해안도" [사진 8]에 나타냈어요.

이는 당시 러시아 해군이 독도를 명확 히 한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에요. 이 해도는 1882년에 개정이 되어 재판(再版) [사진 9] 되어요. 일본 해군은 이 러시 아 해군의 "조선 동해안도" 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간 해요. 이는 일본도 독도가 한 국 영토임을 인정한 것이라 고 볼 수 있어요. 1855년에는 영국 함대가 동해를 지나가면서 독도를 발견하고, 정확한 좌표를 측정한 다음 독도에 "호넷 (Hornet)"이라는 이름을 붙여요. 그러나 1860년대가 되면서 영국 해군이나 러시아 해군도 독도는 1849년에 프랑스 포경선이 최초로 발견한 사 실을 인정하게 돼요. 그래서 1860년대 이후 서양 지 도나 해도에 울릉도는 다 줄레 섬 (Ile Dagelet) / 마츠 시마 (Matsushima), 독도는 리앙쿠르 바위섬(Rochers Liancourt)이라는 명칭으로 정확한 위치에 나타나게 되었어요. 그 후 서양 지도상에 독도의 명칭이 "리앙쿠르 바 위섬 / Rochers Liancourt / Liancourt Rocks"로 통일되어 정착되어요[사진 10].

(심) 한국의 근대적인 "육지", 즉 한국 내륙(內陸)에 관한 지리 지식이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인가요?

(이) 19세기 초엽부터 서양의 해군이 아시아 각 지역의 해역을 조사, 측량하여 수로 지와 해도를 작성했어요. 그런데 이들은 바다로만 다녔기 때문에 육지의 사정은 알 수 없었고, 더구나 이 시기 는 한국과 일본이 쇄국을 하고 있었으므로, 한국에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숨어 들어온 것 같이 하지 않는 한, 서양인들의 입국이 불 가능했어요. 조선의 지도가 직접 서양에 전래되어 영향을 미친 것은 19세기 후반기에요. 앞의 인터뷰에서 이미 언급한 김대 건 신부의 지도, "해좌전도", 천주교 계통의 지도인 순 한 글 조선 전도, 달레 신부의 " 한국(천주)교회사", 프랑스 신부들이 저술한 "한불자전" 과 같은 저서, 또 영미 계통 의 한국에 관한 저서, 여행 기, 등에 첨부된 지도를 통해 서였어요. 이 지도들에는 한국의 수도 가 "Seoul"로 표기되었고, 지 명도 한국어 발음의 로마자 표기예요.    

이진명 사진 4.png

(심) 그 후에는 어떻게 변했나요?

(이) 19세기말과 20세기전반에는 일본인 제작 지도들이 서양에 유입되어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한국 지명들이 한자의 일본어식 발음의 로마자 표기였어요. 서울 이 Keizo, 부산은 Fusan, 원산은 Gensan, 제주도는 Saishuto, 울릉 도는 Utsuryoto, 등으로 표기되었
어요.

(심) 한국 지명이 한국어 발음의 로 마자로 표기가 되는 것은 언제부터 인가요?

(이) 해방된지 한참 후인 1950 년대말, 1960년대가 되어서야 지 명이 한국식 발음의 로마자 표기로 바뀌어요. 내가 보기에는 그 첫 지도가 1959년 프랑스의 라루스 사가 제작한 "세계 지도책 (Atlas général)"이에요. 이 지도책의 한 국 지도 감수자는 당시 소르본느 대학 일본학 교수이자, 프랑스 대학에 한국어 교육의 제도적 틀을 마련한 샤를르 아그노엘 (Charles Haguenauer) 교수였어요. 이때 아 그노엘 교수의 초빙으로 프랑스에 온 이옥 교수가 한국어 전임 강사로 소르본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 어요. 그래서 외국에서 발간된 지도로는 사상 처음으로 이 지도에 독도가 "Tok do"로 표기되었어요.

(심) 이옥 교수님께서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일을 많이 하셨네요.

<파리지성 / 심은록 info.simeunlo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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