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2일에서 4월11일까지 파리시청에서 지척인 '씨떼데자르' (Cité International des Arts) 전시장에서 한국작가 11인의 "새 지도 그리기"(Néo-graphie)가 개최되고 있다. 이 전시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활동하는 11명의 작가들이 회화, 사진, 설치, 비디오, 건축, 조각 등 다양한 쟝르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 참여 작가는 윤애영 (사진, 비디오), 유혜숙(회화), 김미현(사진), 이정훈(건축), 홍 일화(회화), 발레로-김(설치), 민정연(회화), 배찬효(사진),이성희(사진),노영훈(조각), 다프네 르 세르장 (사진, 비디오)이다. 파리지성은 이 전시를 기획한 김수현 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파리지성 :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수현 : 한국에서 미술 대학 졸업 후 , 80년대 후반에 프랑스에 와서 파리 제 1대학 미술 사학과에서 서양 현대 미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난 후, 귀국해서 몇년 일하다 다시 파리에 오게 되었읍니다. 지난 몇년동안은 주불 문화원에서 전시 기획자로 일을 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파리 제 3대학 Cinema &Audio Visuel 학과에서 두 번째 박사 과정으로 영상 매체쪽 공부를 좀 더 하기도 했읍니다. 파리 3대학과 이태리의 밀라노&우딘 대학과의 협력 관계로 프랑스 및 이태리에서 "영화와 현대 미술"라는 국제 학회에 매년 발표, 그동안 여섯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들은 또한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읍니다.
파 : 전시회의 타이틀 Néo-graphie가 의미하는 것은 ?
김 : 네오 그라피 Néo-graphie 라는 주제는 2000년 밀레니엄 이후, 2010년이라는 연도의 상징적 중요성이 마치 두 번째 밀레니엄을 맞는다는 분기점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아시아 지역의 사회, 경제적 대두에 힘입어, 특히 한국 작가들이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문화, 예술적으로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주체"라는 의미를 복합적으로 메타포하고자 한 것 입니다. 이는 그동안의 현대 예술의 서구 중심적 헤게모니에서, 점점 더 아시아적 가치의 재발견과 확대, 전파하는 주도적 위치에로 전환되고 있음에 주목하고, 이를 지형학적인 주제로 은유한 것 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즉, 한국 의 현대 미술이 마치 새로운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리듯, 새로운 토폴로지를 형성한다는 프로세스적 의미를 함께 담고 있으며, graphie 라는 말에 담긴 시간성이 포함된 개념을 또한 상징화 시키고자 한 것이기도 하지요. 이에 노마디즘으로도 대표될 수 있는 <혼성Métissage>과 <생성 Devenir>이라는 두가지 소주제는 21세기의 대표적 현상을 나름대로 압축하고자 한 것 입니다.
파 : 전시회 타이틀과 관련이 될 것도 같은데, 각기 독특하고 다양한 작가들을 한 전시회로 묶을 수 있었던 공통점은 ?
김 : 작가들의 다양함은 바로 이러한 "혼성"이라는 개념에서 각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들을 한데 집결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사실상 그들을 관통하는 커다란 줄기는 동서양의 뒤섞임, 환경(도시)과 정체성, 그리고 신체(내/외부)와 주체와의 상관 관계에 대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두번째 부분인 <생성Devenir> 또한 바로 이렇듯 혼성 이후의 재-생성(re-devenir), 재-구성(re-dessiner)에 대한 것 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파 :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이 참여한 것을 알고 있는데, 작가 선정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
김 : 전시 컨셉에 맞는 작가들을 찾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에서 활동중인 한국 작가들을 서로 소통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도 그런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후 그 피드백으로 프랑스 거주 한국 작가분들이 영국이나, 독일등 전유럽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좋은 초석을 만들어 드리는 것 이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상 더 많은 작가분들을 소개시키지 못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또한 새로운 지도를 그려 나간다는 의미에서 참여 작가분들도 30-40대의 한창 활동중인 젊은 작가분들로 구성했는데, 이 또한 사실 이 연령대가 작가로서의 자리 매김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중한 것 이 기도 합니다.
파 : 참여 작가 분들의 특징과 출품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 : 우선 <혼성> 부분 출품 작가분들은 환경과 정체성, 그리고 신체와의 관계에 대한 혼성적 경험의 산물을 가시화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김 미현의 중국의 황산과 아이슬랜드라는 양극에 위치한 두 장소의 만남이 주는 기이한 유사성, 이 정훈의 건축과 조각, 설치와의 관계에서 동양의 빈 공간을 건축에 적용, 뺄셈(soustraction)에 의한 예기치 못한 잉여 공간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개념, 홍 일화의 '인간-기계-동물' 로 확대되는 포스트 휴먼 으로서의 존재의 경계에 대한 모호함, 발레로-김의 페티시즘적 머리카락으로 은유되는 인종의 혼성에 대한 것 등입니다. 아시아 남자로서 영국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배 찬효 작가 본인이 직접 중세 역사속의 여러 여인으로 변장, 젠더와 역사, 사회와의 관계를 은유하며, 민 정연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신체 내/외부의 탈경계 또한 신초현실주의와 디지털 세대가 만들어 내는 시뮬라크르적 상상력으로서의 혼성의 시각화등이 라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두번째 부분인 "재-생성"에 대한 것은 잠재성(virtualité)을 드러내고, 이의 융기 (surgissement) 에 대한 것 으로, 혼성성에 근거한 새 지역 건설의 대두라는 혼합 정체성입니다. 이는 결국 "파편화" (fragmentation)와 "비정형"(Informel) 이라는 현대 미술에서의 중요한 개념에로 귀결되며, 각 매체의 질료적 특수성과 그 매체간들의 만남으로 형상화될 것 입니다. 여러 도시의 불빛들을 콜라쥬해서 추상적인 느낌이 나는 윤 애영의 사진, 비서구 국가들의 도시 외곽 개발 지역의 빈 광고판을 날것으로 담아낸 이 성희의 사진, 분단과 작가 자신의 분리 경험을 외부적 "경계"와 내부적 "연결"이라는 상반된 주제로 풀어나가, 주체 형성 과정을 표현한 다프네 난 르세르쟝의 사진, 비디오 작업등이 있읍니다. 그외 사회라는 외부적 요인과 개인의 내부적 충돌과의 간극을 앙포르멜적 형상으로 그 프로세스적인 면을 드러내고자 한 노 영훈의 작업, 그리고 일루젼이 사라진 이후, 회화의 2차원이라는 평면성에 대한 자각과 이에 대한 물질성의 추구라는 회화의 중요한 이슈를 다루고 있는 유 혜숙의 작업등이 소개되었읍니다 .
파 : 앞으로 다른 작가들도 이처럼 좋은 장소에서 전시회를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 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전시 개최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다른 작가 분들이나 또다른 전시기획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 : 우선 현재 시테 데자르의 Sidney PEYROLES 디렉터 분께서 이전 한국의 프랑스 문화원 원장을 역임(91-94년)하신 분이라 우선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분이셨고, 한국 문화원과의 관계 에도 관심을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이를 출발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 작가들을 위한 초대전으로 까지 발전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파리 에서 대형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장소와 그에 걸맞는 예산을 얻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이번 전시는 그 교훈을 준 좋은 기회였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규모 있는 현대 미술 전시를 위해서는 어느 개인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와 이해, 그리고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 인데, 이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대를 불문하고 작가들과 기획자 모두가 협력하여 일을 추진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구축해 나간다는 건설적이고도 긍정적인 동시대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파 : 재불 한국 문화원에서 좋은 전시회 큐레이팅을 많이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어떤 것이었고, 재불문화원에서 큐레이터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보람되었던 점 ?
김 : 가장 기억에 남을 전시는 바로 이번 시테 전시일 것 같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 이지만, 또한 그만큼 의미있는 전시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재불 문화원에서는 지난 만 삼년 동안(2006-2009) 대략 25회 정도의 전시를 기획 했으며 , 그동안 총 30여회의 전시 를 기획했읍니다. 문화원 전시는 내부로는 매달 젊은 유망 작가들을 발굴, 초청 개인전을 여는 전시였고, 그외 외부 전시로 2009년 <빔&충만 , Vide & Plenitude> 전시(한국 , 프랑스 작가 총 8인) , <파리-뉴욕>전 등이 있었읍니다. 보람있던 점이라면 , 한국의 작가들을 이곳에 소개시키면서 조금씩 쌓아가는 한국 미술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파 : 문화원 큐레이터를 그만두면서 아쉬웠던 점은, 혹은 다음 큐레이터에게 바라는 점은 ?
김 : 제가 그동안 한 역활은 초석을 깔아 놓은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던지간에 어려운 역활을 담당해야 할 자리라고 봅니다만, 가장 필요한 것은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 중심과 신념, 그리고 끈기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분에게만 이러한 모든 것 을 바랄 수는 없고, 또한 이 분야의 일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분들과 교민 사회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와 애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파 : 앞으로의 계획과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김 : 미래를 좀 더 거시적으로 크게 보면 결국 두 가지 일이 될 것 입니다. 즉 좋은 전시를 기획하는 일과 좋은 글을 남기는 것 이겠지요. 여러 상황상 기획과 저술을 병행하기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열심히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좋은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결국 의미있는 동시대적 개념을 창출하는 또 다른 시각화에 다름 아닌 것 이라면, 좋은 글을 쓰는 것 또한 그 유사선상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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